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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5.27 09: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30,876
추천수 :
267
글자수 :
1,1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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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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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각자의 목표(8)

DUMMY

물음표 살인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어서 찜찜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 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이라니.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없지.”


애초에 신이 공평하게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면 불행한 사람은 없었어야 했다.


고서우는 내 말에 만족했다는 듯이 비웃음 같기도 하고 미소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웃으며 남을 비난하는 너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고서우는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높은 빌딩의 최상층.


한 여자가 한 면이 모두 유리로 된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목에서 끊어지는 검은색 원피스에 검은색 구두를 신은 여자. 머리카락을 말아 올려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 위로 화려한 검은색 귀걸이가 반짝였다.


“그래서... 일반인에게 들켰단 말이지?”


야경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방안의 그림자에서 사람의 기척이 났다. 여자와 같이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은 말끔한 차림의 남자였다. 코와 입을 검은색 두건으로 가렸다.


“네. 포탈의 사용까지도 들켰다고 합니다.”


여자의 손가락이 화려하게 빛나는 귀걸이를 매만졌다.


“그래... 그랬구나.”

“들킨 이들은 징벌실로 보냈습니다. 일반인은 어떻게 할까요?”

“흐음...”


여자의 온기 없는 눈빛이 야경을 내려다봤다. 긴 속눈썹이 눈동자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섣불리 행동하기엔 느낌이 좋지 않아... 천천히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남자는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여자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길고 얇은 하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책상에 다가와 앉았다.


책상 위에는 꽤 많은 양의 사진이 쌓여있었다. 대한민국 능력자들의 모든 사진이었다. 가장 위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었다.


하나는 어디서 봐도 인상에 남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외모의 남자. 진 쉬에.


그가 신의 눈물을 가지고 허튼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그냥 뒀다. 그러나 오류의 탑이 무너진 지금. 그의 존재가 거슬렸다.


하루라도 빨리 처리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자신의 조직을 버리고 모습을 감췄다.


“이 또한 신의 뜻이겠지.”


여자가 진 쉬에의 사진을 뒤집었다. 뒤집힌 사진 옆으로 있는 또 한 장의 사진.


뉴스에서도 대한민국의 새로운 영웅이라고 떠들어대는 탓에 모를 수가 없었던 남자. 우지혁.


하지만 그는 관리소에 등록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종종 능력이 발현돼도 관리소에 등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능력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관리소에 능력을 등록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여자의 손가락이 사진을 집어 그의 사진을 다른 사진의 곁에 가져갔다. 준수한 외모의 우지혁조차 오징어로 보이게끔 만드는 외모의 남자. 백로운.


어쩌면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뜻에 가장 방해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우지혁과 만났다.


“이 또한 신의 뜻인가.”


여자의 메마른 목소리가 시간마저 멈출 것 같은 정적 속에서 낮게 흩어졌다.


+++


황금 같은 주말이 지나고 이제는 하루의 루틴이 된 주문이 들어온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똑똑-


새벽 6시. 이 시간에 다른 사람의 방을 찾는 매너인은 누구인가.


머릿속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라면 새벽부터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 로운 씨군요.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살짝 풀린 눈하며 뽀얗고 매끄러운 피부위로 드리워진 다크 서클을 보아하니 이 사람에게 오늘이 새로운 아침은 아닌 듯했다.


“뭐에요. 밤 샜어요?”

“아...네. 뭐. 지혁 씨는 이제 학교 가시는 건가요?”

“네... 이것만 하고 갈 준비할 거예요.”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샷잔을 보여주었다.


“아침부터 커피에요?”

“네... 뭐 어쩌다보니 매일매일 의뢰가 들어오네요. 홍제천 씨 덕분에.”


적은 돈이었지만 대학생이 하루를 생활하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흠...”


그의 시선이 불안하게 커피가 담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잔을 훑었다. 로운이 저런 눈빛을 할 때마다 조금 불안하긴 하다. 그가 마음먹고 하는 짓은 나와는 차원이 다르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아. 혹시 여기서 좀 자다 가도 되나요?”

“예? 로운 씨 방은요?”

“...”


로운이 빙긋 웃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그래요. 치우지는 않아서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편히 쉬다가요.”


내 대답에 그는 좀비 같은 걸음으로 비척비척 걸어가더니 외투만 벗어던지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뭐야. 왜 저래.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신경은 쓰였지만 커피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는 밀크티 말고도 다른 음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주문을 하는 건지...


+++


여유롭게 도착한 학교. 주말 내내 요란하게 울려대는 핸드폰 때문에 정말 학교에 오고 싶지 않았다.


단톡방을 꺼놨더니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고, 메신저를 꺼두니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해서 하는 소리는 별 쓸데없는 소리였다.


- 그렇게 마음대로 정하면 어떡해요! 선배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 왜 연락 안 받으세요? 교수님께 조별 과제에서 선배님 이름 빼겠다고 말씀드릴 거예요.

- 왜 읽고 씹어요. 그러고도 선배에요?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건지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마치 조별과제를 핑계로 화풀이라도 하겠다는 심상 같았다.


