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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님의 서재입니다.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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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天
작품등록일 :
2011.02.18 23:24
최근연재일 :
2011.02.1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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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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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994

작성
10.06.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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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공작 3화- 인간일 수 밖에 없는것들(7)

DUMMY

세수를 하는 아비스를 보며 필립은 오늘 공작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 후, 마님의 아파트(Apart: 아센 왕국의 귀족들의 거주공간은 남성 주인과 여성 주인의 공간이 따로 나뉘며 공용 거주공간으로 이어진다. 이 나뉘어진 공간을 아파트라 이르며 대부분 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짓는다.)에 방문하셔서 축제일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신 후 점심을 드시기 전까지 영지의 축제에 참가하신 다음, 이동 마법진을 타고 왕궁 티아스 알렌으로 가셔서 무도회에 참가해야 합니다. 그 이후부터의 일정은 수도의 집사 란테르에게 들으시면 됩니다."

아비스는 제1시종이 가져온 옷을 입었고 필립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옷을 다 입은 아비스는 식당으로 나왔다. 식당에는 델로아 공작 부인을 비롯해 델로아 가문의 일원들이 다 나와 있었다.

"오셨군요."

공작 부인의 말에 아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고 다른 가족들도 식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식당은 조용했다. 귀족들의 식탁답게 음식도 화려하고 따스하고 풍부했지만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차가웠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완벽하기만 한 식사. 너무도 귀족답기에 전혀 가족같아 보이지 않는 식사.

공작 부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가 이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이 식사 분위기는 바뀐 적이 없었다. 그것은 델로아 공작이 자신을 델로아 공작 부인으로만 대해 주지 아내로 대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시집올 때, 델로아 공작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는 것도, 자신은 그녀의 대용품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한지 이제 12년이 다 되어가는데, 정초를 알리는 축제일의 당일만큼은 이런 분위기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좀 더 가족같은, 따스한 분위기였으면 했다.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공작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통의 남편들 같으면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아비스는 흘끗 돌아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공작 부인은 아직 고운 얼굴을 파르르 떨며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버렸다. 아비스는 끝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에서의 식사가 끝나고, 아비스는 필립의 도움을 받아 행사 전용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필립을 대동한 채 공작 부인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에게 공작 부인을 위로한다던가 하는 섬세함이 있어서가 아닌, 단지 해야 할 일이기에 그런 것이다. 축제 시작의 아침에는 그 지역의 영주가 그의 부인의 침실에서 부인에게 가서 '다른 꿈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 관례를 지키기 위해 갈 뿐, 다른 일은 없었다.

아비스는 필립이 열어 준 문을 통해 공작 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공작 부인의 시녀들이 문의 옆에 정렬했다. 공작 부인은 자신의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다른 꿈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모두의 축복 속에서 하는 말이었지만, 아비스의 말에 감정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방 안의 그 누구도 무표정에서 해어나지 못했다.

아비스는 말을 마친 후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뒤에서, 공작 부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목소리는 울음기가 섞여 떨리고 있었다.

"그래요! 다른 꿈이 시작되었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15년 전 그 꿈에 사로잡혀 있어, 당신은 과거 속을 해메는 망령일 뿐이야! 으흐흐흑…"

공작 부인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지만 아비스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망설임 하나 없이 방을 나섰다. 공작 부인은 밀려오는 고독감에 몸을 떨며 울었다. 한 쪽은 단순한 사업 파트너같은 존재로서 상대를 바라보고, 다른 한 쪽은 상대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족들. 그 광기의 마당에, 그 어느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공작 부인의 침실에는 그녀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아비스는 다음 일정을 위해 상테-드-델로아의 광장으로 나섰다. 그의 머리속에는 이미 공작 부인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공작 부인이니, 공작 부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주면 그걸로 된 거였다. 자신 역시 공작 부인에게 하는 대접 그 이상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가 일상을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깃털과 같은 일상의 일부. 그녀는 결코 그 이상을 벗어난 하나의 의미 단위로써 그에게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아티스의 사도이시자 아센 왕국의 공작이신 아비스 크라티에 델로아 공작 전하이시다! 모두 예를 갖추어라!"

상테-드-델로아의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비스는 광장에 마련된 단상 위로 올라섰다. 아티스에게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비스에게 환호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아비스는 단상 위에서 나부끼는 자신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깃발 안에서는 천사가 눈물짓고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신 아티스 님께 감사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모두들 즐기도록 하라."

"공작님께서도 새 꿈을 꾸시길 바랍나다~!"

영지민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새 꿈을 꾼다는 것은 축제 기간 동안 사람들이 쓰는 인삿말이었다.

