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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 마음속에 영원히 피어날

전생 후 EX급 망나니로 살아남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시우림
작품등록일 :
2024.06.03 02:22
최근연재일 :
2024.06.29 23:5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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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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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글자수 :
175,106

작성
24.06.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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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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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비급을 습득하였습니다.】 (5)

DUMMY

17화. 【비급을 습득하였습니다.】



장막처럼 드리운 어둠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든다.


나는 손목을 움직여 칼날을 뒤틀었다. 칼날에 반사된 달빛이 어둠 속으로 향했다.


“감이 좋은 소년이로군.”


반사된 달빛에 비친 얼굴 위로 기꺼운 웃음이 서린다. 마치 손자의 재롱을 보는 노인의 미소다.


“······당신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는 얼굴이었던 탓이다.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낮에 만났던 노인이다.

정확히는 예전에 장신구를 사면서 만났고, 오늘 또 기운이 좋다며 도를 아냐고 묻기 전까지 갔던. 제길. 그냥 모른다고 할 걸 그랬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노인만 왔을까? 혹시 우리 장원이 점거당했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바깥이 조용할 리 없으니. 그럼 대체 뭐지? 설마 나를 노리고?


“여긴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혹시 방수도 있을까 싶어서.


“자네가 나중에 보자고 하지 않았나? 나야 조용히 자네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으니 지금 온 거고.”

“이 야밤에 단순히 물어볼 것이 있어서 담을 넘으셨다라······ 누가 봐도 수상한 건 아시죠?”


노인의 입매가 호선을 그린다. 내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다.

그리고 역시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내공이 생겼더군. 내단을 섭취한 겐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을 회피한 것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내공이 생긴 건 그 누구도 모른다. 내단을 섭취한다는 것도 아몽이만 알고 있으니까.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혹시?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노인장도 무림인입니까?”

“무림(武林)? 그건 또 뭔가?”

“······?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 사는 세계를 보고 무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허허. 최근에 생긴 말인가? 보다시피 나는 늙은이라 신조어엔 약하다네.”


무림을······ 모른다고?


잠깐······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 와서 무림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긴 하다. 무공, 무인, 내단과 같은 무협소설 속 단어는 들어봤어도.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초에 무공을 익힌 자들을 무인이라고만 했지, 무림인이라고 한 적도 없었다.


‘무림은 없는데 무공과 내공은 있는 세계관이라는 건가?’


그런데 또 몬스터는 있고?


‘젠장. 뭐 이런 막장 세계관이 다 있어?’


그때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자네의 내공을 알았는지 의아해할 필요는 없네. 자네도 좀 더 무공을 익힌다면 상대의 내공이나 무공수준을 느낄 수 있을 테니. 그래. 세간에서 말하는 상급무인쯤 된다면 말일세.”


그 말은 노인이 이미 그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말로 번역하자면, 그러니 헛짓거리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다.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하니 말이다.


“그게 저를 찾아온 이유라는 겁니까?”


왠지 자존심이 상해 퉁명스럽게 말했는데, 노인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유 중 하나지. 자네처럼 무공을 익히지 않고 내공을 그 정도까지 쌓는 자는 본 적 없으니. 심지어 겨우 며칠 사이에 말일세. 대체 뭘 한 겐가?”


나는 표정이 굳었다. 노인의 수준이 내가 조금 전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정확히 말했다. 내가 무공을 익히지 않고 내공을 쌓았다고.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무공을 익혔군’이라고 하지 않고, ‘내공이 생겼더군’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내가 무공을 익히지 않고 내공만 무식하게 모았다는 걸 알아챈 거다. 그 복잡한 저잣거리에서 말이다.


젠장. 이제 갑을이 확실히 정해졌다.


나는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내단을 섭취했습니다.”

“정말 그게 전부인가?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이네.”


노인의 기세가 흉험해졌다. 언제나 호선을 그리고 있던 입매는 어느샌가 근엄하게 다물어졌다.


