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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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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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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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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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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49. 흑색장도

DUMMY

[흑색 장도

강하고, 날카롭고, 긴 도. 뛰어난 실력자라면 다이아몬드도 벨 수 있을 정도이다. 칠흑색의 도신은 자동 재생 기능이 있어 손상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된다. 아티팩트 메이커의 시각으로 본다면 내부에 MP를 다량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 많이 있다. 다양한 인챈트, 그리고 스킬을 삽입할 수 있는 무기이다.]


[프린스의 귀걸이

악마종 몬스터들의 프린스를 잡으면 일정 확률로 얻는 악세사리.

악세사리 세트가 존재하며, 다른 구성 아이템들을 장비하면 추가 효과가 드러난다.

순발력, 근력, 정신력 증가. 초월방어력이 대폭 증가한다.]


귀걸이는 최태현이 가졌고, 장도는 제냐가 가졌다.


장도長刀를 가져가봐야 최태현이 쓸 곳도 없었다. 사용할 수야 있겠지만은 제냐보다 잘 다루지는 못할 테였다. 일단 도검술 스킬도 마땅한 것을 익힌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패시브 스킬이 있으나 레벨을 전혀 올려두지 않은 상태라 별다른 보정 없이 거의 최태현의 감각으로만 휘둘러야 했다.


제냐는 비스트 슬레이어를 한 손으로 다룰 수 있었다. 근력이 충분했고, 한 손으로 쥐고 휘두를 때도 검기의 완성도에 따라 공격의 위력이 갈리지 그립이 어떠하냐에 따라 크게 추정 데미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한 손이 비게 되는데, 보통 단검류를 왼 손에 쥐고 상대의 빈틈을 찌르거나 공격을 막아내는 일에 써먹었다.

황야 지룡의 발톱 대거 역시 아직도 잘 다루고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위력도 훌륭했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양한 공격 옵션이 있는 것이 좋은 법이다.


두 자루의 도를 들고 이도류로 적들을 위협한다면 조금 더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편할 것이다.

기력술은 원래 있는 물체를 강화시키는 일에 적합하다. 대거로 하는 암습도 훌륭한 공격이지만 정면에서 넓은 범위에 큰 데미지를 주기 위해선, 어느정도 큰 검이 필요했다.

공격 일변도의 전투 스타일을 갖고자 한다면 흑도와 비스트 슬레이어, 두 자루가 있는 게 좋으리라.


어디 만화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듯한 무장 상태였다. 흑색 장도는 제냐의 인벤토리에 곱게 들어가 있었고, 프린스의 귀걸이는 최태현의 한쪽 귀에 끼워져 있었다. 얇은 금색 줄로 사슬이 늘어지고, 손가락 한 마디가 채 안되는 길이 아래에 하늘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있었다. 남자가 끼고 다니기에는 과한 악세사리처럼도 보였지만, 게임 내이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최태현은.


현실에서 그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궁술사로서 원거리 공격, 원호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악세사리는 필수가 되어간다. 다양한 아티팩트 효과를 받아서 MP를 쏟아내야 했기에 말이다.

제냐는 방어구의 기능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었고, 악세사리 류는 찾아서 대단한 세트를 장비하지 않은 채였다.

좋게 말하면 무던한 편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무신경하고 준비가 부족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티팩트가 많아진다고 곧바로 그것들의 효과를 모두 발휘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접 전사들이나 초상술사들 중에서도 경지에 오른 워메이지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의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기도 했다.


덧붙인 것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뿐더러 여러 가짓수의 아티팩트가 MP를 흘려보내니 정밀한 운용에서 틀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아티팩트 내의 MP들을 자신의 것처럼 복속을 시켜야 아티팩트의 효과를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었고, 사용자 개인의 스킬에도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최태현의 경우에는 원거리 공격이 자신의 주 포지션Position이다 보니 정밀 운용을 극한의 단시간 내에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역시 갖가지 트릭샷들을 근접 교전 상황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해가면서 해야 했다면 장비 셋Set이 조금 달라질 지도 모른다.


기력술사이든 초상술사이든,


상대의 공격 범위 내에서 전투를 지속한다면


MP를 사용해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어 역장을 만들어야 했고,

자신의 공격에 집중해 상대의 방어력을 뚫어내야 했다.

동시에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회피하는 움직임에도 어떤 종류의 클래스이든 MP가 들어가고, 공격 스킬을 운용하는데 극한의 컨트롤 실력이 필요한 고수급 유저의 경우에는 역시 쓸데없는 아티팩트의 착용이 세세한 차이를 만들어 버릴 가능성이 생긴다.


