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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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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작품등록일 :
2024.0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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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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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2.0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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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3. 사람 낚는 어부.

DUMMY

3. 사람 낚는 어부.


생질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그 이후에도 한 달간 이어졌다.

프로방스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아버지 레이먼드의 반성과 벌을 받는 모습을 수도원에서 확인하고···.

교황청의 복잡한 절차를 마친 후···.

파문 철회라는 소식을 가져오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실제 벌은 베르트랑이 받았지만···.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벌로 대충 합의를 본 것이다.


착.- 착.- 착.-


그동안 고해실에서의 채찍질은 계속 이어졌다.


“......”


예전엔 채찍을 맞을 때 입에서 가냘픈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은 묵묵히 채찍을 맞았다.


신실한 베르트랑의 연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악마는 고통을 줄여주었다.

연기는 수사가 채찍을 내리칠 때 살짝살짝 몸을 움찔거리면 되었다.

그 모습이 고통을 참고···.

하나님에게 죄를 뉘우치는 모습으로 보였다.

때리는 수사도 채찍질하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남의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아니라면···.

고통에 지르는 신음 소리는 거슬리는 것이다.

특히 매를 맞는 이가 아이라면 더더욱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채찍질을 약하게 하진 않았다.

그 일은 그들의 의무였다.

수사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

혹시 마음에 의문이 들거나···.

여린 마음에 회의가 든다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되었다.

자애로운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종에게 죄 사함(remission)을 내렸다.

정말로 자애로웠다.


-너. 죄 사함(remission)이 의학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알아.-

-몰라. 지금 맞는 거 안 보여. 이렇게 나타나도 괜찮은 거야?-

-하하.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아.-


베르트랑이 따르는 악마는 교회뿐만 아니라···.

성직자 앞에도 스스럼없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악마라면 아주 강력한 악마였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너 악마는 맞긴 맞아?-


교회에 나타나고 성직자, 아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마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파리의 제왕과 사탄도 이렇게 강력하진 않을 것이었다.


- 악마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는데?-

- 그럼, 악마가 아닌 거야?-

- 아니라고 한 적도 없는데?-

-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착하고 솔직한 악마는 없었다.

그들은 말장난의 귀재였다.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는데···. 죄 사함(remission)이 의학적으로 관해(寬解)야. 치료(cure)가 아니라는 말이지.-


한마디로 치료가 아니라 증상 완화였다.

병이 사라지지 않고···.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했다.


-치료사들이란···. 하하.-

-그게 어쨌다고···.-


이 악마는 쓸데없는 말도 많이 했다.

다 들어주다간 머리가 미쳐버릴 것이다.


-사제들이 말장난을 좋아한단 말이지. 네가 말하는 악마와 비슷하지 않아?-


사제는 치료사를 겸했다.

관해(remission)라는 말은 사제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죄 사함은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증상의 완화였다.

구원(salvation)은 오지 않았다.

그리스도 앞에 심판받을 때까지···.


-영원히 구원이 오지 않는 세상이라···. 그곳이 지옥이 아닐까?-


이 악마는 마치 하나님처럼 매번 베르트랑을 시험했다.

자신을 따르는지 확인하는 의심 많은 녀석이었다.


-나를 시험하지 마. 계속 너를 따를 거니까.-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하다가도···.

불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하루에도 몇 번 갈팡질팡했다.

채찍을 휘두르는 수사에게 모든 걸 참회할지 고민했다.

녀석은 그걸 아는 것이다.


-내가 왜 그걸 걱정해. 어차피 따를 것인데. 하하.-


녀석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녀석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녀석의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은근히 설득력이 있었다.

지식은 악마의 유혹이었다.

지식을 얻어갈수록···.

불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경계하는지도 몰랐다.

믿음과 지식은 공존하기 힘들었다.

알면 알수록···.

사탄의 유혹(Temptation)과 하나님의 시험(test)을 점점 구별하기 힘들어졌다.

베르트랑은 사탄의 신실한 종이 되어가고 있었다.


***


교황청으로부터 생질 수도원으로 교황의 사자가 찾아왔다.

그와 함께 어머니의 봉신(封臣)도 찾아왔다.

아버지의 가신(家臣)이 아니라···.

어머니의 봉신이라는 게 중요했다.

그것은 베르트랑이 더는 아버지 혈족인 라이몬디스 가문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혈족인 보소니데스 가문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공식적으론 라이몬디스 가문이었다.

찾아온 이는 어머니가 지참금으로 들고 온 프로방스의 어느 영주였다.

그것을 악마가 알려주었다.


-곧 타라스콩(Tarascon)으로 갈 거야.-


타라스콩은 론강 하류의 요새도시였다.

강 옆에 지어진 높은 요새 도시는 사라센과 노르만 바이킹의 침략도 막아내었다.

성녀 마르타(베다니아의 마르타)가 잠든 곳으로 유명했다.

