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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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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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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7,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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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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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72. 방류

DUMMY

"···지겨워 정말."


릿샤 애드윈은 엉뚱한 소리처럼 말을 뱉었다. 호아킨은 그 말을 듣는다. 그는 기력술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제냐와 최태현 역시 기력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MP가 소모되고 있었고, 신체에도 기력이 돌았다. 두 사람보다도 호아킨은 자신의 신체 강화에 조금 더 집중했다. 변신술사라는 것이 그러하다. MP를 사용하는 초상술의 일종인 변신술도 컨트롤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하는 일은 직접 몸으로 갖다 박아 전투를 하는 양식이기에 기력술의 위력 역시 조금도 줄일 수가 없다.


최태현과 제냐는 기력술사들이기도 하지만, 투사체를 쏘아보내며 먼 거리에 집중하고 있었고. 호아킨은 원거리 공격 수단은 마땅찮아 신체를 강화한채 주변에 집중했다. 덕분에 릿샤의 말을 듣는다. 그녀의 심경 변화는 늘 주시해야 했다.

릿샤 애드윈의 기분을 특별히 살피고, 맞춰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실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관계라고 해도 그랬을까.

잘모르겠지만. 아무튼 게임 내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워메이지였고, 레벨이 100을 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스터 마기아에 준하는 초상술사였으니 말이다.


머릿속으로 계산한 것을, MP를 활용해 물리적인 현상으로 바꾸어내는 그녀다. 아주 이성적이어 보이는 말투를 하고 있지만 때로 폭급하게 굴 때도 있었고. 의외로 감정변화의 진폭이나 낙차가 큰 성격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뭐, 아주 러프하고 나쁘게 말해 성격이 다소 지랄맞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런 태도가 오롯이 릿샤만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뭐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세월동안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아무튼 거대한 MP를 다루고 있는 그녀의 기분이 오락가락하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폭발력의 무언가가 난사될 수 있었다. 범위 또한 예상 오차 범위를 한참 넘어설 수도 있었고.


그것도 뭐 나름대로 스릴 있는 게임 플레이이긴 하다. 호아킨은 현실의 전장과 비교를 하자면 소꿉장난같은 곳이었지만, 감각 자체는 크게 다름 없는 이 플레이로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의 트라우마 치료는 남들과 조금 달랐고, 피해야 하는 무언가를 도리어 조금씩 겪어내면서 해독하고 있었다. 전쟁터의 떨리는 공기. 압박감.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 살갗 바로 근처에서 느껴지는 폭발의 열기.

그런 것들을 간접적으로, 게임 속에서 경험하며 꿈 속에 남아 그를 가끔 괴롭히는 오랜 독을 해독하고 있다.


그는 그런 사내였다. 곪은 상처가 있다면 기꺼이 의사에게 가서 내어주고, 칼로 째고 썩은 살을 도려내달라고 요구할 인간이다.


그래야만 낫는 게 있다는 걸, 살아오면서 겪은 지혜로 알고 있다. 게임은 그러기 위해 좋은 수단이었고. 릿샤의 성격은 괜찮은 치료제였다. 그녀 역시 많은 트라우마를,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지랄맞고 싶어서 지랄맞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비유를 조금 섞어, 인형처럼 예쁘다고 말해도 좋을 외모이다. 나이에 비해서 아주 어린 티가 나는 동안에 체구도 작다.

거기에 뛰어난 머리와 재능을 갖고 있으며,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재능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주변에 으스대기 좋아하는 권위주의자들에게 눌리기 쉬운 인간이었다. 릿샤가 처세술이니, 인간 관계의 리스크를 다루는 커뮤니케이션법이니, 하는 게 조금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만.

툭하면 욱하고 치솟는 그 성정은 어쩌면 자기 방어 기제가 오래도록 굳어 형성된 성격일지 몰랐다. 그렇게 갖은 지랄을 떨어야 제대로 그녀의 능력을 봐준다거나, 인정을 해주었던 상황이 반복되었다면.


권위란 신성한 것이었지만, 권위가 이 세상 유일의 절대적 가치라고 여기는 권위주의자들은 미치광이들이었다. 세상엔 늘 그런 인간들이 있었고, 약하고 악한 작자가 있는 것처럼 어중간하게 높은 위치에 앉아 패악을 부리는 작자들도 있다.


