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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그림/삽화
최고재벌
작품등록일 :
2024.02.04 21:46
최근연재일 :
2024.07.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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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048

작성
24.03.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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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12쪽

17. 은자 피에르.

DUMMY

17. 은자 피에르.


베르트랑은 아를 개발 계획을 세웠다.

라틴어로 풀어 적는 일이라 몇 개월이 걸렸다.

숨겨야 하는 부분이 있어 더욱 어려웠다.


“과정을 빼고 원인과 결과만 적어줘도 돼.”

“그러면 이해하지 못할 건데.”

“상관없어. 이건 일종의 업무 지침서야. 해야 할 일만 적어줘도 돼.”


업무 지침서라는 새로운 지식이 들어왔다.


“해야 할 일과 순서(일의 흐름)만 적어줘도 되는 거네.”

“그래. 거기에 그 일의 효과도 적어주면 더욱 좋아.”


악마와 달리 베르트랑은 모든 걸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원하는 것과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일만 가르쳐주면 되었다.

그래도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에드몽이 아를로 떠나기 전까지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양피지로 만들어져 상당히 두꺼웠다.

훈련받는 동안 아를에서 해야 할 일에 관해 에드몽에 설명했다.


“주군(my lord)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쉽게 설명했지만···.

베르트랑이 말하는 내용 중엔,

이 시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무엇보다 에드몽은 기사이지···.

영지관리인이 아니었다.

무식하지는 않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 검을 잡는 일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경에게 줄 책에 자세히 적혀있으니까요.”

“그게···. 제가 라틴어는 좀 하지만 책을 읽을 정도는 아닙니다.”


라틴어로 된 책을 읽을 정도면···.

이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수도원에서 잘 배운 수사나 교회의 사제 정도나 가능했다.

성직자 중에서도 문맹이 많은 시대였다.


“경에게 읽으라고 주는 책이 아니에요.”

“그럼. 책은 어떤 일로 주시는 것입니까?”

“경의 일을 돕는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아···. 그렇다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역시 누군가 그를 돕는 이가 있었다.

라틴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가 경의 일을 돕고 있는가요?”

“피에르라는 은자입니다. 저의 영지인 니올론 부근에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은자 피에르라···.”

“주군께서 아는 이입니까?”

“그건 아니에요. 비슷한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피에르는 흔한 이름이니까요.”

“그에게 이 책을 전달해 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주군.”


***


은자 피에르(Pierre l'Ermite)는 민중 십자군을 이끈 이였다.

1차 십자군 원정에도 참여했다.

베르트랑이 환상 속에서 본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맞을까?”

“그건 모르지. 에드몽의 말처럼 흔한 이름이니.”


피에르와 피터, 표도르라 불리는 이름은 매우 흔했다.

예수의 첫 번째 제자 베드로에서 파생된 이름이었다.

그 어원 덕분에 성직자 사이에선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규모가 큰 수도원에서 피에르가 수십 명이기도 했다.


“은자도 매우 흔하지.”


은자(隱者, hermit, L'ermite)고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에 대항하여 사막으로 숨어든 성직자를 말했다.

그래서 종종 은둔자(hermit)로 불리기도 했다.

훗날 그들을 사막의 교부(Desert Fathers)라고 불렀다.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이 된 후···.

사막의 교부들은 로마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은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에 숨어(은둔) 영적 깨달음을 추구했다.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기도와 명상, 금욕을 했다.

그런 고행을 통해 더 높은 진리나 본질적인 원리를 구도(求道)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일반인들에게 신비롭게 보였다.

은자에 헌금이 이어지고···.

제자가 되길 청하는 이들이 늘었다.

은둔자의 거처인 암자는 규모가 커졌다.

암자가 영적 공동체인 수도원으로 발전해 나갔다.

중세엔 수많은 수도원이 세워졌다.

이 시대 성직자로 성공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교회와 수도원을 통해 서품(ordination)받아,

차근차근 위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니면, 은자가 되어 명성을 쌓아나가는 것이었다.

은자로 성공하면, 수도원의 초대 원장이 될 수 있었다.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은 죽은 후 성자로 추존(posthumous honours)되기도 했다.

정상적인 루트로 성공하기 힘든 이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아니면, 야망이 큰 사람이 가는 길이었다.


