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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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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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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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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9)

DUMMY

153화


콘체스터 성의 외성 안마당에서는 사흘째 뭔가 지독하게 억눌린 듯한 기괴한 소리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다.

삼 일 전에 이 성의 주인이 바뀐 이후로 줄곧 앞뒤 성문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인지라,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인근 주민들이 빼꼼히 들여다볼 만도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콘체스터 시민 일만 이천여 명 중에 그 정도로 용감한 시민은 없었던 모양이다.

성 근처로 아무도 접근해 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세상 태평한 하지운은 마음껏 마법 수련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큰 키 때문에 오해를 받곤 하지만, 유피미아 클릭스튼 양은 어떤 종류의 괴물 피도 처먹은 전적이 없는 순정 상태의 인간이다.

물론 아비가 돼지 피를 처먹어 진정한 의미의 순정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 봤자 평범한 인간들에 비해 약간 튼튼하게 태어난 것뿐이다.

그리고 키가 큰 것은 그냥 집안 내력이다.


하지운은 그런 다소 평범한 유피미아 양을 상대로, 죽이지는 않으면서, 마법으로 고통만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오고 있는 중이다.


유피미아 양과 그녀의 남자 친구는 정식 고문 복장인 ‘벌거벗은 임금님’ 복장을 한 채로, 한쪽 팔과 양다리가 땅속에 파묻혀 있는 상태다.

하지운은 그 둘의 왼팔만 흙바닥 위에 꺼내 놓고는, 둘의 왼 손바닥을 땅바닥에 밀착시켰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왼쪽 손등에 굵은 쇠못을 때려 박아 놓았다.


팔다리를 바닥에 고정시킬 생각이라면, 오른팔이나 두 다리처럼, 그냥 땅속에 파묻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왼팔만 땅 위에 꺼내 놓고 못으로 고정시킨 데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운은 지금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투명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오로지 로더릭의 손에 박힌 못의 머리 부분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참이나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어, 고문을 받던 로더릭 커플조차 긴장이 다 풀려 버린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로더릭의 몸뚱어리 위에서 눈이 멀어 버릴 듯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눈부신 섬광 사이로 희미하고 가느다란 벼락 한 줄기가 못 머리에 내리꽂혀 버렸다.

재갈을 비집고 로더릭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대량의 침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귀를 어지럽히는 소음 공해에, 체험 마차를 둘러싸고 온갖 장난질을 치고 있던, 복제 인간들이 고개를 돌려 박장대소 중인 하지운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 뭐 해?”

“어, 너 몰라?”

“응, 바빠서 본체 새끼한테 관심 끄고 있었어.”

“야, 얘네 셋이 북쪽에 갔다가,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

“아! 여우?”

“응.”

“저 새끼 마법 수련 중이잖아. 벌크업을 한 번 더 하겠데.”

“미친놈이... 두 번이나 했으면 됐지. 우화등선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저 새끼가 최근에 좀 많이 처먹었냐? 아무리 개돼지라지만, 만 삼천 마리가 뭐냐? 저 새끼도 슬슬 배가 불러 오는 거지.”

“아, 왕성으로 가기 전에 배를 텅 비우고 가려는 거구나!”

“그렇겠지... 잠깐! 그럼 저놈은 지금 왕성이 뷔페로 보이는 건가?”

“안 그러겠냐? 저 새끼 신나서 웃는 거 봐라.”

“미친 새끼... 저 새끼 저러다 싸겠다.”


복제 인간들의 말대로 오르가슴으로 치닫고 있던 하지운의 머리통은 벅차오르는 감동에 전신을 주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사실 하지운이 벼락 한 줄기만 만들어서 대충 날려 버려도, 밀집해 있는 엘리트 전사 삼사십 명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숯 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아직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번개 마법에 대한 하지운의 성취가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번개 마법의 기본적인 위력 자체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번개의 마법사 루시아도 하지운의 분신을 일격에 박살 낸 전적이 있다.


분신이라고 해도 하지운의 분신인데 루시아 따위가 한 방에 숯덩이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보면, 번개 마법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그런 번개 마법을 마법 깡패 하지운이 남발하고 다닌다면, 브리갠트 왕국 전체가 생지옥이 되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그런 식의 마법 난사가 마법 능력 향상에 어떤 도움이 된 적은 전혀 없었다.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말이다.


지난번 환골탈태 때도 느낀 것이지만, 좀 더 정교하고 세밀한 마법 구현이 가능해질 때 자연스럽게 육체의 진화도 뒤따르는 듯했었다.


