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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무신 천마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행운™
작품등록일 :
2024.01.04 18:39
최근연재일 :
2024.02.26 07:00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5,486
추천수 :
228
글자수 :
297,915

작성
24.01.14 07:00
조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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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5

DUMMY

호흡을 한다. 길게. 후우욱. 짧게. 후욱. 손 끝부터 발끝까지 꼼지락 거린다.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내 식은땀, 적의 뜨거운 피가 온몸에 범벅.


[마스터. 마력수치가 낮습니다. 휴식을 권합니다.]


나노머신 해태가 속삭인다. 휴식이라. 이번에 못 이기면 영원한 안식일 텐데.


"척성동. 이제 다 왔어. 조금만 힘내자고. 프로젝트 낙천, 반드시 성공해야 해. 우리가 주인공이야. 화려하게 가자고."


몇 십 번의 전투에도 살아남은 동료들.


누구지?


나를 보며 미소 짓는 그들.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허나, 기억난다. 그들의 최후가. 주인공도 되지 못하리라. 화려하지도 않으리라.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길가에 치이는 그저 그런 민들레 꽃씨처럼, 허망하게 부유하리라. 잿가루만 남아서. 근데...... 내가 어떻게 아는 거지?


"천마 홍건군이 또 온다!"


외침이 들린다. 몇 번이나 쓰러뜨린 홍색 머리띠의 병력들이 몰려온다. 천마홍건군. 우리는 다시 전투에 들어갔다. 난전. 작전이고 전술이고 의미 없는 개싸움. 그들은, 마치 좀비처럼 싸웠다. 팔이 날아가도, 고통이 없어 보였고, 다리가 잘리면 기어서 덤볐다. 박살 내지 않는 한, 의미가 없었다.


"후우욱......"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쉰다. 죽이고 죽이는 싸움. 미지의 존재들. 그들과의 싸움에서 오는, 떨림과 긴장감은 잊힌 지 오래. 콧속을 자극하는 피비린내. 내장이 튀어나가도 덤비는 적들.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대의에, 우리의 정신적 트라우마 따윈 사치.


그때였다. 달려들던 천마홍건군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우리도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짙은 자줏빛으로 물든다. 한 사람이 있다. 내려다보는 자.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는, 거만하고 오만한 자.


"짐이 명하노니. 더 이상 숨 쉬지 말거라. 너희들은 삶은 내 영생을 위한 것에만 의미가 있을지니. 감히, 나에게 대적하려 한 죄. 지금 묻겠노라."


천마다.


"척성동. 지금이야 마력 EMP를 사용해! 저 괴물을 죽여야...... 으아악!"


나에게 외치던 동료가 잿가루가 되었다. 허무하게 사라진다. 주변 동료들은 모두 손짓 한 번에 그리되고, 오직 나만이 살아남아 하늘을 본다.


천마가 오만? 아니, 오만하지 않다. 능력이 뒷받침되는 오만은 솔직함일지니, 그 힘은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다.


수 천, 수 만개의 꽃 잎이 날린다.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사방에서 들리던 고함소리는 점차 신음소리로 바뀌고.


어느새 그마저도 잦아든다. 소름이 돋는다. 식은땀이 흐른다. 정신은 나갔지만 몸은 솔직하다.


[마스터. 한계입니다. 더 이상 마력 보호막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피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나노머신은 계속해서 내 귓가에 경고음을 울리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냄새가 난다. 공포의 냄새. 인간도 동물이다. 종족을 수억 넘게 죽인 자에게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마치, 개장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개처럼.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주변을 둘러본다. 천마와 함께 내려오는 꽃 잎에 스치는 모든 것들이 불탄다. 화르륵. 순식간에 재가 되어 날린다.


"저걸. 우리가...... 내가...... 이기려고 했다고?"


숨이 막힌다. 압도적 광경. 이미 멸망했다. 모든 것들이. 눈짓 한 번에 군대가 소멸. 손짓 한 번에 지형이 바뀐다.


날리는 검은 잿가루들. 어떤 잿가루는 내 동료요, 어떤 잿가루는 내 친구요, 어떤 잿가루는 동네 사람이요, 어떤 잿가루는......


모두 자주색 꽃잎에 닿은 죄로 변해버린 검은색 슬픈 가루들. 저항? 무의미하다.


