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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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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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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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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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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3쪽

136. 사냥꾼들 3

DUMMY




01.

사자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우보로스>였다.


사자가 예상했듯이 그들은 사막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사자가 그러했듯 철저히 외부인들이었다. 우보로스는 일종의 기업체였다. 대륙 어디서든 그들을 원하는 이들이 있을 경우, '세심하게 고려된' 금액만 맞춰준다면 무슨 일이든 해주는 회사였다.


혹자는 이들을 용병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들 스스로는 '인력 파견 업체'로 불러주기를 바랐다. 지금 사막의 앞에 나타난 여섯 명은 그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우보로스는 훨씬 큰 회사다. 사자는 앞으로 또 언젠가 그들을 만날지 모른다. 아니 필시 그렇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알 필요가 없다.



02.

"와서 이 사슬을 풀어주는 녀석만 놓아주겠다."


사자가 말했다. 우보로스들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모욕적인 언사로부터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자도 물론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던진 말이었으니.


"그래, 풀어주마. 가만히 딱 서 있어라."


리더인 사안족 사내, 아슬라가 먼저 나섰다. 뱀의 대가리처럼 변화무쌍하게 휘어지는 창을 곧게 치켜든 채 달려들었다. 사자는 여전히 고래잡이 용 사슬 작살에 몸이 칭칭 감겨 있었다. 사자는 창 대가리가 여러 갈래로 휘어지는 모습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집중한 것은 오직 사안족 사내의 뱀과 같은 눈이었다.


아슬라의 눈이 일순간 사자의 목으로 향했다. 사자가 즉시 움직였다. 아슬라의 창이 사자의 몸을 꿰뚫을 듯 파고들었다. 사슬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사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아슬라를 향해 뛰어들며 몸을 비틀었다. 아망의 두개골을 반으로 부숴버린 그의 발뒤꿈치가 다시 한번 무서운 속도로 아슬라를 노렸다. 아슬라는 겨우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비켜, 아슬라! 내 차례다!"


소인족 하푸가 거대한 손도끼를 치켜들고 말했다. 힘을 집중하기 위해 도끼 하나는 내버린 뒤였다. 그들은 무법자도 군인도 아니고 철저하게 계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였기 때문에 무기 관리에 매우 공을 들였다. 피딱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된 도끼가 사자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됐다!'


아슬라도 하푸도 사자의 머리가 쪼개지는 광경을 환상처럼 목격했다. 그만큼 불시에 내지른 확실한 공격이었으니까. 환성을 내지르려던 그들에게 전직 군인이었던 우보로스가 소리쳤다.


"...... 아직이다! 정신 차려!"


그 순간 사자의 발차기가 하푸의 명치에 직격했다. 바위가 쩍 깨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 그건 오직 하푸만 들었을 것이다. 소인족의 두툼한 귓불을 스치는 바람 소리도 오직 하푸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저인 담벼락에 내던저져 등뼈가 부서지는 고통 역시 그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03.

소인족과 한 번이라도 힘을 겨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단단한 나무옹이와 같은 그들의 몸을 안아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저렇게 발로 한번 내질렀다고 날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하푸의 작지만 단단한 몸이 마치 포탄처럼 쏜살같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무너진 담벼락에 파묻힌 소인족의 몸이 가늘게 경련했다. 저게 죽기 직전에 발작하듯 오는 경련인지 고통에 그저 반사적으로 떠는 것인지는 가까이 가서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사안족 리더와 전직 군인 중 누구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 아슬라, 이쪽으로."


군인 사내가 말했다. 아슬라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빌어먹을 뱀눈깔 새끼야. 혼자 이겨낼 상대가 아니라는 걸 모르겠나?"


입이 트인 것인지 군인 사내가 버럭 소리쳤다. 여전히 사슬을 뱀 허물처럼 감싸고 있는 공화국 검사가 흥미롭다는 듯 둘을 바라보았다.


"...... 제기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비."


