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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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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6.19 19:30
연재수 :
2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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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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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8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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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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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3

DUMMY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어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리아였지만, 마력이 회복되지 않아 지금 쓰면 탈진할 거라는 피드백을 느끼고 그만뒀었다.


그래서 내일 꼭 보여주리라 다짐했던 리아였으나······



“으윽······! 모, 몸이!”


제법 쉬긴 했지만 어제는 평소보다 많이 움직였었다. 근육통이 도지는 것도 당연지사. 꼼짝없이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게 됐다.


또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시연할 수 있었고, 이래저래 기뻐하는 부모님도 볼 수 있었다.


흡족한 리아는 곧장 에이브안에게도 찾아가 보여줬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칭찬세례.


얼굴에 피가 쏠렸던 리아는 어느새 자신을 안아 올린 에이브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급급했다.


안겨져 도망칠 수도 없던 끔찍한 시간이 지나고, 리아는 겨우 진정하게 된 에이브안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마력을 회복시키는 방법 같은 게 혹시 있나요? 약물 같은 거라든가.”

“글쎄, 모르겠구나.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게냐?”

“그게요······”


리아는 엊그제, 부모님들에게 마법을 보여주고 싶었던 때의 일을 말하였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이브안은 턱에 손을 올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는 마력을 보충해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아는 게 없구나. 미안하단다, 리아야.”

“아뇨! 할아버지가 왜 미안해하셔요?!”

“어쩜 이렇게 착한 아이가 태어났을꼬. 후후······”


정말 기분이 좋았는지 에이브안은 리아와 볼을 비볐다.


이스카르와 마찬가지로 수염을 잘 정리했는지 까끌까끌하진 않아서 괜찮았으나 조금은 부담스럽다.



“아! 무능한 할아버지가 될 순 없지.”


갑자기 그리 중얼거린 에이브안은 비비던 것을 멈추고는 새삼스레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야, 외부적인 수단으로 마력을 채우는 방법과는 조금 다르다만, 마력이 빠르게 회복하는 경우가 몇 있단다.”

“어? 정말요?”

“그래. 마력레벨이 높은 사람은 마력에 대한 적응력도 높아 마력이 빠르게 회복하지. 또 아주 급할 때 하는 방법이지만······”


말소리를 낮춘 에이브안은 진지하게 주변을 살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몸보신을 위한 경계에 리아도 본능적으로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함부로 떠들만한 게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러한 걸 필리아가 듣는다면······ 말한 에이브안이나 들었던 자신이나 모두 혼나지 않을까.


꿀꺽.


촌장의 집에는 둘밖에 없고, 주위의 위험―― 필리아가 올 확률은 대낮이기에 무척이나 낮다.


하지만 등골이 오싹했던 리아는 같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윽고 확인을 마친 에이브안 말했다. 다만 신경이 쓰이던지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또 한 가지는 대기의 마력을 억지로 끌고 와 바로 사용하는 방법이란다. 듣기에는 엄청 편해 보이지 않느냐?”

“어, 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네요?”

“그렇지. 이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극히 뛰어난 마력조작 능력이 필요하고, 몸에도 엄청난 부담이 가해진다고 하더구나.”

“할아버지도 해보신 적이 없어요?”

“그만큼 위험하단 소리란다. 그리고······”


슥슥.


에이브안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잘못하면 ‘펑’이다. 그러니까 정말,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시도도 하지 말――”

“응? 왜 그러세요?”


말을 끊은 에이브안을 리아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에이브안은 그런 리아에게 불신의 시선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리아야, 알고 있겠지만······”

“당연히 알고 있죠.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 맞죠?”

“그래······”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정답이었나 보다.


‘근데 어째 별로 미덥지 않게 보는 기분이 드는데? 난 나름 말 잘 듣고 계속 착하게 살아왔는데 말이야.’


리아는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이 화제는 안 좋다며 중얼거린 에이브안이 크게 헛기침하여 분위기를 전환했다.



