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28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여름방학이 끝난 후 친해지게 된 창호에게서 유준우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정태우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쉽사리 보기 어려운 수준인 것 같아 궁금증만 더해 갈 뿐이었다.
두 사람은 짐을 내려놓고 1층으로 내려왔다.
“냄새 좋은데.”
“그러게.”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에 두 사람은 주방으로 갔다.
“형! 이게 무슨 냄새예요?”
“고구마 맛탕이다.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하하하! 맛있겠다.”
잠시 뒤 유준우가 고구마 맛탕을 만들어 왔고, 세 사람은 출출함을 달랠 수 있었다.
고구마 맛탕을 다 먹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고 있을 무렵 인섭과 영순이 양손에 짐을 들고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반갑네.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네.”
“호호호! 어서 와요.”
아들이라 처음 데려온 친구라서 그런지 두 사람은 태우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렇게 반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방학 동안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호호호! 그래요.”
“그럼 나는 저녁을 만들어 볼까?”
“부탁해요, 여보.”
박인섭이 몇 가지 요리를 했는데 메뉴판에 없는 것들로 주영순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정식이었다.
담백하면서도 정성이 느껴졌는데 박인섭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만든 느낌이 나는 음식이었다.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네 사람은 박창호의 학교생활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었다.
2시간이나 이어지던 식사가 10시가 될 무렵 끝났다.
아침 일찍 가게를 열기에 박인섭과 주영순은 잠자리에 들었고, 세 사람은 옥상에 모였다.
정태우가 방학을 맞아 군산에 온 이유가 준우와 대련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창호로부터 미리 설명을 들었던 터라 옥상에 올라간 후 두 사람의 대련은 곧바로 시작됐다.
스스스슷!
마치 유령이 움직이는 것 같은 보법을 시작으로 태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준우 비슷한 수법으로 방어를 했다.
퍼퍼퍽!
퍼퍽!
‘역시 새로운 무류다.’
다섯 번의 공방이 이어진 후 준우는 태우 또한 그의 가문에서 알지 못하는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유하지만 음습하지 않고, 표홀하지만 음험하지 않은 무공을 상대하는 동안 준우의 확신은 점점 굳어져 갔다.
분명 가문의 기록에 없는 새로운 무공이었다.
‘새롭게 일가를 이룰 만한 무공을 접하게 된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꿈꾸지 않았을 테니까.’
가문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일가를 이룰 만한 새로운 무공을 익힌 무인을 하나라도 만난 가주는 한 손에 꼽았다.
그런데 자신은 벌써 그런 무인을 두 명이나 만났고, 그것도 꿈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준우는 자신이 꿈을 꾸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분명 이유가 있다.’
혼천이 열리는 징조가 나타났기에 자신이 꿈을 꾼 이유가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일단 대련에 집중하자.’
생각이 옆으로 새는 것을 느낀 준우는 대련에 집중했다.
한동안 공방을 주고받은 후 뒤로 물러섰다.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창호 말대로 정말 대단하시네요. 형님.”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익힌 종류의 무공은 나도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뭘요. 형님께 다 막혔는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창호처럼 실력이 늘 수 있게 해주십시오.”
“평소에도 열심히 수련하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면 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눈에 보이는 것뿐이니까.”
“창호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방학 동안 열심히 해 보자.”
창호를 처음 났을 때처럼 대련하는 동안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기에 유준우는 흔쾌히 수락했다.
“저도 잊으면 안 됩니다. 형님.”
“하하하! 알았다. 창호야. 셋이 함께 수련하면 훨씬 나을 테니 그렇게 하자.”
“고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서로 이끌리는 터라 세 사람은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방학 동안 세 사람은 가게 일을 돕고, 밤이면 셋이서 함께 모여 수련하는 생활을 이어 나갔다.
수련이 이어지는 동안 준우는 상당히 놀랐다.
태우의 실력이 느는 것도 놀랍지만 내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박창호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과 수련하면서 준우의 무공도 빠르게 늘었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었는데 새로운 무류를 접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활로를 찾을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까지 세 사람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가게를 여는 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옥상에서 수련했고, 문을 닫는 날이면 인근 산에서 수련했다.
창호와 태우는 수련에 만족했다.
그렇지만 준우는 상황이 좀 달랐다.
자신의 무공이 늘고 있는데도 걱정이 깊어갔다.
