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773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8.03 17:30
조회
46
추천
8
글자
11쪽

황홀한 전신

DUMMY

“으음? 이렇게 평온한 천궁에서 검소리가 들린다고 ...? 어디지?”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날렵한 검소리가, 그녀의 귓속으로 들렸다 멎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는 마치, 천궁에 요사스런 기운이라도 퍼진것처럼 그녀를 몽롱하게 밖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다.


홀린 듯이 '운심전' 을 나선 후, 조금씩 크게 울려오는 소리를 향해 또다시 투명하도록 깨끗한 벽면을 따라 어느 정도 걸었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멀지 않은곳에 , 그 소리를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전각 몇 채가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천계에서 보낼 며칠 동안의 악몽에서 기지개를 켜는 순간을 맞이한 것 같았다.


오래된 고목의 기품이 느껴지는 단층짜리 전각들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마당에는 잔잔하고 낮은 키의 풀잎들이 소복이 돋아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폭신폭신해 보이는 저 마당 안으로, 얼른 들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 있었다.


마당의 중간에서는 어제 보았던 천계의 태자가 누군가와 검술을 연마하는 중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대결은, 마치 지루한 의식처럼 느리고 규칙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쯧쯧... 검 대련도 이곳처럼 참 평온하고 지루하구만, 저 정도만 하다가 진짜 적이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모면할 생각인지!”


그녀의 존재감을 느꼈는지, 한참 대련 중이던 태자가 별안간 그녀 쪽을 흘깃 쳐다보며 한쪽 눈을 찡긋해 주었다.


자운도 급하게 표정을 바꾸어 살짝 미소를 지어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순간 태자의 하얀 목선위로 다가오는 칼끝을 느낀 건, 그녀가 조금 더 빠른 것 같았다.


태자가 눈을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기도 전에, 분명 저놈의 검광이 그의 하얀 목선을 먼저 가로지를 것이 뻔해 보였다.


생각할 틈이 없는 건 운의 특기였다.

또다시 생각보다 먼저, 바람을 타듯 허공위로 몸을 치솟아 올리는 동시에, 선요검을 소환하면서 그에게 다가오던 검광을 재빠르게 밀쳐내 버렸다.


자운과 태자인 성운제군이 서로의 등에 기댄 채 반 바퀴의 원을 만들어 돌았고, 멈추지 않고 또다시 날아드는 검을 이번에는 자운이 맞받아 내기 시작했다.


'뭐야 ! 왜, 갑자기 살벌해 지는 거야! 천계의 태자인데, 연습이면서 이래도 돼? 원래 이런가?... 어쨌든, 됐어... 신나잖아!'


자운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번지고, 맞부딪힌 상대의 검 자루를 타고 올라간 시선은 이 검의 주인과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의 눈빛을 꼼짝 못하게 묶어버리고 있었다.


잔잔한 한손의 움직임만으로 이렇게 분주한 검광을 휘감아내는 상대의 검술에 적잖이 놀라고 통쾌해하고 있는 자운에 비해,

상대검의 주인은 마치 그녀를 놀리듯, 점점 더 분주한 검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잠시 스치는 눈길에 보이는 그의 입가에도 분명 즐거운 미소가 가늘게 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동안 긴박하고도 화려한 검술이 허공위로 영롱한 검광을 만들어내자, 주변의 선인들도 하나 둘 모여들어 이 모양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멀찍이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검은 옷의 남자가, 그의 옆에 앉아 즐겁게 이 모양을 구경하는 검은 개에게 볼멘소리로 투덜대고 있었다.


“세상 싸울 일 있는 곳에는 죄다 빠지지 않고 끼어 있는 것 같군! 여장들과 대련을 하던지, 아니면 다른 공주들처럼 조신하게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되나?!"


마존의 투정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지옥의 검은 개가, 여전히 자운을 바라보며 풍성한 꼬리를 연신 툭툭 흔들어대고 있었다.


“당당 가자 그만, 어머니를 찾아뵈어야지!”


내키지 않는 듯이, 무겁게 일어선 큰개가 더 이상 검의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느끼며, 앞선 마존의 뒤를 천천히 따라 나서고 있었다.



검광의 분주한 움직임이 절정에 달할 즈음, 검의 끝자락에서 정교하게 만난 두 검이 멈춰 선 곳에서는, 잠시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짧은 정적을 깬 건, 물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칼날 사이를 휘감아 도는 듯한 흑룡이 새겨진, 육중한 무게의 검 날 이었다.


