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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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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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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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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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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

DUMMY

주변이 나무 밖에 없는 숲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멍하니 서 있었다.


여자 아이는 어깨 밑까지 오는 갈색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지닌 귀여운 생김새였다. 성장하면 필시 애교 많은 미인이 되리라. 그렇지만 특유의 멍한 분위기로 인해 약간 어리바리한, 안타까운 미인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입고 있는 옷은 연한 갈색의 단일 색으로 된 원피스에 마찬가지로 갈색으로 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도 특색도 없는 단조로운 옷이지만, 농가마을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차림새다. 여자아이가 사는 곳을 생각해보면 지극히 평범했다.


그랬다. 여자아이는 산나물을 채집하러 근처에 있는 촌락에서 온 시골 소녀였다. 운 좋게 산딸기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4살 아이다운 생각으로 숲에 온 것뿐이었다.


그렇게 숲 속에서 여자아이는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하늘과 선선히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이 평화로운 모습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광경을 예전에 보았다고. 그때도 이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노라고.


4살 아이의 짧은 인생에서 특별함이란 그다지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시골에 살고 있다면 자주 볼 만한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여자아이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며, 그리움으로 가득해 한동안 가만히 서서 숲을 바라만 보았다.


얼마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자아이는 멍한 눈 그대로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문 앞에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려 가지고 나갔던 바구니를 봤다.


안에는 매우 적은 양의 산나물이 담겨있었다.


평소보다도 매우 적다. 이로 보아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 그리움이 느껴지던 풍경만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 판단하며 여자아이는 시골답게 딱히 자물쇠가 없는 문을 열었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매일 봐오던 모습이다. 그렇지만 기분 탓인가, 오늘 따라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묘한 기분으로 여자아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은 빨랐다.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여자아이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전이라면 뭐라고 부르는지 몰랐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여자아이는 더욱 휑해 보이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목조로 건조 된 집 내부는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빠르게 둘러본 여자아이는 거실 한복판에 배치 된 다용도 식탁에 바구니를 내려두고, 부모님이 전용으로 만들어준 작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방금 떠올린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기억이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아주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었다.


4살 아이의 머나먼 과거라 해봤자 몇 년 밖에 안 된다. 제대로 따지자면 비교적 최근의 기억 밖에 없어 정리라고 할 것도 없다.


실로 기묘한 일이다.


하지만 여자아이가 떠올린 기억은 특별한 것으로, 조금 다르다. 그 기묘한 일이 맞으며, 어지간해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기억이니 말이다.


이 특이한 경험을 한 여자아이의 이름은 이스피리아.


다른 곳과 교류가 없는 시골, 그 중에서도 더더욱 시골이라 부를 만한 곳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가정 환경도 평범하여 리아란 애칭으로 불리면서 부모님에게 애지중지 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이는 전세의 기억을 떠올렸기에 알 수 있었던 것으로, 이전까지는 화목한지도, 애지중지 돌봄을 받았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잘 대해준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이스피리아이니 당연히 부모님을 좋아했다. 오늘 숲을 들어간 것도 조금이나마 부모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발단이 됐다.


주변 풍경이 겹쳐 보이면서 갑자기 전세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고, 머리를 부딪치거나 예기치 못한 트러블에 휘말리는 등의 어떠한 드라마틱한 일도 없이······


혼란스럽지만 이스피리아―― 리아는 차근차근 하나하나 짚어갔다.



“우선, 나는 전세에 노환으로 죽은 평범한 노인이었지?”


그리고 바로 다시 혼란에 빠졌다.


전세를 기억해내서가 아니었다. 성별이 달라서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서 있는 이곳, '오엘문리아'라 불리는 곳 때문이었다.


다시 태어난 것 자체는 불교의 윤회라는 사상도 있기에 생각보다는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고, 오엘문리아는 지구를 가리키는 그 나라의 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마법이 존재했다.



“으음······. 어찌 된 거다냐?”


전세에서 아들과 손녀들에게 어울리기 위해 다양한 오락문화를 접했다. 또 이야기 거리들이 널려있는 시대였기에 다른 세상이라는 개념은 알고는 있었다. 툭하면 여기저기 다양하게 소재로 활용도 됐으니.


그렇지만 80세까지 살았던 경험과 기억들이 이를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고, 현재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야 인터넷이 깔린 세상이잖아.”


5.5G니 뭐니, 지구에서는 전 세계가 네크워크로 연결이 되어 각종 소식들을 매우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개중에는 가십거리의 이야기도 많았고, ‘마법을 쓸 수 있다’라는 미심쩍은 글이나 동영상도 심심찮게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모두가 수상쩍은 사기꾼이나 눈속임인 마술밖에 없었다.


