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49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언제까지 그놈들과 노닥거릴 생각이냐?”
“그래도 저를 위해 주는 녀석들입니다.”
“시국이 어수선한 때에 잘하는 짓이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부르신 겁니까?”
“네 할아버지께서 널 부르셨다.”
“저를요?”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이니 내일 아침 일찍 본가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뵈어라.”
“알겠습니다.”
“행여 실수는 하지 말고.”
“조심하겠습니다.”
“올라가 봐라.”
서원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실 여유가 없으실 텐데······.”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서원섭의 본가는 만석지기 집안으로 알려진 상태지만 실제로는 무가였다.
그것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창천오문의 일원이 바로 서원섭의 본가인 태백무문이었다.
태백무문의 삼남인 터라 무가를 계승한다는 것은 어려워 검찰에 투신한 이가 바로 서장후였다.
서장후가 검찰총장에 오른 것도, 재직하는 동안 한 번도 외풍에 시달리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일이 생겼다면 아버지를 찾으시는 것이 정상인데 어째서 나를 왜 찾으시는 거지?”
무가의 일에는 관여할 수 없는 터라 성인이 된 후부터는 본가를 찾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부름이 이상했다.
혼천이 열리기 직전이라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부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본가에 다른 일이 생긴 건가? 설마!”
정 실장을 동원해 자신이 꾸미고 있는 일을 알아차린 것은 아닌지 서원섭은 걱정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씻고 나서 생각하자.”
술기운이 남아 있어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던 서원섭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정 실장 말대로라면 아직 혼천이 열린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신물이 권능을 품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
두 번째 징조가 나타난 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무슨 이유인지 찾기 위해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으로서 그리 생각하는 게 맞다.”
서원섭은 할아버지가 부른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이라면 이번 혼천의 이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것도 아니니 일단 할아버님은 만나봐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서원섭은 문을 잠근 후 침대에 누웠다.
딸칵! 딸칵! 딸칵!
서원섭은 침대 머리에 달린 조명 스위치를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자 침대 주변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내일 할아버지를 만날 때 자신이 가진 힘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마법을 실행시킨 것이었다.
마법의 원천인 마나가 몸 안으로 흘러들고 있는데도 서원섭은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 *
유정은 오랜만에 손자와 함께 마주 앉았다.
“그래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걸 보니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이제부터는 묶여있는 자금을 모두 현금화 해야 해요.”
“전부 말이냐?”
“예. 할머니. 될 수 있으면 전부 달러로 현금화 해야 하는데 하실 수 있겠어요?”
“가능하기는 하다만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게냐?”
“적어도 석 달 안에 끝내야 해요.”
“알았다. 그 안에 끝내 놓도록 하마.”
자신에게 준 계획대로 시작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느꼈기에 유정은 순순히 승낙했다.
“그나저나 어느 정도 성취는 있는 게냐?”
“걱정하지 않으실 정도는 됐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염려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너 혼자 괜찮겠느냐?”
“사람을 붙여주실 생각이시라면 그러지 마세요. 혼자 하는 편이 덜 위험하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계획대로 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니 할미는 이만 나가 보마.”
“예. 할머니.”
유정은 곧장 집을 나섰다.
서울로 간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불러모아 그동안 묻어두었던 자산들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계획서를 본 후로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투자한 자산에 대한 현금화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달러로 환전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워낙 유능한 이들이 움직였던 터라 민준이 말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현금화가 끝나자마자 민준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투자를 진행해야 할지 민준이 준 투자계획서를 다시 살폈다.
손자인 민준을 믿지 못하기에 살펴본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손자가 예측한 대로라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환란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옵션과 선물에 집중되어 있어서 위험성이 아주 높구나. 이런 식으로 투자하면 상당히 위험하겠지만 민준이가 예견한 대로 진행이 된다면 이 정도 규모로는 곤란하다.”
손자가 준 투자계획서대로라면 환란이 끝난 후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미국에서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인 마이클을 합류시키기는 했지만, 그것도 소극적인 대처일 뿐이었다.
그저 위험을 대비하는 것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다.
“민준이가 말한 대로라면 이건 개인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 판에 끼어든 놈들도 혼천의 쟁투를 염두에 두고 벌이는 일일 테니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과감하게 투자해 보자. 민준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고.”
유정은 민준이 준 계획서를 토대로 투자 방향을 수정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아들처럼 여기는 마이클이 자신이 인편으로 보내는 투자계획서를 보고 무척이나 놀랄 것이 분명하지만 상관없었다.
