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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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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6.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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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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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24

DUMMY

꺅꺅거리는 리아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밖으로 나가봤다.


그리고 보게 됐다. 흑발에 장신인 녀석, 찬크에르를······


그것이 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리아와 같이 서 있는 녀석을 처음 봤을 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느낌밖에 없었다.


정말 너무 놀랐었다.


그 탓에 리아에게도 대충 돌아간다는 말만을 하고, 저놈이 누구인지 묻기 위해 서둘러 선생님에게 찾아갔다.


저런 놈을 리아의 곁에 놔두기는 위태로웠으나, 찬크에르는 리아의 말에 얌전히 따르는 모양새였기에 지금 당장 위험하진 않으리라 판단했다.


도착한 잭의 집에는 에이브안도 있었는데, 둘이서 뭔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촌장님이 계시는 건 마침 잘된 일이었다. 리아를 매우 아끼시는 촌장님이 저놈의 정체를 파악하시고 있을 터.


대화를 끊기에는 죄송스러웠지만, 도중에 끼어들어 찬크에르에 관해 물었다.


둘은 이쪽을 한 번 보고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라며 덧붙이고는 설명해줬다.


자신을 신용해줘서 말해준 것은 고마웠으나······ 들은 내용은 믿기 힘들었다. 처음엔 미덥지 않게 여겨서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도 싶었다.


그야 사람이 드래곤이라니.


그것도 용왕······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느꼈던 소름이 돋는 감각은 그런 생각을 부정하기에 충분했다.


잭에게도 찬크에르를 봤을 때의 느낌을 설명하니, 좋은 감각을 가졌다고 칭찬해줬다.


그러나 듣고 싶은 건, 왜 저런 놈이 우리 마을에 있냐는 것이었다.


재차 물으니 어려운 얼굴을 하던 에이브안은 자세하게 말할 순 없지만, 앞으로 리아와 같이 산다고 귀띔해줬다.


리아의 집에서 같이 산다고?


의문이 생겼지만, 촌장님이 하는 말씀이다. 허튼짓을 할 거 같은 사람이면 반드시 막을 것이다. 리아의 부모님 또한 같이 살기로 허락한 거니 괜찮겠지.


분명 문제는 없을 거라 여겨졌지만······ 뭔가가 걸렸다.


그건 바로 리아의 집에서 산다고 하는 게 아니라, 리아와 같이 산다고 한 것이었다.


이 말은 비슷하면서도 그 의미는 확실히 달랐다. 이래서야 마치 결혼한 부부를 말하는 듯했으니 말이다.


저런 놈을 에이브안과 리아의 부모님들이 인정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 한구석으로는 헤실헤실 바보 같이 웃던 리아, 그리고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호의적으로 그런 리아를 보던 찬크에르가 떠올랐다.


그런데다가 결정타를 날리는 듯이 찬크에르가 아이리스의 알을 낳은 자라고 듣게 됐다.


아이리스는 잭이 드래곤으로 보인다고 하여 정체를 알고는 있었으나, 설마 남자인 그놈이 낳은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세한 설명은 못 들었지만 대충 어떤 상황인지 상상이 갔다.


알을 찾으러 온 그놈과 이미 부화한 아이리스의 엄마 노릇을 하는 리아.


둘이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리아의 성격상 절대 그놈을 그냥 보내지 않을 거다.


그 결과가 같이 사는 형태가 된 것이고, 아마······ 둘 다 그리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리아는 이미 마음이 활짝 열리다 못해,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호감이 흘러넘쳤다.


도대체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에게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생각이 무색하게,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바로 당일이었다.


대충 설명을 듣고 돌아가던 도중 찬크에르가 먼저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안 그래도 원하던 일.


발길을 돌려 그대로 찬크에르를 데리고 마을 외곽으로 갔다. 거기라면 리아가 올 리도 없고, 다른 방해꾼도 없을 최적의 장소였다.


찬크에르는 이렇다 할 별다른 반응도 없이 얌전히 뒤를 따라갔다.


꼬마라고 무시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표정은 알아보기도 힘든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랬다면 따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진의는 알 도리가 없었고,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넌 누구냐고.


