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아공간 개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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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아공간 개방(1)
“아으. 온몸이 아프네.”
내 정신을 일깨운 건 온몸을 두드리는 근육통이었다.
목은 쓰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바람 빠진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천장이었다.
코에는 연한 알코올 냄새가 풍겨오는 게 대략 어딘지 짐작이 갔다.
목까지 덮어진 이불을 치우고 힘겹게 일어나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습기가 가헐적으로 수증기를 뿜어댔고,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은은한 오렌지색 계열의 조명이 방을 은은하게 비췄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움이 잔뜩 묻어난 방.
바실리스크를 상대한 뒤에 향했던 VIP 병실이다.
긴장을 풀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잘 끝났나 보네.”
병실에는 나밖에 없는 1인 병실이라 아론과 이린아나가 걱정되긴 해도 이렇게 옮겨진 것 보면 별 탈 없이 잘 끝났겠지.
그보다 지금 걱정해야 할 건 그들이 아니다. 나지.
“부작용 장난 아니네.”
누운 상태로 두 팔로 몸을 감싸 쓸었다.
근육통은 둘째치고, 몸 안이 비빔밥처럼 섞어낸 듯 진탕이 따로 없었다.
방금 일어난 건 우연이었는지 몸의 근육 자체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마력은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겨우 눈,코,입만 깜빡일 수 있는 게 시체 그 자체다.
갑작스레 사용된 능력 때문이지만, 원망은 할 리 없었다.
그 능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황천길에서 저승사자와 짝짝 쿵 하고 있었을 테니까.
“‘역대 소드마스터 빙의’라고 했나?”
눈을 이용하여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와 상태창을 열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자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창 2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귀속)]
-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입니다. 아칸이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저 아공간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만 해도 자연스레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으며 아공간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소드마스터 아칸의 유산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소드마스터 빙의] (1달에 1번 역대 소드마스터를 몸에 총 1분 빙의가 가능해집니다.)
[소드마스터 빙의]
(거악(巨嶽)의 소드마스터 : 빙의 가능)
(검신 : 빙의 가능)
...
...
“오호. 그래서 그런 힘을 낼 수 있었던 거구나.”
그제야 그 능력이 정확히 뭔지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소드마스터 빙의’다.
역대 소드마스터들의 능력을 내 몸에 빙의할 수 있는 능력.
고작 1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사용했다시피 그런 건 상관없었다.
1분이면 상대방을 흔적도 없애는 데 충분했으니까.
고작 검격 몇 번 휘두르는 그 위력을 버텨낼 수 있는 건 검제와 같은 헌터 랭킹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만 겨우 가능하겠지.
물론 이것도 만능은 아니었다.
온몸이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부작용.
거기다 사기적인 능력이라는 걸 소드마스터의 아공간도 아는지 달에 1번만 사용할 수 있는 듯하다.
내가 빙의한 소드마스터를 보니 1년 동안 사용 못 하고.
“이런 페널티를 감안 해도 말이 안 되긴 하네.”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페널티다.
사용 후 3일 정도 못 일어나도 상관없을 정도.
아, 그건 아닌가.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그놈들은 도대체 뭐지? 각성자라고 하기에는.... 애초에 각성자가 맞는 건가?”
경매장을 습격한 총 10명의 괴인.
그중 내가 상대한 두 놈을 포함해 이린아나와 아론이 상대했던 두 놈까지 총 4명은 각성자라고 하기에는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각성자 자체가 아니라, 약물 같은 걸 복용해서 강해진 느낌이랄까?
보통 스킬, 이능력은 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모든 부분이 완벽하지 않다.
회복 스킬을 사용한다면 속도가 느려진다와 같은 작은 페널티라도 받는데 놈들은 그런 게 없었다.
지치지 않는 것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도. 특히나 잘린 몸통이 붙었을 때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뭐 저딴 스킬과 이능력이 있나 싶었지.
“에라이, 모르겠다.”
생각해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지워냈다.
헌터 업계에서 몇 년간 일 했던 나조차도 처음 보는 존재다.
뒤처리와 나머지 놈들에 관한 정보는 헌터 협회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난 몸이 회복될 때까지 편히 쉬고 있으면 된다.
그대로 눈을 감고 한숨 더 자려고 하자 병실 문이 조용하게 열린다.
열린 틈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려 들어왔다.
“누님. 오늘 밥 뭐 먹을 거예요?”
“선생님이 우리 때문에 다치셨는데 넌 밥이 넘어가냐?”
“이번에 한국 식당을 여신 중 한 분께서 유명한 자원계 각성자이신데 ‘마력 텃밭’이라는 이능력으로 기른 채소로 만들어낸 ‘오색 나물 비빔밥’이 있거든요. 정말 안 드실 거예요?”
“....거기 어딘데?”
목소리만 듣고도 이린아나와 아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을 뜨니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밴드 몇 개와 깁스만 한곳에 감겨 있는 게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닌 듯하다.
“압구정에 있어요. 형님이랑은 나중에 가고 오늘은 일단 거기 먹으러 가죠.”
“흐음. 그래. 근데 거기 줄을 얼마나 서.... 서, 선생님!”
떠들며 내 침대에 근접해지더니 정확히 이린아나와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이라고요? 형님 여기 계시는데 왜 부르시는.... 어?! 형님!”
아론도 날 발견했는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난 그저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
아론과 이린아나는 보는 대로 크게 다치지 않았다.
뼈가 부러진 게 고작으로 어떻게든 승리할 수 있었다.
당분간은 절대적인 휴식을 취해야겠지만.
어쨌든 상황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간 쌓은 능력 덕분인지 내가 가장 많이 다쳤어도 완전히 회복하는 데까지 하루면 충분했다.
