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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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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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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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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2.0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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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2쪽

5. 첫걸음을 내딛다.

DUMMY

5. 첫걸음을 내딛다.


녀석이 환상으로 보여주는 도시는 웅장하고 참으로 아름다웠다.

베르트랑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저곳이 대체 어디야?-

-아를이야.-


베르트랑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를은 베르트랑도 잘 아는 곳이었다.

이곳 생질 수도원에서도 멀지 않았다.

생질에서 동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습지와 론강을 건너면 바로 아를이었다.


-아를은 폐허나 다름없잖아.-

-지금은 그렇지.-

-앞으로는 다르다는 거야?-

-아니. 미래에도 크게 다르진 않아. 아를의 영광은 다시 찾아오지 않아.-

- 그럼. 왜 그곳을 영지로 삼으라고 보여주는 거야.-

-아를은 너와 같아.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라 할 수 있지.-


-긁지 않은 복권이라니. 복권은 또 뭐야.-


녀석은 이상한 소리를 많이 했다.

-부활절 달걀과 같은 거야. 달걀을 찾아내기 전까진 거기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지.-

-부활절 달걀···. 부활절에 하는 그 놀이 말이야?-


최근에 동방 정교회에서 프로방스로 흘러들어온 풍습이었다.

부활절 시즌에 성경의 내용을 그린 달걀을 교회 곳곳에 숨겨두는 것이다.

아이들이 달걀을 찾아야···.

그곳에 무슨 그림이 그려진 줄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맞추는 재미가 있는 놀이였다.

찾으면 달걀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겐 귀한 달걀을 맛볼 기회였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를의 운명이 달라진단 말이야.-

-나에 의해 도시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그래. 아를이 영광으로 가득 찬 위대한 도시가 될지. 그저 그런 도시가 될지는 너에게 달렸어.-


녀석의 말이 베르트랑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 도시의 운명을 자신이 정한다는 말이었다.

신이 아닌 자기 손으로···.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존재 오직 신이었다.

녀석과 함께라면 스스로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아를에 관해 알려줘.-

-하하. 좋아. 그래야지.-


녀석에게서 아를에 관련된 지식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


아를은 아주 오래된 도시였다.

로마인이 그 지역을 갈리아라 부르기 전부터 도시로 존재했다.

오래전부터 론강 주변에는 켈트족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밀과 돼지고기, 유제품, 가죽, 금은 세공품이 켈트족의 특산이었다.

그중에는 발트해 부근에서 생산되는 모피와 호박도 있었다.

켈트족과 교역하기 위해 론강 하류에 페니키아인들이 도시를 건설했다.

아를이라는 도시의 시작이었다.

그 후 아를이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더욱 크게 발전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후 로마의 속주(provincia, 프로방스)가 되면서···.

대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를은 론강을 따라 갈리아의 산물과 부를 로마로 수송하는 거점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긴 전쟁이 끝난 후···.

론강 하류 지역은 퇴역 병사에게 나누어 주는 토지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로마인이 프로방스 일대에 정착했다.

아를은 프로방스 최대 도시로 한때 1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했다.

대형 원형 경기장과 극장, 목욕탕, 교회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론강을 건너는 거대한 배다리도 놓여 있었다.

아를은 로마제국과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함께 했다.


***


-게르만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지.-


아를은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게르만족 대이동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크족과 부르군트족에 의해 프로방스가 약탈당했다.

그들은 갈리아에 자리 잡고 눌러앉았다.


-너의 아버지가 프랑크족 가계이지. 어머니는 부르군트의 피가 흐르고···.-


그 후 아를의 서쪽엔 프랑크족 왕국이 들어섰다.

동쪽에 부르군트 왕국이 자리를 잡았다.

부르군트 왕국은 멸망하고···.

프로방스 지역만 따로 아를 왕국으로 남았다.

로마제국이 몰락하는 혼란기에 게르만인만 아니라···.

사라센(아랍)과 노르만(바이킹)이 차례로 아를을 점령하고 약탈했다.

아를의 바다와 가깝고···.

론강의 입구라는 장점은 혼란한 시기엔 큰 단점이 되었다.

아를은 게르만족과 사라센인, 노르만인들에 의해 수십 차례 겁탈당했다.