용왕이라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터. 그러나 꽤나 어린 자신의 건방진 말에도 찬크에르는 표정의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찬크에르레이. 사람들이 암룡왕이라 부르는 자라고······


녀석의 자기소개는 촌장님과 선생님에게도 들었던지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암룡왕이라는 용왕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거짓은 아닐 거다. 별거 없는 이 마을에서 거짓말까지 해서 얻을 만한 건 없으니. 오히려 정신 나간 자로 경계만 사겠지.



“그래서. 왜 리아 옆에 있으려고 하는 거야? 아이리스 때문이야?”

“흠. 리아의 조부, 촌장에게 들었나.”

“됐으니까, 대답이나 해. 왜 리아인데?”

“리아이기 때문이지. 내가 리아의 곁에 있으려는 건 아이리스······ 내 아이 때문이기도 하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리아, 그녀의 곁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장본인인 리아가 싫다고 해도?”


말을 하면서도 해롱해롱하던 리아를 떠올라 그런 일은 없으리라 쉽게 예상됐다. 그러니까 모두가 이놈과의 관계를 허락했을 거다.


하지만 구태여 물었었다. 약간 떠볼 심산으로.



“그녀가 싫다고 하면 허락이 되는 한 멀리서라도 지켜볼 뿐이다. 그 외의 다른 선택지는 지금의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의 고민도 없는 이 말에 흠칫하면서도 재차 도발하듯 물었다.



“리아는 아직 어리다고? 마음이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아. 좀 더 시간이 지나 성장한 뒤 너나 아이리스를 내치고 다른 남자와 살지도 몰라?”


물론 이놈은 모르겠지만, 아이리스를 내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거다.


리아는 이상한 데서 멍청하게 고집이 세니까.


본인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리스를 멀리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게 자신이 알고 있는 리아였다.


그리고――



“아니. 나에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 아이리스에겐 결단코 그러한 일은 도래하지 않는다.”

“······.”


일부러 리아의 험담처럼 하는 말에도 이놈, 찬크에르는 흔들림 없이 단언했다.


생각하던 것과 똑같이 말한 찬크에르에게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야 오랫동안 봐왔기에 알 수 있지만, 어째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리아를 그토록 신뢰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무엇 때문에 리아를 이토록 믿는 거냐고.



“나도 뭐라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기는 처음이니. 하지만 리아······ 그녀는 반드시 그러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마음을 뺏겼다. 멋지고 아름답기까지 한 리아에게. 눈이 부시다 해도 좋다. 난 이토록 굉장한 존재를 본 적이 없었다. 혹 내가 모를 뿐, 리아만치 훌륭한 인물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난 마음을 뺏긴 게 리아라서 마음속 깊이 안도하고, 만족하고 있다. 스스로 나 자신에게 칭찬을――”


“――그만. 내가 잘못했다. 그만 좀 해라.”


자랑하고 싶었나, 찬크에르는 남의 눈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희미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정말 남이 다 부끄러워지는 대사를 술술 읊어댈 때는 녀석의 머리가 어떻게 됐나 싶었었다.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달리 없다.


부모님에게 많이 시달려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끝이 안 나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앞으로 찬크에르에게는 리아에 대한 화제 자체를 꺼내지 않으리라 마음먹기도 했다.


의심하던 자신이 바보 같아졌었다. 정말 말 그대로 리아 곁에 있고 싶을 뿐, 다른 의도 따윈 존재하지도 않을 거다.


‘그래. 녀석은 무표정이라 잘 몰랐지만, 그냥 서로 홀딱 반한 사이였었지.’


오죽했으면 아이리스가 독립하고 나가도 신경 쓰긴커녕 오히려 쌍수 들고 반기진 않을까 싶었다.


이제 확인할 것도 더 없고 거기서 끝을 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대로 지나치질 못하고 물었다. 더 이상 리아에 대한 화제는 정말 꺼내기 싫었지만.



“근데 리아는 이제 8살이라고? 그 점은 괜찮은 거야?”


말을 들은 찬크에르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여전히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곤란한 기색이라는 건 느껴져 조금 안도했다. 어린아이인 리아에게 말도 안 되는 욕구를 품는 그런 놈은 아니었으니.