학계라고 해서 그다지 다르지는 않다. 인간사, 세상 어딜 가든 나타나는 양상이었으니. 릿샤와 호아킨은 제법 죽이 잘 맞았고, 이성적인 연정은 아니어도 우정은 나눌 수 있었다. 사납기도 하고, 독특한 성격의 둘이었지만 지난 세월을 이해하고 납득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친구였다.


호아킨은 고로 생각했다.


'저 자식 또 지랄···.'


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고, 고고하게 MP를 다루는 마스터 마기아의 앞에 뜬 폭풍의 핵은 한기를 품으며 맹렬하게 회전했다.

광폭하게 그것은 회전에 회전을 더한다. 난회전이었고, 바깥으로 빠져 나가려는 폭발력이 계속해서 쌓여간다. 그런 성질을 가진 거대한 기운을, 완벽하게 정제해서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일정 반경 안에 가두었다.

거기에 최대한의 발산을 위해 압축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터져 나가고싶은 MP들의 집합체다. MP또한 적절한 크기를 가진다. 정확히 말하면, 일정 부피 내 적정 밀도가 존재한다.


좁은 공간에 과밀하게 모여 있는 MP는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였고, 곧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좁은 장소에 사람을 많이 모아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MP들은 부자연스럽게 압축되었을 때, 보다 빠른 속력으로 흩어지기 위해 애를 쓴다.


바깥 전 방향으로 향하는 관성이 누적되고,


그건 곧 사용된 MP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순수한 파괴력 이상을 낼 수 있게 된다. MP의 성질을 어떻게 잘 이용하냐에 따라 같은 MP로도 보다 많은 양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결국 그 MP를 압축시키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힘이 또 소모되지만. 의지력이 강하다면, 중첩 스킬을 기가 막히게 다룰 수 있는 실력자라면 가능해지는 묘기였다.


릿샤의 지휘에 따라 훈련받은 정병들은, MP로써 가지는 한계를 넘어 초월적인 압축을 견뎌내고 있다. 그 역시 무한히 견딜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외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막을 만들어 억지로 밀고 있었다. 중첩되고 압축되는 쪽으로. 폭풍의 구의 중심부를 향해서 작아지게끔 말이다.


투명한 보호막이 강력하게 막고 있었고, 그 내부의 흐름이 곧 폭풍의 구를 이루는 본질이었다.


한기와 뇌기, 지독한 수준의 바람이 섞여 있다. 자연적이거나, 정상적인 바람은 아니었다. MP가 만들어냈고, MP가 돌리고 있는 바람이며, 줄지도 않는 세기와 풍속을 가졌다. 끊임없이 고속화되고 있었고, 그건 MP가 만들어내는 한기와 대치되는 행동이기도 했다. 일정 부피 내에 과밀된 입자들이 초고속의 운동을 반복하다보면 결국 열이 오른다.


폭발력, 파괴력을 높이다보면 한기로 인한 속성 데미지를 깎아먹는 지점이 온다. 시너지로 극대화할 수 있는 데미지의 최적점을 지나버리는 일이다. 릿샤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생각보다 중첩 스킬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래 걸려봐야 1분 내지 1분 십 여 초 정도를 생각했건만. 20초, 30초,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릿샤는 짜증이 났고, 그 기분을 그대로 MP를 다루는 일에 풀어냈다. 이미 과밀한 MP체에 더욱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넣는다.

그녀의 품에 있는 오브니, 온갖 아티팩트니 하는 것들이 빛을 내며 떨렸다. 그녀의 몸 근처에서 강렬한 바람이 나타났다. 강대한 원소술사들이 MP를 다룰 때는, 해당하는 속성의 자연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었다. 그건 MP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스킬에 들어가는 MP에는 아무런 로스loss가 없는, 분리된 외부 효과였다. 애당초 콘란드 대륙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SP니 MP니 하는 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는 미지의 것이었으므로. 잘 알지 못하는 현상이 몇 개 쯤 더 있다고 해도 놀라울 건 없었다.


바람이 그녀의 스킬을 북돋아주고 있는 듯했다.


호아킨만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건 아니게 되었고, 제냐나 최태현도 부지런히 검은 용을 향해 견제기를 쏘아내다가 위를 흘끗 올려다보았다.


갈색 매. 브라운과 썬더스는 최대한 위치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날기 위해 애를 쓴다. 그 두 마리를 컨트롤하는 라이엔도 나름대로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고.


릿샤는 앙다문 입술로 멀리 있는 검은 줄기를 바라보았다.


