3 : 내일이 없는 오늘 #2
처음엔 좀 비장하게 임했던 경긴데, 역시 나는 나였다.
좋아하는 농구를 하고 있자니 우울감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아주 신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그러니까 이전 생에서의 수많은 오늘들을 포함해서, 오늘은 정말 감이 좋다.
시각은 공을 던졌을 때 씨네루 먹은······ 아니, 회전하는 농구공의 까만 라인이 다 구분될 정도!
청각은 지대경을 마크하고 있는 멀대의 숨소리까지 구분될 정도!
후각은 내 앞의 고릴라의 암내가 아주 잘 느껴질······ 어우!
아무튼 오감은 물론이고 육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기감각도 탁월했다.
거기다 몸은 또 어찌나 날랜지, 뛰고 또 뛰어도 힘들기보다는 재밌기만 했다.
어쩌면.
······ 밀러타임일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4쿼터만 되면 슈퍼플레이로 림을 폭격하던 레지 밀러처럼, 탁진우 역시 삶의 끝에서 모든 기량을 토해내는 걸지도 몰랐다.
쳇.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전반을 지배했고, 후반전 역시 우리 팀의 리드를 견인했다.
“탁진우! 탁진우!”
그런 까닭에, 후반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도 관객석은 바로 나 킹갓진우의 이름으로 떠들썩했다.
······ 음, 뭐, 딱 다섯 명이긴 하지만.
그리고 관객석도 아니고 그냥 서 있을 뿐이지만.
아무튼 동기인 지은혜와 송지혜와 서민희, 새내기 이주환과 김경우는 내가 공을 잡자마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런 성원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탁진우가 아니지.
보자······ 어디로 뚫어볼까.
중문과의 빅3로 불리는 멀대 함구연과 고릴라 신진형과 침팬지 정민구는 확실히 단단한 팀이다.
공격 땐 센터인 멀대가 페인트존을 장악하고, 포워드 고릴라가 뛰어다니며 우리 진형을 어지럽힌다.
가드 침팬지는 외곽에서 두 사람을 조율하다가 찬스를 만드는 역할.
수비 때는 멀대릴라가 우리 멍청이들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침팬지는, 국문과 슈퍼트리오의 에이스인 이 탁진우를 막는 막대한 소임을 갖고 있었다.
물론, 대체로 뚫렸다.
“아 씨, 헬프!”
뚫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지만 이유는 늘 하나였다.
내가 더 잘하니까!
······라고 말하곤 싶지만 꼭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놈을 더 잘 안다는 점이 주 요인이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상대하는 팀이다.
난 놈들의 입냄새를 기반으로 아침에 뭘 먹었을지까지 짐작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내가, 아욱!”
지원 나온 고릴라를 어깨로 밀어붙인다.
강하게, 차징!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서는 고릴라.
멍청한 녀석이다. 아직도 힘으로 날 막아보려 하다니.
그러니까 훌륭한 몸을 가지고도 인문대 대표팀에 계속 번번이 탈락하는 거다.
내가 상대적으로 작은 키 때문에 가드를 달고서도 르브론 제임스라고 불리는 이유를 모르는 멍청이니까.
혹자는 말하곤 하는 것이다.
탁브론의 힘은 체급브레이커라고!
포스트업에서 고릴라를 밀쳐내고 왼쪽으로 젖혀들어 멀대와 페이스업.
뒤에선 원숭이들이 우가우가 뛰어오고, 앞에는 2m에 가까운 거구가 우악스레 내려다본다.
당연히 우리 팀의 오병근과 지대경은 노마크 상태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굳이 킥아웃 패스를 넣어줄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탁진우니까!
간다!
“막는다!”
유치원생이냐? 막는다고 소리치다니, 내가 다 오글거리네.
빠르게 왼쪽으로 파고들며 발을 길게 차 뛰어오른다.
그리고 체공, 체공, 체공,
“으허헉!”