아버지가 물려받은 영지 중 가장 큰 곳이다.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로데스(Rodez)가 아니고?-


로데스(Rodez)는 아버지가 얼마 전에 얻은 루에르그(Rouergue) 백작령의 주도였다.

아버지는 사촌인 루에르그 백작부인 베르트가 죽자···.

오베르뉴의 백작 로베르에게 루에르그 백작령을 빼앗았다.

명분은 라이몬디스 가문의 영지를 되찮는다였다.

정당한 영지의 상속자,

루에르그 베르트 백작부인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해도 지참금으로 가져간 영지는 여자에게 속했다.

정당한 후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베르트 백작부인과 로베르 사이엔 후손이 없었다.

물론 영지의 계승 순위는 베르트랑의 숙부인 윌리엄과 다른 친족이 앞섰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차지할 힘이 있다면···.

명분은 붙이기 나름이었다.

당연히 오베르뉴의 백작 로베르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영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버지 레이먼드는 루에르그 백작령을 안정화하기 위해서 로데스에 있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요청을 거부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노르만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로 갈 여유가 안 되었다.


***


어느 젊은 기사가 베르트랑에게 다가왔다.


“도련님(young master) 타라스콩으로 모시겠습니다.”


-내 말이 맞지. 하하.-


녀석은 웃으며 말했다.


-왜? 로데스가 아니야. 내 거처는 그곳에 있잖아.-


생질로 오기 전에 로데스에 머물렀다.

아버지 레이먼드 밑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


-네 아버지는 바쁘잖아.-

-그건 말이 안 돼.-


어린 나이에도 후계자 수업이라고···.

점령한 지역을 억지로 데리고 다녔다.

그곳은 불과 피에 젖은 땅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들을 보았다.

영주의 아들들이 조숙해지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너를 보기 애매한 것도 있고···.-


이번 일이 필요 때문에 했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양심의 가책은 하나님에 대한 기도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양심은 죄가 아니었다.

하지만···. 때론 죄보다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차라리 잘되었네. 나도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니야.-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됨으로써 마음에 앙금이 남았다.


-타라스콩으로 가게 되면 내가 뭐하면 되지?-

-그전에, 앞에 있는 기사부터 구워삶아봐. 네게 관심이 있느니.-


젊은 기사의 표정엔 호기심과 측은함이 어려있었다.


***


-어떻게 해야.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하···. 가르칠 게 많네.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며.-

-그거야. 다들 나에게 관심을 받으려 했으니.-


아버지를 따라 후계자 수업을 받을 땐···.

굳이 상대의 호의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기사는 영주의 관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베르트랑은 후계자였다.

다음 영주가 될 사람이었다.


-레이먼드가 교육을 잘못했군.-

-그게 무슨 의미야?-

-지금 너에겐 맞지 않는다는 말이지.-

-아!-


베르트랑은 이제부터 서자였다.

서자가 후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형제가 없거나···.

힘 있는 친척이 없을 때나 가능했다.

아버지는 아직 젊었다.

어머니와의 결혼이 무효가 되었기에 새장가를 갈 수 있었다.

다른 자녀가 태어날 수 있었다.

숙부인 툴루즈의 백작도 아직 젊었다.

툴루즈 백작의 자녀도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베르트랑은 후계순위에서 한참 밀려났다.

아버지의 가신들이 베르트랑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알폰소가 태어나기 전까진 내가 아버지의 후계자야.-

-다른 사람은 그 사실을 몰라.-


이 시점엔 아버지가 셋째 부인을 들인 후에야 다시 아들을 얻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숙부 윌리엄이 아들 없이 딸만 하나 얻는다는 것을 아는 이도 없었다.


-이제는 내가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멍청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우선 그에게 이름부터 물어봐. 그게 기본이야.-


상대에 관심을 표하는 것은 영주의 기본 소양이었다.

힘없는 영주가 힘을 얻기 위한···.


-이름을 물어보는 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의미야.-

-겨우 이름을 물어보는 게 그런 의미가 있다고?-

-예전에 상대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는지 기억해 봐.-

-없네.-


이전까진 이름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먼저 이름을 밝혔다.

아버지 레이먼드는 남프랑스의 강한 영주였다.

세 번이나 결혼했다는 말은 그만큼 그의 힘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의미였다.

힘이 없었다면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노르만을 물리쳐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제 베르트랑은 레이먼드의 적자가 아니었다.

서자였다.

힘이 없는 자였다.

힘없는 서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선···.


-앞으론 아군을 늘리고···. 적을 줄어야 해.-


최대한 지지자를 많이 모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베르트랑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상대의 이름을 묻는 일이었다.


-이름엔 생각보단 힘이 있어. 다양한 정보도 알 수 있고···. 그의 이름을 물어 관심을 표해.-


녀석의 말을 따랐다.


