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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 마음속에 영원히 피어날

전생 후 EX급 망나니로 살아남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시우림
작품등록일 :
2024.06.03 02:22
최근연재일 :
2024.06.29 23:5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9,723
추천수 :
382
글자수 :
175,106

작성
24.06.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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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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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가 아니라, 무협세계로.

DUMMY

3화. ······가 아니라, 무협세계로.



거침없이 장원을 나섰다.

옆에 달라붙은 아몽이 끊임없이 조잘거렸다.


“도련님. 진짜 가실 겁니까? 진짜요?”

“내가 헛소리나 할 것처럼 보이더냐?”

“네······ 니요? 당연히 진심이겠죠!”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녀석이 내 눈빛을 발견하곤 다급히 말을 바꿨다.


“그,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전해 듣기로 큰일을 겪은 곳에 가면 충격으로 쓰러지거나,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는데······.”

“그래서 가는 것이다.”

“에······?”


나는 내가 죽다 살아난 걸 잊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었다’라는 게 맞겠지. 내가 죽은 유성진 몸에 빙의한 거니까.


처음 전생했을 땐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된 이후부터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대체 이놈은 왜 동정호에 빠져 죽었을까?’


나는······ 그러니까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유성진은 상덕을 지배하는 호족가문 장자다.


즉, 이 동네에선 무소불휘의 힘을 가진 천룡인 금수저라는 뜻이다.


그런데 동정호에 빠져 죽어? 이 한겨울에 수영하려고 뛰어들진 않았을 테고.


“혹시 내가 겨울 수영을 즐겨했느냐?”

“수영······이요? 도련님은 물을 싫어하시잖아요? 한여름에도 잘 씻지도 않으시는······ 아하하! 무, 물론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으시죠! 에에!”


으음. 더러운 놈이었군.


아무튼, 아몽의 말을 미루어 봤을 때 유성진이 제 발로 동정호에 뛰어들었을 리는 없다는 거다.


‘암살이다.’


이건 추측이었지만, 확신에 가까웠다. 만약 몸에 칼자국이라도 있었더라면 더 확실했겠지만, 그랬더라면 나도 빙의되자마자 죽었겠지.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놈을 찾는다.’


한번 나를 죽이려 했던 놈이, 두 번이라고 못하겠는가? 나는 등 뒤에 칼을 놓는 취미는 없다.


찾는다. 그리고······


‘죽인다.’


간단했다.



* * *



동정호에 도착해 내가 죽었다던 곳으로 향했다.

갈대와도 같은 수초가 허리까지 자란 뭍가였다. 잔물결이 잔잔히 출렁인다. 뒤로 보이는 자그마한 섬 때문인지 유속이 빨라지는 구간이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도련님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저도 찾지 못했을 겁니다.”


그 당시 나를 물속에서 건져낸 것은 아몽이었다.


“어떻게 나를 바로 찾았지?”


다만 의아한 건, 내가 물속에 가라앉고 일다경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른 나를 아몽이 바로 찾아냈다는 거다.


동정호가 이름만 호수지, 반대편은 수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솔직히 작은 바다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한낮의 햇살이 수면에 반사되어 눈이 따가울 정도로 눈부시다.

대체 어떻게 바로 찾아낸 걸까?


‘혹시 이 녀석도 한패인가?’


가능성이 없진 않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서 나를 건져냈을 수도 있다. 물속에서 일다경이나 숨을 안 쉬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그런데.


“잊으셨습니까? 저를 비롯한 시종들이 탄 나룻배가 도련님들 배를 뒤따르지 않았습니까?”

“······배?”


잠깐만. 그러니까 내가 배를 타고 있었다고?


“네. 도련님 친우들과 뱃놀이를 하고 계셔서······ 저희가 있으면 흥이 깨지니 항상 멀찌감치에서 따라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랬었지.”


이제야 사건의 윤곽이 잡힌다. 어떻게 동정호에 빠져 죽었나 했더니 배에 타고 있었나 보군.


그나저나 참 팔자 좋은 놈이다. 대낮부터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니. 진짜 도련님이란 호칭에 걸맞게 사는 놈이었다.


