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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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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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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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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0. 용트림

DUMMY

‘정보’라는 건 때로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보물이 된다.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게임 속이었다. 갈 방향을 아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크르릉.


용이 신음을 토해낸다.


릿샤는 찡그린 얼굴로 주변을 돌아본다.


그녀의 근처에는 그녀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떠 있는 동료들이 있다.


“이거······.”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문다.


굳은 표정으로 절벽 동굴을 바라보고 있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최태현, 제냐, 호아킨, 그리고 라이엔까지. 모두가 소리를 똑똑하게 들었다.


괴물이 웅크린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거대한 산맥의 한 단면. 절벽 한복판에 만들어져 있는 큰 동굴의 입구이다. 검은색의 어둠이 그 내부를 채우고 있었고,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어마어마하게 길 것이었다. 내부의 통로는. 그것도 아니라면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거대한 공동이 형성되어 있던가.


후자라고 한다면 절벽의 구조가 기형적이라고 봐야 했다. 내부에 그만큼 빈 자리가 있다면 밀도가 낮다는 말이고, 위쪽의 지반이 내려앉지 않겠는가. 산맥을 이루는 암석질이 견딜 수 있을만한 크기의 빈 공간이 구불거리거나, 뭐 어떻게는 절벽 속으로 길게 자리한다는 게 간단한 추론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검은 용이 채우고 있을 터다. 깊은 내부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


릿샤는 캐스팅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백색의 번개. 그녀가 다룰 수 있는 뇌술중 가장 강력한 것들이 순차적으로 폭풍의 겉을 감싸안았다. 짙은 돌풍은 보이지 않는 유리 구체의 내부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일정한 외부막을 형성한다. 그 내부와 외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경계이다.


그 표면에 흰 빛의 입자들이 묻었고, 양이 많아졌고, 곧 크기와 빛깔이 달라졌다. 눈덩이를 눈밭에서 굴리는 것이나 비슷한 일이었다. 제법 밝은 광량으로 눈을 따갑게 만드는 흰 빛의 구체가 만들어졌고, 그건 지독한 바람의 흐름에 한기를 추가한 무언가였다. 그것만으로도 수 천 단위의 MP가 우습게 쓰였다. 그녀는 오브Orb를 다루고 있었다.


로웰 드버가 쓰던 그것과 비슷한 물건이다. 초상술사들에게는 보물이라고도 할만한 아티팩트. 그저 거대한 배터리 역할을 하면서 MP를 보관하다가, 때가 되면 풀어 주인에게 양도하는 기능뿐인 물건이다.


고급 MP포션을 벌컥이며 들이킨 것으로도 MP의 소모를 모조리 충당하기에 한참 부족했다.


사르삿에서 퀘스트의 이전 챕터를 끝내고, 준비하던 기간에 얻은 아이템이다. 그녀와 같은 워메이지들에게는 부르는 게 값인 물건인데, 운좋게 유니크 퀘스트를 얻어 해결하다가 그 보상으로 받았다.


그녀의 품 안, 자켓처럼 걸친 상의 보호구 안쪽으로 주먹만한 크기의 에메랄드빛 구체였다. 다른 모든 아티팩트들, 악세사리의 형태를 한것들이 발광하고 진동하고, 소리를 내면서 그 힘을 바깥으로 뽑아내는 것처럼 에메랄드 구체 역시 힘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녹림원綠林圓’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티팩트였다. 일시적으로 담을 수 있는 MP의 양은 100,000이다. 짐작키 어려운 수준의 MP였다. 한 명의 완성된 마스터 마기아라 할 지라도 다루어내기 어려운 단위였다. 고수급에서도 초반부를 지나는 이들이라면 총 MP량이 그보다 적은 자들이 훨씬 많으리라.


릿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MP는 성장을 거듭해서 40,000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레벨 100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거기에 여러가지 스킬과, 아티팩트들을 이용해 의지력을 일시적으로 증대시키고 다룰 수 있는 MP의 양을 늘렸다.

녹림원을 제외하고서 당장 전투 중에 다룰 수 있는 MP의 총량은 55,000. 거기에 의지력도 그에 맞추어 높였기에 5,000에서 6,000 정도는 무리없이 다룰 수 있었다. 한 번의 스킬로는 말이다.


중첩 스킬은 그런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MP의 양적 한계를 깨주는 고급기술이다. 초상술사들에게 있어서는, 검기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냐 역시 하고는 있지만 ‘위검기’로 보였던 그 경지보다 훨씬 아래의 것이었다.