아슬라가 그제야 군인의 곁으로 가서 섰다. 아비라고 불린 전직 군인의 얼굴이 다시 침착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의 가늘게 찢어진 눈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명백한 적의를 띠고 사자를 훑어보았다.


"<공화국의 검>이라고 했을 때 차라리 임무를 거절했어야 했나...... 놈들을 사칭하는 녀석들이 많다 보니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젠장 사막에 공화국 검사 놈이 왜 흘러 들어온 거지?"


늦어도 너무 늦은 아슬라의 자책을 듣고 있던 사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이봐. 공화국의 검을 사칭하는 녀석들이 있다고? 어디에 말이냐?" 사자가 물었다.


아슬라가 지금 이 상황에서 태연하게 질문을 건네는 사자를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보았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 협공으로 한 번에 가자.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두 번째는 없어."


아비가 말했다. 아슬라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천천히 좌우로 갈라졌다. 그때 아슬라의 눈이 사자의 뒤로 살짝 돌아갔다. 이를 눈치챈 사자가 곧장 몸을 낮추고 자세를 취했다.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검사의 몸을 뒤에서 껴안았다.


"이, 이 개색히! 잡았다! 아슬라, 아비! 이 색히 죽여버려!"


호야였다. 찢어지고 부르튼 입술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부러진 이빨로 발음이 숭숭 샜다. 하지만 놓치면 끝장이라는 표정으로 사자를 꼭 부둥켜안았다. 이 모습을 본 아슬라와 아비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04.

아슬라의 창이 다시 한번 길게 뻗었다. 이번엔 현란하게 현혹하는 것 없이 정직하게 뻗는 공격이었다.


그때 호야는 자신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이는 공화국 검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 네가 선택한 거다. 후회하지 말아라."


검사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꽉 붙은 호야가 의아한 눈으로 그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게 뭔 개소리......'


생각을 미처 다 끝맺기도 전에 그의 시야가 급속도로 회전했다. 하얗게 빛나는 위대한 천정과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지저인 도시의 길바닥이 순식간에 위치를 맞바꾸었다. 작은 돛단배만 한 고래도 너끈히 들어 올리던 바다 사나이가 사슬에 칭칭 감긴 검사에 의해 속절없이 뒤집어졌다. 사자는 손도 쓰지 않고 몸만 비틀어서 호야를 업어쳤다.


"...... 이봐!"


아슬라가 겨우 외쳤다. 하지만 내지른 창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방향을 틀 수도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된 바에는,


'미안하다, 호야. 하지만 네 희생을 헛되이 하진 않으마.'


냉정하고 잔혹한 생각을 하며 아슬라가 오히려 더 창을 깊이 내질렀다. 그대로 동료의 몸을 뚫고 검사의 몸까지 꼬치처럼 꿰뚫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흐악!"


창 끝이 등짝을 뚫고 들어오자 호야가 맥 빠진 비명을 질렀다. 그들 리더의 창이 그의 척추 옆을 뚫고 들어와 폐를 단숨에 관통했다. 호야의 눈이 아득해졌다.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소리 하나가 들렸다. 그건 자신이 평생을 함께 했던 사슬이 마침내 부서지는 소리였다.


'아뿔싸.'


모든 것이 어그러졌고 이제 실패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비였다. 최후의 기회로 내지른 아슬라의 창이 그들 동료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검사를 간신히 구속하고 있던 최후의 보루마저 깨트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 그가 선택해야 할 것은 두 가지였다. 명예롭게 놈과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뱀눈깔 리더와 함께 줄행랑을 치느냐. 하지만 명예? 용병에게 무슨 얼어 죽을 명예란 말이냐.


"아슬라! 창을 버려!"


무기를 버리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슬라는 잘 알았다. 모든 것이 좆됐으니 지금이라도 손을 뺄 것. 태양이 뜨지 않는 지하 동굴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제기랄!"


아슬라가 외쳤다. 그리고 들고 있던 창, 사안족 사내들이 성인식을 치른 후 부여받는 '뱀들의 창'을 내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물러났다. 아비는 아슬라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잠시 경계하다가 마찬가지로 등을 보이고 도망쳤다.


