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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씨세가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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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a3194
그림/삽화
월하정인
작품등록일 :
2024.03.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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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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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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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0화 마녀의 사랑(5)

DUMMY

우문호가 술잔을 비웠다.

고천범이 재빨리 술을 따랐다. 대량성에 있는 기루다.

여자들이 비파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

“놈은 어디까지 왔느냐?”

우문호는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마왕퇴에서 비급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재상 백경천으로부터 상금을 두둑이 받았다.

우문호는 그 중의 일부를 고천범과 부하들에게 배분해 주었다.

“익주를 떠난 지 열흘이 되었습니다.”

우문호는 서생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여자 아향과 부정한 짓을 저지른 놈이다.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

“멱라(汨羅)로 갔습니다.”

“멱라?”

멱라는 초나라의 애국시인 굴원(屈原)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곳이다.


고천범이 멀뚱히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놈이 왜 그곳으로 갔느냐 하는 질문인데 우직한 고천범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소문은 낸 것이냐?”

“예. 무림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서생이 용의 내단을 갖고 있다는 소문··· 용의 내단을 취하면 이갑자의 내력이 생긴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이 또다시 무림으로 퍼져 나갔다.

“놈이 어찌 대량성으로 오지 않고 멱라로 간 것이냐?”

“소문을 퍼트린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소문 때문에 조용한 남쪽으로 갔을 것이라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다.

“아향은?”

“대량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럼 놈을 보호하는 자가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가서 죽여라.”

우문호는 짧게 명을 내렸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상관없다. 놈을 죽이기 전에 돌아오지 마라.”

우문호는 두 눈에서 살기를 내뿜었다. 이제는 서생놈의 목숨을 끊어버리리라. 그놈을 생각하는 것조차 역겹다.

“예. 그럼 애들 몇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고천범은 우문호 앞을 물러나왔다.

우문호의 눈빛이 사나워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우문호가 서생을 죽이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정혼자와 부정한 짓을 저지른 서생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멱라로 간다.”

고천범은 우문호의 집을 나오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형님, 멱라에는 왜 갑니까?”

왕눈이 눈을 끔벅거리면서 물었다.

“서생을 죽이러 간다.”

“용의 내단 어쩌고저쩌고 하는 놈 말입니까?”

“말라비틀어진 서생놈이 어떻게 용의 내단을 얻었겠느냐? 무공도 모르는 놈 아니냐?”

고천범은 서생이 용의 내단을 얻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즉시 행장을 꾸려서 말에 올라탔다.

“형님, 아향 낭자는 어떻게 합니까?”

왕눈이 또 물었다.

“아향은 대량성으로 돌아왔다.”

“나중에라도 혹시 알게 되면······.”

우문호의 정혼자인데 죽여도 파느냐는 질문이다.

“공자님과는 연이 끊어졌다. 신경 쓸 거 없다. 가자.”

“예.”

“이랴!”

고천범이 말에 채찍질을 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이랴!”

그의 부하들도 말에 채찍질을 했다.

여섯 필의 말이 일제히 멱라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소녀는 바람에 나부끼는 수양버들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천웅산의 산줄기가 북으로 수백리를 뻗어온 곳.

월희말갈(越喜靺鞨, 송화강 하류 근방)에 있는 해씨세가(解氏世家)의 장원이었다.

15, 6세의 소녀가 정자에 앉아서 우울한 시선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월희말갈은 옛 부여의 땅이고, 고구려의 땅이고, 연나라의 땅이고, 발해의 땅이었다.

요서지방 북쪽에 거란이 요나라를 세웠으나 해씨세가 일대는 그들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녀가 호수를 바라보다가 비파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의 시는 문강(文姜)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설도(薛濤)나 최훤을 능가하지

소나무 같은 정신에 나비의 혼

빙설 같은 살결에 마음이 비단이라

천웅산 맑은 바람이

2천년 동안 키운 한 송이 꽃이라네.


노랫소리가 맑고 청아했다,

문강, 설도, 최훤 모두 중국의 여류시인이다.


꽃잎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


설도의 시는 많은 여자들이 애송하고 있다.

문강(文姜)은 제환공의 딸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시(詩)였다고 한다.