마지막 꿈에서 보인 암시대로라면 태우를 만나면 다시 꿈을 꾸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우를 만난 후로 꿈을 꾸기 위해 깊은 잠을 자려고 노력해 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꿈을 꾸게 된다면 이번에는 혼천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그렇지만 방학이 끝날 때가 되어가도 꿈을 꿀 수 없었다.
혼천의 징조가 나타나 가문의 일원들이 숨은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꿈 때문에 군산에 발이 묶여버린 준우의 시름은 점점 깊어만 갔다.
* * *
팡!
파파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는 가운데 체육관 한쪽에 있는 샌드백이 출렁거렸다.
샌드백을 빠른 속도로 치고 빠지는 이는 바로 민준이었다.
오랜 시간 수련한 탓에 거의 기계적으로 샌드백을 두드리는 민준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샌드백을 연속 두들기고 있어도 민준은 지금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디멘션 코인으로 미래에 존재했던 자신이 전한 정보를 얻은 후 지난 시간 동안 확인한 결과물이었다.
1993년이 지나는 동안 사건들이 전부 실제로 일어났다.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구포역 북부에서 지반 붕괴사고로 전복되어 7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성 그룹 회장은 독일에서 신경영을 발표했다.
전 정권의 사기극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의 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경부고속철도에 TGV가 선정되는 등 굵직한 사건들이 정확하게 일어났다.
기억 속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민준은 세 분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심한 압박감을 받았다.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능력자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준은 도서관에 비치되어있는 오래된 신문을 비롯해 접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런 노력이 쓸모없지는 않았는지 몇 주 전 민준은 나름대로 유의미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신 발행된 신문에 나온 것이었는데 바로 무공의 위력에 관한 정보였다.
완벽하지 않은 정보였지만 무공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알아낸 후 민준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공이 능력자들이 발휘하는 힘과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비슷하다면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고에 능력자 말고도 무인이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민준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무가와 무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왔다.
부모님과 할머니의 죽음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기에 전화통신망을 유지하는 교환기에 프로그램을 심은 후 경찰을 비롯해 국가기관을 해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은 결과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은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오늘도 체육관에 나와 이렇게 샌드백을 두드리는 것도 바로 무인이라는 존재들 때문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서였지만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파파파팡!
‘만약 세 분의 죽음에 개입한 자들이 무가나 무인이라면 지금으로서는 막기가 쉽지 않다.’
무가가 벌인 일을 정부에서 처리하고 있었다.
흔적을 지우는 것뿐 아니라 정보를 철저히 통제했다.
정부가 무가의 지시를 받는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걸 보면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치외법권 세력이 분명했다.
‘무가나 무인도 골치 아픈데······.’
이번에 수집한 정보에는 능력자에 관한 단서도 있었다.
장난 전화로 치부되기는 했지만, 경찰에 신고된 전화에서 발견한 단서들이었다.
불로 이루어진 구체를 손으로 날리거나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을 사용하는 존재에 대한 신고!
더군다나 무인이 움직인 것과 다른 형태를 보이는 사건들을 보면 능력자들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무서운 법인데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마법 같은 현상을 일으킨 것을 보면 능력자일 확률이 높은데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자신처럼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능력자에 관한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민준은 불안했다.
이 세계의 미래에 존재했던 자신은 무인이 관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민준은 달랐다.
미래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이 단편적이지만 분석해 보니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었는데 가족들의 죽음에 능력자가 개입했을 확률이 높기에 불안한 것이었다.
무인보다는 능력자를 더 위험한 요소로 보고 있는데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자신의 뇌리에 화인처럼 각인된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어차피 다 상대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무인이건 능력자건 아무리 무서운 존재들이라고 해도 내게 전해진 기억 속의 방법이라면 세 분의 죽음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다른 것은 괜찮지만 진짜 문제는 난데······.’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처럼 부모님과 할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정보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의 주인들이 가졌던 성향이 영향을 미친 탓에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마다 의지가 흔들린 탓에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곧바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음에도 지난 시간 동안 확인을 빌미로 지체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확실히 제일 시급한 것은 나를 올바로 세우는 것이다.’
민준에게 영향을 끼친 성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재 세계에 존재했던 자신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며 이용만 당하다가 처참하게 생을 마쳤다.
그야말로 호구 같은 성격이었다.
다른 하나는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성격으로 어찌 보면 사이코패스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중간자 성격인 자신의 의식까지 존재했다.
생각할 때마다 정보가 떠오른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실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의식 속의 정보들이 충돌해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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