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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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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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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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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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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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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133. 악몽 4

DUMMY



01.

"검은 결국 찌르고 베는 거요."


사리안이 말했다. 어떤 신기한 검술 초식을 알려줄까 잔뜩 기대했던 마드로서는 아주 의외였다. 그리고 그녀는 사흘간의 하드 트레이닝 동안 오직 두 동작만 반복했다. 찌르기와 베기. 첫날 오전 4시간을 찌르기만 하고 오후 4시간을 베기만 죽어라고 반복한 뒤에 마드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혹시...... 베고 찌를 때 내 자세에 뭐 이상한 것 없어? 교정해야 할 부분이라던가......"


마드의 자세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사자가 별 이상한 것을 다 묻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찌르기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찌르시오?" 사자가 물었다.


"찌를 때? 음...... 가급적 허리를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그리고 앞발에 무게를 꽉 실어서 검에 딸려가지 않도록 한다?"


그녀의 검술 선생이었던 '카심'의 말을 떠올리며 마드가 대답했다. 카심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기술도 아주 많았다. 들고 있는 검의 종류에 따라, 힘의 세기에 따라, 상대하는 적의 덩치와 그가 든 무기에 따라 아주 다채로운 초식을 가르쳐주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32개나 됐다. 찌르기만 말이다. 이름들도 아주 멋졌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번갯불 찌르기'였다.


마드의 대답에 사자가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이윽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벨 때는?"


"선생님, 혹시 이거 선문답 같은 건가요?" 마드가 한쪽 눈썹을 장난스럽게 치켜세우며 물었다.


"아무렴. 대답해 보시오." 사자의 표정은 태연했다.


"벨 때는......"


마드가 카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말을 골랐다. 카심이 가르쳐준 베기 초식은 46가지였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름은 '나는 제비 가르기'였다.)


"벨 때는 뒷손이 앞손을 끌어당기고 앞손은 뒷손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한다. 앞서거나 뒷서는 것이 아니라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내가 검이고 검이 곧 나인데, 검과 내가 하나가 되어 적을 가를 때...... 왜?"


카심의 가르침을 신이 나서 늘어놓던 마드가 말을 멈추었다. 사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 그의 얼굴은 마치......


'놀리고 싶은가 본데?' 마드가 생각했다.


"뭔데, 그 표정? 내 말이 틀린 거야?"


마드가 버럭 소리쳤다. 볼이 어느새 뜨끈해졌다. 사자가 태연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입매가 씰룩이는 것을 마드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 웃었어?" 마드가 으르렁거렸다.


"아니, 아니. 웃다니. 훌륭하오. 당신의 그...... 검술 철학이랄까? 혼자서 이해한 거요?"


"...... 그만 놀리고 이야기해 주시죠? 공화국의 소드마스터씨."


"당신이 말한 것도 틀리지 않소. 검에는 수천, 수만 가지의 길이 있으니. 검과 하나가 된다라! 사실 공화국에서도 들어본 적 있는 말이오. 멋지군."


마드는 얌전히 듣기만 했다. 왠지 부끄러워서 뭔가를 되물을 힘도 없었다. 사자가 그런 마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언젠가부터 표정이 꽤 다양해진 사리안이었는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공화국 검사는 찌르고 벨 때 딱 한 가지만 생각하오. 어떻게 하면 빠르게 찌를 수 있을까? 벨 때도 마찬가지요. 어떻게 해야 더 빠르게 휘두를 수 있을까?"


사자가 마드의 검을 잠시 빌렸다. 마드는 기꺼이 검을 빌려주면서 불현듯 그가 제대로 된 검을 쥐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사람 몸통만 한 검을 들었던 적은 있지만.'


사자가 조용히 마드의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드는 검에 문외한인 (전장의 여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비현실적인 장면이라고 느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공화국의 검>이 휘두르는 검에는 소리가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없는 정적만이 있었다.


'맙소사.'


멍하니 사자가 휘두르는 검을 바라보는 마드에게 사자가 말했다.