그때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중년부인이 날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소녀가 중년부인을 쳐다보았다.

중년부인은 취의궁장을 입고 있었다.

“아가씨, 희망이 생겼습니다.”

중년부인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는 월희말갈의 후손 해연화였다.

“무슨 희망이요?”

해연화가 쓸쓸한 시선으로 중년부인을 쳐다보았다.

중년부인은 해연화의 유모인 월화부인 능옥이었다.

“아가씨, 용의 내단을 얻은 사내가 나타났습니다. 내단을 얻거나 놈의 피를 복용하면 아가씨의 삼음절맥으로 인한 음한지기(陰寒之氣)가 치료된다고 합니다.”

해연화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음한지기는 불치에 가까운 병이다.

“놈이 중원의 흑암산에서 대량성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즉시 놈을 따라 가서 내단을 빼앗거나 놈을 죽이고 피를 뽑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합니다.”

“당장이오?”

“이미 용문표국 국주와 계약을 했습니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중원으로 가야합니다. 어서 서두르십시오.”

월화부인이 해연화를 재촉했다.

“유모, 공연히 부질없는 짓을 하는 거 아니에요?”

“아가씨.”

월화부인은 엄중한 태도로 말했다.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해연화가 마지못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월화부인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씨세가의 유일한 후손인 해연화의 하얀 얼굴.

마치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자란 풀잎처럼 창백했다.


음한지기가 지나치게 강해 몸을 억누르고 있다.

밤에는 맹렬한 한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한기가 얼마나 강한지 옆에만 있어도 떨린다.

그런데 중원에서 용의 내단을 얻은 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려온 것이다.


사천 당가촌의 서생.


무림인도 아닌 그가 어떻게 용의 내단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용의 내단은 극양진기, 서생도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해연화가 안으로 들어가고 허연 수염을 늘어트린 배순문이 가까이 왔다.

“대학사님.”

중년부인이 예를 올렸다.

“월화부인.”

“예.”

“그대가 아가씨를 모시고 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소.”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사님······.”

“말씀하시오.”

“용의 내단이 아가씨의 지병에 정말 도움이 될까요?”

“용은 영물이지 않소? 고서(古書)에 따르면 만독불침에 피도 영약이 된다고 했소.”

배순문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 기연을 일개 서생이 얻을 수 있습니까?”

“하늘의 뜻을 인간이 어떻게 알겠소?”

“흑암산이 무너졌다고 하던데··· 마왕퇴의 봉인이 해제된 것입니까?”

“해제된 것 같소.”

“해제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마녀가 세상으로 나온다고 하지 않소?”

“마녀가 실제로 존재합니까?”

배순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월화부인 능옥이 빤히 쳐다보았다.

“서생이 마왕퇴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배순문이 먼 남쪽 하늘을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하늘의 뜻을 묻고 있는 것 같았다.


*


강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숲이 우수수 나부꼈다.

세옥은 내공심법을 연마하다가 마녀를 응시했다.

마녀는 한가하게 강물에 발을 담그고 흘러내려가는 물을 희롱하고 있었다.


마녀 상아······.


천 년 전의 여인이다.

멀리 옥사산(玉笥山)이 보였다.

옛날에 초나라 충신 굴원이 귀양을 왔던 곳이다.

죽림정사 앞에서 물살을 희롱하는 상아의 다리가 하얗다.


세옥은 홀린 듯이 상아의 자태를 보았다.

멱라현에 온지 어느덧 20일, 세옥은 그동안 계속 내공심법만 수련했다.

‘효과가 전혀 없네.’

세옥은 내공이 늘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도무지 몸에 변화가 없었다.

“서방님, 종자(粽子, 찰떡)를 만들어 드릴까요?”

세옥이 쳐다보는 것을 의식한 상아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물었다.

“단오도 아닌데?”

종자는 단오절에 먹는 음식이다.

“그래도 멱라강에 왔으니 종자를 한 번 먹어야지요.”

“좋지.”

세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굴원이 멱라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날이 5월5일이다.

그는 간신들의 모함으로 이곳으로 귀양을 왔다.

