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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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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6.19 19:30
연재수 :
263 회
조회수 :
30,760
추천수 :
315
글자수 :
3,681,922

작성
22.05.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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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추천
2
글자
22쪽

25

DUMMY

인적이 없는 산속.


인위적인 구조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깊은 산속에 덩그러니 조그마한 오두막이 있었다.


그런 이질적인 오두막에서 3명의 남녀가 나왔다.


맨 처음은 여자아이였다. 그 뒤를 성인 남성과 앞서 나온 여자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나왔다.


모두가 상당한 외모로, 그중에서 남성은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다운 생김새였다. 고급스러운 의복도 너무나도 잘 어울려 그 외모를 더욱 빛나게 했다.


다들 둘도 나쁘진 않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귀티가 흐르는 아이들은 귀엽고 이뻐 각자 따로 있었다면 제법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우~으~~ 에르, 슬슬 돌아가도록 하죠.”


맑은 아침의 공기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이 말을 받은 건 남성으로, 그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괜찮겠어?”

“네. 이 이상은 시간이 들 뿐이니까 문제없어요. 아이리스도 괜찮겠니?”

“전 상관없어요, 어머니.”


밝게 웃는 남자아이의 대답.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죠. 후훗. 에르, 오랜만에 당신의 품 좀 빌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언제라도 괜찮아.”

“후후. 고마워요. 하~ 보고 싶네요. 다들 잘 지내고 있겠죠?”

“그렇겠지. 이상이 있다는 건 느끼지 못했거든.”

“다행이네요.”


남자 품에 안긴 여자아이는 기대 어린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자. 갈까요? 우리 집으로.”











한적한 시골 마을. 그곳에 있는 근방의 숲에서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대단히도 집중력이 좋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갑자기 멈추고는 호흡을 정리했다.



“후~ 일단 여기까지 하고 돌아갈까?”


갓 소년티를 벗어난 듯한 청년은 검을 집어넣고, 근처에 놔둔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리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마을로 향했다.



“어라, 아주머니네.”


청결마법으로 수건을 짜내면서 마을로 걷던 청년은 이웃집 소꿉친구의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 루데릭. 아침부터 빠르구나. 벌써 훈련하고 돌아오는 길이니?”

“하하. 일찍 일어나져서요. 아주머니는 일하러 가시는 건가요?”

“그렇단다. 밭도 넓혔고, 여태 리아를 돌보느라 많이 못 도왔으니 힘내야지.”


청년, 루데릭은 이 뒤로도 잠시 이웃집 아주머니와 대화를 더 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어서 준비할까.”


집으로 돌아온 루데릭은 바로 자신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지금은 날이 슬슬 따뜻해져 본격적으로 밭일을 할 시기로, 모종부터 준비할 일은 많았다. 게다가 촌장이 마법 훈련도 할 겸해서 근처 숲을 개간했기에 밭도 넓어졌다.


일손은 많을수록 좋기에 루데릭도 일찍 훈련을 다녀왔다 시간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스윽······


갈아입는 도중, 느껴지는 인기척에 루데릭은 예리한 눈이 되어 옆에 놔둔 검에 손을 올렸다.


조용한 마을이고 사건은 없다시피 한 곳이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최근부터 강해져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거의 습관처럼 되었다.


스윽······ 스윽.


더욱 가까워져 오자 발소리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루데릭은 검을 내려놨다.



“뭐야. 엄마잖아.”


말을 꺼내기 무섭게 문 앞으로 나타나는 루루카나. 그녀는 허탈한 듯 중얼거리는 아들의 모습에 인상을 썼다.


“뭐냐가 뭐야? 엄마한테. 검까지 애지중지 껴안기나 하고. 안 피곤해?”

“전혀. 나름 즐거워. 이곳은 딱히 할 일도 없잖아. 그런데다가 동생은 더 강해질 거 아냐. 동생보다 못한 오빠라니······ 볼품없어.”