시민을 보호하던 튼튼한 성벽 무너졌다.

로마의 장엄한 유산들이 폐허가 되었다.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다.

관리되지 않은 제방은 허물어졌다.

론강이 범람했다.

과거의 영광이 홍수에 쓸려나갔다.


-그 자리를 늪지와 황무지가 차지했어.-


아를 지방은 패이고 진흙으로 덮였다.

근처 풍요롭고 드넓은 농경지가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 로마인이 도시를 세우기 전으로···.

찬란했던 영광은 세월을 이겨낸 유적이 증명했다.

폐허가 된 도시에 원형 경기장과 극장, 거대한 다리의 토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지금은 쓸모없는 땅이잖아.-

-세상엔 쓸모없는 땅은 없어. 아직 이용되지 않은 것뿐이야.-


녀석은 계속해서 환상을 보여주었다.

머나먼 사막에선 검은 석유가 나왔다.


-썩은 기름이잖아.-

-저게 검은 금이야. 진짜 금도 나온다고.-


황무지에 흐르는 개울에서 사람들이 사금을 채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황금은 땅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야.-


오아시스 도시에 비단과 금은보화를 실은 낙타가 들어왔다.


-저 동물이 사막에서 배인가? 오아시스가 항구이고?-

-똑똑하네. 비유가 정확해. 하하.-


사막의 배가 낙타였다.


-바다엔 황금이 또 있지.-


아를의 기후는 에드몽의 영지인 니올른과 같았다.

프로방스의 여름은 강수량이 적었다.

육지에서 건조한 바람이 바라로 불었다.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은···.

육지에 갇힌 바다를 소금 호수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소금 호수의 물을 끓여 하얀 금으로 만들고 있었다.


-소금이 바다에서 만들어진단 말이야?-


그가 식사 때 먹는 암염은 소금 광산에서 수입한 것이다.

베르트랑은 소금을 땅에서 캐낸 건 줄 알았다.


-네가 먹는 소금도 원래는 바다에서 만들어진 거야. 이 지역의 소금 산업이 다 망가져서 수입하는 거야.-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제국이었다.

암염보단 바다 소금을 구하기가 더 쉬웠다.

사라센 해적이 설치고···.

노르만인들이 수시로 해안 지방을 습격했다.

사람들은 안전한 내륙이나 성벽 아래 숨었다.

바닷가에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바다에서 소금을 만드는 덴 노동력과 땔감이 필요했다.

프로방스(로마 속수)의 소금 산업이 무너졌다.

해안과 가까운 프로방스 지방도 결국 알프스산맥과 로렌 지방에서 캔 비싼 암염을 사용해야 했다.


-하얀 금이라···. 큰돈이 되겠는데.-


어른 주먹보다 큰 암염은 비슷한 무게의 은과 거래되었다.

금만큼은 아니지만···.

은도 비싼 광물이었다.

상인들이 거래하는 은화에 은이 얼마 들어있지 않았다.

시중엔 은화라 부르는 동화가 유통되었다.

생질 수도원에서 수사들이 은화를 찍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은의 몇 배의 동을 넣어서···.

은화는 로마 시대 때부터 널리 사용된 화폐였다.


-아를의 보물은 바다만이 아니야. 강과 넓은 평야도 황금을 생산해.-


론강은 내륙의 많은 도시와 영지를 연결했다.

작은 배들이 론강을 따라 이동했다.

목적지는 아비뇽과 타라스콩, 리옹과 같은 큰 도시였다.

교역은 부가가치(황금)를 생산했다.

아를 주변에 개발되지 않은 넓은 평야가 널려있었다.


-범람하는 강은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


황금빛 농경지에 농부들이 곡식을 수확했다.

가을 햇빛을 받아 낱알들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것은 또 다른 금이었다.


-아름다워.-

-네가 그렇게 만들 수 있어. 아를을 황금빛으로 빛나게.-


풍요로운 도시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넘쳐났다.

가을걷이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아를이 진짜 황금의 도시로 보였다.


***


그 모습에 베르트랑은 의문이 생겼다.


-저렇게 풍요로운 곳이 왜 버려져 있지?-

-지킬 수 없는 자에게 황금은 독이야.-


황금은 도둑과 강도를 불렀다.