“허흠······ 예전에도 설명했겠지만, 평상시의 마력량―― 즉 마력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대기의 마력을 몸에 쌓아야 하지. 그러나 마력조작이 서툴러 대기의 마력을 끌어오지 못하는 사람도 마력레벨이 증가한단다.”


갑작스러운 주제이탈이었지만 그 내용은 리아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그런 게 가능해요?”

“신기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란다. 이전에도 말해줬지만, 수련이나 단련을 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리아처럼 대기에서 마력을 끌어오는 행위나 육체적인 단련 등은 신체의 마력친화력을 높이는 작업으로 생각한단다. 그저 그 방식이 다를 뿐, 결국 도달하는 길은 같겠지.”

“어······ 그러면 마력친화력이 높을수록 마력레벨이 오른다는 소리인 거죠?”

“바로 그거다! 역시 훌륭하구나.”


기분이 좋았던지 에이브안은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것으로 끝. 이번엔 길게 가지 않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잭도 좋은 예시란다. 그는 대기 중의 마력을 끌어오진 못하지. 그럼 마력레벨을 올릴 수 없을 터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그럼 할아버지의 이론대로네요?”

“내 이론은 아니지만······ 아마 틀림은 없을 거라 여겨지는구나.”

“으음. 그렇군요.”


모두 이해한 건 아니지만 제법 만족했던 리아는 이후로도 에이브안과 즐겁게 떠들거나 같이 식사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리아는 부모님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하고 단 2개 밖에 없는 방 중에서 침실이 아닌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이스카르가 순찰 일로 밤늦게 돌아왔을 때 사용하는 곳으로, 본래 아내와 딸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사용했다.


그것이 리아에겐 딱 형편에 좋았다. 마침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철두철미하게 어제 돌아가며 에이브안에겐 쉰다고도 전했다. 한동안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겠지.



“드디어······ 드디어 이날이 왔구나.”


여태 계속 기회를 엿봤지만, 도통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완연한 봄이 됐다.


농사는 지금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 이 한때를 놓치면 식량문제가 생길 정도로.


다른 말로는 바쁘다는 소리였다.


자신을 신경 쓸 주민은 단연코 없고, 방치되듯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리아에겐 이때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우후후후······ 얼마나 길었는지 몰라.”


한동안 음침하게 웃은 리아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불도 잊지 않아 턱밑까지 제대로 덮었다.


그리고 그대로 잠에······ 빠지진 않았다.


실은 리아가 하려던 것은 마력 모으기―― 마력레벨 올리기였다.


다만 수건이 물을 빨아들이는 이전의 이미지가 아닌,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이미지로 바꾼 것이었다.


그래서 이 봄철을 기다렸던 거다. 아무에게도 안 들키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을. 들키면 엉덩이 팡팡이니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마력레벨을 올려야 하나 싶지만 리아에게는 중대사였다.


사실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마법 한두 번에 마력이 고갈되는 지금의 상황이.


모처럼 쓸 수 있게 된 마법을 잔뜩 써보고 싶었건만, 하루에 몇 번 쓸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감질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마력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쓰려고 했었다. 실천에 옮긴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이젠 인내심의 한계다.


‘괜찮아. 살짝만 많이 모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좋아! 내가 간다, 마법아!”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려 일부러 크게 외친 리아는 곧장 준비했던 이미지로 대기의 마력을 끌어왔다.


마력은 바라는 대로 수월하게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흡수된 마력은 기본적으로 톡톡 튀기는 성질을 지녔다. 뭉치면 뭉칠수록 더욱 그 세기가 곱절로 강해지고.


마력레벨 올리기의 절차는 간단해서 이런 대기의 마력을 차분히 진정될 때까지 붙잡아두기만 하면 됐다.


몸의 위치는 상관없었다. 무협영화에서는 단전에 모은다거나 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여긴 그렇지 않고 몸의 어느 부위든 괜찮았다.


리아도 이제 익숙해져 이 정도라면 낙승이라며 여유를 보일 정도는 되었다. 오히려 다음번에는 더 늘려야겠다며 만만하게 보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그게 벌이 됐던 걸까······


수도꼭지가 확 열린 듯 양이 늘어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지지도 않았고, 이제 슬슬 버거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마력은 멈출 새도 들이닥쳤다.