“필리아에게도 말했었지만, 나는 인간의 성장을 잘 몰랐다. 리아는 단순히 작은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시간 따윈 무의미하다. 리아가 어리기에 문제가 된다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면 될뿐이다.”

“잠깐, 영원히······ 산다고?”

“그렇다. 우리는 그러하게 창조되어―― 태어났다.”


분명 용왕이니 오래 살 것이긴 했다.


그러나 영원히 산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릴 들었다.


다만, 죽임을 당할 수는 있다고 덧붙인 찬크에르를 보자 놀라움은 한순간에 잊혔다.


당시 찬크에르가 보인 건 극도의 슬픔.


거의 무표정인 녀석이 이때만큼은 그 감정을 확연히 드러냈었다.


왜 그런 거지, 의문이 들었다가 한 가지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이 녀석은 영원히 살지만 리아는?


리아는 인간이다. 이 녀석과 영원히 살아간다는 일은 불가능할 거다.


한순간이지만 영원히 살아간다는 찬크에르가 리아가 죽고 나서 어떻게 지낼지가 조금 걱정됐다.


녀석을 걱정하는 나 자신이 싫긴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찬크에르는 너무나도 슬픈 분위기를 풍겼다. 죽을 수 있다고 말을 꺼낸 것도 마치 리아와 같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벌써 이렇게 걱정하는 건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서로 좋아하면서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나중에는 딴 사람과 만나 살 수도 있고.


그래도······ 당시엔 도저히 뭐라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수명은 찰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리아는 남들보다 조금은 오래 살 것이다.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


침묵을 깨고 무겁게 입을 연 찬크에르. 그의 말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됐다.



“리아가 오래 살아? 왜? 네가 지켜줘서?”

“물론 리아에게 위험이 닥치면 내가 지킬 거다. 허나 아니다. 리아의 수명 자체가 조금 길어진다는 뜻이다.”

“수명이 길어진다고······? 어떻게?”

“마력레벨―― 마력량이다.”


이어지는 설명으로는 마력량이 많아질수록 신체의 노화가 느리게 진행되어 수명이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마력은 소유자의 신체 곳곳을 강하게 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두뇌까지도 좋아지게 하는―― 말 그대로 신체의 모든 곳의 성능을 올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능은 아니어서 힘이 강해지는 것이 아닌,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쉽게 상처가 생기지 않는 수준이라고 한다. 머리도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력이 좀 좋아지는 정도이고.


여하튼 리아는 현재 마력레벨도 나름 높고, 능숙한 마력조작을 보면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에 수명의 증가는 확실할 거란다.


인간 중에서지만······


‘과연 용왕이긴 했지. 머릿속이 굉장한 지식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지.’


그에 호기심이 동해 더욱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면 인간, 사람이라는데 같은 거 아니야?”

“다르다. 사람은 너희 말고도 다른 존재들이 더 있다. 인간은 그중에 한 종일 뿐이다. 사람은 너희 같은 생김새를 한 종을 일컫는 말이지. 우리가 정한 게 아니지만.”

“――잠깐!”


크게 울리며 끼어든 목소리.


마을의 외진 곳이었기에 누군가 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당황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차고 있던 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자신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헛! 누구―― 초, 촌장님?!”


놀란 자신과 달리 찬크에르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했다. 그 모습을 보면 진즉에 알고 있었으리라.


스스로도 용왕과 비교하는 건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의 패배감에 저도 모르게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는 동안 다가온 에이브안은 찬크에르에게 물었다.



“이봐, 찬크에르. 그 말이 사실인 겐가?”

“사람은 여러 종이 있다는 것 말인가?”

“아니, 그게 아니야. 그것도 좀 궁금하긴 한데······ 그것보단 마력량이 오르면 수명이 증가한다는 소리 말일세.”

“사실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마력레벨 200 이상을 넘기면 조금 체감이 될 정도로 수명의 차이가 난다.”

“오오! 그 이상은?!”