물빛의 칼날에서 솟아오른 한 마리 흑룡의 몸짓이 자운의 단아한 옥으로 만들어진 검 날에 비춰지는 아침 태양을 가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물빛의 검은 자운의 검의 끝자락에서부터 날카로운 소리를 끌며 내려와, 선요검의 칼자루 끝을 힘껏 허공으로 밀쳐 올렸다.


순간 엄청난 힘의 전율이 온 몸으로 파고들자, 놀란 자운은 자신의 손을 떠난 선요검이 허공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망연히 바라만보고 서 있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선요검을 한 손으로 잡은 상대가, 무표정하게 자신이 잡아낸 검을 자운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는 척 시선을 고정한 자운이, 선요검을 손에 든 채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를, 희열을 떨치지 못한 채 한동안 굳은 듯이 바라보고 서있었다,


어느 틈에 다가온 태자 성운제군이 선요검을 받아 자운의 앞으로 예의있게 검을 들어올렸다.


"중천의 공주, 검술이 아주 뛰어난 것 같습니다!"


태자가 놀라움이 담긴 탄성과 함께 공손히 칼을 받쳐 올리자, 자운도 끓어오르던 열기를 누르며 이제야 비로소 성운의 두 손위에 올려 진 그녀의 선요검을 바라보았다.


“천계의 전신이시고, 제 사부님이신 백현성군 이십니다!

수심을 손에서 놓으신 적은 없지만,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는 검술을 쓰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공주와의 대련으로 이렇게 사부님의 검술까지도 구경할 수 있어서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눈빛까지도 고스란히 받아내며 차갑게 서 있던 전신이, 그를 바라보던 자운의 눈길이 완전히 걷혀진 후에야 말을 내뱉었다.


"검이 ... 손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 움직이니, 마음처럼 검의 움직임이 날렵하고 경쾌하군요!

하지만 공격만을 위한 몸짓에서 나오는 검술은 상대가 공격을 막을 때마다 길을 잃고 흔들리게 됩니다.

태자에게 다가가는 검의 길을 먼저 읽어낼 줄 아니, 검을 바라보는 마음은 깊지만, 상대의 검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초식을 미리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다듬는 수행이 먼저 이루어지면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전신의 몇 마디에,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충만한 만족감에 취한 자운이, 바보스럽게 서서 그의 입술만 파고들 듯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전신이 자리를 뜨려하자, 그의 돌아선 뒷모습을 향해 자운이 비장한 투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전신... ! 지금까지 저의 검술에 대해 이렇게 깊은 가르침을 주신 분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송구하지만, 가르침을 조금만 더 청하여도 되겠습니까?”


전신의 뒷모습에 두 손을 들어 예를 다해 올린 말이었지만, 전신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낮지만 부드러운 투로 자운에게 대꾸하였다.


“중천의 공주, 본군은 원래 제자도 거두지 않고 검술에 대해 논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태자를 가르치는 것은 천계의 안위를 위해 본군이 해야 할 도리로써 하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본군의 의지 속에는 절대 없는 부분입니다. ”


검은 머리칼을 가볍게 묶어 늘어뜨린 옥빛의 머리끈을 흩날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몇 마디를 남긴 전신이 어느새 저 만큼 걸어 나가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발길을 옮기는 전신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자운이 딱했는지, 성운제군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중천의 공주. 지금도 훌륭한 검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부님의 가르침을 원한다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회를 기다려봅시다.

사부님은 제자를 따로 두시지는 않지만, 어쩌면 제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힘이 빠졌던 자운이 그의 말에 철부지 아이처럼 좋아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자운의 함박웃음을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던 성운이, 하마터면 들고 있던 자운의 선요검을 바닥으로 떨어뜨릴 뻔하였다.


어린 시절, 천제와 함께 즐겨보던 화첩 속에는 밝게 웃는 여인의 모습이 풍경의 한 부분처럼 항상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운의 웃음 띤 얼굴은, 기억속의 그 여인의 웃는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선요검을 받으며 자운이 경쾌하게 말을 이었다.


“태자 전하, 감사합니다. 자운이에요. 제 이름이요... 편하게 이름을 부르세요!"


성운 또한 당혹감을 숨기며, 그녀의 말에 대답하였다.


“아... 네, 저는 성운 입니다. 이번에 천궁에 며칠 머무르신다니, 그동안 좋은 벗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운이 좀 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태자에게 말하였다.