내가 미리 알아 두려워했던 광경. 펼쳐지고 있다.


날리던 꽃잎 하나가 내 어깨에 앉는다. 타는듯한 아픔. 비현실적 고통.


[마력 보호막이 파괴되었습니다. 신체수복기능을 가동합니다. 회복보다 파괴속도가 더 빠릅니다. 마력 보충이 필요합니다. 마력 보충이 필요합니다.]


온몸이 불탄다.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다. 두 다리는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무너진 듯 쓰러졌다.


'해태. 우리 승리가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알아봐.'


이 와중에,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린다. 이 녀석이라면, 해주겠지. 뭐든.


[최적의 루트. 분석완료...... 승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루트를...... 사용...... 긴급 회...... 사용합니다.]


나노머신이 무어라 말했지만, 이미 듣기 힘들었다. 온몸의 반이 잿가루로 날리고 있기에. 견디기 힘든 건, 이 와중에도 천마는 모두를 비웃고 있다는 것. 면상에 주먹 한 방 날리지 못했다는 것.


"결국 닿지도 못하고......"


역설적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정신이 또렷해졌고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천마!"


내 몸에 장착된 마력 EMP펄스를 터뜨렸다.


순간,


자줏빛 하늘은 파란 하늘로 바뀌고, 날리던 꽃잎들이 사라졌다. 그때, 나는 분명 천마의 얼굴을 보았다.


아름다운 청년. 허나, 퇴폐미와 악마적 광기가 스며들어 있는 얼굴. 그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본다.


"그래. 노려봐라. 네 마지막이 될지어니!"


나는 악을 쓰며, 아직 남아있는 오른손, 소매에서 작은 막대를 꺼내 중얼거렸다.


"해태. 프로젝트 낙천. 시작한다. 리미트 해제. 코드 147258369. 모든 마력을 소모한다."


[마스터의 뜻대로.]


막대는 긴 창으로 변했고, 나는 그걸 힘껏 던졌다. 흐려져가는 시야에 당황한 그놈의 얼굴이 보인다. 당황이라니. 그놈과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였다. 실로 통쾌했다.


하늘이 쪼개진다. 나는 미소 지었고, 그리고...... 의식이 끊겼다.


......

생생한 꿈이었다.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한 듯한.


허나,


기억에 없는 사건. 난, 번개를 맞자마자 이곳으로 왔기에. 상상이라기엔 구체적이고, 실제라기엔 현실감이 없다. 도대체 뭐지.


"척장군!"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니, 왕 부장이 있다. 해태로 목을 찔렀고, 생각보다 깊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었으나, 필요한 일이었다.


"이럴 수가. 완전히 회복되었네."


헌데, 작은 생채기조차 만져지지 않는다.


[마스터의 신체손상이 심각했기에, 강제수면상태에서 치유를 실시했습니다. 회복률은 97퍼센트. 3퍼센트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기하다. 이 정도라면...... 단독작전도 가능하다."


나는 다시 꿈 생각이 떠올랐다. 예지몽인가. 분명 내가 살던 시대였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프로젝트 낙천은 시작도 전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내가 이곳으로 회귀하였으니.


"척장군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왕 부장이 어느새 옆에 서서 나를 못 마땅하게 바라본다.


"저는 밤새 장군님 막사를 치웠는데, 제 막사가 아주 편하셨나 봅니다. 근데, 장군님은 막사에서 뭘 하셨길래 그렇게 악취가...... 응?"


"왜?"


그가 당황하며 말한다.


"어? 왜 잘생겨졌지? 피부도 깨끗해지고, 치아도 생겼네? 뭐야? 형님? 어떻게 한 거야? 설마...... 그 악취랑 연관된 건가. 독소 배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어제 해태가 말한 것이 이건가 보군. '미용목적'이라는 게.


"뭐. 그런 거지."


"알려주십시오. 척장군님!"


갑자기 필사적. 왕 부장은 미용에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싫어."


사실 방법을 모른다.


"너무하십니다."


시무룩한 표정.


"자지야."


"왜요? 그렇게 부르시는 걸 보니, 부탁하실 것이 또 있나 봅니다?"


"형. 원래 잘 생겼다. 넌, 독소 배출해도 안돼. 본판이 중요하거든. 해도 그대로일거야. "


왕 부장은 우락부락한 얼굴을 더 찌푸린다.