“350쯤 넘어가기 시작하면 평범한 사람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지. 그리고······ 650쯤. 이때부터는 생물이라는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수명 따윈 존재하지 않지. 딱히 안 죽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 얘기는 정말이었나?!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건만 용왕이 보증해준다면 사실이겠지. 좋아. 리아를 오랫동안 보려면 앞으로 수련해야겠어. 내가 일찍 죽으면 그 아이는 슬퍼할 테니. 음, 그렇지만······”


갑자기 끼어든 에이브안은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찬크에르와 계속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뭐라 할 짬밥이 안 됐기에 얌전히 있었지만, 들리는 내용은 흥미로웠다.


마력레벨을 수치로 환산한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놀라고 있는 가운데, 혼자 중얼거리던 에이브안은 뭔가 신경이 쓰였던지 밝던 표정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찬크에르. 우리 리아는? 그만한 마력량이다. 마력레벨은 이미 봤을 테지? 어떠한가?”

“184다.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

“나는 어떤가?”

“음. 그대는 106이군.”

“그렇군······. 그래서? 자네가 보기에 리아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이 가능할 듯싶나?”

“아마 못해도 300 이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300인가······ 높군. 못해도 리아보다 5년은 더 살아있고 싶은데 쉽지 않겠어. ······아니, 어쩌면 리아니까 650 근처에 다다를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 아이는 언제나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던 아이였으니까.”

“불가능이라 할 순 없겠지. 모든 존재는 그곳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그대나 루데릭도 마찬가지지. 실제로도 몇몇은 가능했었다.”


거기서 말을 끊은 찬크에르는 무겁게 숨을 토했다.



“하지만······ 난 리아가 그곳에 도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건 무슨 뜻인가?”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영원히 산다는 건 그리 좋지만은 않다. 리아가 수명으로 죽는다고 생각하면 내가 슬프듯이, 리아도 분명 그대들이 먼저 죽는다면 슬픔에 잠길 테니.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마음 편할 날은 오지 않겠지.”


가라앉듯 말하는 찬크에르에게 자신은 물론, 에이브안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이쪽에 있어서는 너무나 현실감각이 없는 얘기지만, 찬크에르―― 용왕인 그는 실제로 영원히 살고, 살아왔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기에 무게감이 다른 것이다.


차갑고 무겁게 짓누르는 분위기가 이어질 때, 에이브안이 종식시키듯 가볍게 말했다.



“그럼 그때는 찬크에르······ 자네가 슬퍼하지 않도록 우리 리아를 곁에서 달래줄 것 아닌가?”


슬픈 기색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찬크에르는 눈을 번쩍 떴다.



“물론이다! 리아가 웃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핫! 용왕조차도 이리 마음을 두게 하다니. 역시 내 손녀야! 하하하······. ······찬크에르, 앞으로도 리아를 잘 부탁하네.”

“알았다. 내 모든 것을 다해 리아를 행복하게 하겠다.”

“크하하핫! 아직 어리기만 한 손녀를 벌써 시집보내는 기분을 느끼다니. 정말 세상일은 모르는 거군.”


한참을 기분 좋게 웃던 에이브안은 지금까지 말없이 보고 있던 자신에게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절대 누설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특히 리아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왜 그런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리아의 위험천만한 행동이 펼쳐져 망설임 없이 알았다고 했다.


찬크에르도 별다른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긴 대화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에이브안은 이걸로 그만 자리를 해산시켰다.


불만은 없다. 알아볼 것은 다 알아봤으니. 그저 마지막으로 찬크에르에게 한마디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리아가 다음날부터 쫓아오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랐으나, 전날 찬크에르에게 잘난 척 말한 것이 있어 조금 창피해 도망쳤다.


며칠이 이어진 도주극은 바보 같은 리아가 화려하게 날아 내동댕이쳐지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급하게 멈춰 세우고 상처를 살폈으나, 찬크에르의 말대로 마력레벨이 높으면 잘 다치지 않는지 상처는 없어 보였다.


다만 그 망할 놈이 한마디 한 걸 그대로 리아에게 불어버렸다는 것이 아닌가.


루데릭은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일단 중요한 건 리아였다. 넘어지면서 옷이 제법 많이 찢어져 속옷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다행히 등 쪽이라 리아는 모르고 있지만, 알면 야단법석 떨게 뻔했다.


‘꼬맹이 주제에 이런 부분에서는 묘하게 부끄럼을 많이 타니까.’