살갗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살기가 아니다. 언젠가 들었던 기를 유형화시키는 단계다. 마음만 먹으면 기운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의형살인(意形殺人)의 경지다.


주르륵.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어느새 축축해진 옷가지가 몸에 달라붙었다.


“······전부, 입니다.”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잇새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함께 새어 나왔다.


노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꿀릴 것 없다. 사실이니까. 노인 역시 나를 해체할 듯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했다.


점점 호흡이 가빠진다. 어느 순간부터 시야 주변이 서서히 흑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대로 의식이 날아가나 싶은 그 순간······.


“진짜로군.”


노인의 근엄한 입매가 스르륵 말려 올라갔다.


한순간에 기세가 가라앉았다. 살갗을 난도질한 듯 예리한 기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전력 질주를 하고 난 뒤처럼 쿵쾅거리는 소리가 내 귀로 들려왔다.


오랫동안 정체됐던 혈류가 한꺼번에 이동하며 핑하고 현기증이 돌았다. 너무나 강대한 기운으로 고장이 났던 신체가 뒤늦게 경고를 보내는 거다.


나는 흔들리는 시선을 애써 다잡으며 말했다.


“······저야말로, 궁금하군요. 노인장이 왜 이러시는지.”


이젠 안다. 눈앞의 노인이 도를 아냐고 물어보는 사이비 무리가 아니라는 걸.


이 노인은······ 괴물이다. 내가 상상도 못 할 어떤 아득한 경지에 있는 고수다.


그랬기에 오히려 궁금해졌다. 대체 내게 왜 이러는지. 내가 내공을 가졌다는 이유가 이리 협박과 위협을 받을 만한 일이었던가?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짧게 설명하겠네. 나는 자네가 마도(魔道)의 비법을 익히지 않았나 의심했다네. 섭리에 어긋난 그들의 술법이라면 자네의 내공이 설명될 테니.”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사람의 생기를 흡정하는데 문제가 없겠나?”

“······사람의 생기? 설마?”

“그래. 사람을 죽여 그 백(魄)을 내공으로 흡수한다네. 자네 정도의 내공을 모으려면 적어도 수백 명은 죽여야 할 거야.”

“······!”

“이제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며칠 만에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로 나를 의심했다니.


기분은 나쁘지만, 이해가 갔다. 나도 전생에서 비슷한 짓을 했던 놈들을 찾아다니며 죽였던 적이 있었으니까.


노인이 싱긋 웃었다.


“그래도 아니라니 다행이로군.”

“믿으시는 겁니까? 제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괜히 심통이나 퉁명스럽게 말했는데.


“그거 아나? 사람은 말과 행동, 눈빛까지도 속일 수 있지만, 기(氣)는 속일 수 없다네. 자네의 기운이 정명하여 흔들리지 않으니 믿을 수밖에.”


노인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웃음소리까지 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노인이 ‘이 마도의 종자놈! 죽어라!’라고 외치며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고 해도 나는 막지 못했을 거다. 단순히 기세를 마주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이리 떨릴 정도니.


그때 노인이 탁상 의자를 꺼내 앉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른 얘기를 해보지. 이리와 앉게.”

“······무엇을 말입니까?”


뽑아놨던 소검을 집어넣고 노인과 마주 앉았다. 어쩌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저 노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군. 그냥 죽게.’라고 말하며 죽여도 반항조차 어려웠으니.


마주 앉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불쑥 물었다.


“그 사이에 사람을 몇이나 죽인 겐가?”

“······!”



* * *



사레가 들릴뻔했다.


노인은 단언하듯 말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아마 방씨가문에서의 일을 말함일 것이다.


‘소문이 퍼진 건가?’


그럴 리 없다. 현령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그걸 감히 떠들 자들은 최소한 이 상덕땅에는 없다.


물론 막아야 할 입이 한둘이 아니라 언제까지 막을 순 없겠지만, 그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모를 수가 없지. 지금 자네 어깨에 망자가 몇이나 매달려있는지 아나?”


