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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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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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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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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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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8,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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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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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글자
12쪽

얘기가 다르지

DUMMY

남궁호는 황석일과 외출을 다녀온 뒤로 종종 두 아이들을 찾아갔다.

약속대로 애들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가끔은 놀아주기도 했다.

옷감에 염료가 물들어 염색이 되듯, 남궁호는 황석일에게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은혜를 입혔다.

오늘도 외당의 숙소로 향한 남궁호.

그의 뒤로 오경문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공자님, 근래엔 좀 여유가 생기셨습니다? 또래 친척들을 다 패버리셔서 그런가.... 처음 뵀을 때만 해도 맑은 아이셨는데 언제 이렇게 폭력적으로 자라셨는지.... 흑흑.”


메마른 눈가를 소매로 훔치는 시늉을 하는 녀석.

남궁호는 그를 무심한 눈빛으로 보았다.


“너 나 본 지 얼마 안 됐잖아? 이제 달포 정도 지났는데.”


“에이,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느낌이. 거 빡빡하시긴. 아무튼 곧 평가도 있을 텐데 이제 수련을 더 빡세게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경문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남궁호를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남궁호는 황석일의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무공 기초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날인데 무공에 힘쓰는 시간이 적어지는 건 비정상적.

그러나 오경문이 농담식으로 뱉은 말에 답이 있었다.


‘나한테 시비를 걸어온 녀석들을 다 박살 낸 덕분에 능력치랑 무공 숙련도가 훌쩍 올랐어. 기본공은 거의 완숙의 단계가 됐다고 할 수 있겠지.’


10대 중반 정도 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궁호에게 혼쭐이 났다.

전투에 대한 보상을 얻어 벌써 기초 교육은 졸업하고도 남을 수준이 됐다.

교관들 사이에선 남궁호가 그들이 세워놓은 교육체계를 너무 빠르게 앞지른 탓에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남궁호 공자님의 성장 속도는 전무후무하외다! 절차도 중요하지만 예외도 둬야 하지 않겠소?”

“허허.... 가문의 큰 복인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공자에게만 특혜를 주면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맞는 말이오. 다른 이들은 길면 한 해 동안 받아야 하는 교육을 벌써 끝내다니?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해도 나이가 있는 만큼 다른 아이들보다 유리한 부분도 있었을 거요.”


교관들 모두 남궁호가 빠르게 무공을 습득하고, 발전했음은 인정했다.

하지만, 진정한 교육자의 마음을 품은 일부 교관들을 제외하고는 남궁호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들 또한 일공자나 삼공자의 파벌에 줄을 대고 있었으니까.

결국 남궁호의 교육과정은 벌써 정체기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호는 걱정이 없었다.


‘공자께서 말씀하길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고 했지. 사람 셋만 있어도 그 중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데, 이 큰 남궁세가에서 교육체계만 따를 필요가 있나?’


교관들이 이렇게 나올 건 당연히 알고 있었으니 여유가 생기는 시기에 황석일을 공략한 것이었다.

남궁호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오경문에게 자신만만하게 웃어주었다.


“오히려 평가를 앞두고 있으니까 이러는 거야.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몰라?”


“혹시 돌아버리셨...? 아, 아닙니다. 공자님의 큰 뜻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련히 잘 하시겠지요.”


“그래. 게다가 이번 평가는 특별한 날이 될 거거든. 확실하게 준비를 해놔야지.”


남궁호는 오경문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는 황석일의 아이들에게 갔다.

황준과 황소아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꺄르륵 웃으며 달려왔다.


“형아!”

“황준, 공자님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공자님, 오셨어요?”

“저번에 형이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 그랬다, 뭐.”


황준은 누나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기세가 죽지 않았다.

애초에 둘은 보통의 남매들과 다르게 아주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황소아도 황준을 심하게 혼내는 법이 없고 말로만 타이르는 정도였다.

남궁호는 쪼르르 달려오는 황준을 번쩍 들어올렸다.


“읏차!”


남궁세가의 교육과정을 통한 단련과 전투 보상으로 인한 능력치 향상으로 크게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하늘을 날듯 쭉 올라가는 동생을 내심 부러워하며 보는 황소아.

그녀의 뒤로 황석일이 나타났다.