자신의 마력량보다도 많은 양의 마력에 리아는 당황해 순간 몸이 ‘펑’ 하는 건 아닐까 오싹해졌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진짜 펑이야! 그러니 집중해!’


입술을 꽉 깨문 리아는 눈을 감은 채 차근차근 침착하게 모여든 마력을 제어했다.


끝이 없는 듯 계속해서 들어오던 마력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제어할 수 있는 시점에서 딱 운이 좋게 멈췄다.


그렇다고 안도할 틈은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큰일 나는 상황이었으니. 위험한 순간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리아는 딴생각은 할 여력도 없이 무아지경으로 억누르는 데에만 온 신경을 다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쓴 보람은 있었는지, 서서히 마력의 반발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 여유를 되찾은 리아는 숨을 길게 토해내고는 나머지 마력들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후하······!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마력을 모으다 죽었다면 웃음거리밖에 안 됐을 테니 진심으로 안심됐다.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은 리아는 후덥지근하여 이불을 걷어 올렸다.



“와······”


괜히 후덥지근한 게 아니었다. 걷어 올린 이불은 땀으로 잔뜩 축축해져 무게마저 늘어난 기분이다.


이불이 그러니 입고 있는 옷은 말할 것도 없다. 땀으로 젖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완벽히 절여졌다.


그리고 왠지 밖이 살짝 어둡달까, 슬슬 날이 저어가는 느낌이다.


놀란 리아는 재빨리 시계마법을 발동했다.


그렇게 확인한 현재 시간은 저녁 4시. 부모님이 나간 6시부터 바로 시작했으니 대략 10시간을 이 일에 보냈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저녁 먹을 즘에는 모두가 돌아온다. 그전에 현장을 은폐해야만 했다.


조금 전 위기보다도 더욱 진지해진 리아는 굳은 얼굴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옷과 속옷을 갈아입고, 이불까지 화장실로 가지고 가 세탁하여 모든 증거를 말소하여 아무 일도 없었던 마냥 나머지 뒷정리까지 했다.



“이거면 들키지 않겠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리아.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쿡쿡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초조했던 리아는······ 빗자루를 잡았다.



“그래. 청소야. 청소! 여긴 서양처럼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방식이잖아? 다들 몸이 튼튼해서 그다지 먼지를 신경 쓰질 않지만, 그렇다고 좋을 리도 없으니 부모님을 위해서 내가 나서야겠지?”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길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리아는 슬금슬금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에이브안처럼 한 방에 바람으로 끝내버리고 싶다는 부러움을 품은 채.


하지만 보람 찬 하루였기에 리아의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렴.”


필리아에게 활기차게 인사를 건넨 리아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인근 숲을 향했다.


이제는 나름 마법도 쓸 수 있고, 큰 말썽도 일으키지 않다 보니 무기한 진입이 금지됐던 것도 풀리게 됐다.


‘뭐······ 얌전히 있던 건 아니지만.’


지난 ‘펑’ 사건 때 웬일로 청소하는 딸을 보고 의혹의 눈초리――특히 필리아가――를 받긴 했지만 들키진 않았었다.


그래서 조금 대담해질 수 있었고 최근 매일 그 방 침대에 누워 마력레벨을 올리는 일에만 전념했다.


밖은 한 발자국도 나가질 않고······


그랬다. 애당초 나가질 않고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만 있었는데 어찌 말썽을 부리겠는가. 말썽부릴 수 있다면 그게 더 굉장하다.


자신은 다행히도 그런 굉장한 수준은 아니었고, 이젠 철이 좀 들었다며 숲으로 다시 갈 수도 있게 됐다.


다만······ 뭔가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다.



“으음······ 왠지 농담이 아니라 진짜 다들 날 말썽꾸러기로 보는 듯하지? 뭐, 아무렴 어때. 이득만 있었는데.”


숲으로 갈 수 있게 된 것도 그렇지만, 마력레벨도 그러했다.


마력량이 증가한 것도 증가한 건데, 여러 부문에서 검증을 할 수 있었다.