하지운은 현재 여섯 마법 원소를 전부 다스리고 있는 상태다.

그중 불, 물, 흙 같은 원소들은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는 성질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제어가 굉장히 용이할 수밖에 없다.

불, 물, 흙으로 단숨에 만든 ‘두 팔 달린 밀로의 임승아상’ 같은 것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얼음 같은 경우에도 앞의 세 원소와 성질이 비슷해서인지 제어가 힘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얼음 마법 자체가 습득이 어려운 것이지, 활용이 어려운 마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은 두 원소 바람, 번개 같은 경우에는 다른 네 원소와는 달리 통제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번개는 유독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바람 같은 경우에는 여우머리 족장의 피 덕에 비빌 언덕이라도 있었는데, 번개는 아예 맨땅에 헤딩이었다.


대충만 생각해 봐도, 번개의 제어가 힘든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일단 번개 자체가 지나치게 빨리 움직인다.

그리고 너무 쉽게 주변에 있는 전도체로 퍼져 나가 버린다.

말하자면 특정 목표물을 원하는 만큼만 타격을 주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좋지 않다.


현대 무기를 생각해 보면, 핵무기나 화학 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들이 딱 이런 성질을 지니고 있다.

파괴력은 강하지만 광범위한 지역에 군인, 민간인 할 것 없는 대량의 사상자를 생산해 내는 특성 말이다.


딱히 대량 살상 능력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본 적 없는 하지운의 입장에서, 번개 마법 같은, 최고위급 능력을 이런 단점들 때문에 봉인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 세 번째 환골탈태에 대한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개돼지 우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폭렙을 해 버린 하지운이다.

이제 레벨 업을 해 둬야 할 능력이 ‘기력 흡수’ 하나밖에 안 남은 상태다.


그런데 앞으로도 의무적으로 죽여야 할 놈이 오백 명이 넘게 남아 있고, 정보 길드와의 계약 때문에도 백 명 정도를 더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무려 육백이 넘는 인원을 기력을 빨아먹어서 죽일 경우, 자칫 잘못하면 하지운의 배때기가 터져 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하지운은 삼 일 전부터, 윌러벌 가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수련 삼매경에 빠져 있는 중이다.

포로들의 손이나 발에 피뢰침 역할을 할 대못을 박아 놓고, 쉬지 않고 벼락을 내리꽂아 댔던 것이다.


처음에는 잘못이 비교적 작은 놈들에게 벼락을 날려 보았다.

어김없이 단매에 뒈져 버렸다.

하지운 나름 조절을 한다고 한 것인데도, 얄짤없이 숯덩이가 되어 부스러져 버린 것이다.


절대 수월한 일이 아닐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빡셌다.

일단 못 머리에 정확하게 벼락을 때려 박는 것부터가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죽일 놈들이 많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윌러벌 가문 놈들 중 어중간한 것들을 죄다 골로 보낸 후, 빨아먹으려고 꿍쳐 뒀었던 포로들까지 다 끌고 나왔다.

복제 인간들이 몸보신하라고 끌고 온 포로들부터 백여 명의 용병들까지, 무려 이백 명에 가까운 인간들을 고작 이틀 만에 다 태워 먹어 버린 것이다.


총 이백칠십 명의 숭고한 희생에 힘입어, 하지운은 고작 사흘 만에 진일보한 성취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어설프게나마 여우 피를 처먹은 로더릭을 상대로 성공한 것이긴 해도, 어쨌든 성공은 성공이다.

로더릭의 육체에 큰 손상을 입히지 않고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선사한 것이다.

내출혈이 약간 발생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치료 마법으로 얼마든지 원상 복구시킬 수 있다.


죽을죄를 지은 로더릭의 남은 측근들을 가지고 좀 더 연습을 하다가 확신이 생기면, 번식력이 강한 전사가 싸지른, 유피미아 양에게 최종적으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어떤 피도 처먹은 적이 없는 그녀에게까지 전기 고문이 성공한다면, 간악한 하가 놈에게 마력 운용의 신기원이 열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죽이는 것보다 죽기 직전까지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곱씹으며, 하지운은 다시금 마음을 고요한 호수처럼 다잡아 갔다.

불과 십 미터 앞에서, 유피미아 양이 혈변을 지리며 악다구니를 쳐 대고 있음에도 말이다.


작가의말

 연휴 마지막 날이 되었네요.

 모두들 복 많은 새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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