사자는 쫓지 않았다. 그저 허물이 벗겨지듯 천천히 떨어져 나가는 사슬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채 죽지 못하고 얕은 숨만 겨우겨우 내뱉는 바다 사나이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그게 너희의 선택이냐. 용병들에게도 명예는 있었을 텐데."


어느새 멀리 떨어져 줄행랑을 치는 사내들을 보며 사자가 혀를 찼다. 임무를 실패하고 도망친 현상금 사냥꾼의 끝을 사자는 잘 알았다. 그리고 꼬리 내린 개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자는 그의 발치에 죽어가는 네 명의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쌍둥이 형제는 바닥을 온통 피로 물들였고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소인족 사내의 두툼한 가슴도 어느새 진동을 멈추고 차가운 정적만을 뿜어냈다. 호야의 숨도 천천히 느려지고 있었다.


사자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알란의 마나가 보였다. 여전히 초록색의 커다란 날개를 펼친 마나의 새.


"너무 늦어졌어. 서두르자." 사자가 말했다.



05.

알란과 나미르는 서로를 마주하고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알란의 마나가 계속해서 <미식가>의 몸을 짓눌렀다. 거대한 새처럼 날개를 펼친 <중력의 힘>이 땅으로 추락한 표범의 몸 위에 올라탄 채 일렁거렸다. 마나를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거대한 힘에 압도 당할 것이다.


"...... 감히 내게 힘을 보이느냐, 알란!"


나미르가 으르렁거렸다. 윗입술이 말려올라가 날카로운 송곳니가 뿌리부터 드러났다. 알란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힘의 방출에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놈이 곧장 달려들 것이다. 알란은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느꼈다. 조금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편, 마드와 블랑, 즈린을 비롯한 왕실 가드들은 그 치열한 힘겨루기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오래가지 못할 거야. 지금 당장 제압하지 않으면 당한다. 역시 내가......'


마드가 달려들 채비를 했다. 알란의 힘이야 말할 것도 없이 대단했지만 (그녀 역시 그 힘을 경험했고 지금 눈앞의 힘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으니까) 그 속박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사내가 훨씬 무서웠다.


'미식가들'. 천하의 사리안조차 경계하는 미지의 적.


그때 블랑이 마드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섣불리 달려드시면 안 됩니다, 대장." 블랑이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묶어둘 수는 없을 거예요. 저것 보세요. 이미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잖아요. 지금이라도 당장 제압해야 합니다."


나미르의 송곳니에 계속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마드가 말했다. 블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저희도 원래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전하께서 예상보다 훨씬 큰 힘을 사용하고 계세요. 마나 사용자이기 때문에 아셨을 겁니다. 놈을 붙들려면 웬만한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을요."


블랑이 눈을 가늘게 떠 알란의 주변에 일렁이는 녹색의 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놈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매우 넓게 힘이 펼쳐져 있습니다.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저희도 잡아먹힐 거예요."


"...... 그럼 어떻게 하죠?"


"그래서 차선책을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일러주신 방법이에요."


블랑의 말에 마드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즈린도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손에 든 것을 수줍은 소녀처럼 조심히 마드에게 보여주었다. 즈린의 손안을 들여다본 마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괜찮겠어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위험 부담은 있지만 그만큼 위력이 있으니까요."


블랑이 말했다. 그리고 마드와 함께 즈린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새까만 빛을 뿜어내는 구체가 불길한 예감을 감춘 채 얌전히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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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7. 클라이맥스 1 +9 20.12.03 396 12 13쪽
» 136. 사냥꾼들 3 +4 20.11.29 404 14 13쪽
135 135. 사냥꾼들 2 +10 20.11.28 403 12 13쪽
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0 14 13쪽
133 133. 악몽 4 +6 20.11.26 395 13 12쪽
132 132. 악몽 3 +2 20.11.22 422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8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60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9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69 15 12쪽
118 118. 연극 1 +4 20.10.30 506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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