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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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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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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글자수 :
916,378

작성
24.02.1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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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12)

DUMMY

156화


콘체스터 성의 거대한 홀에 발 디딜 자리조차 없다.

홀 한가운데서 발야구를 해도 될 법한 널찍한 공간을, 하지운이 부른 적도 없는, 하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씨발... 신도림이냐... 아오... 인간들 땀내 때문에 코가 썩을 지경이다.”

“본체야, 약식으로 한다면서? 청첩장을 어디까지 뿌린 거냐? 얘들 다 네가 아는 애들이냐?”

“몰라, 이 자식아. 청첩장은 무슨. 내가 그딴 거 처만들 시간이 어딨어. 와... 근데 이것들은 진짜 다 누가 어디에서 동원해 온 거냐? 야, 영감들 어디 갔어? 당장 잡아 와.”


소피아의 경호를 위해 지근거리에 배치해 두었던 복제 인간들 중 하나가 짜증을 내며 홀을 빠져 나갔다.

얼마 후 롱그레이 옹을 비롯한 노인네 둘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복제 인간 십팔 호가 하지운에게로 다가왔다.


“영감, 이 인간들 다 뭐야? 설마 영감네 조직원들을 모조리 다 부른 거야, 밥 먹고 가라고? 거기다 애새끼들은 또 뭐야? 심부름하는 애들까지 다 불러온 거야?”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네 누이 혼사를 빌미로 네 눈도장 한번 받아 보겠다고 모여든 작자들이 아니냐. 우린 그저 소문만 내 준 것뿐이다.”

“이 영감탱이야, 그러니까 그 소문을 어디까지 냈냐고?”

“어디긴 어디야? 왕국 전체에 다 뿌렸지.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가신으로 쓸 만한 놈들을 모아 보라고. 이놈들 모두가 네 가신 후보들이다.”

“......”

“왜 그런 눈을 하는 게냐? 또 뭐가 언짢은 것이냐?”

“영감... 일을 이렇게 성의 없이 할 거야? 내 돈을 받는 게 싫은 거야? 더 사는 게 싫은 거야? 나는 계약 사항을 충실히 다 이행해 줬는데, 영감은 이딴 식으로 하겠다는 거야? 아니, 잠깐! 배후에 있던 사생아 놈이 죽었으니, 더 이상은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런 것이 아니다! 무슨 그런 무서운 착각을 하는 게냐?”

“요것들 봐라. 이 늙은이들이 살 만큼 살아서 죽음에 초연해졌다 이건가? 이 용감무쌍한 노인장들 좀 보소.”


롱그레이 영감과 함께 끌려온 튜롤드 브레비어 옹이 기겁을 하며 역정을 냈다.


“우리가 일을 성의 없게 하다니 그 무슨 경우라고는 없는 망발이냐? 저들이 그저 얼굴이나 비치고 밥이나 축내러 온 잡놈들인 줄 아느냐? 잘 봐라! 저들 모두 장남을 제외한 차남, 삼남 등을 대동하지 않았느냐? 자식들에게 재산의 일부라도 분할해 줄 형편이 안 되는 기사란 기사는 여기에 다 모여 있다는 말이다!”

“호오, 그래?”

“유서 깊은 가문에서도, 소 피나 여우 피를 먹여서, 키운 전사는 대개 직계의 사촌 형제 정도까지다. 촌수가 거기에서 더 멀어지면, 자식에게 괴물 피를 먹일지의 여부는 오로지 아비의 역량에 따라 결정되는 일인 게야. 솔직히 방계 출신의 전사들이 자신의 모든 자식들에게 소 피나 여우 피를 먹인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느냐.”

“그러니까... 영감들이 하고 싶은 말은, 저 아비들을 고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괴물 피를 먹지 못하고 썩혀질 저 꼬마들을 거두어들이라는 거 아냐? 나더러 한 놈 한 놈 직접 피를 먹여서, 친위대로 키워 봐라 이건가?”

“단기간에 충성스러운 무력 집단을 키우고 싶다면서? 너에겐 이미 무시무시한 남녀 한 쌍을 손수 만들어 놓은 전적이 있지 않느냐? 그것도 고작 일주일 만에.”


튜롤드 옹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작은 쪽도 키가 이 미터를 넘는, 십 대 중반의 어린 커플이 하객들의 인사를 받느라 탈진 상태에 직면해 있는 중이었다.


“저들 대부분이 방계 출신이기는 해도, 다 이름 있는 가문의 후손들이라는 얘기다. 여기 있는 아비들 중에 개돼지 피를 먹은 이는 아무도 없어! 이 아이들 전부가 신체적인 본바탕이 매우 훌륭하다는 말을 하는 거다. 왕국 최강의 전사인 네놈 앞에서 우리가 감히 허튼소리를 하겠느냐? 직접 확인해 보아라.”

“흐음...”

“저 아이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괴물 피를 먹지 못한다면, 평민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게다. 멀리 갈 것도 없어. 당장 우리 길드나 용병 길드에 있는 놈들 중에도, 태반은 주군에게 선택받지 못한 저런 귀족 가문의 후손들이니까.”

