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29(2권 시작)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제1장. 할머니의 합류.
팡!
파파팡!
연이어 이어지는 발길질에 샌드백이 출렁거리며 타격음이 요란하게 체육관을 울리고 있었다.
민준은 발길질은 화려했다.
하지만 워낙 몸에 익은 동작들이라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뿐일 뿐 정신이 다른 데로 가 있었다.
민준은 의식에 생긴 문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두면 현재 세계가 의식에 영향을 줘서 붕괴가 더욱 가속될 거다.’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분석하면서 생각이 분리되는 일이 생기더니 의식이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해 버렸다.
그리고 의식의 주체가 달라서 그런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더니 세 개로 나뉘었던 기억과 정보가 혼재되기 시작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둘째 문제였다.
같은 세계라 그런지 정보가 떠올릴 때마다 호구 같은 의식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트라우마에 찌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혼절까지 할 정도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무의식에 감춰져 있는 것들이 드러날수록 그런 현상이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두면 정체성을 잃고 정신이 붕괴하거나 다중인격이 될 수 있었기에 해결해야만 했다.
‘혹시 몰라 대비는 해두었으니 문제는 없을 테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었던 민준은 차선책이기는 하지만 가족의 불행을 막을 수단을 준비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 컴퓨터에 저장해 일주일간 확인하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얽힌 일을 해결하기 전에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냉철한 성격이 영향을 줘서 호구 같은 면이 어느 정도 제어가 되는 것 같으니 그 방향으로 집중하자. 최소한 그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는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괜찮아 보이지만 폭주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이놈!!!”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할 찰나, 민준의 귓가로 갑자기 호통이 들렸다.
관장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가 평소와는 다른 소리에 민준을 보러 나온 정성호였다.
“관장님.”
“정신이 다른데 팔려있구나!”
“죄송합니다.”
“어제도 그러더니,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냐?”
“아닙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렇습니다.”
“혹시, 무공과 인연이 닿지 않아서 그런 거냐?”
“아닙니다. 원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관장님.”
민준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 생각으로 수련을 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이렇게 혼자서 몸을 혹사하는 것보다 대련이라도 하는 편이 나을 거다. 나오너라.”
민준은 정성호를 따라 체육관 한가운데로 갔다.
‘무인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관장님도 그에 못지않은 것이다.’
제자의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는 듯 기세를 일으킨 정성호의 모습은 살벌했다.
특임대를 제대하고 인도로 가서 3,000년간 이어졌다는 칼라리파야투를 수련한 정성호였다.
전쟁을 통해 완성된 실전 무술이며 모든 무술의 원류라 일컬어지는 것이 칼라리파야투였다.
무공은 아니라지만 마음을 먹는 방향에 따라 기세가 달라지는 특별한 무술인 탓에 대단해 보였다.
‘그래. 한바탕 땀을 흘리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
민준은 자신을 위하는 정성호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에 따라서 기세를 일으켰다.
무기술과 체술을 실전으로 체계를 세운 만큼 살상력이 남달라 허튼 마음으로 대련에 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파팟!
언제나 그랬듯이 민준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중심 이동이 현란한 무술답게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공격을 다리를 들어서 막은 정성호는 그대로 내려찍었다.
상대의 행동을 예상한 듯 바닥에 거의 몸을 붙인 채 그대로 회전하며 민준의 다리가 전갈의 독침처럼 쏘아졌다.
퍽!
퍼퍼퍼퍽!
손바닥으로 발 옆을 쳐낸 정성호는 그대로 움직이며 몸을 일으킨 민준에게 발로 연격을 가했다.
민준도 뒤로 물러서며 발을 손을 쳐낸 후 뛰어올라 발을 휘둘러 정성호의 머리를 노렸다.
퍽!
파파팟!
파파팡!!
이어지는 두 사람의 공방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대련이 아니라 서로 죽일 듯 이어지는 공방!
그것은 바로 칼라리파야투였다.
30여 분 정도 이어진 공방에서 정성호는 자신의 제자가 이제 비슷한 수준에 올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무기술이 아니라 체술만 사용하고 있지만, 무기는 손발의 연장일 뿐이기에 더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성취가 빠르다니. 고민할 만도 하구나.’
새로운 경지로 접어들기 전의 자신이라면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실력이었다.
자신처럼 더 나아가지 못하는 벽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기에 정성호는 민준의 고민이 이해됐다.
도저히 오르지 못할 벽을 느낀 후 오랜 시간 인도를 떠돌며 자신의 배움을 무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게 만들어 줄 심법을 찾았던 정성호였다.
그러나 끝내 찾지 못하고 절망을 경험했던 그로서는 무공을 갈망하는 민준의 마음이 애틋했다.
‘한계까지 끌어내 보자.’
고민을 끝낼 방법은 하나 뿐이기에 정성호는 민준이 새로운 길에 도전해도 될지 알아보기로 했다.
파파팡!
퍼퍽!