정말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게 할 겸, 리아가 눈치 못 채게 안아 들어 집으로 데려갔다.


도중에 리아가 기습뽀뽀를 하는 일이 있었지만······ 별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리아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찬크에르.


녀석은 바로 리아의 옷 상태를 알아보고 험악해져서는 따지고 들었다.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격해지는지 조금 표정의 변화가 있어 알아볼 만했다.


그리고 이 용왕은 말뿐이 아니라 진짜 리아에게 푹 빠진 듯했다. 옷이 찢어진 것부터 시작해서, 왜 넘어지는 리아를 받아내지 못했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나중에 가서는 리아 대신 넘어져서라도 받아냈어야 했으며, 더 나아가 넘어지는 것도 못 알아챈 거냐며 비웃기까지 했다.


살짝 보였던 찬크에르의 한심하다는 표정에 열불이 나 따지기도 했으나······ 곧 리아에게 말려졌다.


‘나는 거의 말도 못 했었는데······’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제 큰소리친 것도 있어서 얌전히 돌아가기로 했다.


이후로 찬크에르와는······ 꽤 친근하게 지냈다.


의외였지만 녀석은 뒤끝이 없는 것이다. 그때의 일은 언급도 없었고, 생각보단 대하기도 편하였다.


마침 대련 상대로도 부족함이 없다 못해, 마음껏 덤벼들어도 됐기에 자주 훈련에 따라오게 했다.


딱히 싫어하는 일도 없이 훈련에 응해준 찬크에르는 역시나 이름값을 하는지, 전력으로 덤볐는데도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튕겨내며 상대했다. 아무것도 들지도 않고 맨손으로.


방어만 한 건 아니었다. 공격도 심심치 않게 했는데, 가끔 들어오는 반격은 날카롭고 예리해 첨엔 맞았는지도 몰랐다.


검술이나 다른 싸우는 방법들도 물어봤었는데, 너무나 익숙한 모습과는 달리 찬크에르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긴커녕 애당초 인간으로 변한 것도 처음이고, 싸우는 것도 처음이었단 놀라운 소리나 듣게 됐다.


그런 녀석에게 손도 못 써 기분은 나빴지만, 힘 조절을 해줘서 상처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해 인정하긴 싫었지만, 찬크에르와 하는 훈련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눈치챌 새도 없이 들어오는 마법이나――마법으로 만든 눈덩이―― 찔러오는 손을 피하느라, 마력감지나 감각이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못해도 4배 이상은 좋아지지 않았을까······


자신뿐만 아니라 에이브안도 훈련과 질문 때문인지 자주 찬크에르를 데려갔다. 그리고 리아와 만나지 않을 때는 혼자 자주 숲 쪽으로 들어가 훈련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선생님도 가끔 리아의 집으로 찾아가 신체와 마력에 대한 관계를 자주 질문하고 가셨지.’


그렇게 꽤 바쁘게 지내는 찬크에르가 마을에 잘 적응은 할지 걱정했다. 정말 눈곱만큼이지만.


그러나 그건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찬크에르는 이곳에서는 이질적인 옷과 딱딱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없이 마을 어른들과 두루 잘 지냈다.


아이리스를 낳은 부모라는 효과가 컸는지, 아니면 리아가 헤벌쭉거리기 때문인지 거부감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친근해서 용왕이라고 알려주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리아와 함께 밭일까지도 도왔다. 그래봤자 잡초뽑기지만.


찬크에르는 당연히 옷과 외모 때문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의 귀족이 어설프게 밭일하는 모습으로만 비칠 뿐이었다.


그러니 비웃을 준비를 했다. 전혀 해본 적이 없을 녀석의 실패를 기대하며.


딱 모종을 뽑았을 때를 놓치지 않고 한껏 웃어줄 셈이었다.


그런데······ 용왕을 너무 만만히 봤다.


기대를 배반하고 찬크에르는 몇 번 리아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곧잘 했다. 모종은 건들지도 않았다.


‘옷과 손이 더러워지는 걸 신경 쓰는 모양새도 없었지. 나중에는 마법으로 잡초를 다 뽑아 모아놓기도 했고.’


