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그날 #2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날 서재로 끌고갔다. 그리고 물었다.
누가 고구현을 죽였냐고.
······ 하하, 내가 죽였는데.
대답하지 않고 있자 달래기 시작했다.
탁씨 가문의 힘으로 그들을 응징할 거라고. 그러니 본 것, 들은 것을 모두 애기하라고.
······ 하하, 필요 없는데.
두 시간쯤 말없이 버틴 끝에 아버지에게서 벗어났다.
방에서 나설 때는 경찰에 압수됐던 검을 돌려받았다.
검······ 칼집이 없는, 내가 스승님께 받은 첫 번째 선물.
“구현이가 가장 존경하던 분의 검이다. 내 스승이시기도 하지. 뜬금없이 전화해서 그걸 너한테 주겠다는 얘기, 난 반대했지만······ 이젠 그게 유지(遺志)가 되어버렸으니.”
나는 검을 안고 내 방을 찾아 걸었다.
도중에, 큰형을 만났다.
“······ 피비린내 풍기면서 다니지 말고 씻어라. 아니, 그 검부터 방에 갖다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씻고 나올 때쯤엔 갈아입을 옷이 욕실 앞에 놓여 있었다.
난 다시 검을 챙겨서 후원에 나와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진우야······ 그 검······을 왜 그렇게 품고 있는 거니.”
“소중한 물건이라서요.”
“······ 그러니?”
“네.”
어머니는 한동안 말없이 날 내려다봤다.
“······ 등 다쳤다면서. 괜찮니?”
“예. 멀쩡해요.”
비정상적인 내 몸은 회복력까지 말도 안 되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0시 6분에도 이미 작은 통증만 있을 뿐 더 이상 출혈조차 이어지지 않는 상태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잠시 후에 말없이 떠나가셨다.
여섯시 반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여동생이 찾아왔다. 그리고 살짝 굳은 얼굴로 빈정거렸다.
“꼴통. 사고 쳤다며?”
“꺼져.”
“······ 별꼴이야.”
탁진희는 투덜대며 떠나갔다.
나는 창고에 가 적당한 케이스를 찾아 검을 담았다. 그리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아버지의 문하생 몇이 붙잡았지만, 떨쳐내는 내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처음으로 맞이한 20일의 19시.
인적 드문 야산의 공터에서 나는 청소부를 만났다.
-쓰레기 기사로군
“너······ 남자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옛날 그 머저리들도 아니고······ 대체 청소부가 몇 명이나 되는 거야. 야, 몇 명이나 되냐?”
-죽어서 반성하라
“그래, 이제 내가 청소부를 알고 있어도 놀랍지도 않겠지. 벌써 네놈들을 셋이나 죽였잖아.”
-너의 죄악과 만행을
“그래, 그래.”
몇 차례의 검격을 주고받고, 난 피투성이가 됐다.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될 일은 아니었다.
감각은 전생의 어느 시간과도 비교할 수 없이 예리해, 음속에 다다른 청소부의 칼질조차 눈에 보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몸에는 힘이 넘쳐서 그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넣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하하, 웃기다. 이런 감각이구나? 예전에 나한테 죽은 청소부도 딱 이런 느낌이었을 거야. 나보다 약한 놈한테 당한다는 거 정말 좆같은 기분이구나?”
-쓰레기 기사는 강하고 빠르다
-의아하군 어찌 이런 일이
“그래······ 스승님도 이런 기분이었을 거야. 너희, 약하잖아? 원래대로라면 말이지, 그렇게 빤히 들여다보이는 칼질, 스승님한테 닿지도 않을 텐데 말야? 근데 그 이상한 보호막 말이야. 그게 문제잖아. 그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착한 사람이, 이 빌어먹을 칼에 맞은 거잖아?”
-이해할 수 없는 일 어찌하여
-이러한 힘이라면 즈라인의 패배도 이해할 수 있는 일
“즈라인? 그년 이름이 즈라인이야?”
그 얘기까지 듣고 나서는 더 이상 칼에 맞아주지 않았다.
피하고, 팔을 잘랐다.
“이 빌어먹을 칼 말이야. 이딴 거, 궤적만 예측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피하고, 다리를 잘랐다.
“딱딱하기만 하지 뭣도 아닌데······ 이거 때문에 스승님이 피를 토하셨단 말이지.”
막고, 다리를 잘랐다.
새까만 대가리를 잡고 마지막 팔까지 잘랐다.
“다행이다. 몸을 공격하지 않으면 죽진 않는구나? 그 즈라인인가 뭔가가 팔 뽑아 던지는 거 보고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진짜였어.”
-이해할 수 없는 일 어찌하여
-쓰레기 기사는 지나치게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쓰레기 청소부. 즈라인이라는 년은 죽었냐?”