또 전세는 다양한 에너지원을 사용하긴 했지만, 기계라는 물건들이 삶의 한축을 담당하여 편안한 생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인터넷도 이것에 하나이고.


이른바 과학이라는 기술이 발전한 문명. 지구는 분명 그러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 마을에서는 마력이라는―― 전세의 아들과 손녀가 보고 있던, 만화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지의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마법이 문명의 근간에 자리를 잡아 기계와 같은 역활을 수행했다.


솔직히 말해 어린아이의 상상이 아닐까도 싶다.


전생에서도 사람들에게 마법을 쓴다고 하면 현실 구분 못하는 덜 떨어진 사람 취급할 건 뻔했다.


어린 아이라면 그나마 귀엽게 봐줄 수도 있겠다만, 그 외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머리를 다쳤는지 의심부터 하거나 정신과 치료를 알아보도록 권유할 것이다.


심하면 정신병원에 처넣겠지.


리아는 자신의 가족이라면 분명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평범히 마을 사람과 가족들이 마법 이야기를 하고, 자신도 기초지만 생활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기초라 마술사들이 하는 눈속임 같은 마법에 불과해도.



“그것조차도 마력이 적은지 잘 사용할 수 없지만 말이지.”


하지만 문제는 마력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짜 있는 것인지 의심만 된다.


그런 자신을 배려해서인가. 마을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리아의 앞에서만은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꺼려했다.



“이것도 전세의 기억 덕분에 눈치챈 것이지만.”


다들 그렇게 화제를 바꾸거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기초마법 이외에는 알지도 못했고, 다른 마법을 본 적도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해주는 사냥이야기에서 나오는 마법뿐이었다.


마수와 마물이란 존재를 물리친다는 줄거리로, 많은 마법들이 나오지만······ 사실 리아가 듣기에는 전부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육체적인 능력으로 물리치는 느낌이 강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손녀가 보던 어린이 만화의 마법들이 더 대단하지 않나?”


모처럼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진짜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숨과 함께 리아는 마을을 떠올려보았다.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은 이름조차 없는 마을로, 30명도 채 살고 있지 않은 촌 동네였다. 더불어 무척이나 외진 곳에 존재하는 것인지 주변엔 숲 밖에 없고, 외지인도 전혀 찾아온 적이 없었다.


이곳 주민들은 나름 평범했지만 머리와 눈이 좀 특이하다. 염색이나 렌즈를 끼지 않는 한 자연발생은 어려울 거라 생각되는 화려한 색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놀랍기도 했으나, 여긴 마법도 사용하는 곳이다.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고 아직까진 지구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의 눈을 피한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혹은 마법이란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숨어산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사람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려나? 연구를 위해 해부라든가 하는 흉흉한 영화들도 있으니 그럴싸하지?”


하지만 마을의 주민들은 숲 쪽에는 경계를 하긴 했지만, 느긋하게 밭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딱히 숨어 산다는 느낌은 없다. 숨어 산다더라도 비행기나 인터넷이 발달한 지구에서, 아무리 외진 곳이라지만 들키지 않고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마법이라면······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리아에겐 마법은 유감스러운 것으로,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속이 지구에서 이세계 쪽으로 점차 기울고 있었지만, 리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가축과 채소, 과일 등의 식재료였다.


전세에서 듣던 이름과는 다르지만, 아무리 봐도 전세의 것과 닮아있었다.


‘몇 세대 앞이나, 뒤의 종이라 해도 믿을 거 같아. 일단 난 믿을 거야.’


이야기에 나오는 마수와 마물을 볼 기회라도 있었으면 무언가 확실해질 것도 같다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한 번도 그런 생물체를 본 적이 없다.


먹어본 적은 있다. 현생의 아버지가 집으로 마수고기를 가져오는 덕분에.


맛은······ 좋았다. 그렇지만 정육점에서 파는 듯, 조리하기 좋은 모습이라 원형 따위를 알아 볼 수 없어 진짜 마수인지는 베일에 감춰져있다.


4살 딸에게 피가 흐르는 마수를 보여주기 싫은 건 알겠지만, 현 상황으로서는 너무 아쉽기만 했다.



“어쩌면 마수라 부르는 것들도 사실은 평범한 동물이 아닐까? 조금은 난폭한 동물을 마수라 한다든지.”


이것이야말로 그럴싸했다.


‘전세의 사람들이 마법을 못 쓴 것도, 단순히 마법을 쓰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 아니야? 우리는 단순히 사용할 줄을 아는 것뿐이고. 어머니는 사람은 무조건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설명해줬지만······ 왠지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지?’


