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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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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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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납고 II (4)

DUMMY

고독의 그림자.

이것은 전쟁도 전투도 아니다.


산악을 타면서 제트가 소리만 들었다. 남들은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혼자 네팔을 등반한 기분. 나도 일대에서 혹여나 다른 지역대나 대대를 찾아서 싸워야 했는지. 하지만 내 행동은 정당하다. 다만 1차 타격 TOT는 걸어오느라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대대 다른 여단의 작계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디서 뭐가 터지고 총소리가 날 것으로 생각했다. 못 들었다. 너무 산이었나보다.


날 불안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혼자라는 것. 아무리 특수전 부대원이지만 짐승도 안 두려웠다면 거짓말이고, 특히 잠을 자야 할 때 불안했다. 다만 훈련처럼 밤에만 걷고 낮에는 쉬면서 경계했다. 낮보다는 밤에 걸으면서 많이 긴장했다. 인적은 거의 없었다. 산중 민가나 건물 형태가 보이면 이격해서 통과했다. 그러나 이 지옥 같은 군장 무게.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이며, 어느 순간에 모두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소총. 권총, 실탄 7백. 수류탄 4, 소이수류탄 2, 신호탄, 크레모어 셋, 폭약 10파운드, 대검, 사제 나이프. 침낭, 판초우의, 예비군복과 군화, 특전식량 6개와 신형 전투식량 4개, 신형 1인 텐트와 반합 수통, 고어텍스, 통신 예비 배터리, 야투경, 소형 쌍안경과 렌턴. 소텍 무전기와 각종 배터리. 기타 잡다한 것들. 삼단삽. 30알 영양제,


한계는 충분히 버텼다. 쓰러지지 않으면 간다. 아껴먹은 전투식량도 별로 남지 않았다. 물은 보이면 채운다. 영양제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극한의 체력으로 가파른 산악을 강행군하다 보니 영양제를 입에 넣는 순간 ‘맛’있기까지 하다. 먹고 안 먹고의 차이가 크다.


“장기 특수전에서 서양 부대들 영양제 필수다. 이건 웃긴 거 아냐.”


중대장 의견으로 정말 싸구려 3만 원 줬나? 공구.


“북한에 뭐 있겠냐. 이거라도 가져가야지.”


중대장님이 똑똑했다. 정수제는 뺐는데, 멍청했다. 꼭 넣으라고 했었다. 북한 물에 기생충 병균 많다고. 대원들이 정말 가소롭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적응하지 못한 균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자칫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작전지역에 존재는 하나 힘을 못 쓰고 제대로 못 하는 것. 그건 병신이다. 중동으로 가는 서양 특수전부대들은 예방주사 예방약 말라이아약 등 꼬박꼬박 챙긴다. 인간의 신체가 그렇게 약하고 불안하다.


“일기당천만 따지지 말고. 이질. 설사. 병균. 회충. 이. 쥐. 거머리. 넘치고 넘쳐. 부스럼 피부병 풍토병도 반드시 있어. 촌의 노인네나 가난하게 산 중년들은 북한 가도 버티지만, 너희들 빌라 아파트 세대는 접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붙어 있지만 나라가 달라. 내장에 탈 나면 북한에서 뭐 할 건데? 정찰국도 항균제 소화제 갖고 다녀. 의무 주특기에게 다 맡길 수 없어. 의무에게 타먹을 거야? 의무가 전사하면 어쩔 건데. 소염항균제와 정수제 내복약은 각자 알아서 챙겨. 약간씩만 넣어. 그거 약국에서 얼마나 하냐? 옛날 말로 마이신! 지역대에서 공구 하면 빠지지 마.”


모든 것에 득과 실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 빠짐없이


전장정보 집중연구 시간에 중대장은 의무 주특기 유고 시 순번도 정했다. 의무낭 수거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중대장은 생각했다. 북한 병원을 습격할 수도 없고, 고립된 은거지에서 필요함을 강조했고, 이제 생각해보니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다만, 지금 못 만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중대장은 의무 주특기 유고 시 정작 주특기와 담당관 중 가까운 사람이 의무낭을 ‘반드시’ 수거해서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을 구분하지 말고 무조건 다 회수해!”