“하하. 너도 정말 많이 바뀌었어. 옛날에는 오빠 다 됐다고 놀리면 부끄러워서 열불 내던 아이가 말이야. 이제는 스스럼도 없네. 아들이 성장해서 엄마는 기쁘지만 귀여운 맛은 없어져서 슬퍼~”

“맛은 무슨 맛이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갈아입으니까 빨리 나가.”

“어머나. 엄마한테 바보가 뭐니······”


루데릭은 말버릇이 어쩌고 떠드는 루루카나를 문밖으로 밀어 내보내고는 마저 옷을 갈아입었다.


검을 허리에 달린 검대에 넣는 것으로 준비는 끝.


장갑과 모자도 제대로 챙겨 쓰고 바로 집을 나와 광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가는 도중, 갑자기 언급되어 그런가, 루데릭은 문득 루루카나가 말한 자신의 동생―― 이스피리아가 떠올랐다.



“리아······.”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 이스피리아―― 리아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다는 이상한 이유로 5년도 더 전에 마을을 떠났었다.


아무리 그래도 굳이 떠날 필요까지 있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리아는 마을에 피해가 가면 안 된다며, 더불어 아무 근심 없이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마을에는 이러한 연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저 잠시 다른 곳에서 살다 돌아오는 것으로만 알려졌다.


분명 다들 왜 떠나는 건지 내심 궁금했겠지. 그러나 리아의 기약 없는 외출에 찬성했지만, 슬퍼하던 리아의 가족들을 보니 차마 묻진 못했다.


얼추 사정을 알고 있는 자신도 솔직히 아직까지도 리아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다.


‘뭐, 분명 엉뚱한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남들과는 다른 엄청난 재능을 가진 동생이다. 우리와는 다른 뭔가를 느꼈을지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리아는 대단했다. 이전에는 그냥 굉장하다고 여기기만 했던 것들이 성장하고 배우면 배울수록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었다.


그 굉장함을 처음으로 본 것은 막 건강해진 리아가 자신을 쫓아와 얼떨결에 잭에게 훈련받았을 때였다.


일주일 만에―― 그것도 겨우 한 번뿐이었으나, 리아는 본인 키만 한 목검으로 잭과 거의 비슷한 베기를 보여줬다.


당시에는 그저 뒤처지는 게 싫어 더욱 분발하게 된 계기였지만, 이제는 다시금 떠올리기만 해도 전율이 돌 정도다. 그 짧은 시간으로 잭의 수십 년을 단숨에 따라잡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나 자신도 나름은 할 수 있게 되긴 했다. 그렇지만 본인 신장만 한 검으로 하라고 하면 글쎄······


리아는 목검이었으나 그때의 나이를 생각하면 굉장함만이 더 해질 뿐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야 이런 리아를 알게 되었는데, 자신감이 사라지기는커녕 되려 의욕을 불태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왜냐하면 동생에게 창피하지 않을 오빠가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훈련을 게을리할 생각은 가질 수조차도 없었다. 마법을 잘 쓰지 못하기에 최소한 검만이라도 리아를 앞질러야 체면이 사니 최선을 다했었다.


그럼에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찬크에르와 에이브안이 모두 인정하는 재능을 가진 리아니까.


‘둘 다, 리아에겐 껌뻑 죽기에 믿음은 안 가도······’


하지만 엄청난 범위의 마력탐지와 방대한 마력량을 토대로 편하게 사냥했던 모습으로 보아 재능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을 거다.



“지금 나에게 같은 동물을 사냥하라고 하면······ 아마 당시의 리아가 더 빠르지 않을까 싶네.”


그런 리아가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떠난 것이다.


분명 엄청나져서 돌아오겠지······


대단한 동생을 둬서 자랑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오빠로서의 위엄을 보이기에는 너무 힘들다.


어깨가 무겁다.


떠올린 동생 생각에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종의 분류를 하며 작업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오, 루데릭. 이쪽을 도와주러 왔니? 잭 씨나, 촌장님 쪽에 가지 않아도 돼?”

“네. 주변의 정리도 다 끝났으니 괜찮아요.”


마수와 마물. 다른 곳에서는 이 둘을 합쳐 몬스터라 불렀지만, 이 마을에서는 그런 말이 없었다.


