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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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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719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7.13 17:32
조회
97
추천
10
글자
11쪽

7화 .. 탄 생

DUMMY

밝고 아름다운 밤 이었다.

때문일까 ... 달빛아래 선 그의 모습 속에, 아픔과 노기로 지친 마음이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 옥호는, 기다리면 네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겠지!

... 그나마, 그의 곁에 있는 너 이지만... 이곳! 내 주변에 있는 널 바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는데, 이제 본존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너를 이렇게 만든 원흉이라는 원망만 내게 남게 되겠지. ”


그의 굵은 목젖이 무겁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망연한 울림 같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힘든 밤이구나. 네가 원하는 걸 이룰 때까지 무탈하게 잘 다녀오도록 하여라.

그리고 ... 백년에 한번 첫해가 시작될 때, 너는 나와 옥호와 이곳의 기억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세상에 피어나는 봄의 첫 꽃이 온통 붉은 꽃잎만 피어나게 하여라... 그럼, 내가 너를 마중 나가도록 하겠다. 잊지 말거라!”


잠시 허공 속에 시선을 묻었던 그가, 더 할 말을 삼키려는 듯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다시 희미한 금빛으로 사라졌다.

올 때와 다르게 그가 떠난 자리에는 바람 한 점 일지 않았다. 급하게 떠난 것 같았다.


긴 이별을 위해 이제 모든 작별 인사는 마무리가 된 듯하였고, 그녀에게 있어서도 천궁의 주인인 그는 아픔으로 남게 될 기억이었다.

오늘 따라 한 번도 단옥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그녀의 작은 화원안의 생명들이, 두 귀를 연신 쫑긋거리며 선잠을 이루고 있었다,


‘ 옥호 사형. 백 년마다 한번씩 세상을 향해서 월령를 불어주세요. 내 기억이 지워지지 않게...’




****




희뿌연 여명이 어둠을 거의 다 물리고 세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맞추어 비장함 마저 흐르는 파선정 위의 모습이 세상위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옅은 미소를 띤 채 파선정을 향해 걸어가는 천후가 될 뻔한 여인의 눈치를 흘깃 보며, 천궁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조광 선관이 천제와 주변 신선들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 자영 상선께서, 얼마 전 사악한 혼령을 거두는 과정에서 청룡의 근간을 다치며 내력에 해를 입으셨습니다.

인간계에서 백 만년의 수련을 행하며 내력을 치유하고자, 오늘 이렇게 파선정에 서게 되었으니, 천지간의 조화로운 기운을 받아 꽃의 정령이 되어 만물의 흐름을 보살필 것입니다.

백 만년 후에, 무탈하게 천계로 다시 돌아오시길 기원 드리며 배웅을 합니다!“


조광의 짧은 의례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파선정의 입구가 열리며 인간계에서 밀려오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선계의 입구를 지나 위로 훅 불어 닥쳤다.


파선정 앞에 선 그녀의 머리칼과 옷자락이,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께 푸른 빛깔의 선광이 그녀로부터 일어나더니, 거대한 청룡의 형상으로 바뀌며 그녀의 주위를 휘감듯이 사납게 몇 바퀴를 돌고 있었다.


잠시 후, 청룡의 형상이 터지듯이 옅어지고 희미해지던 청룡의 원신은 서서히 다시 푸른빛으로 바뀌어 자영의 온몸을 휘감아 내렸다.

이제 그녀는 형체가 아니라, 마치 한 뭉치의 거대한 빛 덩이처럼 활활 타오르는 듯하였다.


또다시 그녀의 모습이 변하며 꿈틀거리던 거대한 빛 덩이는 못이기는 듯이 꾸물거린 후 크게 폭발 하였고, 이제 작은 빛 조각으로 변한 그녀의 자취는 하나 둘 공간속으로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풀어지듯이 흩어진 빛은 갖가지 모양과 만가지색의 화려한 꽃잎으로 바뀌어, 파선정의 공간 위를 어지럽게 흩날려 다니고 있었다.


