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2)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43화.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2)
“저거 완전 미친놈 아닙니까? 동화된 A급 게이트를 혼자 들어간다고요?”
“언론이랑 주변에서 막 띄워주니까 자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C급에는 C급인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어깨가 올라가도 너무 올라갔네.”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화의 헌터들이 비꼬아댔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들어가기 위해 준비 중이던 모든 헌터의 생각은 같았다.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에서도 파티는 필수였다.
그 어떤 헌터도 모든 부분에서 완벽할 수 없었다.
서로 서로의 약점을 채워주는 것이 파티의 유무.
게이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동화된 게이트 같은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게이트의 등급이 높을수록 배로 늘어난다.
그런데 동화된 A급 게이트에서 혼자라니?
그것도 C급 헌터가 혼자 들어가고 있으니 기가 찰 수밖에.
미쳤냐고 묻고 싶을 지경.
“그만 떠들고 들어갈 준비하자. 무슨 믿는 구석이 있겠지. 너희도 알잖아? C급이 형식적인 거.”
신우화의 말에 떠들던 헌터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겉으로만 C급이지 그간의 행보는 C급 헌터라고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바실리스크의 목을 단칼에 베어내고, 마기라는 새로운 힘을 사용하는 괴인들을 이겼다.
C급도 거의 1달도 안 되어 오른 거였으니까.
“우리나 신경 쓰자고. 물약은 얼마나 챙겼어?”
“최상급으로 50개, 상급으로 100개 챙겼습니다.”
“오케이. 준비됐지?”
“옙.”
“들어가자.”
그사이 준비를 마친 우화가 새하얀 눈으로 가득한 동화된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
“누가 내 욕하나? 뭐가 이렇게 간지러워. 후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발목까지 쌓인 눈이 뽀드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밟혔다.
매연과 미세먼지가 섞여 만들어진 서울의 눈과 달리 마력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눈답게 밟히는 질감 자체가 다르다.
A급 게이트에서 나온 마력이라 더욱 그랬다.
그만큼 온몸을 쑤시는 추위와 한기가 느껴졌지만, 따뜻하게 입고 왔기에 하루 내리 있어도 문제는 없을 거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추위 따위가 아니다.
“하여튼 더럽게 불친절하네. 위치도 내가 찾으라는 말이지?”
잊혀진 무구가 발견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끝으로 다른 반응은 없었다.
위치를 알려주는 게 정상일 텐데.
뭐 이제는 익숙해진 불친절함이었다.
정확히 위치까지 알려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쭉 둘러봐야겠다.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라면 겉으로만 봐도 티가 나겠지.
생각을 이어나가며 어느 정도 동화된 게이트 안에 들어갔을 때였다.
“구어!”
“구어!”
눈으로 쌓인 나무 사이에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나타나는 몬스터.
새하얀 털로 뒤덮여 있는 몸에 사람의 2배만 한 덩치, 두 발을 땅에 짚은 설인이었다.
정확히 2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즉시 검을 빼 들어 휘두르려고 했지만, A급 몬스터는 A급이다.
“구어어!”
“구어어!”
“감각 좋네.”
살의라도 느꼈는지 휘두르기도 전에 나를 봤다.
어금니 사이 송곳니를 들이대며 달려들었다.
쾅! 쾅!
철 기둥 같은 팔을 휘두를 때마다 바닥이 울리며 눈이 휘날린다.
단 한 번이라도 허용한다면 어디 하나 작살 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안 닿으면 그만이다.
내 구역에 올 때마다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내 기회로 만들어내 설인의 단단한 팔을 마력체를 둘러 통째로 잘라버렸다.
“그아아아....!”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벗 삼아 놈의 안으로 파고들어 그대로 목을 베어버린다.
분수처럼 피어오른 선혈이 새하얀 눈을 붉게 적셨다.
목과 분리된 몸이 떨어지며 완전한 죽음을 알렸다.
“구워!!”
동료의 죽음에 옆에 있던 설인이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으면서 정확도는 떨어졌지만, 공격력은 2배는 강해진 듯하다.
내게는 오히려 이득이었다.
가볍게 공격들을 흘려내며 벌린 입을 향해 통째로 검을 휘둘렀다.
스걱!
깔끔한 절삭음과 함께 머리가 반으로 분리되며 바닥에 떨어졌다.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몸을 정리했다.
“확실히 잡몹이더라도 A급 게이트라 그런지 빡세네.”
머리를 베어낸 감각을 손에서 다시 재생했다.
마스터한 기본기에 마력체까지 씌웠음에도 검격 자체가 뻑뻑하다.
2마리만 더 있었다면 스킬 몇 개를 써야 했을 정도.
“그냥 우화랑 같이 갈 걸 그랬나.”
살짝 후회되다가 금방 털어냈다.
괜히 같이 있다가 발견하게 되면 골치 아파진다.
헌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이템이다.
좋은 아이템은 능력을 2배 이상 상승시켜주기도 하고, 자신한테 맞지 않더라도 팔면 목돈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발견하면 아무리 잘해도 무조건 나눠야겠지.
그건 안 된다.
속도를 올렸다.
목표는 보스 몬스터.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 정도 된다면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
그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하다.
“설인 이것들은 쫄기라도 했나 왜 갑자기 안 나와?”
대놓고 걸어 다니는 데도 설인이 달려들기는커녕,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외 몬스터들도 마찬가지.
눈만 조금씩 내릴 뿐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의문은 길지 않았다.
[‘망자들의 왕, 가로크’가 ‘설인의 왕국(A)’을 지배합니다.]
[모든 망자의 신체 능력이 10% 상승합니다.]
[모든 망자의 공격력이 2배 상승합니다.]