망자? 그러니까······ 귀신?


나는 흠칫 놀라 어깨를 털었다.


그런데 노인이 끌끌거리며 소리내어 웃었다.


“농일세. 안타깝게도 내가 사령(使靈) 쪽은 재주가 없어서.”

“······.”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보자 노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대신 기(氣)는 볼 줄 알지. 정(精)과 신(神)을 잇는 기는 변화에 민감하다네. 그리고 한번 물들면 변하지 않지. 자네의 기운은 명백히 사람을 죽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일세. 그것도 한둘이 아니지.”

“아······.”


그래서?


“그래서 자네를 의심했던 거라네. 며칠 만에 갑자기 생긴 내공. 사람을 여럿 죽인 기운. 이해되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정황상 증거는 확실하니까.


“그럼 이야기를 들어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 * *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처음부터 시작했다.


누군가에 의해 동정호에 빠졌고, 죽을 뻔했다. 나를 암살하려는 자를 찾아 돌아다녔고, 그 중간에 노인을 만나 장신구를 샀고, 암살 배후인 방씨가문을 찾아가서 한바탕 싸웠다는 이야기까지.


노인은 흥미롭게 내 이야기를 듣다가 간혹 고개를 갸웃하더니,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라도 한 듯 표정이 굳어갔다.


“······그러니까 나를 만나고 다음 날 방씨가문에 홀로 갔단 말인가? 거기서 처음으로 살인을 했고?”

“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었으면 제가 죽었을 테니까요.”


나는 혹시라도 노인이 이상한 거로 트집을 잡을까 봐 미리 선수쳤다.


“그것 때문에 물은 게 아닐세. 자네의 복수행에 힘없는 백성들이 피를 흘린 게 아니지 않나.”


짧게 고개를 젓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자네의 내단 섭취 시기라네. 자네 말에 따르면 방씨가문에서 일이 있고 난 이후에 내단을 섭취했다는 소리지 않은가?”

“맞습니다만······?”


그게 왜 궁금한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자, 노인의 얼굴엔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자네는 분명 내공이 없었네. 그런데 그 몸으로 방씨가문의 무인들을 상대했다고?”

“다행히 호신술을 조금 배워서······”

“허? 허허······ 내공도 없는 몸으로 펼친 호신술로 무인을 상대해? 그걸 믿으란······ 허? 사실이로군?”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결론을 내리는 노인을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볼을 긁적였다.


하긴 내가 노인 입장이라도 믿기 어려웠을 거다. 아니, 미친놈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노인도 기를 통해 내 말이 진실인지 파악한 모양이고.


물론 이 모든 건 상태창과 시스템보정 덕분이다. 이게 없었더라면 당연히 불가능했겠지.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걸 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을 거다.


‘노인장의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도 참과 거짓을 알아내는 정도다. 애초에 시스템의 존재를 모른다면 비슷한 질문도 생각하지 못할 테지.’


이게 내가 딱히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입을 닫고 있는 이유였다. 어설프게 정보를 노출했다간, 저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발휘될 테니.


내가 먼저 꺼내지 않는 한, 이 세계에서 시스템의 존재를 떠올릴 존재는 없을 거다.


그때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던 노인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물었다.


“자네. 내게서 무공을 배워볼 생각 없나?”

“······!”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무공을? 이 무서운 노인네에게 말인가?


밤늦게 몰래 침소에 찾아와 수틀리면 나를 죽이려던 이 노인에게?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으론 어딘가 꼬여있는 게 확실한 이 노인네에게? 무공을?


‘이 노인네가 나를 뭐로 보고!’


나는 탁상을 걷어차듯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노인 앞에 넙죽 엎드렸다.


“스승님 절받으십시오.”


운이 좋군.



* * *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여암(呂岩)이라는 사람이며, 호는 순양(純陽)일세. 순양자라고 부르면 된다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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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깽값 (2) 24.06.06 993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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