우선 에이브안의 말대로 마력모으기는 마력친화력을 올리는 작업인지, 안정이 된 이후 정신이 들고 보면 빨아들인 마력의 대부분은 사라졌다.


최근엔 마력에 더욱 민감해진 듯해 인식하기도 쉬워져 그 차이가 잘 보였다. 덕분에 아주 미세하게 땀처럼 배출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배출된 마력은 순식간에 자연 상태의 마력으로 변하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재생 에너지인가 하는 것처럼 계속 순환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어려운 건 잘 모르겠네. 그 외에는 안정화도 제법 빨라졌고, 가끔 루데릭과 잭 아저씨에게 가서 훈련받는 정도인가······”

“내가 뭐?”

“우왓?! 깜짝아.”


정말 언제 다가온 건지 루데릭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노, 놀랬잖아. 말이라도 좀 해주라고.”

“말해도 놀랄 거잖아.”

“뭐······ 그럴지도.”


자신 없는 대답에 루데릭은 파안대소하더니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기나 하자, 리아. 아 참, 오늘도 가는 거 맞지?”

“어어.”


이제는 이스피리아가 아닌 애칭으로 부르게 된 루데릭. 처음에는 어색하게 부르거나 얼굴을 돌려 흐뭇했었는데 어느덧 익숙하게 됐다.


반대로 이 모습이 적응이 안 됐던 리아는 얼떨떨하게 대답하고는 앞장서는 루데릭을 따라갔다.



“저기, 루데릭?”

“어. 왜?”

“매번 같이 가주는 건 고마운데 진짜 괜찮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그래도······”

“어차피 나도 훈련하니까 됐어. 그리고 너 혼자 가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게 더 신경 쓰여.”

“어! 그거! 왠지 다들 날 말썽꾸러기로 보는 듯한데, 나 무슨 이상한 일 한 적 있었어?”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돼?”

“좀 알려주라. 응? 궁금하단 말이야.”


고민이 많아 보였던 루데릭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아······ 처음 보는 게 있으면 한참을 멍때리고 있지, 힘들면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서 자지를 않나. 하나에 꽂히면 그거밖에 안 보이는지 도랑이 있든 없든 돌진하지. 진짜 지금이야 하는 말인데 보는 사람이 더 위태한 기분이 들더라.”


아마 전생을 떠올리기 전의 자신을 말하는 것이겠지. 솔직히 아무런 기억도 안 나지만.


“응? 근데 루데릭이 그걸 어떻게 알아?”

“윽······”

“······아! 혹시 나 따라와 준 거야?”

“아, 아니야! 어, 어쩌다 보니 보게 된 거야.”


생각해보면 건강하지도 않은 그때의 자신이 혼자 숲에 갔었다는 게 의아했는데, 루데릭 말고도 다른 어른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양이다.


리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마워, 루데릭. 지켜봐 줘서······”

“어쩌다 봤다니까.”


쌀쌀맞게 대꾸한 루데릭은 픽 돌아 말도 없이 걸었다.


저 행동이 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임을 알아본 리아는 웃음을 흘리고는 조용히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걷고 있으니 공터에 금방 도착했다.


루데릭은 훈련 때 쓰던 진검을 잭에게 받게 되었는지 평소에도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익숙하게 검집을 풀러 근처에 놔두고는 바로 검을 휘둘렀다.


빠르게 내려쳐지는 검. 이전보다 제법 형태가 갖춰진 듯하다.


자연스러운 동작들은 검을 잘 모르는 리아가 보기에도 상당한 훈련량을 통해 일궈낸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조금 더 지켜봤던 리아는 슬슬 자신도 일과를 시작하자며 짐을 풀고 발걸음을 돌렸다.


향하는 곳은 제법 습기를 머금었을 것만 같은 그늘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리아는 약초를 찾았다. 이것이 전생을 떠올리기 전에도 숲에 오면 했었던 첫 일과였다.


약초에 대해서는 박식한 에이브안에게 배워둬 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많은 수를 구분할 수는 있게 됐다.