"자세? 발의 축? 검의 파지법? 물론 모두 중요하오. 하지만 그것들에 정답은 없소.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검을 어떻게 쥐어야 할지 휘두르는 자세와 디디는 발의 위치도 다를 수 밖에 없소. 그러니, 마드. 승리하고자 한다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시오."


사자가 마드로부터 등을 돌린 채 힘껏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소름 끼치는 정적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그의 검이 닿지 않은 왕궁 중정의 벽에 뚜렷한 검의 궤적이 새겨졌다.


"어떻게 해야 일초라도 더 빨리 적에게 닿을 수 있을까."


사자가 씩 웃었다. 선생님의 진면목을 눈앞에서 확인한 마드는 고개만 얌전히 끄덕였다.


그 뒤로 이틀간 총 16시간의 수업은 온통 베고 찌르고 또한 생각하기의 수업이었다.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검이 빨라질 수 있을까. 딱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고 사리안이 말했지만 웬걸. 모든 의문과 모든 고민이 거기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검을 빠르게 휘두르고 지를 수 있을까. 손을 어떻게 하면, 다리를 어떻게 움직이면, 팔을 어떤 식으로 교차하면, 마드에게 딱 맞는 검은 어떤 것인지까지.


마드 세라자드의 검은 겨우 사흘의 수업 동안 근본부터 완전히 바뀔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마드의 머릿속을 온통 휘어잡고 있었던 거대한 의문.


사자가 검을 휘둘렀을 때 그저 휘두르는 소리만 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귀에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일제히 차단됐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정적과 공백이었다.



02.

달라진 검으로 마드는 <미식가>의 목을 집요하게 노렸다.


그리고 비열한 미소를 활짝 머금은 입을, 웃을 때마다 불쾌하게 꿀렁대는 울대를 노렸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욕스럽게 훑어보는 짐승의 눈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마드의 검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전장의 여신'이 한 번 더 그녀의 몸을 빌어 현신했다. 심지어 '공화국의 검'에게 가르침을 받은 여신이었다. 나미르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졌다.


"놀랠 노자로군. 정말 나랑 해보자고 달려드는 거였구만!"


마드의 검에 물러서던 나미르가 순간적으로 가속하여 달려들었다. 마드의 시야에서 한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사나운 짐승의 앞발처럼 나미르의 손날이 길게 쭉 뻗어 나왔다. 조금이라도 닿는 순간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배고픈 곰의 앞발에 당한 사람들의 최후가 그러하듯이.


하지만 마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미르의 손날 보다 더 빠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미식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드의 과감한 돌진에 간격이 깨져버렸다. 이제 마드의 간격이었다. 세이마르 민병 대장의 검이 미식가의 얼굴을 향해 솟구쳤다. 핏방울이 공중에 흩날렸다.


"됐다!" 안비오가 외쳤다.


'아니야!' 마드가 속으로 외쳤다.


그 순간 나미르의 반대쪽 손날이 마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독수리의 발톱처럼 마드의 배를 꽉 움켜쥐려던 그의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마사르가 뒤에서 마드의 몸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조심하세요, 대장! 조금이라도 놈의 공격에 닿았다가는 끝장입니다!" 마사르가 외쳤다.


"알아요. 고마워요, 마사르!"


나미르에게 고정한 시선을 조금도 떼지 않으면서 마드가 대답했다. 공화국의 검과의 수업으로 또 한 번 개화하기 시작한 마드였지만 미식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서로 몇 번의 합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미식가가 입은 타격은 겨우 볼에 난 생채기 하나.


마드가 재차 자세를 바로잡을 때 이번엔 안비오가 달려들었다. 최연소 왕실 가드가 옆으로 세워든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이번에도 적의 살거죽을 베지는 못했지만 그가 입은 까만 로브가 길게 잘렸다.


"안비오, 조심해라!"


안비오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상대는 만전을 취하고 그를 기다렸다. 폭력에 취한 듯 잔뜩 과장된 모습으로 젊은 가드를 기다렸다. 놈이 취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온통 함정이었다. 신중한 가드의 모습에 나미르가 씩 웃었다. 그리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다시 갑니다!" 이번엔 다시 마드의 차례. 마사르도 함께 따라 나왔다.