슬픈 듯이 아름다운 광경에 마음을 빼앗긴 신선들과,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눈물을 버티고 있는 상제를 스치며 꽃잎 두 장이 날아 와 뻣뻣하게 굳어진 그의 손 안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옥호가 살포시 꽃잎 두 장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손안으로 감춰지는 꽃잎을 천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중천.


상제의 세정전 앞에는 영선강 상류의 수맥에서 탄생한 신성한 물줄기가 땅속 깊숙한 지류를 타고 흘러 내려와, 수심 깊숙한 곳에서부터 물줄기가 올라오며 만들어진 작은 연못이 있었다.


선기가 가득한 물로 이루어진 탓에, 언제나 이곳 정영지에는 선계에 존재하는 온갖 영물들이 머물며 신성하고 생동감 넘치는 세상의 모습을 품고 있었다.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수초로 덮인 물살을 저어가며, 선학 몇 마리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작은 물고기 떼들과 함께 보내었고, 수면위로는 반짝이는 햇살을 타고 낮은 물살이 항시 일렁이고 있었다.


자영이 남긴 꽃잎 두 장에는 그녀의 부서진 마음의 일부가 담겨있었고, 작은 마음이라도 절대 잊혀지고 싶지 않은 사내를 위해 남기고 떠난, 그녀의 또 하나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상제는 꽃잎의 모양으로라도 그의 곁에 남아준 그녀를 항상 바라보며, 자영의 생각대로 '언제나 함께' 라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대신 남은 꽃잎은 역시 슬픔일 뿐이었다.

분노마저 깊어지는 순간이 오자, 옥호는 그녀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자영과 그를 닮은 아이들을 만들기로 하였다.


정영지의 수심 깊은 곳. 영선강의 수맥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 자영의 두 조각의 마음과 그녀의 원신의 근간인 용린을 해명연에 봉인한 후, 자신의 원기를 주입하며 오랜 시간동안 정성껏 그들의 아이를 탄생시킬 노력을 하였다.



* *


어느새, 그녀가 없는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자영은 이전의 기억은 모두 지워진 채 정령의 존재로만 세상에 머물고 있었다.


백년마다 천기성이 인간계의 정북에 도달할 때, 정령의 기운을 운집하기 위해서 그녀는 이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고, 그 순간에만 잠시 그녀가 가진 기억을 각성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아서. 이내 다시 꽃잎으로 흩어져 버리는 순간과 함께 자영은 또다시 생전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꽃의 정령으로 백년의 시간을 돌아올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상제는 그 짧은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백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었다.




****




백번의 새해가 시작된 후, 천기성이 인간계의 정북에 도달했다.


인간계와 중천의 중간쯤에 위치한 만수산의 정기가 모여든 곳에서, 그녀가 또 한번 정령의 존재에서 이전의 모습을 잠시 갖추기 위해, 무수히 많은 꽃잎으로 세상에 흩어졌던 그녀의 마음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꽃잎은 회오리바람처럼 한곳으로 모이며 타래처럼 얽혀져 맴돌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서서히 여인의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영아 ! "


“ ... "


형상은 아직 말이 없었다.


의식과도 같은 더딘 시간이 지나고, 꽃잎의 회오리가 서서히 잦아지자, 드디어 완연한 모양새의 여인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옥호의 숨결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시간과 함께 마지막으로 여인의 눈동자에 선기가 차오르고,

밝은 곳에 서있던 여인이 드디어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서 있던 사내를 향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옥호 사형! 그새 늙어진 거예요?”


수심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은, 상제의 낯빛을 초췌하게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미안해!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자영이 머문 곳으로 얼른 가까이 다가간 상제가 더 이상의 말은 두고, 그녀의 두 손을 잡고 금방이라도 다시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하얀 볼에 조심스런 입맞춤을 전하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짧게 주어지는 시간에, 그녀를 만난 행복보다는 이 마저도 빌어먹을 저주 같다는 좌절감만 가득했었다.