“그럼 나는 뱃놀이를 즐기다가 멍청하게 물에 빠졌단 말이로군?”

“그, 그럴 겁니다.”


아몽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대낮부터 뱃놀이를 즐기다가 물에 빠져 뒈질뻔한 놈만큼 한심한 놈은 없었으니까.


‘그래. 어지간히 한심하지 않은 이상 물에 빠지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빠졌다 하더라도 죽진 않는다.’


그런데 이 몸의 전 주인은 그 어려운 걸 전부 해냈습니다!


‘하지만 이상해. 이놈은 망나니일망정, 머저리까진 아니다.’


오히려 시비들이 속닥거리는 걸 엿들은바, 어렸을 적엔 총명해 글선생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고 한다. 어서 빨리 소과(小科)를 준비해 조정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아침식사에서 글공부 얘기를 꺼낸 것도 이러한 과거 때문이다. 우리 애가 어렸을 땐 똑똑했어요!의 진짜 주인공이었으니. 물론 그건 잠깐이고, 이후에 망나니처럼 산 모양이지만.


‘그럼 망나니답게 술을 잔뜩 처먹고 빠진 걸까?’


알 수 없다. 어쩌면 한순간의 객기로 진짜 수영을 하겠다며 뛰어들었을 수도 있고, 발을 헛디뎠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떤 놈이 밀어버렸거나.’


나는 이걸 가장 의심했다.


그게 아니라면 친우라는 놈들이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도 코빼기도 안 비출 이유가 없었다. 오늘 아몽에게 이 이야기를 안 들었더라면, 친구도 없는 히키코모리 망나니놈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이 결정됐다.


배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내는 거다. 그리고 그걸 알아내려면······.


“그 친우라는 녀석들을 만나봐야겠군.”

“네?”

“아몽아. 그때 나와 뱃놀이를 했던 녀석 중에서 이곳과 가장 가까이 사는 놈이 누구냐?”

“어······ 양가장의 유원 도련님이신데······”

“거기로 가야겠다.”

“에? 지금요?”

“그래. 지금 당장.”


대체 어떤 놈들인지 얼굴이나 봐야겠으니.



* * *



동정호 변을 걸었다.

물질하는 어부, 좌판을 깔고 생선을 파는 여인들, 그리고 비린내로 진동하는 진창을 놀이터처럼 뛰노는 아이들까지.


모두 전생에선 수십 년 전에 사라졌던 풍경이다.


‘내가 다른 세계로 전생하긴 했구나.’


이런 아무것도 아닌 평화로운 일상을 느끼는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그저 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멸망 후기엔 꿈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광경들이었으니까. 악몽이나 안 꾸면 다행이었지.


“저······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던 아몽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뭐가 말이냐?”

“그······ 이런 곳은 싫어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몽의 표정만 봐도 이전의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난한 백성들. 비린내로 진동하는 좌판. 더러운 진창길. 시끄러운 아이들.


지방 호족의 장자로 떠받들어 살아온 놈에겐 경멸스러운 장소겠지.


“글쎄.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이젠 싫지 않구나.”


하지만 나에겐 이런 광경이 힐링이다.


하루하루를 지옥 같은 곳에서 버티며 살았다. 매일 죽음의 고삐를 붙잡아야 했다. 한순간의 망설임이 부상과 죽음으로 이어졌다.


큰 전투마다 동료를 잃었다. 붉은 꽃잎처럼 지던 그 잔재들을 딛고 악착같이 버텼다.


그럼에도 인류는 멸망을 향해 나아갔다.


하루하루 영혼이 메말라갔다. 내가 죽으면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는 부담감으로 이 악물며 버텨왔다.


‘그게 내 전생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게, 천박한 농담이 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물질하는 어부들의 고함에도, 생선을 파는 여인들의 활기찬 목소리에도, 진창을 뛰다니는 아이들의 방긋 웃는 얼굴에도, 세상의 겨울 끝자락이 스며들어 있다.


기다리면 봄이 온다는 희망으로.


‘희망이라니.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이던가.’


“······.”


아몽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내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런 밑밥을 까나 걱정하는 얼굴이다.