누가 보면 모험이라 여길 일이지만 손자가 보여 준 능력을 보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성공이 손자인 민준에게 훗날 기회를 줄 것이라는 판단도 확신에 힘을 주었다.
유정은 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취했다.
전화기의 신호가 끝나자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나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잘 지냈다. 너도 잘 지낸 게냐?”
-하하하! 알려주신 것 덕분에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럼요.
“지금 어디냐?”
-사무실입니다.
한국보다 13시간이 느린 뉴욕은 아침이라 다행이라 생각한 유정은 용건을 꺼냈다.
“그럼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연락은 받은 게냐?”
-예, 어머니. 연락은 받았습니다.
“투자 방향은 인편으로 보낼 테니 적힌 대로 투자를 준비해다오. 조금 위험해 보여도 그대로 해주면 고맙겠구나.”
-당연히 해 드려야죠. 제가 공짜로 해드리는 것도 아닌데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걱정하지 마라. 그 정도야 잃어도 상관없는 금액이니.”
-하하하! 역시, 대단하시네요.
“다시 당부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투자만 하면 되니 의문이 들더라도 그대로 진행해다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너만 믿으마.”
-예, 어머님. 건강 조심하십시오.
“너도 건강 조심하도록 해라.”
-예. 들어가십시오.
대답을 들으며 유정은 통화를 끊었다.
미국으로 유학 간 후 아예 눌러앉은 마이클 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기에 마음이 흡족했다.
“마이클이 잘해 주어야 할 텐데······. 믿을 수 있는 아이니까 실수하지는 않겠지.”
위험한 투자지만 뜻을 거역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마이클인 터라 계획서대로 투자해 줄 것이 분명했다.
유정은 곧바로 투자계획서에 자신이 투자할 금액을 수정한 후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특급송달로 보냈다.
월가는 정보전쟁터의 한가운데나 마찬가지다.
혹시나 모르는 일이라 믿을 수 있는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편을 통해 마이클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유정이 자신에게 보내온 투자계획서를 본 마이클 정은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이클이 놀란 것은 투자 금액이 엄청나서가 아니었다.
투자계획서가 골드 문의 VVIP 리포트를 능가했다.
더군다나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것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핫머니들이 양털 깎기를 준비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동안 정보를 수집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유정이 보내온 투자계획서는 자신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되어 있었다.
마이클 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핫머니들의 향후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다.
일본의 국부를 빼먹은 뒤라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을 털어먹는 건 정해진 순서나 마찬가지였다.
취약한 정치 환경과 뒤떨어진 금융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이라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어머님은 어떻게 이런 것을 아신 거지? 더군다나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하신다니? 아무리 봐도 이건 오랫동안 주시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거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유정은 이런 정도의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생활이 어렵거나 곤란한 상태의 인재들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터라 한국 내에 상당한 인맥을 쌓은 유정이다.
그런 이들 중에 누군가 유정을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획서를 검토할수록 기 치밀함에 계속 놀라던 마이클은 끝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어머님. 접니다.”
-무슨 일인 게냐?
“혹시, 이 투자계획을 세운 사람을 만나볼 수 있습니까?”
-문제라도 있는 게냐?
“그게 아니고, 사실 너무 놀라워서 말입니다.”
-호호호! 네가 놀랍다니 재미있구나.
“보내주신 건 아무나 알 수 없는 정말 최고급 정보예요. 아마 미국 대통령도 이 정도까지는 모를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이런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궁금해요. 어머니, 이 계획서를 만든 사람이 누군가요?”
-너무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알려줄 수가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구나. 이번 일이 끝나면 소개해 줄 테니 말이다.
마이클은 유정이 일부러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느꼈다.
유정에게 사정이 있다는 것을 짐작한 마이클은 자신을 놀라게 한 브레인과의 만남이 쉽지 않다는 알 수 있었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여기서도 세밀히 검토하고 준비 중이니 너도 거기에 맞춰서 잘 해줬으면 좋겠다.
“이대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아무리 투자 계획이 훌륭해도 실패할 확률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죠?”
-알고 있다. 내가 투자한 돈을 다 잃어도 상관없으니 계획서에 적힌 대로만 진행해다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고맙다.
“이만 들어가십시오.”
-부탁하마.
유정의 부탁을 끝으로 마이클 정은 전화를 끊었다.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오랫동안 감추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으니 언젠가는 누구인지 알게 되겠지.’
투자 계획을 세운 브레인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유정의 태도에 사정이 있는 것을 알고 궁금증을 접어야만 했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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