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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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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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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78

작성
24.01.2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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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2)

DUMMY

146화


“상호주의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국가 간에 돈거래 할 때 주로 쓰는 말이지만, 사실 어디든 가져다 쓸 수 있는 말이지. 간단히 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나한테 베푼 만큼 갚아 주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너희가 내 일족을 몰살시켰으니, 나도 너희들을 한 놈만 남기고 다 죽여 버리겠다. 물론 남은 한 놈도 절대 편하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놈은 내 마차를 장식하게 될 것이니까! 크하하하하!”


하루에 결혼식 주례를 무려 세 탕째 뛰고 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 선생이다.


오전에 로저의 개인 주택인 페어먼트 성에서, 브리워 가문을 주축으로 한, 오백여 명의 용사들을 단체로 시집보내 버렸다.

신랑감들은, 성 밖에 널리고 널린, 몽둥이 든 수천 마리의 소머리 중에서 무작위로 골랐다.

결혼식만 진행하고, 피로연은 분신 셋에게 맡긴 후, 스케줄이 빡빡한 하지운 본체는 부리나케 웨이버튼 성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곳에서 오후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 후, 현재는 터싱엄의 시가지 한복판에서 곳곳에 횃불을 피워 놓고 야간 결혼식을 진행 중이다.

로저 드레이시의 위엄에 짓눌려 있던 곳에서, 진정한 패악질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는 로저보다 더 로저 같은 하지운이다.


“이보게, 조카! 이 아이들은 자네의 종형제, 종남매들이네! 이 아이들도 드레이시의 피붙이들이라는 말일세! 이러지 말게! 내가 잘못했네! 모두 내 잘못이야! 제발 아이들은... 제발 자비를 베풀.”

“지랄 염병하네! 제럴드 이 버러지 새끼야, 고모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안면을 싹 바꾸고 험프리 놈과 붙어먹은 주제에, 감히 나와 촌수를 따져? 네놈이 감히 우리 가문의 몰락에 한몫 단단히 해 놓고 자비를 운운해? 나를 웃겨서 용서받으려는 수작이라면 관둬라! 너는 지금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긴다!”


팔다리가 잘린 채로 소머리 좀비에게 안겨 있는 알몸의 고모부 호소인에게 비웃음 가득한 호통을 날려 준 주례 선생님이다.

하 선생의 매몰찬 꾸지람에, 고모부와 사촌들을 비롯한 백여 명의 신부들이 눈물을 뿌리며 아우성을 쳐댔다.


“너희들과 웨이버튼, 세비니 이 하찮은 세 버러지들이 구원을 오고 있던 우리 가문 사람들을 기습해서 죽였지. 심지어 브리즌 가문 사람들까지도. 평소 친분이 돈독했던 너희들이 설마 배신할 줄, 그들이 상상이나 했겠느냐? 너희들은 죽어 마땅한 것은 물론이고, 절대 쉽게 죽어서도 안 된다. 이 파티는 아무리 짧아도 한 달 내에 끝나진 않을 것이다. 우리 주 내에 있는 모든 배신자 새끼들을 모조리 색출한 다음, 본가의 성문 앞에서 한 달 동안 사랑이 넘치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 시간이 끝나도 너희는 그냥 죽지 못한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전부 언데드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영혼조차 구원이 불가능한 마물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다. 듣고 보니 설레서 미치겠지? 좋아 죽네, 병신들.”


하지운의 설렘 가득한 고백이 끝난 후, 소머리 좀비들이 고종사촌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의 의복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혼이 찢겨져 나갈 듯한 비명이 단체로 터져 나왔다.

소머리들이 그들의 팔다리를, 마취도 안 해 주고, 그대로 베어 물었기 때문이다.


몇 번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스무 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팔다리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식욕과 성욕만 남은 악귀들이 게 눈 감추듯 흡입해 버린 것이다.

분신들이 어슬렁대면서 환부를 대충 봉합만 하고 지나가 버렸다.

한 달 동안 지옥을 봐야 할 죄인들이, 과다 출혈로 편하게, 죽는 꼴은 못 보겠다는 하지운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로저, 이놈!! 끄아아아악!”


로저의 전직 고모부 제럴드 터싱엄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사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환경을 선호하는 하 선생이다.

사령술사님의 정신적인 고통에 안타까움을 느낀 좀비 한 마리가 넘치는 충심을 못 이기고, 자신의 입으로 제럴드의 입을 막아 버리고 말았다.


충성심이 하늘을 찌르는 이 좀비는 바로 제럴드를 내내 품고 있던 놈의 예비 신랑이다.

주둥이가 썩어 문드러져 가는 언데드에게서 딥 키스를 받은 제럴드가 입으로 폭포를 쏟아 내듯 토사물을 게워 냈다.