‘이상하게 모종은 봐도 봐도 모르겠던데 말이야.’


설마 농부로선 실격이 아닌가.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리아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어 떨쳐내고 약초 채집에나 신경을 쏟았다.


묵묵히 돌아다니며 약초를 발견하면 채집법에 따라 조심히 따고, 간혹 산나물을 발견하면 그것도 땄다.


그러기를 수십 분째.


들고 온 바구니가 제법 수북해졌을 때, 리아의 눈에 익숙한 풀이 들어왔다.


그리운 마음이 들었던 리아는 곧장 그 풀 앞에 쪼그려 앉아 살펴봤다.


채집은 하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산나물로 알고 있었던 이 풀은 그냥 ‘잡초’였으니.


사실 이 잡초 말고도 이전에 채집해 온 것들은 거의 다 잡초로, 개 중에는 독초, 독버섯들도 드물지 않게 섞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날것은 먹지 않도록 배워왔기에 입에 대지 않았지만.


저어어어엉말 가끔 산딸기만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가족들은 단지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에만 의의를 둬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었다.



“난감해하지 않고 기뻐해 주신 건 정말 고맙지만······”


왠지 허탈해진 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데릭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루데릭은 여전히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리아는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요샌 자신의 전용석이 된 바위에 천을 깔고 앉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일과인 마력레벨 올리기를 시작했다.


듣자 하니 역시나 마력을 모을 때는 보통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을 안전한 장소에서 한다고 했다.


이유는 위험해서인데, 어딘가 무협영화에 나오는 주화입마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여기도 안정화되지 않은 마력이 제어를 잃는다면 크게 다치고.


하지만 이 공터는 벌레를 본 적이 없는데다 옆에는 루데릭이 있다.


뭔가가 다가온다면 그가 막아줄 테니 리아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마력을 빨아들였다.

다만 너무 오래 걸리면 아무래도 미안하니 적당히 2시간 안에 안정시킬 수 있는 양으로 제한했다.


잠시 머리를 비우고 있으니 마력이 안정되는 걸 느낀다.


체감상 짧은 기분이 들었지만 눈을 뜬 리아는 시간부터 확인해 봤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현재 시간을 보니 조금 초과했지만, 얼추 예정대로 2시간쯤 걸렸다.


‘잭 아저씨나 할아버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이제 1/3······ 아니, 한 1/4쯤은 되려나?’



“다음번엔 조금만 더 늘려도 될 거 같네.”


그리 말한 리아는 주위를 살펴봤다.


루데릭은 아직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눈 감기 전과 달리 움직이거나 뛰기도 하면서 허공을 벴다.


그 모습을 조금 구경하다가 리아는 그를 불렀다.



“루데릭!”


루데릭은 땀방울을 날리며 곧장 휘두르던 것을 멈췄다.



“이제 다 끝났냐?”

“응. 잠시 쉬기로 하고 밥 먹자!”

“그래.”


아까 내려둔 검집을 주워 검을 넣은 루데릭은 수건을 챙겨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그리고 바로 청결마법을 사용했다.


주르륵――


이제는 익숙한 광경을 보던 리아는 물었다.



“저기, 루데릭. 몸에는 왜 안 쓰는 거야?”

“뭐? 내, 냄새났었냐?”

“아니. 전혀 안······ 나진 않았는데, 땀이 식으면 좀 찝찝하지 않나 해서.”


물기가 완전히 다 빠진 수건을 접은 루데릭은 충격을 받은 듯 띵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 나긴 한다는 거군. 에이, 됐어! 몸에 쓰면 땀이 신발로 모여 더 찝찝해져. 빠져나가는 데도 오래 걸리고. 신발을 벗고 하는 게 아니라면 모를까 귀찮잖아?”

“어, 그 정도라면 그냥 한번 벗는 게 낫지―― 아, 아니야! 루데릭이 냄새나서 그런 게!”

“됐다고 했지? 냄새냄새 거리지마.”

“뭐야, 루데릭이 먼저―― 아, 아니. 밥. 그래 밥이나 먹자!”


