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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天
작품등록일 :
2011.02.18 23:24
최근연재일 :
2011.02.1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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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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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2화-아이도 크면 어른이 된다(10)

DUMMY

별이 밝은 밤이었다. 별들은 검은 비단폭에 휘감겨 있으면서도 그 찬란한 자태를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돋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별들 가운데에서는 달이 그들의 지배자인 양 오만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달의 자태는 오만하다 고고해 보였다.

"헤에…"

이렇게 밤하늘을 본 것이 얼마만이었더라. 저스틴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테이와 키야를 처음 만난 날, 그날이 밤하늘을 본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다음 집까지 가는 며칠 정도? 적어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이렇게 본 적이 없었다. 설사 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단순한 배경이었다.

오늘, 배경을 벗어난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문득 저 별을 보고 있자니 할아버지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별이 된단다.' 이제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왠지 저 별빛에 가슴이 아려왔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젠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저스틴은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옷 안으로 라이네시아가 손에 잡혔다. 그는 라이네시아가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되는 양 소중히 붙잡았다. 떨리는 그 손이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몸부림쳤다.

"아직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저스틴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상단주인 이반이 서 있었다. 저스틴은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반은 저스틴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전히 밤하늘은 아름답군요…저스틴이라고 했나요?"

"예. 그렇습니다."

이반은 갑자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잔디가 깔려 있긴 했지만, 겨울의 날씨가 식힌 땅이 그리 따뜻하진 않을 텐데도 그는 태연하게 앉은 것이다. 이반은 저스틴에게 옆의 자리를 권했으나 저스틴은 정중히 사양했다.

"당신 같은 어린 나이의 사람도 용병이 되는군요. 정말 대단한 세상이에요. 그런 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달은 저렇게 빛나고 있으니 저것 나름대로 멋진 일이군요."

저스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반 역시 그의 대꾸를 기대하지 않은 채 혼자 말할 뿐이었다.

"이번에 수도에 가는 목적은 물건을 팔러 가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편지를 전하러 가는 거예요. 그 편지는… 아, 당신은 잘 모르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 크로아 공작가에 대해 아시나요?"

노라크 산맥에 살던 시절의 저스틴이라면 이반의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스틴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 이름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침묵을 지켰다.

이반은 저스틴이 대답을 하지 않자 그가 모를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반은 하고 싶은 얘기를 계속 했다.

"아마 잘 모를 겁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깐요. 크로아 공작가는 누명을 쓰고 사라졌어요."

저스틴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읽은 이반은 피식 웃었다.

"당신도 세간에 퍼진 얘기 정도는 아는 모양이군요. 아마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겁니다. 크로아 공작가는 누명을 쓰고 사라졌지요. 제가 전달하는 이 편지는 억울하게 사라진 크로아 공작을 위한 것이랍니다."

저스틴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반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제가 당신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당신은 이 이야기를 델로아 공작에게 밀고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모르긴 몰라도 막대한 포상금을 받을 수 있겠지요. 지금도 그는 반역자 잔당이라 하여 남은 크로아 공작의 세력을 토벌하고 있으니깐요."

이반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다시 출발해야 하니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막사 쪽으로 사라졌다. 저스틴은 얼떨결에 듣게 된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밤하늘은 그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달그락, 달그락

저벅, 저벅, 저벅

말발굽 소리, 바퀴 굴러가는 소리, 발걸음 소리.

누군가가 마차 바퀴 소리에 맞춰 작은 허밍을 시작했다. 흥 흥 작게 시작된 소리에 어느 새 하나 둘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감질 난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그러지 말고 아예 노래를 하지?"

작게 이어지던 허밍이 멈췄다. 사람들은 내심 노래를 기대했지만 더 이상의 리듬은 없었다. 발걸음만 공간을 메우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노래를 하라고 외친 사람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그 사람이 당황해하려는 찰나,

우연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맞춰졌다. 그들의 발걸음이라는 악기는 아까의 작은 허밍 그대로 연주했다. 그 반주에 힘입은 듯 작은 소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발소리, 말들의 발굽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곧 노래와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나가며 사람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은 반주가 되어 노랫소리를 받쳐주었다.