뒤늦게 찬크에르가 오고 나서야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제는 주민들도 평범히 사용하는 말이 됐다. 전에는 매번 따로 부르거나 해서 길고 번잡했으니.


루데릭은 이 몬스터에게―― 그것도 제법 강한 몬스터에게 둘러싸이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라는 잭의 보증에 작년부터 혼자서도 깊은 숲까지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최근까지는 잭과 에이브안을 도와 새로 개간한 밭 주변의 몬스터들을 퇴치, 사냥하는 일을 했었다.


마을 주민이 물은 건 이것이었고, 지금은 거의 다 정리했기에 문제없었다. 벌레나 작은 동물 정도가 남긴 했지만, 이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손쉽게 내쫓거나 없앨 수 있다.


그러니 큰 위험은 없을 것이고, 지금 시기에는 모종 심기가 더 중요하여 이쪽으로 왔다.



“영차. 이거 들고 먼저 갈게요.”

“그래. 부탁한다. 도와줘서 살았어.”

“하하. 뭘요.”


루데릭은 수북이 쌓인 모종 중에서 한 덩이를 들고 새로 생긴 밭으로 이동했다. 꽤나 많은 양이지만, 수련을 통한 근력과 마력으로 인한 강화로 상당히 쉽게 들 수 있었다.


‘흠. 작년보다 가볍네? 양의 차이는······ 크게 있어 보이진 않는데.’


찬크에르 덕분에 기초를 잘 다질 수 있던 탓인지, 매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게 체감된다.


물론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 선생님 덕택이지 녀석 때문이 아니야. 쳇······ 그 녀석과 리아, 아이리스는 잘 지내려나.’



“어이! 루데릭. 앞을 보고 걸어야지!”

“우와앗! 어어. 선생님?”


정신이 너무 팔렸나 보다.


어느덧 밭을 지나쳐 나무를 향해 돌진하고 있던 자신을 잭이 어깨를 잡아 막아줬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망할 녀석! 리아에게 손댄 건 아니겠지?!’



“어휴······ 어느새 너까지 그렇게 됐냐? 오빠라서 닮아가는 건가.”

“네? 뭐가요, 선생님.”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그거, 이쪽 밭으로 가져온 거지? 빨리 심자. 너랑 하면 금방 할 수 있을 테니 오전까지는 끝내보자.”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내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음. 알겠습니다. 저도 마침 오늘은 호수 좀 둘러보려고 했거든요.”


모종을 받아서 내려놓던 잭은 고개를 꼬았다.



“호수를? 왜? 이젠 그다지 걱정은 없지만, 갑자기 뜬금없네.”

“그게······ 왠지 가보고 싶어서요.”

“일단 알겠다. 사슴 마수나 조심하고.”

“그, 그만 좀 놀려요. 인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요. 그래도······ 정말 한 번쯤은 만났으면 하네요. 그때 넘어가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고.”

“일부러 다가가진 마라. 그러다가 찔려 죽는다? 어쨌든 그만하고 얼른 시작하자.”

“넵.”


모종 심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잭은 모종이 담긴 판을 들고는 지나가면서 발밑으로 하나씩 모종을 던져서 심었다.


보통 저렇게 하면 모종의 뿌리가 상하는 데다, 제대로 땅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시들어 죽을 수도 있었다.


칭찬은 고사하고 잔소리 듣기 딱 좋은 짓이지만······ 잭이 저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에도 모종의 손상 없이 멀쩡히 땅에 뿌리를 내려 결실을 보았었다.


저런 묘기는 불가능하니 루데릭은 착실히 하나씩 허리를 숙여 빠르게 심어갔다.


이런 일로 훈련의 성과를 느끼는 게 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리 지치거나 피곤해지는 일 없이 빠르게 심어나가 오후가 되기 전에는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업이 끝난 밭을 둘러보며 눈앞의 성과에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잭은 한 시 급한 듯 먼저 간다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멀리서 “조심히 다녀와”라는 말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진다.


제법 황당하게 보던 루데릭이었으나,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고는 움직였다.