이전보다 기세가 더욱 커지며 살벌한 공격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민준도 힘을 내며 정성호의 공격을 방어했다.
‘무인의 길을 걸어도 문제는 없겠다.’
수세에 몰리면서도 예리한 반격을 가하는 민준의 모습에 정성호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퍼퍽!
‘어느 정도 가라앉았구나.’
빠르게 파고든 민준의 공을 손으로 쳐내며 고민을 던 것 같은 모습에 대련을 끝낼 때임을 알았다.
파팟!
정성호는 이어지는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스트레스는 좀 풀린 모양이니 오늘은 집으로 가서 차분하게 명상을 해 봐라. 답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심란한 마음은 조금 가라앉힐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늦었다. 이만 가 봐라.”
“그만 가보겠습니다.”
민준은 정성호에게 인사를 하고 체육관을 나섰다.
“다른 건 다 좋은 데 갈수록 차가워지니. 쯔! 쯧!”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나이가 들수록 차가워지는 민준의 뒷모습을 보며 정성호
는 혀를 찼다.
갈수록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아 보이는 탓이었다.
차가워 보이지만 열정도 있고 똑똑한 민준이었다.
무공을 갈망하는 것으로 착각한 정성호는 얼마 전에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라면 뭔가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민준은 자신처럼 늦은 나이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극상의 자질이 있어 자신이 찾아낸 심법으로 내공을 얻을 수 있다면 걸출한 무인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자질은 훌륭하니 가르쳐 보자. 죽어서 가지고 갈 것도 아니니까.”
정성호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전하기로 했다.
민준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집적대는 놈들도 많고, 아직은 불완전 한 것이니 일단 지리산에 내려가 전할 것을 정리해보자. 그래야 나도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심법을 완성한 단서를 잡은 후 내력이 무엇인지 실체를 찾았지만 망설여 왔었던 정성호는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얻은 것을 이어받을 사람을 정한 이상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인도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후우우우!”
기대감에 젖은 정성호와는 달리 체육관을 나선 민준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그렇지만 숨을 가다듬어도 심란함이 가시지 않았다.
오늘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관장님 말씀대로 명상을 좀 하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기다리실 테니 얼른 가자.”
민준은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을 시간이 지날 수도 있기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민준은 할머니 가게로 들어갔다.
40년이 넘도록 계속 장사를 해온 국밥집 안에는 두 사람이 식탁에 앉아 막 수저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와 가게를 돕는 강미영이었다.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누나도 있었네.”
“늦었구나. 어서 자리에 앉아라.”
“그래. 민준아. 어서 앉아.”
민준은 두 사람의 권유에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앉았다.
“누나는 퇴근하신 게 아니었어요.”
“호호호! 사장님 혼자 진지를 드시게 할 수는 없잖니.”
“죄송해요. 운동하다 보니 제가 조금 늦었네요.”
“아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국밥 말고 사장님이 해주신 저녁을 먹을 수 있겠니. 어서 먹자.”
“그래. 얼른 먹자.”
강미영은 수저와 젓가락을 꺼내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세 사람은 간단한 밑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간단한 저녁상이었지만 민준의 할머니인 유정의 솜씨가 워낙 특출난 탓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세 사람은 보이차를 마셨다.
“사장님. 저는 이만 갈게요.”
“그래. 오늘 고생했다.”
“아니에요. 민준아. 나는 이만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누나.”
미영이 가게를 나선 후 민준은 할머니가 가게를 정리하는 동안 저녁으로 먹은 그릇들을 씻었다.
두 사람은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조금 늦었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죄송해요. 할머니. 운동하다가 흥이 올라서 깜빡했어요.”
“그랬구나.”
“하하하! 걱정하셨어요?”
“걱정은 무슨.”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퇴근하셨어요?”
“오늘은 못 들어온다고 하더구나.”
“요즘 바쁘시네요.”
“나랏일 하는 사람이 바쁜 건 당연한 게다.”
“하하하! 알고 있어요. 걱정돼서 그렇지요.”
“효자가 따로 없구나. 얼른 들어가자. 바람이 차다.”
“예. 할머니.”
“할미는 씻고 잘 테니 컴퓨터는 조금만 해라.”
“예. 할머니.”
유정은 일찍 가게를 열어야 하기에 곧바로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고, 민준도 샤워한 후 방으로 갔다.
“일단 명상부터 하자.”
민준은 정성호가 권유한 대로 명상을 했다.
무인이 한다는 심법처럼 내공을 쌓을 수는 없어도 정성호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라 효과가 있었다.
1시간 정도 명상을 한 민준은 심란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좀 가라앉는구나. 그래도 명상이 해결책은 아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민준은 책상으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부팅 끝나고 화면이 나타나자마자 폴더들이 열리며 민준이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아주 빠른 속도였는데 민준이 키보드를 치지 않고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시키고 있어서였다.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파일들은 그 속도만큼이나 민준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에 관한 정보가 담긴 파일을 전부 확인한 민준은 비상조치 기능을 확인했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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