“직장인과 창업자와 비슷하지. 직장인만큼 창업자의 숫자도 많아.”


악마는 또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했다.


“그가 아닐 수도 있단 말이네.”

“프랑스에 은자 피에르가 수천 명은 넘을걸.”

“확인해 볼까?”

“그럴 필요는 없어. 그가 누구든 중요하지 않으니까.”“왜?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잖아.”


은자 피에르는 민중 십자군과 십자군 원정에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이 만든 사람이야. 누구든 그가 될 수 있지.”


십자군 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이름 없는 은자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십자군 원정이 끝난 후 조용히 잊혔다.


“우리가 시대의 흐름을 이끈다면 원하는 사람을 은자 피에르로 만들 수 있어.”

“아! 그럼. 그가 누구든 은자 피에르가 되겠군.”

“그렇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어. 하하.”


녀석의 말이 맞았다.

그가 환상에서 본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에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십자군을 이끄는 이가···.

은자 장(Jean, John)이나 은자 안드레(André, Andrew), 은자 토마스(Thomas)이 될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런 흐름을 베르트랑에게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


모든 준비가 끝나고···.

에드몽이 아를로 떠날 날이 다가왔다.

그의 무리는 수백을 넘었다.

병사와 수행원, 그리고 새롭게 아를에 정착할 이들이었다.

대장장이와 목수, 직조공, 석공 등의 장인들이었다.

농사짓는 이들이야.

어디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를이 안전해지면···.

사방에서 몰려들 것이었다.

그러나 장인들은 영주의 성이나 수도원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이들이었다.

어머니가 특별히 타라스콩과 그 주변에서 구해주셨다.

아를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에드몽 경. 아를을 잘 부탁해요.”

“맡겨주신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에드몽이 각오를 다졌다.

이번 일은 그에게도 중요했다.

그에게 새로운 도약이었다.

주군과 함께 자신도 성장하는 일이었다.


“저번에 말씀드린 은자 피에르가 주군을 뵙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모셔 오세요.”


에드몽이 젊어 보이는 수도자를 데리고 왔다.


“하나님의 종 피에르라고 합니다.”

“이름은 들었소. 능력이 좋다고 하더이다.”

“대단치 않은 일입니다. 그보다 주신 책은 잘 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그가 감탄할만했다.

베르트랑의 나이에 라틴어로 능숙하게 글을 적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귀족 중에 라틴어를 능숙하게 말하는 이도 드물었다.

그걸로 책을 적는 것은 수련이 오래된 수도사나 성직자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베르트랑이 한일은 그것을 넘어서···.

피에르가 해야 할 일을 일목요연하게 표시한 것이다.

웬만한 고위수사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을 이해한 피에르 수사도 대단하오.”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 셈이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것이었다.

세상에 은자가 많은 만큼 그들의 수준도 다양했다.

머리에 든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믿음만으로 은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들의 수준은 저잣거리(시장) 떠돌이와 다름없는 지식을 지녔다.

여기저기 주워들은 지식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제대로 배운 은자는 드물었다.

책을 이해한 피에르는 제대로 배운 수도자였다.


“주신 책에 수도원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습니다.”“나의 주민(residents)에서 일용한 양식(糧食)과 함께 영적인 양식도 주어야 하지 않겠소?”


사람이 모이는 곳에 교회가 생겨난다.

이 시대는 그 반대가 많았다.

교회와 수도원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였다.

일용한 양식만큼 영적 양식이 중요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은 귀족뿐만 아니라···.

민중(民衆)에게 광범위하게 퍼졌다.

죄를 짓는 것은 귀족만이 아니었다.

이 세상은 모든 게 죄였다.

죄를 안 짓고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었다.

그래서 죄를 씻을 수 있는 순례 여행이 인기였다.

동시에 교회와 수도원은 하나님의 평화와 휴전에서 안전한 피난처였다.

그곳에서는 세속 영주들도 싸움을 중단해야 했다.

교회와 수도원은 튼튼한 담장과 벽으로 보호되었다.

이교도의 침략에 좋은 요새가 되어 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일에 피에르 수사가 적임인 것 같소.”


도시의 성장에 수도원과 교회는 필요했다.


“하나님의 뜻이 영주님과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은자 피에르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수도원이 만들어지고,

신자가 모이면 새로운 교구가 만들어졌다.