최태현은 갖가지 아티팩트들이 그의 MP 운용을 다소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조금 더 들여서 충분히 힘을 싣고 트릭샷을 날려보내면 된다.


다양한 종류의 아티팩트로 가리지 않고 떡칠을 한 뒤, 그것들의 기능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식의 싸움법을 쓴다면, 아예 MP유저가 아닌 물리 스탯만을 발전시켜 싸움을 하는 경우에 가능할 테였다.

스스로는 MP 운용의 정밀성을 따질 이유가 없으니 아티팩트의 발동시 MP가 어떻게 움직여 영향을 미치든 상관이 없을 테였다.


혹은, 스킬을 그저 시스템이 보정해 만들어주는 그 원본대로만 사용하는 전투직 유저의 경우에도 가능할 테였다. 그런 와중에도 아티팩트의 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MP가 기존의 스킬 구성 MP를 밀어내거나 끌어당기거나, 영향을 미쳐 조금씩 컨트롤 오차가 생기기는 할테지만. 애초에 세세한 컨트롤을 신경쓰지 않는 유형의 유저라면 전투는 가능하다.


그런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전투직의 고수급으로 올라가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아티피서’라고 불리는 부류 역시 존재는 했다. 그들은 스킬을 다루는 것보다, 양질의 아티팩트들을 얻어서 그것들을 다룸으로 전투를 풀어나가는 직종이었다.

분명히 MP를 사용하지만 초상술사들이 그러하듯 다변적인 스킬 양상을 보이지는 못한다. 초상술사는 직접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에디터였고, 그 에디터의 편집 능력에 따라 발휘되는 스킬이 달라지거나 아예 다른 스킬로 현상을 발휘할 수도 있었는데.

아티피서들은 이미 짜여져서 물체에 고정된 아티팩트를 사용해서만 스킬을 쓰고 있으니 일반적인 메이지들보다는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양질의 아티팩트를 단시간 내에 얻고, 그것만을 단련해서 운용 능력을 높였다면 그 역시 나름의 효과적인 전투법일 수는 있었다.

초상술사들이 스킬을 발휘하기 위해서 걸리는 지연 시간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아티팩트 내의 회로를 통해 스킬을 발동하는 것이기에 발동 시간이 더 짧을 테였다.


초상술사들은 스킬을 쓸 때마다 대포를 처음부터 만들어 발사한다고 치면, 아티피서들은 여러 구경과 유형, 성질을 가진 대포들을 들고 다니면서 상황에 맞게 바로바로 화약과 포탄만 넣어서 쏴대는 것이다.


아득한 경지에 있는 워메이지가 아니라면 아티피서들의 즉각적인 반응 속도를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력술사들이 ‘강화술’이라고도 불리는 한정적인 영역에서의 초상술만을 극한으로 발달시켜 근접전에서 싸우는 것과 어찌 보면 비슷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메이지들과 기력술사들의 중간 지점, 그것을 아티피서Artificer라고 해도 좋았다.


MP라는 건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주 훈련된 군사에 비유되고는 했다. 그것은 관성과 고착화 성질을 갖고 있는 에너지였다.

거대한 크기의 MP, 수많은 양의 MP를 다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처음에는 의지력의 한계 내에서 잘 움직이다가 어느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통제를 벗어나고자 격렬히 움직인다.

마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물질을 다루는 것과도 비슷했다. 거대한 통에 많은 양의 액체나 모래 따위를 넣어두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다루는 자의 힘과 무게가 부족할 때 휘청거리지 않겠는가.


양이 많아질수록 그것들은 최초에 스킬 유저가 MP에게 명령한 예컨데 'a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라, 는 명령만을 듣고 이동하다가, 이후 급박하게 제 2의 명령으로 ‘b에서 a'지점으로 다시 옮겨가라, 고 한다면 명령에는 지연 시간이 있어 멀리 있고 통제를 잘 따르지 않는 MP 분자들은 최초의 명령을 마저 따르는 것이었다.


의지력이 강하다는 뜻은 그 ‘군사’로 대변되는 MP들을 한 번에 잘 통솔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 MP들은 점차 사용자가 일정한 명령을 내릴수록 특화되어 간다.

넓은 범위의 많은 MP분자에 똑똑히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의지력이 강한 것이고, 자신이 소유한 MP분자 전체에 일정 명령을 각인시켜 훈련 효과를 내는 일도 더 빨리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착화’는 MP가 이전에 받았던 명령, 프로세스를 기억하는 성질을 의미했다. 기력술사들의 ‘기력’이 초상술사들이 다루는 MP와 분화되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강화술로도 불리는 기력술은 유저의 신체와 그 연장선 일정 범위까지만 영향을 미친다.