무식하게 기력을 쏟아부어 검날의 위로 칼날을 만들어낸다고 모두 검기가 아니듯이 말이다. 그가 사용하는 중첩 스킬은 어설펐고,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다. MP를 병사들에 비유했을 때 제대로 군사 작전에 참여해서 성과를 내는 놈들이 있겠지만, 탈영하는 놈들도 상당수가 되는 당나라 군대 꼴이었다.


반면 릿샤의 MP들은 질서정연하다. 한 번 스킬로 발현한 MP는 정해진 명령을 계속 이행한다. 지속류의 스킬들이 있는 것이다. 초상술은 기력술이 그러하듯 물질적으로 고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구조가 훨씬 헐겁기도 했고. 그러나 긴 기간 동안 효과를 발휘하는 초상술은 늘 다양하게 존재를 한다.

그런 지속류 스킬들을 정밀 기계를 설계하듯 짜맞추어서, 각 효과가 다음 스킬의 보조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게 중첩 스킬이었다.


첫번째 스킬은 두번째 스킬을 위한 뼈대가 되고, 그 다음 것은 엔진이 되고, 하는 식이다. 한 개의 온전한 스킬을 부품으로 쓰니 총체적인 위력에 있어서 얼마나 발전이 있겠는가. 그 ‘계산식’의 복잡성 역시 아득하게 어려워지는 것만이 문제였다.


스킬들은 본디 다른 스킬의 부품이 되기 위해서 설계된 무엇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재료 스킬의 구성식을 완벽하게 이해를 한 뒤, 복합적 구동 원리에 대해서도 통달을 해야만 중첩 스킬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제냐의 경우에는 거진 감으로 때려 맞추는 식이었다. 무조건 MP에 MP를 더하고, 때려 박으면 위력이 늘어나겠지, 하는 식이다.


중첩 스킬을 제대로 사용해서 다량의 MP를 사용하면, 일반적인 MP로 낼 수 있는 현상보다 훨씬 거대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시너지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였다. 릿샤처럼 다양한 속성을 다룰 수 있는 원소술사들의 경우에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파괴력을 증대시키는 그러한 중첩술을 사용한다.


릿샤 역시 빙, 뇌, 풍의 세 가지 속성을 섞고 있었다. 사실 하고자 한다면 여기에 화속성의 술식 역시 추가할 수는 있었겠지만. 조금 더 구성식이 까다로워지고,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녀의 상상력이 늘 중요한 부분이었다. 어떤 컨셉의 이미지가 머리에서 잡히는가.

구성식도 구성식이지만, 그게 ‘그럴싸해 보이는가’는 아주 핵심적인 요소이다. 초상술사 스스로가 일단 납득이 되어야 하고, 또 쉬운 납득이어야만 한다. 오래도록 고찰하고 그 현상에 대해서 깊이 분석해야만 납득할 수 있다면, 허공에서 술식을 짜올릴 때 그만한 정신적 과부하가 걸린다.


결국 캐스팅의 시간이 늘어나고, 느린 템포의 초상술로 전투를 채워넣어야 하는 셈이다. 빠른 상상과 결단력. 계산식은 이미지적 상상과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연관이 깊은 두 요소다.


릿샤의 앞에 드러나고 있는 구체는 점차 거대해진다. 이미 릿샤의 몸통보다는 훨씬 더 거대했다. 그 지름만 하더라도, 호아킨의 키보다 조금 더 크다. 릿샤는 그것을 앞에 두고 있었다. 시야를 완벽하게 가리는 꼴이었지만 MP를 다루고 있음으로 자신의 바로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눈으로 굳이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거기에 기감술 역시 켜놓은 상태이므로, 먼 거리의 주변까지 관찰하고 있었고. 그녀는 조감도로 근방을 내려다보는 화면을, 자신의 시야의 절반 정도 차지하게끔 세팅해두었다. 그녀가 보는 화면은 그러하다. 그 외에 물리적으로 보는 시야가 절반의 절반.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MP들을 통해 받아들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반경 십 여 미터 정도의 정보가 다시 절반. 그렇게 2:1:1의 비율로 삼분할을 해서 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릿샤는 중첩 스킬을 거의 마무리해가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거렸다. 전음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녀로부터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아지랑이같은 것이 나와서 뻗는다. 흰 실과도 같았다. 그녀는 전음사, 전음을 전달하는 뱀이라고 부르는 형체가 미끄러져 내려가 새에 올라탄 동료들에게 붙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릿샤와 제냐가 소리치며 공격의 순서를 확실히 하고, 릿샤가 캐스팅을 시작한 지 1분이 되어가는 그 즈음이었다.