하지만 절대 바껴지지 않을 이놈의 저주를 이제는 받아들이고, 허튼 생각할 짬 없이 자영과 그의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둘은 어떤 말보다도, 두 손을 잡은 채로 서로를 향해 최대한 사랑스럽게 웃어주어야 했다.

다음 백 년 동안, 그에게 남겨질 마지막 기억을 만드는 순간이라는 것도 이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울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항상 기다릴 거라는 두어마디 말을 함께 나누기에도 전에, 맞잡은 그녀의 손이 다시 부스스 부서지며 꽃잎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자영은 다시, 상제의 두 손 위에서 그림자처럼 공허해져 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정령의 존재로 흩어질 즈음에, 이젠 옥호는 그녀가 날아가는 곳을 향해 다른 말도 전할 수 있었다.


... 그녀에게 커다란 선물을 줄 것이라는...




***




기약된 만 번의 백년 중에서 백번의 백년이 흘렀다.


두모 선인과 그녀의 소선 현연은, 이날도 정영지의 깊은 곳에 봉인된 해명연을 보살피느라, 연못 안과 밖을 오가며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해명연에서는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일어나고 있었다.


잠시 후 해명연이 잠이든 듯 고요해지자, 그들도 이제서야 연못 밖으로 나와 따뜻한 햇살아래 노곤한 몸을 말리고 있었다.


수면밖에 나와 앉아있어도, 눈길은 연못 속에 있는 연꽃의 잔영에만 고정한 채 졸린 듯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자라 돌조각처럼 무료하게 앉아있는 두모 선인 앞에서, 현연은 언제나 그러하듯 흥겨운 노랫가락을 부르며 두 다리를 통통 흔들어 대고 있었다.


흥에 올라 두 손을 머리위로 올려 나비 짓을 하려할 때였다. 하늘에서부터 밝은 빛줄기가 연못 안으로 내려앉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순간, 동그랗게 오물어진 입으로 함께 나와야 할 노랫소리가 그대로 뚝 끊어지고 말았다.


현연의 재잘거림이 끊어지자, 순간적인 고요함에 깜짝 놀라 정신이 든 두모 선인이 급하게 일어서서 심연 속에서 일렁이는 빛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빛줄기가 사라진 곳의 수면 안쪽에서 강한 빛이 터지는가 싶더니, 수면 위로 부글부글 큰 물거품이 일며 무언가가 안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현연아, 얼른 상제께 달려가서 아뢰거라! 아기씨들께서 움직임이 있으시다고, 어서 가거라!”


두모 선인의 살짝 굽은 허리가, 놀라서 곳 추세워진 채 현연을 다그쳤다.

그리고 그녀의 주름진 입가에는 희열이 터질 듯이 깊은 주름살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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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08.23 00:12
    No. 1

    백년만에 만나 손 한 번 잡는 거라니....
    저라면,... 진도를 확~ 빼야 되는데 말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8.23 00:24
    No. 2

    그러게 말이지욤..ㅋ
    제가봐도 앞부분은 고구마 농사가 풍년인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들러줘서 감사해용. 하윌리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3.12.15 22:26
    No. 3

    자영이 꽃의 정령으로 화하는 과정이 마음 아프기도 하고 너무 아름다워요.
    시간의 무게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정령으로 있는 동안 기억을 못하는 자영도 슬프지만, 그 긴 시간을 견디고 있는 옥호 상제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16 00:45
    No. 4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작가님의 감성에, 제가 오히려 빠져드는 것 같아요.
    아름답게 느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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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 귀왕의 귀환 22.07.19 58 9 13쪽
12 12화 .. 우신을 찾아 +4 22.07.18 65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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