‘기력 감지술’의 경우에는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초상술사들 중 감지술사의 스킬과는 달리 아주 작은 범위의 현상을 멀리 옮기는 것 뿐이었다.

감지술사들의 감지 스킬이 반경 수백 미터를 한 번에 탐지할 수 있다고 할 때, 기감으로 인한 탐사는 고작 반경 십 수 미터 정도의 원형만을 탐지하고, 그 탐지 시야를 사람이 손으로 더듬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작은 범위에서의 일을, 빠르고 강하게 처리하는 일에 능숙해지게 된다. 기력술을 많이 다룰수록 말이다.


강화술에 많이 응용된 MP들은 주인, 곧 유저가 명령을 내리지 않을 때도 그 기력술에 대한 데이터를 내부적으로 축적하고 있었다. 명령에 대한 반응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효율도 높아지며, 관련한 일을 새롭게 할 때의 적응도 역시 높아진다.


MP가 마치 살아있는 군사들과 같다며 비유가 자주되는 이유였다.


초상술사들의 MP들은 아주 다종多種의 일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점차 배양되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기력술사들의 기력에 비해 아주 특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상황 적응력이 뛰어났고, 넓은 범위에 큰 효과를 미치는 일에 탁월하다.

그 면적을 일정 단위로 쪼개어서 단위당 미치는 일의 크기를 잰다면 아마 기력술사들의 기력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초상술사들이 100의 MP로 100제곱 면적에 폭발을 일으키고, 기력술사들이 1의 MP로 1제곱 면적에 폭발을 일으킨다면, 당연히 총량도 미치는 범위의 넓음도 초상술사들이 뛰어나다. 그러나 초상술사들이 일으킨 폭발의 현장에서 1제곱 면적만을 따로 분리한 뒤, 기력술사들이 일으킨 폭발과 비교하면 거기에 미친 폭발력이 적다는 뜻이었다.


초상술사들의 초상술을 가리켜서 ‘성긴 그물’이라는 비유로 표현하고는 하는 이유였다.


다시 아티피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티피서들의 MP역시 특수한 스킬에 계속해서 적응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원소술이나 감지술, 치유술 등 여러 초상술사들이 특정 계통군의 스킬들에 집중하게 되는 원리와도 결국 같았다.

자신이 잘 다룰 수 있는 아티팩트의 스킬만을 완벽하게 발현하는 일에 집중을 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들의 MP는 기력술사들의 기력 정도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정예한 병사, 엘리트 MP가 되어가는 것이다.


소규모 교전, 작은 범위에서의 힘 싸움이라면 초상술사들에게 이길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기력술사들에게는 불리하겠지만.


그러나 적당히 범위 공격도 가능하면서, 아티팩트를 구비할 때 다양한 상황들을 예상해 챙겨둔다면 여러 환경에도 적응이 다양하게 적응이 가능했다. 기력술사들만큼은 아니어도 초상술사들보다는 중근거리 싸움에서 기동성이 좋을 때도 많았고 말이다.


결국 기력술사들이 발과 다리 등에 MP를 돌리고 강화술을 사용해 재빠르게 뛰고 움직이는 것처럼, 신발이나 하체 갑옷 따위의 부여된 스킬과 그것들을 사용하는 MP들의 반응이 좋아져 반응 속도와 이동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최태현이 조금 더 길게 플레이를 하면서, 다양한 아티팩트들을 사용하고, 또 몇 종류를 고정해서 익숙해진다면 아티피서와 비슷하게 되는 셈이다.

궁술사로서 기력술사인 것과 동시에 아티피서의 능력을 지니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역량만 된다면.

다종의 클래스를 동시에 갖는 멀티 유저들은 결국 플레이 시의 컨트롤 능력이 좋아야 했고, 그건 개인의 집중력, 정신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타고난 신경 반응 속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말이다.


최초의 캐릭터를 만들 때 플레이어 캐릭터는 모두 동급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부여받으나, 그 너머에 있는 유저의 능력이 그보다도 더 본질적인 최초의 함수값이 되어서 이후 결과물에 영향을 끼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련의 시나리오 속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반응들은 바깥에 있는 유저, 김서원과 한 번 전자신호로 교류를 하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반응 속도를 게임 내에서 짧게 연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었다.

아마 스탯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정도에서는 동수를 이루거나 역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을 테였다. 똑같은 스탯이라면 본래 유저가 갖고 있는 운동 신경 따위가 크게 작용을 할 테였고.