나는 피식 웃고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척하고 올리며 말했다.


“왜? 혹시 네가 싫은 게 아니냐?”

“아, 아닙니다! 저도 여기서 자랐는데요!”

“그래? 집이 이 근처더냐?”

“여기서 걸어서 한 시진쯤 걸립니다.”

“가깝네. 나중에 한 번 가보자.”

“······! 진심이십니까?”


아몽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데구르르 굴리는 눈동자엔 놀라움 반, 의심 반이 떠올라있었다.


“자꾸 되묻는 안 좋은 버릇이 있구나.”

“죄, 죄송합니다!”

“양친은 살아계시고?”

“네, 넵!”

“형제는?”

“어, 그게······”


그렇게 녀석의 호구 조사를 하며 걸어가던 그때.


“꺄아아악!”

“개똥이 아부지!”


강물에서 솟구친 무언가가 나룻배를 덮쳤다. 하얀 포말과 함께 나타난 시커먼 그것은 단숨에 나룻배 위에 올라섰다.


푸화화학!


새빨간 핏물이 비산한다. 한낮의 촉광 위로 후두둑하고 떨어져 내린다.


가슴이 뻥 뚫린 채 허우적대던 사내가 이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 가슴에서 단숨에 심장을 꺼낸 시커먼 무언가가 그대로 입가에 가져갔다.


와그작.


펄떡이는 심장이 핏물을 뿜어대며 놈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꺄아아악!”


사람 얼굴 대신 도룡뇽의 얼굴을 가진 놈이 심장을 우걱거리며 씹어먹었다. 진득한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린다.


햇빛을 받은 짙푸른 피부가 유난히 번들거렸다. 기형적으로 기다란 팔과 다리. 손끝에 달린 손톱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진짜 문자 그대로, ‘괴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놈을 알고 있었다.


‘프로그 맨?’


내가 살았던 멸망한 세계에서 지긋지긋하게 봤던 놈이었으니까.



* * *



‘대체 몬스터가 왜?’


나는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빙의한 이 세계는 고대 중국 배경의 세계다. 많이 양보해서 강을 뛰어넘고 산을 가르는 무협세계관까진 인정하겠다 이거다.


그런데 몬스터라니? 이 무슨 막장 세계관이라는 말인가?


“도련님! 도망치셔야 합니다!!”


아몽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잡아끌었다. 녀석도 눈동자가 심각하게 떨리는 게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성적으론 알고 있다. 전생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이름처럼 말하는 진짜 ‘도련님’이다.


하지만 도망치려는 이성과 달리 내 본능은 거세게 저항했다.


‘최소 서너 명은 더 죽는다.’


나는 인류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이었으며, 절대 뚫리지 말아야 할 방패였다.


내가 버티는 한,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


나는······ ‘구원자’니까.


‘······하지만 실패했지.’


결국, 최후의 전쟁에서 내가 죽음으로써 인류는 멸망을 맞이했다.


‘사실 어쩌면 그걸 바랐을지도 몰라.’


나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커다란 짐이었으니까. 너무나 무거워서 숨이 막혔으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치고 싶었다. 이 짐을, 굴레를,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내가 도망친다면, 그거야말로 인류의 가장 허무한 최후가 될 테니.


어쩌면 구원자의 탈을 썼던 나는······ 나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걸지도 몰랐다.


“도련님!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도망치셔야 해요!”


그래. 도망쳐야지.


전생과 달리 나는 인류 최후 보루도 아니었고, 희망도 아니었다.


그냥 뭣도 아닌 도련님이다. 이젠 나도 남들처럼 도망칠 수 있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도 없다.


‘······자유다.’


그렇게 발걸음을 떼는 그 순간.


“송이야!”

“송이 엄마! 어디가!”

“아악! 송이가! 송이가아아!”


혼란한 장내를 꿰뚫는 한 여인의 구슬픈 비명.


여인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어느새 어부의 심장을 감쪽같이 먹어치운 프로그맨이 뭍까지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으, 으아아앙! 엄마!”


사람들에 치여 넘어졌는지, 흙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저벅.


나는 멈춰선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그 방향은······ 구원을 향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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