하루도 아니다. 아마 회복만 전념한 건 12시간이었을 거다.
새삼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스템 메시지 스크롤을 더 내리자 ‘마력 전환(S)’이라는 스킬까지 얻었다.
마력을 원하는 형태로 바꾸는 스킬인데 빙의하면 얻는 듯하다.
물론 바로 갈 수는 없었다.
의사가 제대로 몸이 치료됐는지 몇 가지 검사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하루 더 쉬라는 이유로 하루를 더 병실에 있어야만 했다.
아까운 돈만 날릴 수 있기에 거절하려 했지만, 헌터 협회에서 지원해준다니 안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2일이 지난 후, 드디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문을 열어젖히고 곧장 침대로 몸을 뛰어들었다.
“어우. 이거지. 이 감각을 원했다고!”
몸을 감싸는 이불의 감각에 온몸이 전율한다.
역시 집이 최고다.
VIP 병실이라도 밖이니 여간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어야지.
난 이게 맞다.
“일단 씻자. 병원에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햇네.”
잠은 잠시 뒤로하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2일 동안 병실에서 이것저것 검사받고, 쉬느라 샤워란 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매일 2번 이상 샤워를 하는데 2일 동안 못하니 어찌나 찝찝한지.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들어갔다.
물을 틀자 따뜻한 물이 온몸을 기분 좋게 훑었다.
“으어.... 좋다.”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내 집 침대에 누웠을 때와는 이로 말할 수 없는 쾌감이다.
샴푸, 폼클렌징, 바디워시 순으로 깔끔하게 몸을 씻고나서 물기를 닦아내며 샤워실을 나왔다.
“개운하다. 아오. 진짜 경매장 갔다가 이게 뭔 개고생이냐. 습격한 놈들이 마인이라고 했나?”
탄식을 늘어놓으며 중얼거렸다.
병원에 있는 2일 동안 습격한 괴인들이 누군지 들을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전 세계에서 기승하고 있는 테러 집단으로 마력과는 또 다른 힘인 ‘마기’를 사용하는 놈들이란다.
각성자도 아닌, 이레귤러의 존재들.
어디서 온 건지 헌터 협회에서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이다.
어쩐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너무 많았다.
그런 스킬이 있었으면 진작에 알려졌을 터.
“마인이라.... 어? 그러고 보니.”
놈들을 생각하다가 헌터 게이트 심사 때 있었던 사고가 생각났다.
거미의 눈 전부 붉게 변하고 마력이라기에는 난폭한 힘. 협회에서 말한 마기가 분명했다.
그 비정상적인 수도 말이 안 되었으니까.
“안 그래도 게이트랑 몬스터 때문에 위험했는데 더 위험해졌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원.
뭐 어떻게든 될 거다.
50년 전 게이트와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도 모두가 입을 모아 ‘멸망이 도래했다’ 뭐 어쩐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더욱 발전하여 이 상태가 되었으니까.
마인은 적당히 신경 쓰기로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깔끔하게 말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늦은 밤.
내일부터 하기로 하고 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시작해볼까나.”
소드마스터의 아공간을 식탁 위에 둔 채로 새로운 퀘스트를 확인했다.
잔 통증 하나 없이 깔끔하게 회복된 몸.
오히려 며칠 동안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해 근질거려 미칠 노릇이다.
코앞에 시스템 메시지들과 함께 상태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퀘스트가 정해집니다.]
[사용자의 능력을 파악합니다.]
[사용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걸 확인했습니다.]
[소드마스터 아칸의 ‘비기’ 하나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 1차가 개방됩니다.]
[퀘스트, ‘발톱 때를 이겨봐라(1)’가 부여됩니다.]
[퀘스트, ‘발톱 때를 이겨봐라(1)’의 도우미인 임시 스승이 정해집니다.]
[취검술(醉劍術)의 달인 ‘이화린’입니다.]
<발톱 때를 이겨봐라(1)>
당신은 머저리 같은 능력치와 능력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검사의 자질을 인정받는 궤도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한 명의 검사가 되었으나, 여전히 당신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스킬과 높은 능력치만으로 상대를 유린하는 검린이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자격을 시험하며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 1차를 개방하십시오!
목표 - (1.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 1차 개방)
목표 - (2. 1%의 소드마스터 아칸 상대로 승리)
보상* (소드마스터 아칸의 아공간 개방된 1차의 모든 것. 소드마스터 아칸의 비기)
“오? 검술 배우는 게 아니네?”
천천히 읽어나가며 미소가 지어졌다.
그 개고생을 안 한다는 말만으로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
검술은 분명히 엄청난 위력과 함께 좋은 능력을 주지만, 얻는 방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머리고 몸이고 온갖 게 다 아팠으니까.
뭐 이것도 난이도야 비슷하겠지만,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그것만으로 활력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번이 두 번째 스승인가? 취검술(醉劍術)? 이건 무슨 검술이지?”
세세히 살펴보며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오. 나온다.”
소드마스터 아공간인 보따리가 침대 위에서 빛을 뿜으며 벌려졌다.
이미 한 번 겪은 바로 임시 스승이 나온다는 신호였다.
잠시 알아내는 건 뒤로 소드마스터 아공간에 시선을 두었다.
곧이어 눈을 앗아가는 새하얀 빛을 뿜어대며 임시 스승으로 보이는 인영이 톡 하고 튀어나왔다.
반가움도 잠시.
“우아! 안 된다!”
발음 샌 목소리 사이 두 모습이 보였다.
여성인 듯 보이는데 더 둘러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나온 맷돼지 하나가.
쿠쾅!
콰직!
“....”
침실 주변을 하나씩 개박살 내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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