고수급으로 갈수록, 그리고 그 너머가 될수록 도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적어지는 이유였다.


보통은 그저 그런 질의 전투를 통해서 손쉬운 사냥감을 잡게 되는데, 그런 식의 전투로 얻는 경험치를 레벨업에 사용한다면 연年 단위의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레벨이 100이 넘는데만도.


보다 강한 몹을 보다 적은 스펙으로, 고생스럽게. 그것이 이 게임의 핵심이며, 시나리오 온라인은 그 ‘고생’을 생각보다 굉장히 높은 감도로 파악하고 경험치로 돌려준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제냐가 문득 말했다.


최태현은 옆 침대에 다시 얌전히 누워서 병실 천장을 구경하다가 말을 듣고 답한다.


“갑자기?”

“아뇨 뭐, 그냥. 사는 게 다 고생이지 않습니까.”

“허허허.”

“왜 웃으세요.”

“아니, 네가 자기 얘기 하는 게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제냐는 최태현의 반응에 뚱하니 답하다가 반문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지. 자식아.”

“그렇습니까.”

“그래. 존댓말은 언제 관둘 거야.”

“···씁.”


최태현이 보기에 제냐는 사람을 대하는 데 어색한 면이 있는 놈이었다. 벌써 나이는 20살이 넘었고, 대학생 몇 학년이라지만 사람이라는 건 어지간히 나이를 먹고 경험하지 않으면 잘 성장하지 않는 법이었다. 다른 모든 부분에서 제대로 성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또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서는 그대로인 인간들도 있었다.


종종 만나고 얘기를 할 때는 곧잘 편하게 대하더니, 또 시간이 지나서 오랜만에 보면 다시금 존댓말을 해버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든다.

나름대로 싹싹하고, 또 귀여운 동생이었다.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한 네 살 정도. 어지간히 늙기 전에는 나름대로 큰 차이였다. 청년기에는 더더욱.


“아무튼. 언제 가십니까? 저는 슬슬···.”


언제 로그아웃 하냐는 말이었다. 제냐는 간혹 게임에 들어와서 HP의 회복 정도나 아이템 정리, 혹은 빌려두었던 책 따위를 읽고는 했다.

가장 좋은 건 누워있는 것이었지만 전투가 아니라 도시 내에서 소일거리를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 가야지. 그래, 로그아웃 해라, 아무 때나. 조금만 누워있다 가련다.”

“게임 속에서 누워 있을 거면 그냥 현실에서 누워 있는 게 제일 좋지 않습니까···.”

“너도 마찬가지고 말야.”

“허허.”


실없는 농담 따위를 주고 받으면서, 사르삿의 밤거리의 소리를 창 너머로 조금 듣는다. 어느새 귀족제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지겨울 정도로 계속되던 축제였다.


평소와 다른 소란을 즐기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것이 지쳤는지 끝물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들었다. 아무리 새로운 지역에서 새롭게 사람들이 온대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관광객들 역시 귀족제의 마지막에 가까워 올수록 줄어들었고.


축제의 처음 즈음에 건물 안에서 들었던 바깥의 소음보다는 확연히 줄어든 소리가 들려왔다. 왁자지껄하게, 누군가는 떠들고 고함을 지르고, 웃거나 울고.

술 앞에서 인생을 한탄하고, 기쁨을 나누고.


중부 대륙의 어느 변방 약소국. 수도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고작 NPC가 보여주는 연기에 불과하다지만, 전에도 말한 바 있듯 책 속의 인생을 바라보는 것마냥 그 연기를 만들어 낸 누군가의 감성에 공감하는 것이다, 결국은.

또한 그 감성이라는 건 보편적인 면이 있어야만 하고.


보편적인 평안함을 말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어딘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중증일 지도 몰랐다. 제냐, 김서원은 말이다.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의 모습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혹은 뭐, 여기서라도 그런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도리어 감수성이 발달한 부류의 인간일 지도 몰랐고.


어쨌건 그렇게 시답잖은 소리로 신변잡기를 나누고, 게임 바깥 현실에서의 삶과 고민도 조금 나누고, 게임 내의 다음 퀘스트 챕터에 대해서도 나누고.


차가워진 가을 공기가 슬슬 춥게 느껴질 때쯤, 2인 병실의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운 뒤, 제냐는 일단 로그아웃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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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165. 동굴 앞(2) 23.11.23 15 2 15쪽
165 164. 동굴 앞 23.11.22 1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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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59. 의뢰(re)Quest 23.11.18 21 2 15쪽
159 158. 그녀, 라이엔 23.11.17 19 2 23쪽
158 157. 스킬러Skiller 23.11.16 25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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