-이해할 수 커억
잘린 다리의 단면 속으로 칼을 찔러넣자 꽤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하하하, 아프긴 한가보네? 난 또, 죽을 때까지 비명 한 번 지르는 법이 없길래, 너희가 무슨 정령 같은 건 줄 알았어. 다행히 그건 아니었구나······ 그럼 이렇게 비틀면, 그리고 이렇게 쑤시면······ 아하하하, 고문이 가능하겠는데?”
그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청소부의 검은 피부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이럼 안 되는데. 젠장, 또 하루 반복해야 되나? 좀 더 정보를 얻어내고 싶었는데, 이거 너무 아까운걸?
“말해. 너희 본거지는 어디야? 나 죽이고 싶지? 본거지를 말해주면 내가 혼자 갈게. 너희 동료들한테 가서 죽어준다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
-쓰레기는 *레기*에
역시 대답은 없다. 난 청소부의 대가리를 왼손으로 꼭 쥔 채 눈을 부릅떴다.
-죽어* 반***
그리고······ 까만 먼지의 흩날림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고구현 스승님을 죽게 만들었던 의심은······ 이제 확인됐다.
동요가 클까봐 걱정했지만 마음은 의외로 차분했다.
내가 인간을 죽였다니!
그렇게 소리치는 탁진우는 적었고,
그게 뭐?
그렇게 대꾸하는 탁진우는 많았다.
“이놈! 너······ 지금 그놈은, 뭐냐!”
아버지였다.
뒤를 밟혔다는 건 발소리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떨쳐낼 생각이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괴물이요. 스승님을 죽인.”
“그게 대체 뭐냔 말이다! 그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왔냐고!”
“저도 그게 궁금해요. 알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난 칼날을 바투 잡았다.
“제가 다 죽일 거지만.”
“뭐? 진우야, 너 이 새끼 지금”
처음엔 덜 아프게 자살할 방법을 고민했는데······ 이젠 뭐 아픔도 잘 모르겠다.
돌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19일로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에, 내 분노는 나 자신을 향했다. 그리고 내가 스승님에게 데려간 비일상의 악령들에게 향했다.
나를 쓰레기 기사라고 생각했다면, 나를 죽였으면 됐다.
왜. 왜. 왜.
목이 반쯤 잘린 채로 내 등을 관통도 못해서, 내가 죽지도 못한 채 20일에 도달하게 만들었느냔 말이다.
나는 즈라인을, 그것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청소부를 죽이고 나 역시 죽으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20일의 0시 6분으로 돌아와, 나는 맨손으로 마당을 파 고구현 스승님을 묻었다.
염습도 못 하고 관도 준비 못한 불성실한 안장.
핸드폰을 통해 조사한 것 중 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장례의 의식은 많지 않았다.
간신히 작은 봉분을 만든 뒤에, 나는 스승님의 방을 뒤져 담배 한 개비를 찾아냈다.
불을 붙여 봉분 앞에 꽂은 뒤에······
재배(再拜)했다.
“향 대신인데······ 죄송해요. 하지만 복수하고 나면, 그땐 꼭 제대로······.”
피 묻은 흙까지 전부 묻었기 때문일까, 이번엔 경찰이나 앰뷸런스는 오지 않았다.
외딴 판잣집 마당에 조그마한 봉분이 생긴 것까지 신경쓸 만큼 주변 인심이 여유롭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봉분을 등지고 선 채로 청소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가끔 핸드폰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곤 해서, 칼끝으로 찔러 부쉈다.
그리고 19시에, 마침내 나타난 청소부에게 물었다.
즈라인은 죽었느냐고.
대답을 듣지 못했다. 팔을 하나 잘랐다.
본거지가 어디냐고 물었다.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리를 하나 잘랐다.
자살하고, 스승님을 묻고, 기다린다.
청소부를 만나 묻고, 죽인다.
자살하고, 스승님을 묻고, 기다린다.
청소부를 만나 묻고, 죽인다.
자살하고, 스승님을 묻고, 기다린다.
청소부를 만나 묻고, 죽인다.
······ 방법이 잘못됐다는 건 사실 알고 있었다.
정말 복수를 하고 싶다면, 하루건 며칠이건 더 진행시켜 그 ‘즈라인’처럼 소통이 되는 청소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그 20일의 반복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대비를 못하고, 선택을 잘못하고, 멍청하게 실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는 어떤 실수를 저지른들 20일의 청소부 따위에게 당할 몸이 아니었으니까.
열일곱 번째 자살을 감행하고 난 뒤에 깨달았다.
난 그저 두려워하고 있는 거였다.
하루를 더 보내버리면······ 21일이 되어버리면.
20일의 0시 6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니까.