넓은 지역의 밭에서 동시에 뽑혀 올라오는 잡초는 놀라운 걸 넘어 굉장했었다. 자신말고도 지켜보던 모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다만 너무 많이 했다.


일이 준다는 건 분명 반길만한 소식이고, 찬크에르도 사람들을 도와줄 요량이었을 거다. 하지만 기세가 굉장했다. 정말 마을 사람들의 모든 일을 빼앗을 속도로 잡초들을 몽땅 뽑아냈다.


결국 지나던 필리아가 이 광경을 목격했고, 둘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신장의 차이가 크게 나는 둘이 손을 잡고 혼나는 그 모습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워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워 땅까지 치며 웃어 재꼈다.


······그리고 다음에 녀석과 한 훈련에선 상당히 공격하는 수가 늘어났다.


여전히 상처는 하나도 안 났고 전혀 아프지도 않긴 했지만, 쪼잔한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나날을 보내며 몇 달이 지나니 찬크에르는 처음 봤을 때와는 느낌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어딘가 다가가기 편해졌다는 기분이랄까.


착각도 아닌지 리아와의 분위기는 점점 진짜 연인 같아 보였고, 점차 둘이 사이좋게 외출하는 시간도 많이 늘어났다.


아이리스도 그걸 느꼈는지 둘 사이에서 빠져나와 자주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리아와 같이 훈련했던 인근 숲 공터에서 혼자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아이리스가 터벅터벅 맥없이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왜 그래 아이리스. 또 둘이서 볼썽사나운 짓 하고 있었어?”


묻는 말에 아이리스는 리아가 전용석이라고 말했던 바위에 마치 사람처럼 편안히 앉았다.


이제는 리아만치 커진 아이리스가 저리 앉으니 상당히 이색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덩치만 커졌을 뿐이다, 아이리스가 달라진 건 아니기에 자신도 그렇고, 주민들도 여전히 무서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해주고 있다.


그렇게 땀에 젖은 옷의 목깃을 잡고 펄럭이며 다가갔더니, 아이리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법으로 땅에 글씨를 썼다.



“응? 어디보자······”


최근 아이리스와의 의사소통은 이런 식이었다. 이젠 리아가 대신 전해주거나 스스로 몸짓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를 공용문자를 이처럼 바닥에 써서 의사를 주고받게 됐다.


이조차도 처음엔 재주 좋게 나뭇가지를 잡고 쓰거나, 리아를 몇 번 보더니 바람으로 땅을 파서 썼었는데, 지금은 아예 땅을 조절해서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똑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저 고민이 많아 보이는 모습은 드래곤만 아니면 영락없이 고생 많은 인간이었다. 아직 생후 3년 차밖에 안 되는데······


조금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쓰여 있는 글을 봤다.


훌륭한 글씨체였다. 자신은 물론이고, 달필인 에이브안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내용으로, 아이리스가 너무 불쌍했다.


고통이 가득해 보이는 글귀에는 더 이상 리아와 찬크에르, 두 사람의 꼬락서니를 눈 뜨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제 남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지, 집이든 밖에서건 어딜 가나 애정행각에 가까운 말들을 주고받는 건 기본이라고 한다.


특히 찬크에르는 뭐만 하면 엄마―― 리아를 중심으로 엮어 이젠 귀찮다고······


저 글을 읽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응. 이해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아. 우리 부모님도 집안에서 자주 그러고 있는데 보기 고통스럽거든.”


부부 사이가 좋은 건 다행이다. 하지만 닭살이 돋을 정도로 달라붙어 징그러운 말들을 주고받고 있으면 그 분위기와 더불어 참을 수 없다.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있자니, 다시 한숨을 쉰 아이리스가 내용을 지우고 다른 글을 적었다.


――이제는 안쓰럽다 못해 안타까워졌다.


그렇게 느낀 것도 잠시. 다시 쓴 글에 하마터면 아이리스를 끌어안아 줄 뻔했다.


글에는 두 사람이 보는 사람――드래곤이지만――도 좀 생각해 달라는 불만이 가득하였는데, 두 사람―― 특히, 엄마가 행복해하니 차마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애처로움이 담겨있던 거다.