검은 줄기. 정말로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형상이었다. 잘못해서, 누가 3D 현실 그래픽에 검은 줄을 찍 그어놓은 것 같다. 빛을 잘 집어삼키는, 진정한 의미의 검은 색이다. 오후의 햇살이 만물을 선연하게 비추는 낮에는 어울리지 않는 형체다.


검은 용은 이질적이고 난폭하다. 쉽게 죽지 않는다. 이대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동굴 바깥으로 나올 테였다. 수백 여 미터의 거리가 있다지만 검은 용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였다. 놈은 거대하지만 빨랐다. 상대하기에 가장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모아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방어력에 상대하는 입장에서 극악한 재생력. 몸뚱이는 강철을 우습게 우그러뜨리고 아가리를 벌려 나오는 이빨들은 암석들을 분쇄하기 위해 타고난 것이었다. 그 길다란 육신은 검은 용의 정력을 상징하는 듯하고, 실제로 탄력적이지 않은 부분이 한 구간도 없는 몸뚱이다.


몇 번이나 견제기를 먹였고, 상처를 냈지만 검은 용의 총 HP에 비교한다면 생채기나 다름이 없었다. 재생력으로 인해 몇 번이나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다.


릿샤는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고,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 검은 용을 상대했을 때는 플레이냐, 게임 오버냐의 기로에 서서 싸웠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취미이며, 스트레스 풀이 장소이며,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인 비련의 시나리오를 별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의 업이 바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누구라도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 늘 서툴다고 본인이 느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릿샤로서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조금 필요했다. 비련의 시나리오 속 가상 세계는 충분히 그런 자유를 그녀에게 선사한다.


검은 용은 곧 릿샤 애드윈의 적이 되었다. 그녀의 즐거운 여가 시간을 방해하는 상징물처럼도 보인다. 그녀는 티를 잘 내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은 알 정도로 기분의 낙차가 심한 편이고, 스트레스를 주욱 묵혀뒀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유형의 인간이다.

릿샤의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잘 다가서지 않는다. 괜한 폭풍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으득.


꽉 다문 잇새에서 소리가 났다. 극도로 집중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손은 여전히 앞으로 벌리고 있었고, 부들부들 조금 떨리기도 했다.


최적의 타이밍을 노렸고, 예상보다 수십 초는 느린 시점에서 최고의 효율이 나왔다.


최태현은 릿샤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부지런히 화살을 쏘았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청명한 대기를 자철시가 날았고,


그 뒤를 거대한 기척이 가린다.


릿샤가 자신의 앞에 모아둔 거대한 녀석을 풀어버렸고, 그녀의 방류에 따라 폭풍의 구는 검은 용에게 사납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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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174. 태양의 숨결에 대해서 23.11.30 21 2 16쪽
174 173. 방류의 직후 23.11.29 20 2 20쪽
» 172. 방류 23.11.29 18 2 12쪽
172 171. 괴물의 앞 23.11.25 21 2 22쪽
171 170. 용트림 23.11.25 18 2 11쪽
170 169. 번개와 폭풍, 형성중 23.11.24 22 2 22쪽
169 168. 캐스팅 23.11.24 16 2 19쪽
168 167. 사색 23.11.23 20 2 12쪽
167 166. 동굴 앞(3) 23.11.23 16 2 15쪽
166 165. 동굴 앞(2) 23.11.23 15 2 15쪽
165 164. 동굴 앞 23.11.22 18 2 14쪽
164 163. 데슈칸 심부 23.11.21 21 2 23쪽
163 162. 갈색 매 23.11.20 20 2 22쪽
162 161. 바구니 23.11.19 21 2 10쪽
161 160. 그와 그녀 23.11.19 19 2 18쪽
160 159. 의뢰(re)Quest 23.11.18 21 2 15쪽
159 158. 그녀, 라이엔 23.11.17 19 2 23쪽
158 157. 스킬러Skiller 23.11.16 25 3 15쪽
157 156. "음." 23.11.16 20 3 12쪽
156 155. 원탁 23.11.14 22 3 17쪽
155 154. 남중국 23.11.12 22 3 16쪽
154 153. 야욕 23.11.11 23 3 14쪽
153 152. 제국 특기特機 23.11.11 21 3 17쪽
152 151. 다시 만나, 담화 23.11.10 20 3 19쪽
151 150. 세르게이 알사드; 또라이 23.11.09 22 3 15쪽
150 149. 흑색장도 23.11.08 23 3 18쪽
149 148. 병실 23.11.08 21 3 14쪽
148 147. 내가 만나 본 고블린 중에 최고였죠 23.11.07 2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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