도시가 커질수록 교회와 수도원은 커졌다.

교구의 크기는 성직자의 힘이었다.

주교와 수도원장, 대주교와 대수도원장의 자리가 새롭게 생긴다.

대주교와 대수도원장은 추기경(樞機卿, Cardinalis)이 될 수 있었다.

교황이 황제라면 추기경은 왕이었다.

대주교와 대수도원장은 대영주들이었다.

추기경은 교황이 될 수 있고···.

교황을 선출하는 데 참여했다.

수도원장은 대수도원장, 추기경, 교황으로 가는 고속도로였다.

은자 피에르에게는 인생 최대의 기회였다.


“아를의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드몽과 은자 피에르, 병사와 수행원, 이주민으로 이루어진 수백의 무리가 타라스콩 성을 나와···.

아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로마 가도로 이어져 있었다.

수많은 물품을 실은 마차와 수레가 행렬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


피에르는 은자라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

베르트랑보다 10살 정도 많은 20대 초반의 나이였다.

악마의 환상에 나온 모습은 40대 후반이었다.

나이는 얼추 맞아떨어지는데···.

외모가 상당히 달랐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얼굴은 변하니까. 세상의 풍파를 겪으면 더 빨리 변하기도 하지.”

“그럼. 그가 맞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이왕이면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아?”

“상당히 똑똑해 보이더군. 언변도 좋아 보이고···. 사람을 홀리는 데 충분한 능력을 지녔어. 그럼 충분한 게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


그가 진짜 은자 피에르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 역할을 해주면 충분했다.

사람을 선동하여 베르트랑의 일을 돕는 것이었다.


“그보다 새로운 훈련을 시작하지.”

“어떤 훈련?”


에드몽에게 검술과 레슬링, 박투술(搏鬪術, 격투술)을 배웠다.

배움이 빨라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슬슬 새로운 것을 배울 차례였다.

악마가 어떤 것을 가르쳐 줄지 기대가 되었다.


“활쏘기야.”“그건 몰이꾼이나 사냥꾼이 배우는 거 아니야. 아니면 용병들이나 사용하는 거지.”


베르트랑은 악마의 말에 크게 실망했다.

활쏘기는 귀족과 기사가 배우는 무술이 아니었다.

물론 귀족과 기사도 사냥은 했다.

그들이 즐기는 스포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귀족과 기사는 사냥 때 주로 창이나 검을 사용했다.

활은 사냥을 돕는 몰이꾼이나 사냥꾼이 사용하는 무기였다.

쇠뇌도 비슷했다.

제노바의 용병들이 쇠뇌를 사용했다.

활과 쇠뇌는 기사의 무기가 아니었다.


“활로는 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가 없어. 쇠뇌는 말 위에서 사용할 수 없고···.”

“지금은 그렇지. 앞으론 변할 거야. 활쏘기를 미리 배워두는 것이 좋아.”


악마는 베르트랑을 보고 웃었다.


“뭔가 있구나?”

“그래. 기대해도 좋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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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모든 게 시작되는 곳. +2 24.03.01 834 30 15쪽
15 15. 성모의 기적. 24.02.28 831 36 12쪽
14 14. 순례자. +4 24.02.27 863 32 12쪽
13 13. 적재적소.(the right man in the right place.) 24.02.26 886 28 12쪽
12 12. 1,000명의 병사. +6 24.02.25 926 37 12쪽
11 11. 레반트로 가기 위한 준비. 24.02.24 937 37 13쪽
10 10. 충성의 맹세. +2 24.02.23 930 39 12쪽
9 9. 앞으로의 계획. 24.02.21 940 36 12쪽
8 8. 에드몽. 24.02.20 973 33 12쪽
7 7. 타라스콩. 24.02.19 990 37 12쪽
6 6. 약속된 권능. 24.02.17 1,071 40 13쪽
5 5. 첫걸음을 내딛다. +6 24.02.09 1,193 39 12쪽
4 4. 선물(gift)과 봉사(service). +4 24.02.07 1,272 39 13쪽
3 3. 사람 낚는 어부. +4 24.02.06 1,541 38 14쪽
2 2. 신실한(Pieux) 베르트랑. +4 24.02.05 1,977 40 13쪽
1 1. 악마의 유혹. +14 24.02.04 3,479 5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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