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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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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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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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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6. "음."

DUMMY

“음.”


제냐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보랏빛 고사리 샐러드를 뒤적거리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고사리의 알싸한 맛, 특유의 풍미나 구수함이 샐러드와 잘 어우러졌다. 어떻게 밸런스를 잡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제냐가 알지도 못하는 이국적인 채소와 향신료, 소스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딱정벌레 고기’라고 하는 괴랄한 이름의 재료를 잘 찌고 저며서 섞었다. 입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어차피 사르삿에서 일이 날 겁니다. 여기가 중심지고, 퀘스트의 사건이 이리로 왔었으니까.”

“흐음.”

“여긴 대도이며 왕도이죠. 마을급 퀘스트에서 지역급 퀘스트로 넘어가려면 변방으로 가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제냐는 최태현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퀘스트에 대해서, 일반적인 시나리오 온라인의 흐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그 대화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최태현 역시 들으면서 곧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간 사르삿에서 제냐와 파티를 맺고 다양한 얘기를 했다. 그도 공감하는 바다.


“결국 함께 모여서 대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숙박 업소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그러면 로그아웃 시 ‘밤’ 상황이 진행이 돼도 서로 도와줄 수 있겠죠.”


퀘스트 진행 중, 플레이어들이 로그아웃한 상황에서 간혹 강제 이벤트가 일어날 때가 있었다. 근래 제냐가 여관에서 자던 중 습격을 당한 일과 같이 말이다.

제냐가 말하는 ‘밤’ 상황은 그런 경우를 뜻했다.


밤 상황, 모든 플레이어들이 밤에 로그아웃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숙면을 위해서 대개 그 시간 즈음에.

유저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에 퀘스트 상황이 벌어진다면 임시 AI가 만들어져 유저 캐릭터를 움직인다. 그 강함이나 다양한 실력은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보여주었던 퍼포먼스를 감안해서 산정한다. 스펙과, 콘란드 대륙에서 유저가 보였던 강함의 정도를 잘 계산하여 평균값을 내는 것이다.


그 평균값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했다. 유저가 직접 컨트롤 하고 있는 때라면 몰라도 ‘밤’의 사건 때 기적적인 성장이나 행운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다.


덕분에 스펙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제냐나 다른 이들이 레벨업을 하고, 캐릭터의 전투력적 체급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쓴 게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이렇듯 동료끼리 근처에 모여있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쨌건, 임시 AI는 콘란드 대륙 내에서 플레이어의 활동 지식을 이어받은 존재였다. 같은 장소에 동료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 역시 인식을 하는 상태이며, 그들에게 도움을 얻는다는 생각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 헤쳐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둘, 그리고 넷이 되면 수월할 지 모른다.

이게 만약 퀘스트 플레이어의 수에 따라 비례하는 어려움이라면 영 좋지 못한 결말이 나겠지만은.


아마 그러진 않을 테였다. 아마도. 제냐는 글을 잘 읽는 편이었다. 세세한 퀘스트 로그, ‘기억’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는 흐릿한 영상 자료 따위로 정황을 살폈다. ‘적’이라고 할만한 의문의 암살자는 아마 제냐만을 노리고 있는 듯했다.

아직까지는 그러했다.


그들이 동료 관계이며, 적극적으로 연대를 이루어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게 알려진 후라면 모를까 당장 올 지 모를 위험에 대해선 함께 있는 게 좋을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산슈카 내부에 있는 어느 권력자와 체스를 두는 일과도 비슷했다. 아마도 그 권력자의 후보로는 프린스 알사드, 게으른 대공이라는 작자가 유력했고 말이다.


체스 경기장에 올라와 있는 사람은 제냐 킴, 그리고 상대편의 권력자 둘이다.


제냐는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은 하지만 뚜렷이 알지 못하는 반면, 상대는 제냐를 안다.

현재는 그만을 노리고 있었으며, 게임Game장에 올라와 있지 않은 다른 동료들은 노려지지 않는다.


제냐를 도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그 때는 혹시 모른다.


단순한 MMORPG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장감이다. 머리 쓰기를 요구하기도 했고. 그런 점들이 도리어 제냐에게는 좋았다.

쓸 곳도 없는 머리,

라고 하기에는 버젓이 시험을 치르고 졸업을 해야 하는 대학생이기는 했다만.


공부에 어딘지 흥미를 못 붙이는 것에 반해 머리를 쓰는 일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도리어 좋아한다고 답할 테다. 제냐로서는. 김서원으로서는 말이다.


취미가 생활의 영역을 넘어서는 안되겠지만. 취미의 영역 내부라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게끔 난이도가 설정된 게 좋다.