애초에 먼저 시비를 건 게 누군데. 이런 애들하고 조별 과제를 할 수 있을까? 중간에서 애를 쓰며 말리고 있는 강민서만이 안쓰러워 보였다.


나이 먹고 어린애들하고 이러고 있는 것도 답답하기는 했지만 선배라고 당하고 살 수는 없다.


조별 활동은 착실하게 참석할 생각이었다. 코스 요리의 컨셉에 대해서 의견도 열심히 냈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듣지 않으려고 하는 상대와 어떻게 대화를 하냐고.


“에휴...”

“뭐야. 그 정도로 바닥이 꺼지겠어?”

“어흐야. 깜짝아!”


혼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제 온 것인지 박준영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뭔 고민 있냐? 이 형님한테 말해봐라. 내가 한 음...”


박준영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눈동자를 굴렸다.


“그래. 인심 썼다 30분 정도 시간 내줄 수 있거든?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커피도 사주마.”

“아니 나는 괜찮...”

“아냐아냐.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얼굴이야.”


박준영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기껏 들어온 대학 교문을 역으로 걸어가 학교 근처 카페로 향했다.


+++


이제는 제법 열기를 잃은 햇살이 포근하게 들이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이런 아침부터 사내 놈 둘이서 학교 앞 카페에서 단둘이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무슨 일이야?”


준영이 빨대로 카페라떼를 크게 한 모금 마시자 가득 든 얼음이 유리잔과 부딪치며 덜그럭 소리를 냈다.


“그냥...”


내가 이 나이를 먹고 조별과제 때문에 한숨 쉬는 모습을 들켜가지고 이러고 있다니. 희미한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간결하게 이야기했다.


“이햐. 너는 복학하자마자 뭐 그런 애들한테 걸렸냐?”

“뭐야. 모르는 애들이야?”


내 말에 준영이 푸핫하고 웃더니 다시 카페라떼를 마셨다.


“그럴 리가 있냐. 나 서국대 박준영이야. 걔네 1학년 때부터 유명했어. 민서는 왜 그런 애들하고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문주희랑 성태훈은 고등학생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하더라.”

“유명했다고?”

“응. 조별과제 할 때 말 싸가지 없게 하고 억지 부리지?”

“맞아!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

“걔네 1학년 때도 조별과제 있는 2학년 수업 들으면서 선배들한테 막 대했어. 보통 우리 과는 4명이서 조가 되잖아? 민서까지 3명이 같은 학년이라 같은 조가 된 학생은 선배니까 어쩔 수 없이 리드하고. 불만인 사람들이 많더라.”

“아니. 그 정도로 예의가 없으면 누군가는 뭐라고 했을 거 아냐?”

“너도 대화해봤으니까 알 거 아냐.”

“뭘?”

“걔들 말이 안 통해.”


준영이 마지막 한 모금까지 알뜰하게 마시고는 빈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간의 모습을 봤을 때 뭐라고 하는 선배들을 봤다면 둘이서 돌아가면서 도리어 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고, 더러워서 피하지.


이전의 피해 학생들은 그런 마인드로 열심히 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두 명이 문제여서 그렇지 가운데 낀 민서가 곤란해 하면서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선배 된 도리로써 열심히 안 할 수 없지 않겠나.


“그런데 걔들도 좀 안됐다.”

“왜?”

“하필 걸려도 너한테 걸리냐.”

“내가 뭐.”

“너도 조별 과제 또라이잖아.”


나의 새내기 시절을 기억하는 준영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할 수 있겠나. 그저 조용히 잔을 들어서 아직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아. 야. 나 조교 누나가 수업에 필요한 거 챙겨준다고 해서 조금 일찍 가야겠다. 다음에 또 보자! 너무 힘들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


해맑게 웃으며 돌아가는 녀석의 표정을 보니 절대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왜 그러지 싶은 정도의 반응이겠지만 사람 좋은 박준영이 저 정도로 이야기했다는 것은 정말로 싫어한다는 소리니까.


대학교의 소문은 유난히 빠르게 퍼진다. 조용히도 아니고 요란스럽게.


신맛이 적고 구수함이 강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밖에는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이제는 꽤 많은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6년 전, 나도 저 길을 침울한 얼굴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20살의 나는 설렘도 없이 그저 반항심 하나만을 가지고 색이 바란 청바지에 후줄근한 후드티, 솜이 뭉친 패딩을 입고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


6년 전, 3월.


[점장 : 지혁아. 오늘 대타가능하냐?]


핸드폰이 진동하더니 화면 위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오늘부터 개강하니까 예정에 없던 대타는 어려울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또 이러시네.


[나 : 점장님 저 오늘 개강했는데요...]


이렇게 말해도 내일이면 또 잊어버리겠지만 오늘은 다른 대타라도 구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번 달 생활비가 얼마나 남았더라.


핸드폰을 든 김에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다음 월급날까지 8일. 남은 돈은 고작 3만원.


거의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서 바로 알바를 시작했지만 무시무시한 등록금에 한 번에 증발해버렸다.


“에휴...”


오티? 입학식? 그런 곳에 갈 정신도 없었다. 대학은 나에게 설렘과 배움의 공간이 아니다. 이제는 절대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을 거니까.


작가의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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