동시에 뛰어오른 멀대는 이미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난 체공, 체공, 체공,
그리고,
현란하게 더블클러치!
“으아아압! 차차!”
멋진 플레이를 마친 뒤 무릎을 들며 동강동강 팡팡.
르브론의 척추두동강 세리머니와 함께, 나는 33득점을 완성했다.
경기의 MVP는 나였다.
뭐, 과대항 연습경기에서 누가 그런 거 정해주는 건 아니지만, 우리팀도 상대팀도 그 분명한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터였다.
41:26의 원사이드 게임에서 홀로 33득점!
내가 올린 스코어가 상대팀 전체 득점보다 많다.
리바운드는 별로 못 했지만, 목표한 득점을 달성한 뒤에는 수비를 어지럽히고 킥아웃 패스를 찔러주는 데 집중해서 어시스트도 네 개 했다.
그런 내가 MVP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에어 조던이 GOAT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될 터!
띠- 띠- 띠-
“탁브론, 이 새끼!”
경기 종료를 알리는 내 폰의 알람소리와 함께 오병근이 땀냄새를 풍기며 달려들었다.
“미쳤다 미쳤어! 니가 진짜 킹갓진우다!”
지대경의 땀냄새가 그 뒤를 잇는다. 그리고 공을 주고받으며 구경하던 이주환과 김경우도 내게 달려들었다.
젠장! 냄새나!
“진짜 멋졌어. 특히 마지막에 넣었던 골! 그거 뭐야?”
“흠! 그게 바로 더블클러치라고 하는 기술이야. 처음에 그냥 점프슛 하려고 했던 걸 레이업으로······ 아무튼, 상대방을 완전히 속이는 슈퍼플레이지.”
“아하하, 뭔지 모르겠지만 멋지네!”
맞는 말이다.
나도 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 농구가 좋아질 것 같아. 앞으로도 너 경기할 때 구경하러 와도 돼?”
“······ 추운데 뭐하러.”
“별로 안 추웠는데? 앞으로도 니가 옷 벗어줄 거 아니야? 오늘처럼.”
경기에 청자켓과 야상을 입고 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닥에 놓는 대신에 어깨에 걸쳐줬을 뿐인데.
그리고 앞으로······도 농구경기를 하는 건,
아마 어려울 텐데.
하지만 잔뜩 신이 나서 종알거리는 은혜에게 부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노력할게.”
“후후, 노력한대. 그래, 더운 날에도 꼭 외투 입고 다녀. 내가 구경하다가 추워할지 모르니까.”
노력. 노오력. 노오오오오오력.
그딴 걸로 난관을 극복하고 내일을 맞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운명은 그런 쉬운 말로 형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심 뭐 먹을래? 진우 너 2시 수업이잖아. 시간도 있는데, 후문 가서 먹고 올까?”
“음······ 나, 오늘은 굶을래.”
“뭐어? 야, 방금 운동한 애가 굶으면 어떡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도저히 입맛이 없었다.
아침은 어떻게 넘겼지만 오전수업 직전에 화장실에 가서 토해내야 했다.
속이 뒤집힌 탓에 발표도 엉망진창이었고.
죽음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목이 베이는 건 어떻게든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내가 죽는다는 불변의 명제 앞에선 도저히 담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죽는다.
그리고 다시는······
은혜를 볼 수 없다.
“소원, 쓸게.”
“야, 밥 굶는 게 그렇게 소원이냐? 너 무슨 다이어트 해?”
그게 아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은혜의 손을 쥐었다.
“어······ 왜 그래? 진우 너, 이상하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은혜의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끼니 거르지 말고, 수업 잘 듣고, 친구들 자주 만나고, 좋은 남자도 만나고······ 그렇게, 잘 살아.”
마지막 말은 괜히 했다 싶다.
아니, 하는 게 맞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사는 게 성공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오늘 죽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인간.