게르만과 사라센, 노르만이 수시로 약탈했다.

프랑크족과 부르군트의 영토가 된 이후에도 강도 기사(Raubriter)들이 그 지역에 설쳤다.

그중에는 성직자들도 한몫했다.

아를에 대한 소유권을 여러 영주가 주장했다.

바르셀로나의 백작과 툴루즈의 백작, 프로방스의 백작까지···.

거기에 신성로마제국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아를의 대주교까지···.

아를과 그 부근의 영지는 조각조각으로 쪼개졌다.


-욕심은 나지만 누구도 쉽게 먹을 수 없는 땅이야. 잘못 삼키면 독이 되지.-


그런 상황 속에 힘의 공백이 생겼다.

아를 주변에 스스로 무장하고 자주권을 외치는 이들이 생겨났다.

무법자이자, 도적 떼, 강도들이었다.

아를은 한동안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곳에 아무리 비옥한 땅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 대신에 안전한 곳이 된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거야.-


그곳엔 정말 젖과 꿀이 흘렀다.

아를은 양과 소를 키우기 좋은 땅이기도 했다.

꿀벌을 먹일 꽃도 많았다.

아를은 꿀의 산지이기도 했다.


-내가 그곳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지킬 수가 있어?-


아를은 가지는 것도 힘들지만···.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너는 다른 사람보단 유리하지.-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 중 바르셀로나의 백작과 신성로마제국은 아를에서 먼 곳에 있었다.

반면에 또 다른 권리 주장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까웠다.

아버지의 영지인 생질(Saint-Gilles)은 아를의 서쪽에 접해 있었다.

아를의 북쪽 방면은 어머니가 지배하는 타라스콩이 있었다.

남쪽 지역은 습지와 강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이었다.

동쪽은 천연 장벽인 산지였다.

베르트랑이 아를의 권리를 주장하면···.

막을 사람이 없었다.

-레이먼드는 나서서 돕지 않겠지만···. 네가 거기에 자리 잡는 것을 방해하진 않을 것이야.-


레이먼드가 양심이 있다면···.

베르트랑이 아를에서 세력을 키우는 것을 못 본 체할 것이었다.

생질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은 마음의 부채였다.


-너의 어머니는 그곳에 자리 잡는 걸 지원할 수 있지.-


아를엔 어머니의 영지가 있었다.

지분의 4분의 1이지만···.

어머니는 손쉽게 물자를 보내 줄 수 있었다.

론강을 통해···.

타라스콩과 배로 하루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툴루즈와 프로방스 가문의 피를 이은 베르트랑에게 아를은 매우 호의적인 곳이었다.

문제는···.


-나에겐 그곳을 지킬 무력이 없어.-

-왜 없어. 바로 눈앞에 있잖아.-


눈앞에 에드몽과 그의 병사들이 보였다.


-하하. 정말 그렇군.-


기사와 10여 명의 병사···.

그보다 많은 수행원이라면···.

작은 성채는 지켜낼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성채 주변의 땅들이 베르트랑의 영지가 되었다.

그런 후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서 영지를 키워나가면 되었다.

그 사이에 베르트랑도 성장한다.

영지와 함께···.


-시작으론 나쁘진 않잖아?-

-맞는 말이야. 시작으론 나쁘지 않아.-


아니, 바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주 좋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허락과 함께···.

먼저 에드몽의 충성을 받아내야 했다.

이미 그 일을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昌大)하리라···.-

-네가 말한 게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어.-


악마 녀석은 똑똑했다.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베르트랑은 어느새 그길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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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에드몽. 24.02.20 959 32 12쪽
7 7. 타라스콩. 24.02.19 975 36 12쪽
6 6. 약속된 권능. 24.02.17 1,053 39 13쪽
» 5. 첫걸음을 내딛다. +6 24.02.09 1,173 38 12쪽
4 4. 선물(gift)과 봉사(service). +4 24.02.07 1,246 38 13쪽
3 3. 사람 낚는 어부. +4 24.02.06 1,505 37 14쪽
2 2. 신실한(Pieux) 베르트랑. +4 24.02.05 1,941 38 13쪽
1 1. 악마의 유혹. +14 24.02.04 3,402 5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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