정말 반성 되었다. 자신은 즉시 부모님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멈추게 하지만, 이 아이는 엄마의 마음마저 고려해 본인이 참는 것이니.


너무 심성이 깊고 착한 아이다. 이리도 어질고 똑똑한 드래곤이 또 있을까.


울컥해지는 마음으로 고생한다며 등을 두들겨 주고 위로해줬다.


그러다 격해져 부모님의 눈꼴 신 모습들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아이리스도 여기에 호응해 서로 이것저것 맞장구쳤다.


이건 어떻고, 저건 또 어떻고.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말과 글로 하는 의사소통이었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날이 저물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진 대화를 간신히 마쳤을 때는 어깨동무를 하고 주먹을 맞부딪히고 있었다.


사람과 드래곤, 종족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통한다면······


‘그 찬크에르와 말썽꾸러기 리아에게서 이렇게 좋은 아이로 성장할 줄은······’


지금 생각해봐도 감개무량하다. 그 녀석이 낳고, 리아가 키웠음에도 이리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이.


······리아도 그렇고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그러한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날 이후로도 마음의 벗이자, 친구인 아이리스는 정기적으로 이 장소를 찾아왔다.


그런데 그날만은 유독 달랐다.


겨울도 되어 밭일도 뜸해진 때에 찾아온 아이리스는 평소와는 다르게 상당히 진지했었다. 추운 날에도 개의치 않고 언제나 앉는 바위에 철퍽 앉더니 한참을 조용히 생각에만 잠겼었다.


친구의 고민 가득한 표정에 두 사람이 심하게 볼썽사나운 짓을 했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듯했다.



“무슨 일이야? 아이리스.”


물어도 반응이 없었던 아이리스는 그대로 좀 더 있다가 이윽고 마법으로 조금 쌓인 눈을 치웠다.


그리고 드러난 땅에 글을 써서 알렸다.


――리아, 찬크에르와 함께 봄에 이곳을 떠난다고.



“뭐? 갑자기 왜?!”


고민하던 아이리스는 되도록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글을 적었다.


내용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리아는 뭔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잠시 떠난다고 한다.


리아가 엉뚱한 행동을 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마을을 떠난다는 소린 하지 않았기에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셋이 함께 나가 사는 거라면 아쉽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런 건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니.


거기에 떠난다고 하더라도 찬크에르가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녀석은 리아에게 최선을 다할 건 분명했다. 여태까지의 찬크에르를 보면 그 점은 믿을 만했다. 꼴 보긴 싫지만.


말할 생각은 없지만 신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일이라는 전제를 깔았다고 하나, 리아는 자신에게 위험이 올 수 있어서 피난을 떠난다는 것이다.


마을을 배려하는 모습은 리아답긴 했으나, 너무 극단적이다.



“왜 그 녀석만 한 강자가 나오고, 또 공격은 왜 하는데?”


이게 가장 이해가 안 됐다.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에게 아이리스는 조금 깊게 숨을 내쉬고 재차 글을 써줬다.


그 내용에 눈을 크게 떴다.


무려 첫 만남 때 찬크에르가 리아를 공격해서 크게 다치게 했다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다친 리아를 안고 마을로 온 찬크에르의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설마 그게 본인이 공격해서 다치게 한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 했다.


순간 분노가 일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찬크에르가 리아를 공격하는 모습이 조금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리아에게 지극정성인 녀석이다. 지금은 그냥 부부인 둘의 모습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추측해볼 수도 없었다.


결국 어떻게 둘 사이가 지금과 같이 됐는지는 오리무중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리아는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염려한다는 것이다.


언뜻 리아는 멍청해 보이지만 바보는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어느 부분에서 확신에 가까운 것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리아는 말리기가 힘들다. 워낙 고집이 센데다, 가족이 관련되어 있으면 한 번 정한 일은 도통 바꾸질 않았었으니.


이번에도 마음을 바꿀 일은 없겠지.



“리아의 생일이 지나서 간다고 했지? 3달도 안 남았는데 갑작스럽네. 에휴······. 여전히 행동력 하나는 빠르구나. 아닌가? 어쩌면 그전부터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한숨을 쉬고 아이리스의 의견도 물었다.