만약 내게 남은 목숨이 어제의 죽음으로 다 소진됐다고 한다면, 새롭게 다가올 내일 나는 은혜를 볼 수 없다.
은혜 역시
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무슨 말이야? 왜 그러는 건데? 진우야, 너 어디 아파?”
아프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목이 잘려서 바닥을 구르는 통증보다도, 심장이 부서지는 지금의 아픔이 더 컸다.
“꼭 그래야 된다. 나도, 노력할 테니까.”
“노력······? 진우야······?”
은혜는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다.
여전히, 3월 17일의 일이었다.
“시발, 더럽게 춥네.”
옷깃을 여미며 투덜거린다.
정말 더럽게 추웠다.
3월 17일. 고향에서라면 슬슬 훈풍이 불어오며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이지만, 이 북방의 서울이란 도시는 아직도 자기가 겨울에 있는 줄 알고 칼바람을 날려대고 있었다.
어우.
칼바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또 섬뜩하네. 앞으로 칼 들어간 말은 최대한 생각하지 말아야지.
물론 이 추위에는 내 잘못도 어느 정도 있다.
추우면 집에 들어가서 보일러 켜고 이불 덮고 있는 게 맞는데, 멍청하게도 빌딩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으니까.
과 선배의 회사가 자리한 용산구의 고층빌딩이다.
최고층이 29층. 옥상은 무려 31층의 높이.
100m는 될 것 같은 고지에 굳이 올라와서 춥다고 투덜거린다면 그야말로 멍청이가 아닐 수 없었다.
멍청해서 죄송합니다!
······ 그건 아주 단순한 발상이었다.
은혜와 헤어져 멍하니 거리를 걷다가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청소부가 원거리 공격에 면역이 아닌 건 진작 알 수 있는 일이었다고.
뭐냐면 경찰서에서 싸울 때의 일이다.
나는 책상을 발로 차 놈에게로 밀쳤다.
그리고 그 책상은, 보호막이 아닌 놈의 다리 갑각에 부딪혀 멈췄던 것이다.
음······ 그게 뭐, 큰 타격을 주진 못했지만.
그리고 책상이 무기라고 불릴 수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손을 벗어난 공격이었던 건 분명했다.
그걸로 두 번째 가설이 힘을 얻었다.
청소부의 보호막은, 내가 아닌 인간의 공격에만 작용하는 것이다.
이미 생각했던 가설이다. 그 생각 자체가 뭐 대단한 희망을 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장 총기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경찰서에 가서 총기를 탈취하고 7시를 맞는다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뭐, 살아날 수는 있을 것 같다.
지난번처럼 경찰서에 가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다가, 청소부가 나타나면 상황을 봐서 계장의 총을 빼앗아 쏘는 것이다.
내가 쏜 총이라면 청소부의 검은 피부를 꿰뚫고 치명상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 이후다. 청소부가 죽고 나면, 그때는?
인간이 아닌 비일상의 괴물이지만, 그게 죽고 나서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괴물인 채 남는다면 그것도 나도 국정원이나 어딘가로 옮겨질 것이다.
테이저건을 튕겨내는 괴물에게 내 공격만이 먹혔다는 게 무서운 요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만약에 그게 죽여보니 인간이었다거나 하면, 난 살인자가 된다.
경찰서 안에서! 총기탈취에 과잉방위 현행범!
청소부가 날 제대로 위협한 뒤에 쏜다고 해도, 살인엔 정당방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새드엔딩인 셈이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 용산구를 지날 때쯤에 문득 생각했던 것이다.
원거리 무기에 꼭 투사체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발로 밀어 찼던 책상처럼, 탄환 크기가 아니라도 때로는 훌륭한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
어쩌면, 책상보다 더 큰 것 또한.
그런 생각으로 난 무작정 빌딩에 들어섰다.
그리고 덜덜 떨면서 7시를 기다렸다.
- 작가의말
대체 언제까지 3월 17일일지 기대하며 읽는 맛이 있는 글.
바로 이 맛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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