“우리 마을도 꽤 변했어.”


정말 많이 변했다. 다른 건 그대로인대 딱 하나만.


원인은 아마 찬크에르와 리아.


이 둘이 벌이는 애정해각에 모두 영향을 받았으리라.


덕분에 여기저기서 주변의 눈은 신경 쓰지도 않고 달달한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처음엔 그냥 부부끼리 사이가 좋구나, 정도였지만 점점 심해져 이젠 찬크에르와 리아, 두 사람 못지않게 볼썽사나울 지경이다.


‘우리 집도 원래 심하긴 했어도 말리면 어느 정도 자제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있는지도 모른다. 마냥 고삐 풀린 듯한 광경만이 펼쳐졌다.



“곧 새로운 동생이 태어날지도······”


루데릭은 눈물을 삼켰다.


‘괴롭다, 내 친구이자 동지여! 이곳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어. 선생님마저 감화된 이곳에서 내 안식처는 촌장님 정도밖에 없구나!’


촉촉해진 눈가를 닦다 보니 호수에 금방 도착했다. 이전에는 쉬지 않고 걸어도 반나절은 걸린 거리였건만 이젠 뛰어서 금방 올 수 있게 됐다.


밭일에서 느낀 성과와는 다른, 뿌듯한 성과를 느끼면서 루데릭은 호수를 둘러봤다.


근 10년 만에 와본 호수는 예전보단 작게 보였지만 여전히 넓고 운치가 있었다.


몬스터가 없는 호수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무심코 훈련을 결심하게 된 그 날의 일이 떠오른다.


‘분명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선생님께 찾아갈 마음이 생겼으니 제법 괜찮은 추억이려나?’


피식 웃은 루데릭은 호수를 자세히 둘러봤다.



“흐음. 여전하네. 그 사슴은 없는 듯하고. 그런데 아직 이곳에 살긴 하나? 새끼도 있었는데 지금은 제법 커졌겠어.”


몬스터만이 아니라 일반 동물이나 벌레들도 많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그리 방심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루데릭은 호수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잠시 경치를 구경하기로 했다. 소란만 일으키지 않으면 그럭저럭 안전하니.


짹짹짹.


새로 예상되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제법 평온한 시간이다.


그런 순간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실제 소름이 돋은 건 아니었으나, 그런 감각이다. 그리고 이 느낌은 위험을 알리는 것. 몬스터와 싸울 때나 잭, 찬크에르와 대련할 때도 몇 번이나 경험한 그것이었다.


미친 듯이 울리는 마음속 경종에 루데릭은 검을 뽑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는 한편,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지나치면 독이 되겠지만 루데릭은 그런 초보자가 아니었다.


‘어디지······’


자신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의 강한 몬스터라면 도망이 최선이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다가 오히려 뒤를 잡힐 수 있어 신중해야만 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잠시의 방심도 없이 경계하다―― 위치를 찾아냈다.


아니, 찾은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위험한 기척을 풍기던 녀석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틀렸을 리는 없다.


그만큼 기척을 감지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루데릭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향해 보지도 않고 빠르게 베어버렸다.


기습이고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치명상이 되지 못하더라도 상처는 입힐 수 있을 거다.


만약 어떠한 상처도 없이 피하거나 막는다면 강자라 인정. 갑작스러운 공격에 상대가 당황하는 사이 도망칠 준비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하던 어느 것과도 맞지 않았다.


그대로 베어버릴 줄 알았던 검은 무언가에 단단히 붙들렸다. 빼려고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루데릭은 당황하면서도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나타난 상대에게서 말소리가 나왔다.



“제법 괜찮아졌다만······ 상대를 보고 휘둘러야 하지 않나?”


기억에 익숙한 얄미운 목소리와 화내는 듯한 말투.


묘한 기분에 루데릭은 그제야 상대를 쳐다봤다.


거기에는 생소한 의복을 두른 잘생긴 녀석이――인정하긴 싫지만―― 한껏 입가를 튼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검을 막은 것도 그 녀석이었다. 너무나 가볍다는 듯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그리고······


다른 팔에는 여자아이가 안겨있었다.