중대장 대부분 말은 옳았다. 힘겨운 하루 마실 물을 충분히 채워서 수송기에 오른 사람 별로 없다. 결국 북한의 물인데, 계곡에서 취득해 마시고 배가 이상했다. 이질 설사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물은 좀 그랬다. 이빠이 채운 다음에 해지기 전에 끓였다.


훈련 때 들고 다닌 대용량 압축식 비닐 물통이 간절했다. 훈련 물품 중에서 실제 작전에 불필요한 건 없었다. 다 간절한 거였다. 없으니 당장 수통 들고 물 뜨러 다녀야 한다. 먹을 것이 없으면 참으면서 기회를 보지만 물이 없으면 그야말로 사람이 힘을 못 쓴다. 여름훈련에 먹던 소금정제도 가져올 걸 했다. 무겁지도 않은 것.


“일어나자.”


어떻게 하지?


잠깐. 총부터. 넘어와서 총의 스위치를 ‘사격’으로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탄창도 계속 같은 삽탄 상태. 잘못하면 탄창 스프링 먹통된다.


‘생각날 때 해!’


탄창 빼서 실탄을 모두 뺀 다음, 잠시 말리고 다시 끼우고 삽탄. 그래. 그래야 해. 총도 작동해보고, 이상하다 싶으면 닦고. 노리쇠뭉치 유연 상태와 격발음 확인. 약실의 총알까지 빼서 약실은 일단 닦자. 총알이 들어가서 너무 오래 있었다. 탄창들에 삽탄한 지 거의 일주일 되는 것 같은데? 실탄 다 빼서 스프링 눌러주고 풀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자칫해서 실탄과 함께 스프링이 굳거나 어디 걸려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은 큰 문제 된다. 탄창 먹통 가능고장. 탄창 바닥을 위로 탁! 쳐서 해결 안 되면 먹통이다.


‘일단 총에서 탄창 빼 점검하고, 다른 것도 삽탄 상태로 스프링 다 눌러보자.’


밤에는 혹시나 몰라 착검하고 다녔는데,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나이프 상태도 확인하자. 그때 당시에 못 본 잔유물이 있을 수 있다. 그때 닦고 나서 뽑지 않았다. 휴, 다시 뽑고 싶지 않다. 일단 확인은 하자. 이대로 놔뒀다가 잡물이 칼날과 손잡이 중간에 눌려서 붙어 안 빠지는 불상사.


‘오.’


진짜로 뭐가 꼈어. 뭐가 딱딱하게 툭! 떨어지네. 다용도 칼을 꺼내서 긁어내자. 무성무기로는 대검이 이 사제 나이프를 못 따라온다. 이 사제 칼은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베이고 벌어진다. 사용해보니, 군용 대검은 찔렀다가 뽑을 때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 느낌이 있다.


군용 대검을 단체로 그라인더로 갈았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날카롭도록 갈면 칼 수명이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고가 사제 칼보다 확실히 재질이 약하다. 비싼 사제 칼은 탄력이 있다. 그 탄력은 사람이나 짐승의 몸을 탈 때, 뼈로 막히면 비스듬히 타고 넘어길 틴력이다. 또 부드럽게 빠지는 원천이다. 탄력이 없으면 뼈에 막힐 때 부러진다. 군용 대검을 무성무기로 쓰면 정말로 강하게 찌르고 뽑고 반복해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려면 목밖에 없다.


진짜인지 무의식의 환상인지 얼굴도 기억 안 난다. 어떻게 한 놈을 그런 산중에서 만났는지 아직도 이해가 불분명... 극도의 피곤은 좋은 거야. 어제가 진짜 어제였는지 멍해. 너무 피곤해서 하루하루가 단절되는 기분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시날 같다.


‘그것이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오나?’