“공자님, 너무 그렇게 놀아주지 마십시오. 버릇 나빠집니다.”


어른들이 으레 하는 말이었지만, 황석일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은 줄곧 둘이서만 놀아왔던 황소아와 황준.

해봐야 자기네가 정한 규칙으로 돌멩이 따위를 던지며 노는 게 전부였는데, 남궁호의 등장으로 놀이의 신기원이 열렸다.

남궁호가 힘차게 들어주고 던져주니 이맘때 아이들은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당연히 퇴근하고 돌아온 황석일에게 같은 방법으로 놀아달라고 졸라댔다.


‘아무리 외공 고수라고 해도 애들 체력은 못 따라가는 모양이네.’


황석일은 엄마 없이 자라고 있는 애들의 부탁을 거절할 만큼 모질지 못했다.

때문에 하루 종일 정문을 지키고 돌아와서는 황소아와 황준을 안아주고 들어줘야 하는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날도 슬슬 더워지고 있었기에 황석일은 저녁마다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남궁호는 그러한 사정을 짐작했지만,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걸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나한테는 책임 없는 쾌락인 걸?’


남궁호로서는 마음 내킬 때만 놀아주고 여차하면 공부하라고 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을 매일 보는 것도 아니었고.

짧게 힘쓰고 황소아, 황준이 방긋방긋 웃으면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황석일도 남궁호에게 감사를 느끼면 느꼈지 원망은 하지 않을 테니, 남궁호는 손해 볼 게 일절 없는 것이었다.

남궁호의 악랄한 속내를 모르는 순진한 애 아빠 황석일은 남궁호에게서 황준을 받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황준, 밖에서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힝.... 아빠는 밤에 별로 못 놀아주시잖아요....”


“어허! 내가 왜 그렇게 일을 하는데? 이 아비도 힘들지만 너 때문에 참고 일하는 거다.”


황석일이 가볍게 혼을 내자 황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칭얼거리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황석일의 말을 이해한 표정은 아니었다.

이해를 못했을 뿐 아니라 억울하기까지 했다.

황준이 바라는 건 황석일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었으면 했으니까.

이 광경을 지켜보는 남궁호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황석일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보았다.


‘너 때문에 무리해서 이사까지 왔는데! 성적이 이게 뭐야? 내가 진짜 못 산다!’


부모님이 내 탓을 한다는 상황 자체가 자식에겐 큰 충격이고 상처였다.

심지어 자식이 바라던 것에서 기인한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남궁호는 그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서 양쪽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됐다.


‘황석일 위사가 애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니까. 뭔가를 더 해주고 싶은 생각에 고생하다 보니 튀어나온 말일 뿐이지.’


남궁호가 지금까지 봐온 황석일은 그랬다.

혹시라도 자녀와 관련하여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의탁하고 있는 가문의 공자에게 적의까지 드러낼 정도의 사람이지 않은가.

자신의 성정과 맞지 않지만 남궁호가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하긴, 부모가 됐다고 바로 완벽해질 순 없는 거잖아.’


남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굴 지칭하는 것인지는 모호한 말을.


“준아, 너희 아버지께서 네 책임이라고 하시는 게 아니란다. 그냥, 아버지께서 네게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이고 싶고, 장난감도 사주고 싶다는 말씀인 거야.”


“...아.”


남궁호가 황준을 달래는 얘길 듣고 황석일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는 둔한 아버지였을 뿐, 아둔한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남궁호는 그보다 더 눈치가 빠르고 영악했다.

황석일이 순간 당황했을 때, 기세를 몰아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황 위사님, 애들 걱정에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제가 한번 소아와 준이가 세가의 기초 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닙니다, 공자님. 그렇게까지... 음.”


바로 거절을 하려던 황석일의 눈에 아들이 들어왔다.

이어 조금 전의 자책감이 다시 고개를 불쑥 들었다.

황석일은 이내 입술을 어렵게 뗐다.


“감...사합니다.”


그는 결국 남궁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의 성격대로였으면 한사코 거절했을 일이었다.

황석일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받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남궁세가에 들어온, 그것도 하급 무사로 천대받으면서도 일하고 있는 이유는 모두 자식들을 위해서였다.