틀림없다.


머리카락과 눈의 색이 많이 달라졌고, 헤어진 시간에 비해 그리 성장하지 않아 보였지만 틀림없었다.


――언제나 걱정하고 보고 싶었던, 그 아이가 분명했다.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으나, 역시 환상이나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저 꼴 보기 싫은 녀석의 얼굴은 착각할 수도 있지만, 내 동생······ 리아의 얼굴은 착각할 수가 없다.



“일부러 마력까지 내뿜어 알려줬건만 누군지도 모르다니. 아직도 멀었군.”


얄미운 녀석이 얄미운 소리를 해댔지만,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잡힌 검도 그대로 놔두고 오로지 안겨있는 리아만을 보며 다가갔다.


리아도 얄미운 녀석―― 찬크에르의 팔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잘못 본 게 아니었는지, 리아는 14세가 되었음에도 떠날 때보다 조금 성장한 정도였다. 확실히 제 나이대 같진 않고 더 어려 보인다.



“리아? 리아 맞지?”

“엇! 나도 못 알아봐? 아······ 머리색이랑 좀 바뀌었구나. 그래도 나 리아 맞아! 이스피리아. 많이 컸지? 오라버니.”

“리아!”


이 눈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역시 틀리지 않았다. 이 목소리로 오라버니라 불러주는 자는 리아밖에 없으니.


작게 환성을 낸 루데릭은 다가온 리아를 꽉 껴안았다.


환각이 아닌, 분명하게 느껴지는 체온과 감각에 드디어 리아가 돌아왔다는 실감이 솟아났다.


5년······


짧다고 하면 짧다 할 그런 시간이었지만, 무척이나 긴 나날이었다.


함께 수련하던 곳에서 리아가 앉던 바위에 눈길이 가거나, 검을 휘두르다가도 혹여 돌아왔나 마을을 살피는 등, 온갖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리아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오라버니 많이 컸다. 이젠 어엿한 성인처럼 보여. 키도 훤칠해졌고.”


자신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리아를 보며 루데릭은 격해지는 감정을 억눌렀다. 오빠가 동생 앞에서 울 수는 없다며 괜한 자존심을 내세워 어떻게든 진정하려 들었다.


간신히 눈물만은 참아낸 루데릭은 조심히 리아를 놔주고 이제는 은발로 변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리아는 별로 안 컸네. 혼자 2년밖에 안 지난 거 같아.”

“아, 아니야! 나도 많이 컸어! 자, 봐봐!”


연분홍빛으로 바뀐 눈을 번뜩인 리아는 발끈해서 몸을 내밀었다.


몸을 내미는 거야 상관없다. 뭐 나쁠 게 있다고.


‘그런데 어딜 받치고 내미는 거니······ 동생아.’


감동에 격해진 감정은 순식간에 평온해졌다.


‘조금은 성장한 듯 보인다만······ 아니, 그곳만은 제대로 5년의 세월을 보냈구나.’



“리아! 알았어. 제대로 성장했어. 인정할게. 그러니까 그만―― 악!”


루데릭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죽을 정도······ 라는 건 아니었지만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뭐 하는 짓이야?! 찬크에르!”


불만을 표하는 외침에도 찬크에르의 눈은 싸늘하기만 했다. 차마 꿀밤을 때린 자라고는 볼 수 없을 당당함이다.



“남의 아내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가?”

“무슨 헛소리야! 네 아내이기 전에 내 동생이야. 그딴 시선으로 볼까 보냐! ――아니. 그 전에 언제 네 아내가 된 건데? 서, 설마······ 끄악!”


언제 때렸는지도 모를 손을 거두며 찬크에르는 콧방귀를 꼈다.



“헛소리는 네가 하지 마라. 시간이 지났건만 성장이 아니라 퇴화했군.”

“으응? 조금 이야기를 못 따라가겠는데. 둘이서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리아, 신경 쓸 거 없어. 그대의 오라버니라는 작자가 좀 멍청해졌을 뿐이야.”

“누가 멍청······ 응? 잰 누구야?”