아이리스는 마을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이곳에 남기에는 둘만 보내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다가 요즘 찬크에르가 리아에게 대하는 행동이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다고 한다.


겉으로 볼 때는 리아에게 너무 잘 대하고 아껴주는데도 자꾸 마음에 걸린다나?


솔직히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약간 짚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아이리스에게 설명하긴 좀 어려워서 넘어갔다.


걱정되긴 하지만 그 녀석은 리아가 슬퍼할 만한 짓은 하지 않겠지.


아마············


그 생각을 하자마자 리아의 걱정이 대폭 증가했다.



“아이리스!”


급격히 증가한 걱정에 자신도 모르게 아이리스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둘이 있을 때 잘 감시하라며 열변을 토했다.


아이리스는 얼떨떨한 모습이면서도, 분노하듯 내뱉는 이쪽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지나친 걱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상대는 그 리아다.


사람에게 달라붙기 좋아하고, 몇 번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아마 잘 때도 자기가 먼저 달라붙겠지.



“아아······ 걱정된다. 내 동생에게 손을 대면 반드시 없애버릴 거야.”


그러한 걱정과 함께 아이리스와의 정기적 모임은 계속되어, 리아들이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때부터는 둘의 볼썽사나운 짓거리에 대한 주제에서, 리아를 찬크에르의 마수에서 지키기 위한 토론으로 바뀌었다.


아이리스는 정말로 머리가 좋아 어느새 걱정하던 것들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눴다. 하물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마수를 뻗칠 시기와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의견까지 물어올 정도였다.


정말 이런 내용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마치 실제로 체험한 듯 이야기는 매우 자세하고 구체적이었으니.


‘얼굴이 빨개질 지경이었지만, 너무나 듬직했지.’


그런 멋진 친구를 떠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떴다.



“모두! 정말 고마워요! 다녀오겠습니다!!”


내 여동생 같은―― 아니, 여동생인 리아가 마을을 떠난다. 떠나기 전까지 뜨겁게 의견을 주고받았던 회색빛의 친구도.


사람이 나는 일은 처음 봤지만, 찬크에르―― 저 녀석은 드래곤 중에서 최고라는 용왕이다.


어렸을 적 들었던 그 용왕이다.


무차별적으로 날뛰다 영웅에게 토벌당하는 그런 드래곤이 아닌, 세상의 위기일 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사람들을 구원해준다는 전설 속의 그 드래곤 말이다.


찬크에르는 그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놈인 것이다. 나는 것 정도야 대수롭지도 않다.


‘아마 어지간한 일은 다 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리아를 맡길 만한 것이지만······ 쯧.’


혀를 차는 사이 서서히 멀어지던 리아들의 속력이 높아진다.


아마······ 지금이 말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겠지.


하지만 그만뒀다. 들었던 손도 천천히 내렸다.



“역시 진심이구나.”


입을 꾹 다문 리아를 보고 있으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죽을 각오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도대체 뭘 할 것이기에 저렇게까지 각오하는지는 모른다. 절대 말해주질 않았으니.


‘무얼 하든 리아가 저리 마음먹은 것이라면 필시 평범한 건 아니겠지.’


걱정은 되지만 오빠라면 믿고 응원할 뿐이다. 저 굳은 결심이 흔들릴만한 짓거리를 할 수야 없다.


그러니 구태여 의연한 모습으로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 채.


더불어 시야에서 사라지는 리아들을 보면서 바랬다.


다들 건강하길.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늦었지만 다들 주말 기분 좋게 마무리하세용~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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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사는삶
    작성일
    22.10.14 01:35
    No. 1

    리아의 상상으로 두려워서 마을을 떠나게 될때 여기에 조금의 복선이나, 약간 더 개연성이 더해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막연한 두려움으로 떠난다는 부분에서 몰입이 잘 안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사는삶
    작성일
    22.10.14 01:38
    No. 2

    알을 찾으러 갈깨에도 약간의 억지스러움으로 찾아 나서게 되는데 지금도 그렇고... 예를 들어 뭔가 예지몽이라던지 이능에 의한 직감, 판타지스러운 무언가로 개연성이 더해졌더라면 억지스럼이 조금 덜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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