아비스는 자신의 성으로 돌아왔다. 이 곳에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이득되는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필립에게 이동 마법진을 준비하도록 이른 후 서재로 돌아왔다. 마법진이 준비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 있고 싶었지만 필립이 언제 올지 몰라 그냥 서재에 있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이번 계획만 달성된다면, 그 옛날 했던 맹세를 지킬 수 있다.

그는 그 맹약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끈이라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술 한 잔이 간절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필립이 서재로 와 아비스를 불렀다. 아비스는 필립을 따라 이동 마법진이 설치된 곳으로 갔다. 이동 마법진은 성의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넓은 홀의 바닥을 다 차지할 정도로 컸다. 아비스는 자신을 호위하는 엔젤 기사단의 기사들을 데리고 마법진의 한 가운데 섰다. 마법사들의 캐스팅이 장엄한 하모니를 이루며 울려퍼져갔다.

"다녀오십시오. 델로아 공작님. 새 꿈 꾸시길."

"자네도 새 꿈 꾸길 바라네."

아비스의 눈 앞이 파란 불빛으로 가득해지는가 싶더니 장면이 바뀌었다. 여전히 자신과 엔젤 기사단을 중심으로 장대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고, 장엄한 캐스팅이 주변을 채우고 있었지만 여긴 엄연히 다른 곳이었다.

수도 펠하임. 모든 것이 끝난 장소.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할 장소.


"…그리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신 우리의 주인 아티스 님의 뜻에 따라…"

펠하임 아티스교의 대성당 레-아티스.

아비스는 경건한 자세로 한 쪽 무릎을 꿇고 제단 앞에 앉아있었다. 아티스의 신관이 읇는 아티스교의 경전 '레이스티'의 내용은 아티스의 창세 신화 부분이었다.

아비스는 다리가 저려옴을 느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역활은 신년을 맞아 아티스께 제를 올리는 사도였다. 그 역활 속에는 다리가 저려 몸을 움직이는 것 따위의 동작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아비스는 그 역활을 '연기하고'있을 뿐이었다.

어느 새 제는 절정에 다다렀다. 아비스는 몸을 일으키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검을 역수로 쥐며 높이 들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붉은 기운이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검을 완벽히 붉게 물들이며 사방으로 뻗쳤다. 그는 검을 그대로 제단 위에 놓인 염소를 향해 찔러넣었다.

푸욱!

메에에에

염소는 단발마를 내지르며 죽었다. 염소와 아비스의 검이 닿은 부위에서 연기가 조금 피워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염소의 온 몸으로 불길이 번지며 염소를 태워버렸다. 제단 위에는 잘 익은 염소 고기만 남게 되었다.

"와아아!"

"역시, 폭염검의 델로아 공작이다!"

"12사도 중 폭염의 사도란 이름이 헛되지 않구나!"

"역시, 아센의 소드 마스터(Sword Master)!"

델로아 공작이 보여 준 무위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사람들의 반응에 자랑스러워하거나, 쑥스러하거나 하다못해 사람들을 한 번 돌아보기라도 할 텐데 아비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을 닦아 검집에 넣었을 뿐이다. 그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검을 찔러넣는 일이라던가, 사람들의 찬사를 듣는 일 같은 것은 그에게 그저 숨쉬는 일과 같은 '일상'일 뿐이었다. 감정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16년 전 그 날, 마지막 칼질과 함께 모두 난도질당했다. 그에게 있어 감정이란 예전에 느꼈던, 이제는 점차로 바래져가는 과거 속에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만족하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고, 애통해하며 울부짖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눈물 한 방울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계획에, 이 맹세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맹세를 지키고 나면, 조금이나마 감정이 돌아올 것 같아서이다.

"공작 전하, 내일 폐하의 기침 의전 때에 5번째 순서에 배정받으셨습니다."

아티스 신전에서 제를 마치고 나오는 아비스에게 수도의 집사 란테르가 말했다. 아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도에 있는 그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에 올랐다. 란테르와 엔젤 기사단이 그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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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바꿀까 생각중입니다...제목은 영지물같은 '공작'인데, 정작 내용은 저스틴의 일대기라서요...하아 요즘은 시험의 압박 때문에 비축분을 제대로 못만들고 있네요...음 난 왜이렇게 말줄임표를 많이 쓰는지...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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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공작 1화-꿈도 때론 잔혹하다 reload(7) +2 10.05.18 2,503 8 9쪽
26 공작 1화-꿈도 때론 잔혹하다 reload(6) +1 10.05.18 2,447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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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공작 1화-꿈도 때론 잔혹하다 reload(2) +6 10.05.03 3,66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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