그가 모시던 초나라왕은 그의 충언을 듣지 않았다가 진(秦)나라에 잡혀가 목숨을 잃었다.

굴원은 그 사실을 알자 비통하여 자살했다.


멱라현 사람들은 굴원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그가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 멱라강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나무 잎사귀에 찰밥을 말아 강에 던졌다.

굴원의 영혼이 먹으라는 뜻이다.

이후 5월5일은 단오절이 되었다.

상아가 대나무 잎사귀를 따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초와 연잎으로 저고리 짓고

연꽃잎 모아 치마를 만드나니

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만이어라


어찌 목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마치 꽃의 정령이 노래를 부르듯이 상아의 목소리가 청량했다.

청량한 그 목소리에는 천 년의 한이 녹아 있다.

맑고, 감미롭고······.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다.


진실로 내 마음 향기로우면

내 관은 더욱 높아지고

내 노리개 길게 늘여 눈부시게 빛나리.


상아가 부르는 노래는 굴원이 지은 <회사부(懷沙賦)>라는 시다.

멱라현 사람들이 시를 조금씩 바꾸어 노래로 불렀다.

굴원은 귀양을 오게 되자 이에 대한 절망감으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듯이 강가를 돌아다니며 많은 시를 지었다.

굴원은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절개와 충심을 높이 받든다.


상아가 만든 찰떡은 맛이 좋았다.

떡을 배불리 먹고 상아와 함께 옥사산 위의 달을 바라보았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아름답다.


상아는 세옥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서방님하고 이렇게 있는 게 행복해요.”

“우리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돼?”

“다른 부인들이 그리워요?”

“질투하지 마라. 하하.”

세옥이 유쾌하게 웃었다.


상아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

세옥은 때때로 그녀가 실재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하나의 기(氣, 에너지)나 현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할일은 다 끝났네요.”

“무슨 할 일?”

“서방님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일··· 오늘 서방님에게 마지막 무공을 가르칠 거예요.”

“마지막? 나를 떠나려는 거야?”

“나는 영원히 서방님과 함께 있을 거예요.”

상아가 일어나 앉았다.

맑은 눈으로 세옥을 응시했다.


아아, 너무 예쁘다.


세옥은 상아를 안아서 입을 맞추었다.


*


고천범은 멱라현에 도착하자 그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서생을 찾을 수 없었다.

대량성에서 명라현까지 오느라고 여러 날이 걸렸다.

이놈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고천범은 날이 어두워지면 객잔에서 술을 마시고, 날이 밝으면 수색을 계속했다.

근처에 있는 동정호까지 뒤졌다.

“형님. 찾았습니다.”

그때 왕눈과 동필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서생을 찾았어? 어디 있어?”

고천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강가의 갈대숲에 살고 있습니다.”

“혼자?”

“예.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해?”

“놈이 실성한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실성을 하다니······?”

“혼자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하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자.”

고천범은 부하들을 이끌고 서생이 숨어 있다는 강가로 달려갔다.

서생이 실성했다는 말이 납득되지 않았다.


이미 한밤중이었다.

달이 높이 떠서 달빛이 온 누리에 사금파리조각처럼 하얗게 깔려 있었다.

‘무슨 대나무가 이렇게 많아?’

고천범은 대나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나무 잎사귀들이 얼굴을 할퀸다.

강물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은빛으로 흐르고 있었다.


서생이 살고 있는 집은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집이었다.

허름하다.

서생은 베잠방이를 입고 대나무로 뗏목처럼 엮어놓은 평상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은 없다.

“죽여라!”

고천범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이 일제히 칼을 뽑았다.


부하들이 서생을 에워쌌다.

서생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가 대나무 막대기를 하나 주워들었다.

‘저 따위 막대기로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고천범은 어이가 없었다.

“흐흐. 서생놈아, 오늘은 네놈이 죽어주어야 하겠다!”

고천범이 냉소를 날렸다.

서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


2)우리나라의 단오절도 굴원의 제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 설도의 시는 우리나라에서 <동심초>라는 가곡으로 작곡되어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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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무림지보(1) 24.05.09 108 0 13쪽
71 71화 마녀의 사랑(6) +3 24.05.08 1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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