“안 그래도 이곳이 너무 적막하고 외로웠는데, 친구가 생기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성운 전하는 저보다 나이도 더 많으시니,

전하께서 말씀을 편하게 하시면 저도 좀 더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자운의 이야기는, 유별나게 청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자운의 익숙한 미소 속에서, 태자의 어린 시절... 화첩 속에 있는 여인을 가리키며 참 예쁘다고 얘기를 한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여인과 같은 미소를 가진 이를 눈앞에서 마주 보고 있으니, 현실 같지 않은 설레임은 자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천궁의 한켠에는 마존의 외궁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과 같은, 녹음 진 웅장한 대나무 숲 사이에 이름도 마존의 누각 이름과 같은 '파한정'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옮겨다 놓은 듯, 외따로 존재해 있었다.


선대 마존의 죽음 이후에 그와의 기억이 남아있는 마계에서 혼자 세월을 버텨내기가 힘들었던 마존의 모친은, 그녀가 나고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와 그녀를 위한 삶을 다시 이어가기로 하였다.


때문에 마존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이곳과 똑같은 모양의 외궁을 마계에도 마련해서 종종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마음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파한정의 마당으로 들어섰으나, 언제나 미리 나와서 반겨주던 어머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존이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당의 끝자락에서 나뭇잎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따라 살펴보니

마존의 어머니 자청비군이 거추장스러운 치맛단의 앞자락을 속옷바지에 대충 찔러 넣은 모습으로, 높다랗게 걸쳐놓은 대나무 사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3.12.27 22:31
    No. 1

    전신이 청룡의 기운을 알아보았을 것 같네요.
    태자 성운은 혹 천제와 명요의 아들? 어릴 때 화첩에서 본 자영과 닮았다고 느낄 정도면, 운이 공주의 정체가 곧 탄로날지도 모르겠어요. 재미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28 01:24
    No. 2

    어쩜~~~
    추리력이..ㅎ
    태자는, 천제와 명요와의 아들이 맞아요.
    나머지는.. 말하면 안되겠쬬~~^^
    저도, 재밌어요.
    감사해요. 별남~~^^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월검의 연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엇갈린 마음 +2 22.08.11 49 5 14쪽
35 역겁의 운명 22.08.10 36 5 15쪽
34 인간계의 겨울밤 +4 22.08.09 40 6 15쪽
33 신안의 눈으로 22.08.08 43 6 12쪽
32 그대와 함께 새해를 +2 22.08.07 36 5 11쪽
31 고육책 22.08.06 47 5 12쪽
30 상제의 거래 +2 22.08.05 47 6 12쪽
29 천제와 만난 아이들 +2 22.08.04 42 6 13쪽
» 황홀한 전신 +2 22.08.03 47 8 11쪽
27 천계의 태자 +2 22.08.02 43 5 12쪽
26 천계에서 만나자 +4 22.08.01 41 5 12쪽
25 당당이의 전생. 2 22.07.31 39 5 15쪽
24 당당이의 전생 .1 +2 22.07.30 44 5 11쪽
23 망천강의 재회 +2 22.07.29 48 6 14쪽
22 현연의 역겁 +2 22.07.28 37 6 13쪽
21 헤깔린 진실 +2 22.07.27 41 5 13쪽
20 나체귀의 여인 +2 22.07.26 47 5 11쪽
19 정심검의 여인 22.07.25 44 5 12쪽
18 마존의 비 22.07.24 57 5 13쪽
17 17화 .. 어쩌다 우정 +2 22.07.23 45 6 13쪽
16 16화 .. 운우의 역겁 +2 22.07.22 51 8 12쪽
15 15화 .. 구중천에 비가 내리다. 22.07.21 47 8 12쪽
14 14화 .. 당당의 수난 +2 22.07.20 49 8 15쪽
13 13화 .. 귀왕의 귀환 22.07.19 58 9 13쪽
12 12화 .. 우신을 찾아 +4 22.07.18 66 9 12쪽
11 11화 .. 두모의 소원 22.07.17 80 9 13쪽
10 10화 .. 봉인된 아이들 +2 22.07.16 79 9 14쪽
9 9화 .. 만 남 22.07.15 74 9 12쪽
8 8화 .. 해명연에서 태어난 아이들 22.07.14 91 9 12쪽
7 7화 .. 탄 생 +4 22.07.13 99 1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