“지금 저 아이들에게 이 자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막중한 자리라는 게야. 인생 역전의 시험대나 마찬가지니까.”


두 노인네의 일장 연설에, 심드렁하게 자빠져 있던, 하지운이 상체를 일으켜 의자에 똑바로 앉은 후 홀 안을 한번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애새끼들이 옷걸이가 나쁘지는 않네. 기운도 부족해 보이지 않고.”

“일단 마음에 드는 애들을 넉넉하게 뽑아 놓아라. 우리가 뒷조사까지 완벽하게 해서 알곡만 추려 내 주마. 혹시 불손한 의도로 접근한 놈은 없는지, 혹은 네가 싫어할 만한 과거는 없는지 말이다.”

“미리 조사해서 골라 오지 그랬어?”

“이 배려심 없는 놈아, 아무리 우리라도 저 많은 수를! 잠깐, 그러고 보니... 우리도 네놈에게 따질 것이 있었구나!”

“그래, 그걸 깜빡 잊고 있었어! 반드시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어 놓고!”


하지운도, 영감들이 하려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 있어 이마를 짚으며 딴청을 부렸다.


“이 악마 같은 놈아! 네 누이를 일찌감치 빼돌려 놓고는, 우리더러 빨리 찾아내라고 온갖 협박을 다하고!”

“마귀 놈아, 마음을 좀 곱게 써라! 심지어 소대가리들에게 몽둥이까지 쥐어 주고 웨스털랜드주에 쫙 풀어 버리는 바람에, 수색 중이던 우리 아이들이 도망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아느냐?”

“영감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진정 좀 해. 그러다 숨 넘어 가겠어. 원래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잖아. 영감네가 그렇게 열심히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다면, 내가 저 아이들을 확보했다는 걸 험프리 놈이 눈치챘을 거 아냐. 그랬으면 당연히 내가 들락거렸다고 소문이 났었던 대습지 속도 뒤져 보려고 했을 것이고. 내가 홀로 움직이고 있는데, 험프리 놈이 병신도 아니고, 그 정도 생각조차 못했겠어?”

“그러면 그 끔찍한 소머리들은 왜?”

“그거야... 당연히 영감들의 수색을 방해하려고... 가만 내버려 뒀으면 흔적을 쫓아서 늪까지 따라 들어왔을 게 뻔하잖아. 뭐... 겸사겸사 험프리 놈이 웨스털랜드의 광산들을 건드리는 것도 방해해 주고 말이야.”

“하아, 뭐가 어쩌고 어째? 이런 미친놈이!”

“어차피 험프리 놈은 나를, 머리보다 주먹이 앞서는, 경솔한 폭력배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터이니. 내가 그저 괴물들을 가지고 미친 지랄을 했다고만 여길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실제로 그놈도 별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 같고. ‘왜 제 누이가 웨스털랜드주 인근의 숲을 헤매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소머리들을 밀어 넣어서, 그 지역 전체를 지옥으로 만드는 미친 짓을 했던 거지?’라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말이야.”

“아아... 참 잘했다, 이 미친놈아...”

“아, 진짜! 그래서 리들스덴 성에다가 영감들을 모아 놓고 지켜 주고 있잖아! 아니, 아무리 조직이 방대하다고 해도 그렇지, 명색이 정보 길드인데! 대체 아랫것들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던 놈에게 칼을 맞을 뻔해?”

“그, 그건...”

“그 버러지 같은 사생아 놈이! 그 불쌍한 아이의 처자식을 납치해서는...”

“아, 됐고! 혹시나 해서 영감들 주변에 내 부하들을 붙여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만으로도 영감들은 나를 칭송하면서 남은 나날을 보람차게 살아가야 해. 나같이 유능하고 사려 깊은 동업자가 또 어디에 있어? 안 그래?”

“하아... 이 미친놈아! 세상에 무슨 호위대가... 도대체 어디에서 지느러미 같은 것이 달린 독사들을 잡아 와서는, 언데드로 만들 생각을 한 거냐? 그리고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그것들을 가지고 남에게 호위로 붙여 줄 생각을 할 수 있냐고?”

“테일강 유역에서 잡아 왔지. 아, 근데! 그 코브라들 덕에 목숨들을 부지해 놓고는, 거 불평불만들이 더럽게 많네.”

“제발...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다... 호위대를 제발 좀 덜 무섭게 생긴 놈들로 바꿔 다오.”

“징징거리지 좀 마. 툭하면 말 타고 빨빨거리면서 싸돌아다니는 영감들을 땅 밑으로 졸졸 따라다니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작고 가벼운 놈들을 쓸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나라도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져 버리면, 대가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온단 말이야. 정 그러면... 전갈로 바꿔 줄까?”

“뱀 아니면 전갈이냐... 되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마.”


하지운과 정보 길드 노인네들의 시답잖은 잡담은 끊일 줄을 모르고 한참을 이어졌다.

홀의 한쪽 구석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청년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하지운과 영감탱이들을 바라보는 청년의 두 눈에선 칠흑같이 어둡고 불길한 기운이 샘솟듯 뿜어져 나왔으며, 그의 오른손은 이미 허리에 찬 투척용 단검의 손잡이 위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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