그렇게 되면, 다시는······ 정말 두 번 다시는
시신이나마, 스승님을 볼 수 없게 되니까.
가끔씩 그런 생각도 했다.
차라리 이러다 내 남은 목숨이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복수나 회귀에 연연할 것도 없이 죽어서 스승님의 곁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음. 천국이랑 지옥으로 길이 갈리면 좀 곤란한데.
혹시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저승사자들을 죽여서 천국으로 가야겠다. 그럼 만날 수 있겠지.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그런 기대도 했다.
이렇게 계속 죽고 또 죽으면······ 마침내 기적 같고 악몽 같은 이 능력이 힘을 다하고 나면.
모든 게 다 꿈이었다는 것처럼.
다시 최초의 3월 17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정은 원래 무뎌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스승님에 대한 내 죄의식도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바래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감정의 부식에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하나 있다.
시간의 흐름.
내게는 그게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첫 번째 20일에 자살을 결심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한 번이라도 21일을 맞았다면, 난 그토록 오랫동안 하루를 반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돌아가는 0시 6분은 20일이었다.
조금쯤 감정이 무뎌질 때쯤에 목숨을 끊으면, 나는 다시 스승님의 시체 앞이다.
그의 짓이겨진 손과, 피고름 가득한 가슴과, 끝까지 감지 못한 두 눈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 누, 야······!’
여전히 생생하게 그 모습이 떠오른다.
마지막까지 날 걱정해서······ 뒤에서 접근하는 청소부에 대해 경고하려고, 핸드폰을 가리며 내 이름을 부르던 스승님의 얼굴.
몇 번의 20일이 반복되어도
그 광경은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여전히 20일, 청소부를 기다리며 판잣집의 마당을 지키던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 은혜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잠깐이라도 그 음성을, 그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아마 300번은 넘게 20일을 보낸 뒤였던 것 같다.
감정은 부식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20일의 0시 6분마다 스승님의 시신을 보며 찢어지는 가슴을 붙잡았고, 여전히 청소부를 볼 때마다 더 커지고 격렬해진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감정도 강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인 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죄책감과 분노만큼이나 그 감정 하나가 자라나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시신과 청소부만을 만나는 하루를 반복하며,
외로워하고 있었다.
다시 수십 번의 20일을 반복한 뒤였다.
그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은혜의 전화를 받았다.
[진우야아! 헤헤, 지금쯤 일어나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어. 너 아까 자고 있었지? 전화 아무리 해도 안 받아서 그냥 혼자 집에 왔어. 어······ 진우야, 혹시 내가 깨운 거 아니지?]
너무나도 평화로운 그 목소리······. 17일에도, 18일에도, 19일에도 그랬던 것처럼 밝고 따뜻한 그녀의 온기.
오래전에 말라버렸다고 생각한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나왔다.
[어어? 진우야, 울어? 야아아,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진우야, 내가 안 그럴게. 왜? 왜 그러는데?]
그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가 너무도
낯설어서
통화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난 자살했다. 처음으로, 청소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신을 묻고 청소부를 죽이는 목가적인 나날이 수백 일 동안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언제나처럼 날이 맑고 공기가 서늘했던 그 20일에, 난 드디어 마음을 굳혔다.
이제는 내일을 맞이하자고.
더는 스승님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말자고.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하아암. 뭐냐 이놈아.]
사제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예전처럼 심드렁한 태도였다.
“검은 피부, 칼날이 달린 팔, 갑각으로 된 다리. 오래 전 신라의 한 낭도가 죽인 적 있다고 전해지는 괴물입니다. 그놈에 대해서 하실 수 있는 한 가장 상세하게 조사해주세요. 오늘 저녁 6시 전까지 알려주십쇼.”
[뭐? 이런 미친놈이, 어디 애비한테 학교 과제 심부름을 시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기다릴게요.”
아버지의 연락은 전화로 오지 않았다.
「아버지 : 싸가지없는 놈아 메일 보냈으니 확인해라」
메일에는 특별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다.
고구현 아저씨가 지인을 통해 조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
단지, 내가 알지 못했던 단 하나의 정보가 거기에 더해져 있었다.
「······ 낭도 유화(柳花)는 서라벌 북서쪽 20리 구릉에서 괴물과 조우했고, 그 구릉 위쪽의 산으로 올라갔다 전해진다 ······」
그걸로 내 첫 행선지가 정해졌다.
7시를 조금 앞둔 그 때에,
나는 마지막으로 자살했다.
- 작가의말
이렇게 해서 1권 분량인 것 같습니다.
너무 심각한 내용이 돼서 죄송합니다 ㅠ
그렇다고 일상이 파괴된 건 아닙니다.
길었지만, 실제로는 일요일 하루였으니까요.
2권부터는 비일상과 일상의 콜라보레이션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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