***


“나를 데리러 이렇게 와줘서 감사하오. 내가 그대의 이름을 알 수 있겠는가?”

“저는 니올론(niolon)의 에드몽(에드먼드, Edmond)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녀석은 계속 귀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런데, 녀석이 말하는 소리 중 쓸만한 게 생각보다 많았다.

에드먼드에 관해 다양한 정보를 얻었다.


-니올론은 마르세유의 서북쪽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야.-


마르세유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완전 오지였다.

주변에 산이 많아 마르세유에서 갈려면 배를 타고 가거나 산을 한참 둘러 가야 했다.


-산이 많다는 건 주변에 농경지가 없다는 말과 같아.-

-산에 올리브나 포도, 아몬드를 키울 수 있지 않아?-


베르트랑은 아버지를 따라 많이 다녔다.

남프랑스 여러 곳의 풍경을 보았다.

그곳엔 산비탈에 올리브나 포도, 아몬드를 키웠다.

세 가지 작물은 지중해 해안 지역에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었다.

비가 자주 내리면 계곡이 생겨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산에 밭을 일구어 작물을 심는 이들도 있었다.


-아쉽게도 바람이 산에서 해안으로 불어오지.-

-그게 무슨 말이야?-

-비가 안 온다는 말이야. 알고 있으면 좋으니 알아둬.-


녀석에게서 쓸모없는 지식이 들어왔다.

산을 넘은 바람이 해안가로 불면 건조해졌다.

육지가 차가워지는 겨울이 아니면 비가 내리지 않았다.


-여름에 비가 내리면 그나마 나았을 것인데···.-


올리브나 포도, 아몬드를 키우기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 지역에 에드먼드가 있는 니올론이 있었다.


***


-그곳은 그물과 낚시로 잡히는 생선이 수입의 전부야.-

-바다에는 다른 것도 있지 않아?-


바다에는 어패류가 있었다.

생선 이외에 조개나 갑각류도 큰 수입이 될 수 있었다.


-주변에 험한 해안이 자리하고 있어.-


조개나 갑각류를 채취하기 힘든 곳이었다.


- 거기에 마을에 가구가 10여 구밖에 안 되네.-

-그런 곳에 왜 마을이 있어?-

-안전하니까.-


사라센 해적이나 노르만 바이킹이 남프랑스의 앞바다에 출몰했다.

먹고사는 것만큼 안전도 중요했다.


-해안가에 돌로 된 감시탑이 있어. 급할 땐 피난처가 될 수 있지.-


니올론엔 언제 지어진 것인지 모를 석조 유적이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감시탑을 지었다.

해적이 출몰하는 바다에 돌로 된 감시탑은 매우 중요했다.

감시탑에 숨어서 적이 알아서 떠나가길 버티다가 안 되면···.

감시가 소홀해질 때 산으로 도망치거나···.

배로 마르세유로 가면 되었다.

그래서 그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럼, 에드몽은?-

- 가난한 기사라는 거지.-

- 에드몽이 가난하다고? 수행원이 꽤 되는데···.-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있었다.

병사를 키우는 데 많은 돈이 든다는 점이었다.

에드먼드는 종자와 병사를 10명이나 데리고 왔다.

잡부까지 포함하여 행렬에 딸린 인원 수십 명이나 되었다.


-아···. 어머니가 붙여준 인원인가?-

-아니. 그의 수행원이 맞아.-

- 저 일행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들 건데···.-

-그러니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지. 특히 너나 어머니에게서. 이제부터 베드로가 되어보라고···. 하하.-


힘없는 이가 위대한 영주가 되기 위해선···.

먼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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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세이더 킹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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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성모의 기적. 24.02.28 819 35 12쪽
14 14. 순례자. +4 24.02.27 846 31 12쪽
13 13. 적재적소.(the right man in the right place.) 24.02.26 871 27 12쪽
12 12. 1,000명의 병사. +6 24.02.25 912 36 12쪽
11 11. 레반트로 가기 위한 준비. 24.02.24 921 36 13쪽
10 10. 충성의 맹세. +2 24.02.23 915 38 12쪽
9 9. 앞으로의 계획. 24.02.21 925 35 12쪽
8 8. 에드몽. 24.02.20 959 32 12쪽
7 7. 타라스콩. 24.02.19 975 36 12쪽
6 6. 약속된 권능. 24.02.17 1,053 39 13쪽
5 5. 첫걸음을 내딛다. +6 24.02.09 1,172 38 12쪽
4 4. 선물(gift)과 봉사(service). +4 24.02.07 1,245 38 13쪽
» 3. 사람 낚는 어부. +4 24.02.06 1,505 37 14쪽
2 2. 신실한(Pieux) 베르트랑. +4 24.02.05 1,941 38 13쪽
1 1. 악마의 유혹. +14 24.02.04 3,402 5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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