그러고는 얌전해져 버렸다.


“난 너희 같은 놈들이 너무 좋다! 난 어릴 적부터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와야 했다! 그래서 ‘내가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음껏 해 버려도 될 놈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고민을 평생에 걸쳐 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분’께서도 인정하시는 죽어 마땅한 버러지가 무려 백 마리가 넘게 바글대고 있다! 진심으로 행복해서 미쳐 버리겠다! 으하하하하하!”


듣고 있던 하객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두려움에 덜덜 떨어 댔다.

그들은 터싱엄의 성곽 내 시가지에 살림을 차린 거주민들인데, 춥고 어두컴컴한 겨울밤에, 광장으로 끌려 나와 영주 일가의 처참한 마지막을 무료로 관람하고 있는 중이다.


십이 호부터 십사 호까지 세 분신들에게 밤새도록 쉬지 않는 교미를 지시한 후, 하지운 본인은 다시 바쁜 걸음을 옮겼다.

늦은 밤에도 쉬지 않고 일터를 찾아다니는 진정으로 근면 성실한 학살의 역군 하지운이다.


콘체스터주의 외곽은 서부 변경의 남은 네 백작이 이끌고 온 병력들로 완전히 틀어 막혔다.

정보 길드를 통해 하지운의 의사를 전달받은 서부의 대영주들이 쾌재를 부르며 신속하게 반응한 것이다.


콘체스터주로 구원을 와 줄 앨커스터주의 영주들은 이미 하지운의 손에 몰살을 당했고, 다른 주들의 친왕파 귀족들은 대부분이 일족을 이끌고 왕성으로 달아나 버린 상태다.

심지어 몇몇은 온 일족이 집단 자살을 해 버린 경우도 있다.


더 이상 콘체스터로 구원을 올 놈이 왕국 전체에 단 한 놈도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상태에서 하지운에게 용서받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서부 변경의 남은 대영주들이 최선을 다해 포위망을 구축했다.

어리친 개 새끼 한 마리도 통과를 못할 정도로 촘촘하게 말이다.


그 상황에, 저승에서 인증해 준, 살생부를 소지한 미친 살인귀가 집집마다 손수 방문을 다녔다.

단숨에 한 개 주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가는 곳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집주인들이 맨발에 천 쪼가리만 걸친 채로 오체투지를 한 채 악귀를 맞았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눈물겨운 퍼포먼스가 한겨울의 칼바람조차 무색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산천초목도 덜덜 떨게 하는 천하의 대악마 로저 드레이시가 촌구석 지주들까지 하나하나 직접 찾아다닌다는 말에, 지은 죄가 있는 놈들은 똥을 지리며 대들보에 줄을 걸었다.


사실 하지운은 ‘골렘 소환’ 능력을 레벨 업 하기 위해, 귀찮음을 무릅쓰며 발품을 팔고 있던 것이다.

제 손으로 직접 로저의 원수들을 다 때려죽이겠다는 결기 어린 마음에서 한 짓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꼴을 보거나 들은 자들에게는 보통 살벌한 메시지로 해석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살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 바람에 막상 레벨은 얼마 올리지도 못하고, 복수에 정성을 다한다는 고매한 명성만 천지를 뒤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드레이시 가문의 주도하에 테일강 동부 지역을 싹 정리한 후, 주 내의 장원의 개수가 팔백 개를 넘어 버린 콘체스터주다.

변경의 주답게 원래도 큰 편에 속했던 주가 이제는 왕국 내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런 거대한 땅을 들쑤시고 다니는데 열흘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예상보다 일을 빨리 끝낸 하지운은 일정을 앞당겨 엑시스턴 성을 먼저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콘체스터 성과 함께 주 내에서 하지운의 발길이 닿지 않은 유이한 장소이다.

과거에는 소머리 괴물들을 막아 내던 최전선의 요새로서 그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약간 이상한 지역 특산품으로 괴이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이곳을 꼭 방문하고 싶어서 마음만 졸이고 있던 하지운이다.

욕망이 폭발한 미치광이가 키즈 카페로 달려가는 미취학 아동의 마음으로 한달음에 내달렸다.

완공된 지 이백 년이 다 되어 가는 고성이 발이 달려 어디로 달아날 리도 없는데, 막상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자, 참을성 없는 하가 놈이 삼 일 굶은 개가 개 밥그릇에 달려드는 기세로 시골길에서 음속을 돌파해 버렸다.


중간중간 속도 조절을 하면서, 앨커스터주와의 경계면인 주의 동쪽 끝에서부터 주의 서부에 위치한 엑시스턴까지, 오십 킬로에 가까운 거리를 단 십 분 만에 주파하였다.

성이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언덕 위에 올라선 하지운의 입에 점점 침이 고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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