1분은 릿샤가 말을 한 시간이다. 다시 말해 제냐와 최태현이 자신들의 공격을 전부 준비한 순간이었다. 동굴 속으로 공격을 처박으려 하고 있었는데, 내부로부터 검은 용의 신음 소리가 들려와 잠깐 굳은 참이다.


릿샤의 전음사가 제냐와 최태현에게 닿았다. 한 번에 여러 명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역시 가능은 하다. 그러나 지금은 중첩 스킬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기에 의지력의 빈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릿샤가 허공에서 중얼거리는 말이, MP로 만들어진 실을 통해 제냐와 최태현의 귓전에 들렸다. 바로 근처에서 속삭이는듯, 집중해서 느껴보면 혹 머릿속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듯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미친. 검은 용이 지금 일어나려는 모양인데. 더럽게 운이 없어. 하지만 공격 준비를 다 마쳤으니까 또 상관은 없지. 제대로 보고, 처박아. 그 다음에 내게 들어간다. 그 뒤로는 그냥 얘기했던 대로 호아킨과 제냐가 들이박아서 알아서 하고,

나랑 태현이 계속 지원한다.]


화끈한 말이었다. 릿샤는 그런 소녀였다. 아니, 소녀같은 외모에 아가씨였지만. 붉은 머리가 거친 바람에 나부낀다. 한기를 품은 바람은 점차 덩치를 불려나갔다. 몇 초만에 그 지름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릿샤의 계산적인 조정에 의해 어느 순간 확장이 멈추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MP는 압축으로 인한 폭발적인 위력을 포기하게 된다. 릿샤는 최대의 위력을 날아 박게끔 하고 싶었다. 초상술사로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사실 그것이기도 하다.


화려한 파괴! 폭발!


성격파탄자는 아니었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거대한 오브젝트를 파괴하는 일에도 늘 흥미가 있던 그녀였다. 이곳이 단지 게임 속 세상이기에 말이다. 악업을 쌓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는 다소 재해를 일으키고 실수를 벌여도 괜찮으리라. 현실의 자연계와 달리 실수를 좀 반복해도 되는, 놀이터이자 연습장같은 곳이었다. 이곳, 시나리오 온라인 속 콘란드 대륙은 말이다.


작가의말

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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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172. 방류 23.11.29 17 2 12쪽
172 171. 괴물의 앞 23.11.25 21 2 22쪽
» 170. 용트림 23.11.25 18 2 11쪽
170 169. 번개와 폭풍, 형성중 23.11.24 22 2 22쪽
169 168. 캐스팅 23.11.24 16 2 19쪽
168 167. 사색 23.11.23 20 2 12쪽
167 166. 동굴 앞(3) 23.11.23 16 2 15쪽
166 165. 동굴 앞(2) 23.11.23 15 2 15쪽
165 164. 동굴 앞 23.11.22 17 2 14쪽
164 163. 데슈칸 심부 23.11.21 21 2 23쪽
163 162. 갈색 매 23.11.20 20 2 22쪽
162 161. 바구니 23.11.19 21 2 10쪽
161 160. 그와 그녀 23.11.19 19 2 18쪽
160 159. 의뢰(re)Quest 23.11.18 21 2 15쪽
159 158. 그녀, 라이엔 23.11.17 19 2 23쪽
158 157. 스킬러Skiller 23.11.16 25 3 15쪽
157 156. "음." 23.11.16 20 3 12쪽
156 155. 원탁 23.11.14 22 3 17쪽
155 154. 남중국 23.11.12 22 3 16쪽
154 153. 야욕 23.11.11 22 3 14쪽
153 152. 제국 특기特機 23.11.11 21 3 17쪽
152 151. 다시 만나, 담화 23.11.10 20 3 19쪽
151 150. 세르게이 알사드; 또라이 23.11.09 22 3 15쪽
150 149. 흑색장도 23.11.08 23 3 18쪽
149 148. 병실 23.11.08 21 3 14쪽
148 147. 내가 만나 본 고블린 중에 최고였죠 23.11.07 26 3 12쪽
147 146. 프린스 오브(10) 23.11.06 21 3 16쪽
146 145. 프린스 오브(9) 23.11.06 19 3 12쪽
145 144. "아, 그 놈 잘 있으려나?" 23.11.06 18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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