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즐거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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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루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즐거웠던 하루였다.
그날따라 모든 일이 잘 풀렸다.
대충 준비한 전공과목 발표는 엄청난 박수를 받았고, 점심 먹고 뛴 내기농구에서는 혼자 열 세 골을 폭발시키며 캐리했고, 오후 교양강의에선 교수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해 부러움의 눈길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혜와의 저녁식사가 즐거웠다.
“이 집 진짜 맛있다? 진우 너, 이런 델 왜 혼자만 알고 있었어?”
“아니 뭐······ 그냥, 누가 안 물어봐서.”
아마도 얼굴이 새빨개졌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눈을 피하며 파스타를 찍다가 몇 가닥을 흘렸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은혜를 자취방에 바래다주는 길목에서 한 허접한 고백.
“은혜야,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나랑, 친구 말고, 연애 할래?”
“음······ 후후후, 좋아. 야, 진우 너······ 바람피우면 죽는다?”
“다다다, 당연하지! 은혜야, 충성할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설마 성공할 거라고는 진짜 꿈속에서나 기대했었는데!
그 뒤로 10분 정도 골목길에서 떠들었던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당시에도 내가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냥 기억나는 건 딱 한 장면뿐이다.
2017년 3월 17일.
우리는, 키스했다.
그 짜릿함! 그 기쁨! 그 황홀함! 그······ 부드러움!
나는 정말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으로 골목을 돌아 내 자취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집을 50m 정도 남겨둔 길에서 ‘그것’과 조우했다.
-쓰레기 기사로군
그것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그건 생각이었다. 텔레파시 같은 무언가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로 걸어왔다.
그것은 괴상한 생물이었다.
아니, 생물? 생물이라고 말해도 될까? 그건 정말 괴상한······ 괴물이었다.
인간을 닮은 몸과 180cm 정도의 키. 하지만 그것은 온 몸이 검었다. 두 팔에는 가로등빛을 받아 음울하게 번득이는 암흑칼날. 두 다리는 마치 곤충의 그것처럼 갑각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본 직후에 공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눈이 없었다. 코도 없고, 입도 없고, 아예 피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는 것은 밤하늘처럼 검디검은 어둠뿐이었다.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던 내 머리는, 곧 정말로 하늘을 떠다니게 되었다.
-죽어서 반성하라 너의 죄악과 만행을
그게, 내 첫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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