내 손. 이 손이... 그 사람 배가 아주 부드러웠단 기억만 크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대장님, 중대원들을 보고 싶다. 한 명만 나타나도 엄청난 힘이 될 것 같다. 대침투 전술에서 그랬지. 적 특작부대는 소수 팀이므로 단 한 명이라도 잡으면 팀의 전투력 작전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우리도 똑같다. 내 군장의 폭약 10파운드는 폭파주특기 물자의 감소다. 이걸 어디다 쓰나. 뇌관은 폭파 사수 부사수가 나눠 가지고 있다.


이 떡(C4)을 쓰려면 수류탄에 성형으로 발라 쓰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떡을 쳐서 던졌다가 떡이 떨어질 수도 있고, 한다면 수류탄 부비트랩에 떡을 처바르는 것인데, 인계철선이 없다. BT 용품 역시 폭파 조수가 가진 것으로 기억한다. 콤포지션이 땔감으로는 최고다. 연기도 없이 파란 불꽃으로 완전연소되니까. 훈련 중 폭우가 내리면 폭파가 C4 뜯어내서 불 살리던 기억.


누구 한 명이라도 만나고 싶다. 중대. 우리 철혈중대.


철혈은 최소 20년 전에 누가 지었고 – 바뀌지 않고 내려왔다고 했다. 일반명칭을 바꾸려면 지역대장과 대대장 재가가 있어야 하기에 귀찮아서 그냥 놔둔 것 같다. 산짐승 들짐승 독과 이빨로 상징되는 중대 이름이 많은데, 우린 좀 추상적이다. 그러나 어떠랴. 그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철혈 파이팅!!!”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같이 구호를 한다는 것이 뜻보다 중요하다.


“중대장님. 작계. 완벽합니까? 어떠십니까?”

“말이라고 해?”

“예?”

“엄청나게 불완전하지. 난 40% 봐.”

“그 정도로 말입니까?”

“넌 우리가 특수, 특수부대라고 생각하냐?”

“특수전 부대죠.”


“그건 맞는 말인데, 우리가 정말 특수하다고 생각하냐고.”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평준화된 것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함정이 있어. 그거 위험해.”


침묵은 오고야 말았다. 그 ‘뭔가’가 내가 의아했던 것이기도 했다.


“너도 생각이 있으면 얼마나 허술한 상태로 우리가 작전하는지 알 거야. 팀 고참 부사관들도 다 알아. 이게 말이 돼? 재보급 거의 불가능이야. 우리가 이겨서 전선이 100km 정도 북상하기 전에는 재보급 힘들어.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방공망 체계도 무너져야, 방공방 레이더 고사총들이 퇴각해야 우리에게 뭐 와도 와. 가장 좋은 건 북한 방공망의 일괄 지휘체계가 무너지는 거지. 그러면 수송기 올 수 있어.”


“이 실탄과 이 식량으로 작전을 얼마나 할 수 있습니까.”

“목표에 이 폭약으로 돼? 세 배는 있어야 한다고. 더 큰 문제는...”

“네.”


“특수전부대 특수부대라곤 하지만, 육군의 지휘체계과 지휘관체계 안에 있어. 전형적인 육군부대야. 100% 자원입대 자원과 훈련을 뺀 그 모든 것이,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는 육군의 체계 속에서 움직여. 다시 말해, 특전사령관부터 육군에 독립적이지 않아. 특전사령관 위로 상관이 너무 많아. 상관은 거의 선배야.”


“...”


“사령부 자체가 가진 힘과 재원이 없어. 전혀 없어. 주공에 조력하는 사령부이고 독립적인 특수전이 아니야.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목표 작계가 만들어져. 이거 엉망이야. 죽든지 말든지 하라는 거 아냐 이게. 40% 맞아떨어지면 감지덕지야. 그것도 못 하고 많이 죽을걸. 다시 말해.”


“다시 말해.”


“우린 결국 준동 난동하는 게릴라가 되는 거야. 이 상태 작계론.”


“그거를, 그거를. 제가 묻고 싶었습니다.”


작가의말

다른 곳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주 1회로 조정합니다.

월요일 12시 기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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