그래야만 온전히 생활의 일부를 깊은 몰입도로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취미에 몰두하고 있는 시간 동안 말이다.


힘이 센 사람에게는 적절한 무게의 바벨을 쥐어줘야 운동이 되고 효과가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능력을 갖고 있었고, 제냐에게는 이런 종류의 복잡한 구도와 약간의 긴장감이 적당했다.


제냐의 곁에 모인 이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릿샤나 호아킨. 최태현도 말이다.


“그래, 그러자고. 일반 지구에 괜찮은 호텔이 있던데. 값도 적당하고.”


릿샤의 말이었다.


같은 방을 사용하지 않아도, 같은 층이나 붙어 있는 방을 쓴다면 그것만으로 좋을 테다. 저번처럼 자고있는 와중에 습격 따위를 당한다면 곧바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아, 거기.”


호아킨이 맞장구를 쳤다. 릿샤와 호아킨은 제냐나 최태현보다 플레이 기간이 긴 베테랑들이었다. 산슈카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사르삿에 머물렀던 적도 많다. 괜찮은 숙박업소를 알아두는 건 모험가로서의 자질이나 업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먹는 것, 자는 것이 캐릭터에게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비루한 시설에서도 상관이 없겠지만.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거나, 혹은 전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려 한다거나 하면 숙박 시설도 좋은 편이 좋다. HP가 다시 차오르는 속도가 약간 빠르기도 하다.

결국 가장 심할 때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겠지만. 일전에 제냐와 최태현이 프린스를 잡고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자는 게 아니라 먹는 일이 된다면, 로그인한 도중에는 플레이어가 실감나는 미각으로 직접 씹게 되고 말이다.

비련의 시나리오 속에서 식도락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칼로리가 늘지 않는 음식이라니. 그야말로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전근대의 사회, 혹은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만한 악몽이 없겠지만 말이다. 대개의 경우, 잘 발전된 선진국이라면 사람들은 칼로리를 버린 맛만 있다면 환호를 지를만한 상황이었다.

더 먹고 싶지만 늘 건강 때문에 먹지 못하는 일이 많았으니.


21세기가 시작되고 수 십 년, 22세기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에조차 굶는 아이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말이다.

아프리카 대륙 그 인근은 여전히 척박했다. 대지와 기후도 인간에게 친절한 편은 아니었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환경은 더욱 그러하다.


타국에서 그래도 그간 깨나 원조를 많이 했기에 나아진 면이 많이 있었으나. 여전히 분쟁, 가난, 고통이라는 건 실재하는 삶의 민낯이었다.

인생의 의미나 진실을 따질 때, ‘고통’에 도리어 방점을 찍는 것이 설득력을 가질만치. 삶이라는 건 언제나 문제의 연속인 법이었다. 그건 앞으로 다시 수십 년이 지나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일이리라.


문제를 해결하자,


가 아니라 아무 문제도 없으니 생각을 멈춰라,


라고 이야기하는 매스 미디어의 목소리가 있다면 그건 언제나 사기꾼의 것이니 조심해야만 했다.


포인트가 벗어났으나 일단 시나리오 온라인 속 여러 음식들은 플레이어들에게 축복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 활성화되는 세포 작용들도 있었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조금 사라지는 셈이다.

살은 찌지 않으되 즐거운 맛만을 감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게임에 들어와 여행을 하고 풍광을 즐기는 것처럼, 식도락 유저들 역시 늘 진지하며 일정 수 이상이 유지되었다.


“사자의 허벅지.”

“···그게 뭡니까?”


호아킨이 대뜸 말하는 것에, 제냐는 샐러드를 우물거리다가 물었다. 최태현은 자신이 시켰던 흰뿔 큰사슴 스테이크를 씹어먹고 있었다. 씹을 때마다 육즙이 터져나와서 굉장히 행복한 상태였다, 일에 지친 샐러리맨 태현은 말이다.

저녁 무렵, 살이 찌지 않고 고기를 씹고 있으니 노동의 스트레스가 조금 덜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호텔 이름이지. 일반지구에 있는 곳이라네. 사르삿에 머물 때는 거의 거기에서 지냈었어. 저번에 퀘스트 말미에 잠시 있었을 때도 그렇고.”

“아, 그래요.”


영 찜찜한 이름이었다. 사자의 허벅지. 육식 짐승의 고기 누린내가 날 것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늘 육식류의 음식에서 ‘맛’이라는 건 ‘냄새’와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뭐 나쁘지 않은가. 제냐는 혼자서 쓸데 없는 생각을 중얼거리듯 읊었다.