재차 찬크에르에게 따지려던 루데릭은 그의 뒤에서 나타나는 남자아이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받은 남자아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실망했어, 루데릭. 마음의 벗이자 친구라고 해놓고 못 알아보는 거야?”


처음 보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가.


루데릭은 고개를 깊게 꼬고는 남자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리아 정도의 나이로 여겨지는 남자아이는 회색빛의 머리카락과 눈을 지닌 단정한 외모로, 묘~하게 리아와 찬크에르를 닮았다. 목소리도 잘생겼다고도 귀엽다고도 할 수 있는, 외모에 어울리는 좋은 울림이었다.


루데릭은 순간, 정말 아주 조금이지만 리아의 아이인가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짜증 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찬크에르를 신뢰할 수 있었다.


‘분명 저 녀석이 손을 대진 않았을 거야. 그러면 누구지? 모르겠네······ 저 둘을 닮은 게 약간 짜증 나긴 한데, 왠지 친근한 느낌이야. 그런데 마음의 벗? 친구? 처음 보는데 무슨 소릴―― 앗?!’


눈을 부릅뜬 루데릭은 확인하는 의미에서 찬크에르를 보았다.


그렇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형태다. 오히려 드래곤일 때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용왕이라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 그 아이인 아이리스는?


내 친구인 드래곤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루데릭은 곧장 주위를 둘러봤다.



“아, 아이리스! 착한 내 친구는 어디에 있어?!”


믿기지 않아 둘러봤으나 변함없었다. 주위엔 셋 이외엔 아무도 없다.


“설마······?!”

“바보. 앞에 있잖아.”

“저, 정말. 내 친구이자 동지인 그 어여쁜 드래곤이라고? 오······오오오! 아이리스! 어서 와. 정말 보고 싶었다, 친구야!”


확실히 아이리스라는 것은 인식한 루데릭은 그대로 와락 껴앉았다.



“앗. 잠깐만, 루데릭. 가, 간지러워, 그만 비벼. 히힛!”

“우오옷! 아이리스, 내 마음의 벗이여! 네가 없는 동안 끔찍해진 이곳에서 홀로 버티기 힘들었어!! 잘 왔어. 진짜 잘 돌아왔어!”

“아하핫. 뭐? 자, 잠깐. 흐핫. 이곳이 끔찍해졌다고?”


놀란 눈으로 묻는 아이리스.


그렇다. 이곳은 끔찍해졌다. 완전히 오염됐다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여태까지 토로할 곳이 없어서 그랬나. 마치 둑이 무너진 듯 루데릭은 아이리스를 붙들고는 이 마을이 얼마나 끔찍해졌는지를 구구절절 떠들어댔다.


작가의말

5년! 순식간에 흘렀습니다!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 또 뵈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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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 22.05.28 124 4 28쪽
23 22 22.05.27 141 3 25쪽
22 21 +1 22.05.26 157 5 23쪽
21 20 +2 22.05.25 184 3 24쪽
20 19 22.05.25 185 5 17쪽
19 18 22.05.24 183 5 37쪽
18 17 +2 22.05.24 183 4 12쪽
17 16 +1 22.05.23 188 4 17쪽
16 15 +1 22.05.22 188 6 20쪽
15 14 +2 22.05.21 198 4 23쪽
14 13 +8 22.05.20 216 6 23쪽
13 12 +3 22.05.19 233 7 40쪽
12 11 +1 22.05.18 229 9 36쪽
11 10 +2 22.05.17 253 9 31쪽
10 9 +3 22.05.16 266 7 21쪽
9 8 +1 22.05.15 270 8 18쪽
8 7 +4 22.05.15 292 6 14쪽
7 6 +1 22.05.13 318 8 17쪽
6 5 +2 22.05.13 376 9 30쪽
5 4 +2 22.05.12 482 12 17쪽
4 3 +1 22.05.12 600 20 14쪽
3 2 +1 22.05.11 851 24 16쪽
2 1 +7 22.05.11 2,124 34 21쪽
1 Prologue +1 22.05.11 4,497 4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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