작은 바람이 있었죠

꿈을 꾸던 바람

회치듯 날아오르던

작은 바람


작은 바람이 있었죠

꿈을 꾸던 바람

큰 친구와 만나서

큰 꿈이 되었죠

작은 바람


큰 바람이 일었죠

많은 친구와 만난

많은 꿈이 된

큰 바람이 일었죠


너무 큰 바람이었죠

너무 커서

친구들이 모두 떠나가서

다시 작게 홀로 남아버린

너무 큰 바람이었죠


작은 바람이 있었어요

바다에게, 숲에게, 산에게

왜 친구들이 떠나갔냐고

왜 다시 혼자이냐고

물어보던

작은 바람이 있었어요


작은 바람이 있었죠

가진 만큼 줄 줄 알게 된

가졌던 만큼 줄 수 있게된

그런

작은 바람이 있었어요


그 누구나 한 번쯤, 어렸을 적에 들어 봤을 노래였다. 아마 이름을 말하라면 거의 대부분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노래였다. 그렇게 잘 알고 있어 지루할 만한데도, 이렇게 발걸음 소리에 맞춰 불려진 노래는 왠지 귀에 살갑게 다가왔다. 발걸음이 서로를 하나로 묶었을지도 모른다.

"노래 잘 부르는 걸? 저스틴."

말텐을 떠난 이후 저스틴은 별빛 밤에 고용된 여러 용병들과 친분을 나눴다. 그들 중 한 명이 저스틴에게 칭찬했다. 저스틴은 씩 웃었다.

다른 짓궂은 용병들이 재창을 외쳤다. 상단의 상인들도 은근히 재창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부를 생각이 없었던 저스틴은 얼굴을 붉혔다. 저스틴의 노래로 하나로 뭉쳤던 별빛 밤 상단은 왁자지껄해졌다.

"애를 괴롭히냐 이것들아!"

테이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자 용병들 사이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 중 한 명이 테이를 향해 "그럼 자네가 노래 한 곡조 뽑아봐!" 하고 소리쳤고 테이는 "못할 것도 없지!"하며 받고는 곧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한 곡조 뽑았다. 그가 부른 노래는 '아스라한 언덕 너머'라는 대중적이며 매우 경쾌한 노래였고 용병들은 "잘한다!" 하고 소리치며 박자를 맞추다가 이내 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저스틴은 이래도 되나 싶어서 이반을 바라보았으나 이반은 미소를 짓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 상단의 사기가 오르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들을 노리는 자들에게 그들의 숫자가 많음을 과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반은 은연중에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상인들도 그걸 잘 알았기에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헤에…"

저스틴은 용병들이 순식간에 한 목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키야가 저스틴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야."

"예?"

저스틴은 키야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키야는 주변에서 가고 있던 짐수레 위에 털썩 앉았다. 그 수레를 끌던 상인은 노래 부르다 말고 그녀를 흘끗 봤지만 키야는 살짝 웃어주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시켰다. 키야는 기지개를 활짝 폈다.

"이렇게 호위를 하는 것은, 호위대상이 목적지까지 도달할 때 까지는 우린 긴장을 풀 수 없다는 말이야. 낮이건, 밤이건.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지. 긴장을 푼다는 것은 곧 죽는 거니깐, 계속 긴장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미치지 않으려면 저렇게 노래라도 불러야 한다는 거지."

"그럼 키야는 긴장되지 않아요?"

저스틴의 순진한 물음에 키야는 피식 웃었다.

"내가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해 봤는데, 그깟 긴장 하나 조절하지 못하겠어?"

키야는 짐수레를 뒤적이더니 사과 한 알을 꺼내 저스틴에게 던졌다. 그러고는 그녀 역시 한 알을 꺼내 깨물었다. 아삭! 하는 고운 향이 그녀의 입 안에 퍼졌다. 키야가 깨문 부분은 아직 덜 익은 부분이었기에 풋사과 특유의 향과 익은 사과의 맛이 결합되어 묘한 향이 퍼졌다.

"어이, 거기! 그렇게 짐수레에서 마구 꺼내 먹으면 안 되오!"

"에이, 어차피 다 먹을 건데요, 뭐. 그렇죠 상단주님?"

키야의 물음에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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