[모든 망자가 상대에게 공격에 성공할 시에 랜덤으로 상태 이상 효가가 부여됩니다.]
“망자들의 왕, 가로크? 이놈 때문인가?”
또 이상 현상이다.
몬스터 체인지 현상으로 말 그대로다.
원래 있던 몬스터를 밀어내고 새로운 몬스터가 들어와 게이트를 지배한다.
보통은 낮은 등급에서만 발생하는데 의외다.
몬스터가 바뀐 것 말고는 딱히 상관없기에 가려다가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에 멈칫했다.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 ‘그란툴 버스크(SS-)’를 ‘망자들의 왕, 가로크’의 호위 기사 ‘아르카’가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무구를 습득하십시오.]
[한 존재로 인해서 강화되었으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웬일로 친절하게 알려주네.”
거의 처음으로 하나하나 제대로 알려줬다.
위치까지 알려주면 좋겠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그것보다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가 걸렸다.
“‘한 존재로 인해서 강화되었으니’?”
누군가 개입한 듯한데 ‘한 존재’가 무엇인지 대강 예상이 된다.
“마인이라고 했지?”
전 세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나타난 인류의 적.
마기라는 힘을 가진 경매장을 습격한 그 괴인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아직 예상이라 큰 걱정은 안 했다.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그러는 거라면 날 노리고 하는 거겠지만.
아니면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과 연관이 있거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붉은색.”
갑옷을 입은 스켈레톤이 다가오는데 존재하지 않은 눈 부분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인다.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특유의 역함에 마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연일 수도 있다.
이제 2번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가 떠오르는 순간 우연 따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냈다.
내가 그 정도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뭔가 연관이 있다는 거네.”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능력도 없는 날 괴물로 성장시켰으며 아공간 안은 온갖 보물로 가득했으니 욕심이 안 나면 이상하지.
소드마스터 아칸의 잊혀진 무구는 딱 봐도 함정 같았다.
돌아갈까 하다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으며 중압검을 사용했다.
달그.... 쾅!
묵직함 검격을 맞은 스켈레톤의 뼈가 해체되며 무너져내렸다.
“들어가 보지 뭐.”
나름의 자신감도 있었고, 어쩔 수 없었다.
[제한 시간 - 23 : 45 : 03]
하루 남짓으로 아마 보스 몬스터까지 가려면 지금 당장 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중후반쯤에 도착하면 체력이야 좀 딸리겠지만, 아공간 1차를 개방하면서 그런 것쯤은 의미가 없어졌다.
힘들면 아공간에 들어가서 편히 쉬다가 오면 되니까.
달그락. 달그락.
“그어어.”
“많이도 오네.”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듯 빠르게 몰려오는 망자들.
벼락의 검을 굳게 쥐며 휘둘렀다.
***
얼음이 청명한 빛을 내뿜는 얼음 동굴 안.
검은 로브를 눌러쓴 스켈레톤이 입을 쩍 벌리며 멍하니 두 손에 쥔 수정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분명히 목청이 없을 텐데 스켈레톤의 입에서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는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용케도 구했군.”
“그거 맞습니까?”
“그래. ‘영혼이 담긴 수정 구슬’. 질이 한 단계 낮은 게 아쉽기는 해도 여기서는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 여기는 방비가 잘 되어있어서 영혼을 모으는 게 힘들 테니. 고맙군.”
한참을 쓰다듬으며 품질이 확인이 끝난 스켈레톤이 얼굴이 아예 모자이크가 된 것처럼 가려진 여자를 향해 고마움을 표했다.
약간 성능이 딸리긴 해도 큰 상관은 없는 수준.
지금 중요한 건 이 아이템이 아니다.
“그럼 이제 원하는 게 뭔지를 좀 들어보지.”
“하실 마음이 드셨습니까?”
“내가 무슨 양아치인 줄 아나?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지. 자네도 그걸 원하기에 이걸 줬을 테고.”
인생에 공짜는 없다.
그도 영생을 얻는 대신에 ‘리치’라는 스켈레톤 몬스터가 되었으니까.
결국에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기까지.
이런 귀한 걸 얻었으니 웬만한 조건은 안 될 듯 보이지만, 조건은 의외로 간단했다.
“남자 하나를 죽여주십시오.”
죽음에 살고, 죽음에 죽는 자에게는 너무 간단한 조건.
하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다.
“고작 그거?”
“고작 그게 아닙니다. 이번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 소유자입니다.”
“....”
뒤에 들려오는 한마디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역대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을 가진 자는 전부 인류의....
“사양하지. 이것도 가져가라. 당장!”
“....”
그토록 조심하게 다루던 수정 구슬을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뿜어대는 고농도의 마력이 얼음 동굴 곳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숨을 쉬기만 해도 폐부가 찢어지는 기분.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곧바로 계획해둔 말들을 내뱉으며 몇 가지 선물을 전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얻은지 반 년도 안 됐으며 저희 또한 힘이 되어줄 겁니다. 이걸 받으시죠.”
“....?!”
손에 놓인 검붉은 구슬에 피어오르는 붉은 아지랑이, 반대편 손에는 영롱한 빛을 뿜어대는 검 한 자루도 있었다.
리치의 눈이 달라졌다.
마기 핵과 소드마스터 아칸의 검.
“설마, ‘그분’이?”
“예. 강림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수정 구슬을 잡을 때보다 몇 배는 조심스럽게 쥐더니 마기 핵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이 검붉은 연기를 뿜어대더니 뼈 안에 스며들어 옅은 붉은 빛을 띠었다.
공허했던 안구 쪽에 짙은 붉은색 안광이 번뜩였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