째려보며 성질을 냈지만 루데릭은 멀찌감치 떨어져 신발을 벗고 땀을 흘려보낸 다음에야 돌아왔다.


미소 지은 리아는 풀어 놓은 짐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은 필리아가 만들어주는 것으로 맛은 보장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식어 그 맛이 떨어졌다.


그래서 리아는 마법을 썼다.


이미지는 밥솥. 거기에 도시락을 넣는다는 느낌이다. 효과는 확실해서 제법 자주 애용하는 마법이다.


그리고······ 밥솥마법이라 명명하여 에이브안에게도 알려주러 갔다가 창피를 당한 일도 있었다.


왜?


에이브안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식은 차를 데우는 데에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찾아간 당일에도 잘난 척 떠드는 와중 눈앞에서 쓰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물론 각자의 이미지에 따라 효과는 비슷해도 전혀 다른 마법일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건방지게 할아버지를 가르치려 했다는 창피함이 앞섰다.


흑역사를 떠올린 리아는 침울하게 루데릭에게 도시락 건네주고 본인 것도 데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숟가락 먹자마자······ 침울했다는 사실은 잊었다.



“으으~~ 잘 먹었다.”

“어. 진짜 잘 먹더라.”

“응?”

“아냐. 통이나 줘 닦게.”


빈 통을 받아 간 루데릭은 몸을 씻을 때와 마찬가지로 물을 만들어 적시고 청결마법으로 흘려보내는 것으로 이물질을 닦아냈다.


리아는 포만감이 느껴지는 배를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다가 돌려주는 빈 통을 바구니에 넣었다. 약초와 산나물이 들어있긴 했지만 무겁진 않아 상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래?”

“으음.”


보통 조금 더 훈련하다 돌아가는 게 일상이지만, 오늘은 숲속을 조금 탐험해보고 싶은 기분이다.


호수 쪽과는 정반대 편인 이곳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했으니 둘이서라도 괜찮겠지.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말라는 주의가 잠깐 떠오르기도 했으나······ 이미 의견은 기울었다.


리아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루데릭에게 조르기로 했다.



“저기, 루데릭? 조금만 안쪽을 둘러봐도 되지 않을까나~?”

“뭐? 안쪽은 위험하다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이 정도로 리아를 막을 순 없었다. 오히려 반대당하니 반발심만 강해진다.


‘좋아. 결정했어.’


리아는 난색을 보이는 루데릭을 한 방에 끝장내기로 했다.


그래서 거침없이 자신의 필살기―― ‘고개를 숙이고 애처롭게 위로 쳐다보기’를 시전했다.


효과는 강력했다.


루데릭은 즉시 얼굴을 돌리더니 알겠다며 마음을 돌렸다.


기분이 좋아진 리아는 재빨리 짐을 싸 루데릭의 손을 잡고 숲 안쪽을 나아갔다. 원래의 목적이기도 했던 산나물과 약초도 잊지 않고 지나가다 보이면 채집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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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44 우주귀선
    작성일
    22.05.20 12:54
    No. 1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작 추천 남기고 가요 ^^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5 Lastia
    작성일
    22.06.16 05:00
    No. 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변진섭
    작성일
    22.08.12 21:35
    No. 3

    잘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사는삶
    작성일
    22.10.13 06:08
    No. 4

    이전화와 내용이 안 이어지는것 같은데... 뭔가 생략된 부분이나 제가 놓친게 있는걸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사는삶
    작성일
    22.10.13 06:10
    No. 5

    전화 끝부분에서는 마수 정찰을 위해 준비를 끝마치고 갈준비를 했는데 이번화는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시작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Lastia
    작성일
    22.10.13 11:12
    No. 6

    헉... 한 화를 통 째로 건너뛰다니...

    지적받고 지금 너무 소름 돋았습니다. 빠르게 수정하여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Lastia
    작성일
    22.10.13 15:06
    No. 7

    지금 막 재수정하였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워낙 정신없던 터라 놓친지도 몰랐네요.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는데 빠뜨려서 얼마나 놀랐는지...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Lastia
    작성일
    22.10.13 15:07
    No. 8

    아. 그리고 유입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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