리아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기분으로, ‘여긴 지구다’라는 전제조건을 깔고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마법은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동력원이라는 마력은 느끼지 못했으며, 쓸 수 있는 마법조차도 원리 라든가 정확한 사용법 등은 알지 못했다. 그저 부모님을 따라 저렇게 되라, 생각하다 보니 얼떨결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이후로도 쭉 사용할 수 있긴 했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다른 세계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비약이다. 차라리 지구에서 은밀히 살아가는 민족이라는 쪽에 힘이 실린다.



“역시 우연찮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뿐인가?”


무엇보다 마법이 문명을 이뤘다는데, 마을 주민들은 평범하게 괭이질을 하고 있어서 그 주장이 더욱 확고해져갔다.


마법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생활마법 이외에는 다른 마법은 본 적이 없는데?’


리아는 의문만 생기는 사고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확실한 것만을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현세보다 한참을 오래 산 전세의 기억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명백했다. 오히려 영향을 안 끼치는 게 이상하다.


지금 생기는 의문들이 그 증거였다.


단순한 4살의 아이에게 세상의 끝은 이 마을과 다닐 수 있는 숲의 일부분뿐이다. 숲 깊숙이는 마수와 마물이 존재해 위험하다고 부모님들이 말려서 가지도 않았고, 당초 체력이 부족해 갈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4살의 아이라면.


평범한 4살이라면 마을 말고도 세상은 넓고, 다른 곳에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이룰 수 없다. 전세를 알기에 현재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인건 정체성이다.


정체성에 혼란은 없었다. 이름조차 없는 작은 마을에서 상냥한 부모님에게 태어난 딸, 이스피리아다 라고, 의외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세를 기억해내고도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던 것에 예상치도 못한 기쁨이 생겨났다.


끼이익······


만족스럽게 리아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을 때였다. 조용한 집 안의 침묵을 깨고 문이 열렸다.


돌아보니 그곳에는 금발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지닌, 청순해 보이는 미인이 서있었다.


밝게 미소 짓는 얼굴과 가련해 보이는 분위기는 그녀를 더욱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입은 옷은 리아와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민의 의복이었다.


어두운 흰색 옷과, 색 조차 진하지 않고 통자로 된 흐릿한 갈색의 치마와 신발.


그나마 신발만은 가죽으로 만들어 치마보단 색이 조금 진했고, 밑창만큼은 두툼하게 존재해 양질의 물건 같았지만, 결코 부유해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손에 더러워진 장갑과 농기구를 든 모습에서도 충분히 신분을 짐작할만했다. 그런데도 피부는 새하얘서 그녀의 아름답게 보이는 붉은 눈을 더욱 부각시켰다.


차림새와 생김새의 괴리가 느껴지는 여성은 많이 줘도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리아는 그런 여성을 잘 알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짓고 의자에서 내려온 리아는 문 앞으로 쪼르르 가서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


그렇다. 여성의 이름은 필리아로, 이번 생의 어머니였다.



“어머? 다녀왔단다, 리아.”


필리아는 마중에 상냥히 답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리아를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런 필리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필리아, 왜 그래······ 응? 리아야! 다녀왔단다.”


반갑게 인사한 사람은 갈색의 머리칼과 눈을 한 젊은 남성이었다.


남성은 농민의 복장이었는데, 밭일을 하며 약간 그을린 피부와 함께 번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이었다. 그리고 필리아와 마찬가지로 손에 농기구를 들고 호쾌해 보이는 표정을 띠고 있어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엇?”


활짝 웃으며 인사했지만, 그것을 본 아버지, 이스카르는 입을 벌리며 놀라고만 있었다.


부모님의 표정과 반응이 이상했던 리아는 딸답게 필리아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완전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다 금방 떠올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은 부모님이 오면 바로 뛰어나가 품에 달려들어 꺄륵 웃으면서 인사를 했었다.


지금처럼 공손히 서서 인사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애초에 부모님보다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태반. 혼나기 일쑤였다. 이렇게 집에서 마중 나오는 일이 거의 없기에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게 늦어버렸다.


‘윽······ 바로 실수 했네.’


리아는 전세를 기억한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들키기가 싫었다.


어느 누구라도 믿기 힘든 이 상황을 부모님이 믿을지부터가 걱정됐고, 그걸 넘어가더라도 뭐라 설명해야 될지를 몰랐다.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전세엔 80세의 노인으로, 당신들보다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하물며 전혀 다른 세계에서까지 왔다.


헛소리하는, 상태가 안 좋은 딸로 인식해 안타까워하면 다행이다. 피하기라도 하면 버티기 힘들었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더 이상 부모님이 의아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리아는 필리아를 껴안아 밑에서 그 진한 붉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이는 다급했기에 나온, 전세의 손녀를 따라한 모양새였다. 자신 또한 이걸 당했을 땐 모든 의문 따윈 던져버리고 칭찬하기 바빴었다. 분명 효과가 있겠지.


물론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얼굴이 빨개질 것만 같다.