“음식 맛도 훌륭하고. 넓이도 괜찮고. 그러면 거점은 거기로 하지. 해야할 건 늘 똑같군. 언제 어디서 습격이, 상황이 닥쳐올 지 모르니 함께 모여 대비하면서 스펙 업을 한다.”

“그렇죠.”

“다 같이 파티 사냥이라도?”


릿샤는 뚱하니 말한다. 늘 생각이 많은 그녀는 말이 짧을 때가 많았다. 여러가지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조합하다가 본론만 툭 하고 던지는 것이다. 서두도 말미도 변변찮다. 친절함을 이야기꾼의 재능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그저그런 스토리 텔러였다.


“해야지.”


호아킨이 답했다. 그는 늘 릿샤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좋은 파트너다. 이성적인 감정을 그와 지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느냐, 고 묻는다면 릿샤는 그런 가능성을 만에 하나라도 두진 않는다. 호아킨도 마찬가지였고.


“어둠숲에 있는 어지간한 놈들은 저희가 다 잡긴 했는데······.”


태현이 이야기했다.

맞는 말이었다. 어둠숲의 프린스 오브 고블린을 잡았다면 소수 정예로 레이드할 수 있는 몹들 중 가장 위험한 종을 잡은 셈이었다. 그 아래로는 더 쉬워질 뿐이었다.

둘이서 그간 여러 마리를 잡았고, 그로 인해 얻은 아이템들도 넘쳐날 정도다. 장비 아이템으로 따로 제작할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대부분은 환전해서 현금 자산으로 바꿔버렸다. 당장 급하다면, 시장에 나와 있는 소모성 물약이나 아이템들로 바꿀 생각이었다.


한 번의 전투에 돈을 쏟아붓듯, 돈지랄을 좀 하면 전투력이 급상승을 하긴 한다. 누구나 그렇게 하기 힘드니까 말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짓거리는, 그만한 이유가 늘 있는 법이었다.


개인의 수준에서는 생경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전쟁’이라는 게 돈을 쏟아붓는 일이라는 걸 떠올리면 외려 올바른 방식일 지도 모른다. 그래, 올바른 방식이다. 그렇게 돈을 쏟아부어 목숨과 체력을 아끼는 방법이 말이다.


돈보다 더 소중한 걸 돈으로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에 다 쏟아부어도 옳으리라.


고작해야 게임 내의 목숨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쏟아 붓는 것도 게임 내의 화폐였다.


이미 여기저기서 소모용 아이템들을 계속 구하느라, 일정한 루트도 뚫어놓은 상태였다. 레이드할 몹, 상대만 정해지고 시간만 나오면 처음보다 훨씬 수월하게 장비를 마칠 수 있었다. 양질의 것들을 충분한 수량으로,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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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168. 캐스팅 23.11.24 16 2 19쪽
168 167. 사색 23.11.23 20 2 12쪽
167 166. 동굴 앞(3) 23.11.23 15 2 15쪽
166 165. 동굴 앞(2) 23.11.23 15 2 15쪽
165 164. 동굴 앞 23.11.22 17 2 14쪽
164 163. 데슈칸 심부 23.11.21 20 2 23쪽
163 162. 갈색 매 23.11.20 20 2 22쪽
162 161. 바구니 23.11.19 20 2 10쪽
161 160. 그와 그녀 23.11.19 19 2 18쪽
160 159. 의뢰(re)Quest 23.11.18 21 2 15쪽
159 158. 그녀, 라이엔 23.11.17 19 2 23쪽
158 157. 스킬러Skiller 23.11.16 24 3 15쪽
» 156. "음." 23.11.16 20 3 12쪽
156 155. 원탁 23.11.14 21 3 17쪽
155 154. 남중국 23.11.12 22 3 16쪽
154 153. 야욕 23.11.11 22 3 14쪽
153 152. 제국 특기特機 23.11.11 21 3 17쪽
152 151. 다시 만나, 담화 23.11.10 20 3 19쪽
151 150. 세르게이 알사드; 또라이 23.11.09 22 3 15쪽
150 149. 흑색장도 23.11.08 22 3 18쪽
149 148. 병실 23.11.08 21 3 14쪽
148 147. 내가 만나 본 고블린 중에 최고였죠 23.11.07 25 3 12쪽
147 146. 프린스 오브(10) 23.11.06 21 3 16쪽
146 145. 프린스 오브(9) 23.11.06 19 3 12쪽
145 144. "아, 그 놈 잘 있으려나?" 23.11.06 18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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