"아.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자지야."


"별 할 말없으시면 아침이나 드십시오. 척장군님."


"우리가 설정한 작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냐?"


내 진지한 음성에 왕 부장은 장난스러웠던 표정을 바꿨다.


"척장군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사실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저희 500명이 아무리 강하다한들, 완안부를 쳐들어가서 핵리발을 생포하기엔."


"역시. 그런가."


"보통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형님, 아니 척장군님이 계시니,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설혹, 저희가 모두 죽더라도 작전은 성공할 것 같습니다."


"너희가 모두 죽더라도?"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기방패로 쓸 거라 생각했나."


",..."


척준경은 완안부지역에 4군 6진을 개척했다. 그때, 발견한 백호의 동굴. 곡산필부에 적혀있었다.


여진족들이 신성시 여기는 '산군'이 살고 있다 들었다. 실제로 보진 못했다지만.


이 동굴은 완안부 군락의 핵심지역과 가깝다. 이용한다면, 시간만 주어진다면, 핵리발 생포는 가능하다.


나노머신 해태가 있으니. 목이 잘리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 몸. 내 무력과 이 정도 회복력이면 충분하다. 완안부 점령.


곡산 필부에서 보았다. 척준경의 핵리발 암살 작전은 유출되었고, 신보군 3진은 전멸. 그 혼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온몸에 자상. 관통상. 후유증도 평생 갔다고 적혀 있었다.


척장군은 이렇게 적었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라고.


"아무튼 자지야. 너와, 신보군 500명 은 내 죽음을 고려에 알리면 된다. 그게 네 임무야."


"예?"


"척준경으로는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어. 나는 너희들 앞에서 한 번 죽을 거니, 내 최후를 알리고. 누가 기뻐하는지 파악하거라."


나는 척준경이 아니라 척성동이다. 굳이 척준경에 매여 살 필요는 없다.


"설마."


"이미 우리 작전은 유출되었을 터. 부원수 오연총이 의심된다. 겉으로는 슬퍼하겠지만, 가장 기뻐하겠지."


왕 부장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그러니까, 때를 기다리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이건 너 혼자만 알고 있어라. 물론 퍼뜨려도 너만 바보 될 거야. 진짜 죽을 거고,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으니."


"하아. 정말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장군께서 다 뜻이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왕 부장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작전지역은 여기야."


나는 지도를 펼치며 왕 부장을 봤다. 그가 경악한다.


"여기는...... 산군의 동굴 위쪽. 만약, 작전이 유출되었다면 너무 위험합니다."


절벽이다. 산군의 동굴은 이곳의 가장 윗부분에 있고, 그곳에는 매복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


"여기...... 적이 매복해 있다면, 아래쪽에서 공략하는 저희들은 살 기힘듭니다."


산군의 동굴에 들어가기 위해선, 절벽을 타고 올라야 한다.


헌데,


작전이 유출되었다면, 화살비 속에 절벽을 어찌 올라간단 말인가?


설령, 운이 좋아 절벽을 올라갔다 하더라도 탈진상태의 병력들은, 적이 마치 가을에 추수하 듯 목을 딸 수 있으리라.


우리는 척준경이 아니다.


"이건 자살행위입니다. 장군!"


"알아. 그래서 나 혼자 올라갈 거야. 절벽은. 너와 신보군은 적의 화살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켜보면 돼."


"......"


왕 부장은 말문이 막혔다.


"내가, 혹, 적 수장의 목을 벤다면 절벽 아래로 그 목을 던질 것이고, 그러면 너희들이 올라온다."


"그 신호가 없을 시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너희는 윤관 대원수께 내 죽음을 알리고, 내부에 세작이 있다는 것을 말하라."


"정말. 그걸로 됩니까? 변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저절로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그러냐. 자지야."


"네. 꼭 죽고 싶어 안달 나신 분 같습니다."


나는 이미 끝을 보았다. 척준경 장군의 끝을.


"그리 보여도 할 수 없다. 같은 방식은 같은 결과만 가져오니...... 다르게 살 수밖에 없어."


다르게 살아야 살 수 있고, 천마를 잡을 수 있다.


"여전히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알겠습니다. 군사들에게 그리 전파하겠습니다."


왕 부장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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