양쪽에서 밀려든 파도처럼 <미식가>와 <세이마르 민병대장>과 <마할란트라 1급 왕실 가드>가 동시에 부딪혔다.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마드의 가느다란 목과 그을린 볼을 노린 공격이 번번이 실패하자 나미르는 이제 그녀의 검을 노렸다. 나미르의 억센 손아귀가 마드의 검과 마사르의 검에 부딪혔다. 오히려 부서지는 것은 날붙이 쪽이었다.


'어떻게 된 손이길래......!'


마사르가 혀를 내둘렀다. 미식가의 손은 지저인의 손처럼 창백했지만 그의 수십, 수백 배 억셌다. 마치 메마른 땅을 움켜쥔 나무뿌리처럼 (마사르가 대륙의 북쪽 숲에 발을 디딘 적이 있다면 <나무귀신>의 손과 똑같다고 생각했을 텐데) 길게 뻗은 손에 닿을 때마다 마사르의 검이 비명을 질렀다. 놈의 손에 닿는다면 말랑말랑한 인간의 살점 따위는 금세 뜯겨져 나가버릴 것이다. 지금 땅 위를 뒹굴고 있는 아잉투와 오지마의 머리처럼.


"크헉!"


그때 안비오가 날아갔다. 아뿔싸. 손에 모두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젊은 가드는 나미르가 자세를 바꾸어 발로 차는 것을 미처 경계하지 못했다. 포탄으로 쏘아낸 듯 안비오의 몸이 뒤로 날아가 도시의 돌담 벽에 처박혔다. 등과 허리, 혹은 가슴뼈 어딘가가 복합적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안비오의 얼굴이 격통으로 일그러졌다.


"됐다." 나미르가 흐뭇하게 웃으며 곧장 돌담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드도 함께 뛰어들었다. 그녀의 검이 또 한 번 날카롭게 나미르의 목을 노렸다. 전장의 여신이 든 검은 시종일관 나미르의 위태로운 사선을 노렸다. 빠르게 더 빠르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저 일 초라도 더 빨리 검을 휘두르는 것.


'제기랄, 이건 정말 예상 밖인데.'


몇 발만 더 내디디면 건방진 어린 가드의 얼굴을 짓이겨버릴 수 있었던 나미르가 혀를 차며 물러섰다.


"괜찮아요, 안비오?" 마드가 물었다.


"네, 대장님. 괜찮습니다." 안비오가 대답했다.


하지만 안비오는 냉큼 일어설 수가 없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앞에 선 전장의 여신도 힘에 부친 듯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마드의 몸이 조금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검에 대한 개념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했지만 몸의 단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체력 단련을 게을리한 건 아니지만......'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아침 티타임을 갖기도 전에 첫 폭발음을 들은 이후로 마드는 동분서주 내내 뛰어야 했다. 게다가 미식가와의 대결은 그녀가 생각한 것 훨씬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을 했다가는 끝장이었으니까. 잠깐이라도 안일하게 숨을 돌렸다가는 순식간에 놈의 손날이 그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지친 걸 들켰다가는 끝장난다, 마드야. 저거 얼굴 좀 보라고.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다간 그 즉시 좋다고 달려들 거야.'


나미르의 눈을 보며 마드가 생각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을 마음속으로 계속 다독였다. 제발, 제발 조금만 참아줘. 하지만 몸의 한구석에서 일어난 경련이 점점 몸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가슴도 터질 듯 부풀었다. 피로가 극한에 달한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미식가도 이를 눈치채고 있을지 몰랐다. 마드를 바라보던 나미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비죽 웃음을 흘렸다. 비열하고 잔혹한 계획을 떠올린 악마의 미소였다.


'눈치 빠른 새끼.' 마드가 생각했다.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나미르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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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135. 사냥꾼들 2 +10 20.11.28 403 12 13쪽
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0 14 13쪽
» 133. 악몽 4 +6 20.11.26 396 13 12쪽
132 132. 악몽 3 +2 20.11.22 422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8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60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9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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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 연극 1 +4 20.10.30 506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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