하다 못해 이전의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이라도 났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리아로서의 기억은 전부 어딘가 흐릿하다.



“오늘은 별로 기운이 없네?”


올려다보는 딸을 다정하게 바라본 필리아는 연약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굉장히 가볍게 리아를 안아올렸다.


그 상태로 필리아는 이스카르와 함께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아까 들고 갔던 바구니를 보자 이해했다는 양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후훗. 나물을 별로 따지 못해서 풀이 죽은 거였구나?”

“하하핫. 리아야, 괜찮단다. 이런 걸로는 엄마도 아빠도 혼내지 않아.”


아무래도 손녀를 따라한 행동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나 보다. 그렇지만 착각하여 위로해주는 둘에게 리아는 안도했다.


그리고 이스카르의 말에서 바로 또 하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여태 자신은 부모님을 엄마, 아빠로 상당히 친근하게 부르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라고 정중히 부르다니.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나 싶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만 이제 와서 엄마, 아빠라니 뭔가 쑥스럽지 않나?’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의구심도 없을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 노인의 일생을 기억한 지금으로서는 꽤나 등골이 간지럽고 낯 뜨거워지는 호칭이었다.


리아는 무심코 빨개질 거 같은 얼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어, 어머니 힘 세시구나... 4살 아이지만 한 손만으로 안고 머리까지 쓰다듬으시네. 아들과 손녀까지 키워본 바로는 결코 가볍지 않았는데. 굉장하시네.’


······정말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저녁 만들어야 하니, 당신은 리아와 놀아주고 있으세요.”

“알았어. 그럼 리아야, 오늘은 내가 잭과 함께 마수를 사냥한 이야기를 해줄게.”


리아를 전용의자에 내려주고 필리아는 요리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이스카르는 곧장 즐거운 기색으로 폴코라는 불리는, 돼지와 닮은 생김새를 가진 마수와의 격전을 말해주었다.


오늘도 시작된 이스카르의 이야기는 약간, 리아가 듣기에는 평소보다도 제법 많이 살을 붙인 것으로 느껴졌다. 풀이 죽은 딸을 위해 한 일이겠지만, 절대 돼지 한 마리에 나올 마법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실제로 사용 가능한지의 여부를 떠나, 화려한 마법이 난무하는 박진감 넘치는 모험담이 되어 굉장히 재미있었다. 생활마법 이외에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였기에 더욱이나.


다만, 부끄러울 뿐.


화려한 마법과 모험이 넘치는 이야기는 평범한 아이였다면 마냥 즐겁기만 했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의 자신은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딸을 위해 이야기를 꾸미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쳐 기분이 미묘하다.


하지만 그런 기분과 달리, 자신을 위해주는 아버지의 근사함에 리아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방긋 웃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수 사냥을 넘어, 마을에서 있었던 작은 해프닝으로 변하여, 집 근처에 사는 소꿉친구의 화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리아는 적절히 대꾸해주며 듣고 있었는데, 딱 때를 맞춰 필리아의 요리가 완성됐다.


이스카르는 말을 멈추고 부엌으로 가 요리가 담겨진 그릇을 식탁으로 옮겨왔다.


마을은 밭에서 수확하는 농작물과 몇 마리 기르는 가축에게서 나오는 부산물, 사냥으로도 얻는 고기들도 있어서 식재료는 제법 충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공동으로 필요한 만큼 나눠 갖는 곳이기에 마을에서 굶주리는 사람은 없었다.


어딘가 사회주의와도 닮은 체계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서로 불화도 없이 다들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기에 여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인 형태의 체계지만 이곳처럼 유지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굉장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마을에 대해 생각하던 리아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살짝 표정이 굳었다.


현재의 자신은 전세에서의 다양한 요리를 안다. 그렇기에 혹여나 여태 맛있게 먹었던 필리아의 요리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조금 긴장하며 리아는 눈앞에 있는 스프를 봤다.


채소와 고기가 들어간 스프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겨오며 자기주장을 했다. 이것만 본다면 분명 맛있을 거 같다.


아니. 분명, 그럴 거야.


리아는 마음을 정하고 한 숟가락 떠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


‘오?!’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입에 들어온 스프는 채소가 진한 풍미를 가득 머금고 입안에 퍼졌으며, 고기는 부드럽게 부셔져 씹기도 편하였다.


한 마디로 필리아의 요리는 여전히 맛있기만 했다.


‘우리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는 거였어!’


80여 년 동안 살면서 맛보고 즐겼던 수많은 요리에도 지지 않을 것이다.


눈을 빛낸 리아는 우물거리는 입안을 빠르게 움직여 식사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딸이 기운을 차린 모습에 부모님들이 따스한 눈으로 보며 미소 짓고 있었지만, 리아는 식사에 열중하고 있어 알지 못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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