‘그래도 무조건적으로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황석일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남궁세가의 공자인 남궁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몹시 한정적이었다.

돈? 그가 지금 받는 돈도 남궁세가에서 나오고 있었다.

무력? 남궁세가에 소속된 무사의 수가 전부 몇인지 세기도 힘들었다.

일손? 남궁호의 손짓 한 번이면 움직일 하인이 장원 도처에 깔려있었다.

거기에 못미덥지만 말 많은 오경문도 있었고.

그러나 황석일 외엔 남궁세가의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게 하나 존재했다.


‘어차피 사부님도 돌아가셨고, 준이와 소아에게 전수할 생각도 없던 무공이다. 나 같은 놈도 칼밥 먹고 살게 해준 수준이니 이공자에게도 가치가 없진 않을 터....’


황석일은 이내 결심했다.

자신이 익힌 외공을 남궁호에게 가르쳐주기로.

그리고 남궁호는 곧 황석일이 왜 자신의 외공을 아이들에게 익히게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 * *


‘씨발!’


황석일의 외공을 수련하는 것은 남궁세가 기초 교육에서 내려 베기 천 번 반복하는 것 따위와 차원이 달랐다.


‘이야, 내가 수련하다가 죽는구나!’


남궁호는 황석일이 퇴근한 뒤 한 시진동안 가르침을 받았고, 매일매일 육체의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황석일은 남궁호가 이번에야말로 절명하겠구나 하는 순간마다 절묘한 시기에 수련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체력, 부상, 근육 손상 등 적절한 회복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시 말해, 남궁호는 사선을 숱하게 넘나들었지만 번번이 버텨냈다.

세가에서 받는 무공 수업이 좀 편해졌다 싶었던 그는 갑자기 인생 난이도가 훌쩍 올라버린 기분이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는 개뿔! 안 되겠다, 다른 놈들 좀 더 두들겨 패야겠어.’


덕분에 남궁세가의 10대 중반 혈족들은 다시 폭력과 공포를 맞이하게 되었다.


* * *


봄과 여름 사이.

따스하다 못해 덥다고 해도 충분한 어느 날.

남궁세가의 연무장에는 어린 아이들부터 앳된 티를 벗어나려 하는 소년들까지 모였다.

그들의 앞엔 가주 남궁천이 서서 흐뭇한 표정으로 좌중을 살폈다.


“오늘은 남궁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점검하는 날이다! 모두들 세가에서 교육받은 성과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해라!”


남궁천의 말에 장원이 떠나갈 듯한 대답이 터져 나왔다.


“네!”


“이미 경험해본 사람도 있을 테고, 들은 이도 있겠지. 내가 가주가 된 후로 기초 교육과정을 제외하곤 모두 비무로 진행된다.”


남궁천은 철저한 실전주의자였기에 그는 기존의 구결 이해도 등의 평가 항목은 기초과정에만 남겨두었다.

이에 따르면 남궁호는 필기시험을 봐야 할 터였다.

하지만 남궁호는 교관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킨 문제의 교육생 아니던가.

남궁천은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남궁호를 보았다.


“허나! 남궁호는 빠른 성취도를 보여주고 있는 바, 특별히 비무를 통해 평가하겠다.”


남궁천의 발표에 연무장 전체가 웅성거렸다.

남궁호가 검왕조차 인정하는 기재라는 뜻이었으니까.

호기심의 눈빛.

시기질투의 시선.

관심의 눈길 등.

온갖 감정이 남궁호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남궁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주 남궁천의 옆에 마련된 귀빈석.

그는 그곳에 앉아있는 승려를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역시 왔구나! 좋았어, 원랜 남궁호로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지.’


작가의말

고통은 나누고 기쁨은 혼자 누리는 게 주인공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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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기가 다르지 +5 23.05.19 9,501 184 12쪽
11 독목불성림 +7 23.05.18 10,355 190 14쪽
10 저점매수의 기회 +6 23.05.17 11,791 214 15쪽
9 당가의 여협들 중에는 사실... +8 23.05.16 12,685 227 12쪽
8 무림에선 +9 23.05.15 12,895 2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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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음공 +13 23.05.13 14,303 284 12쪽
5 천수제 +16 23.05.12 14,726 3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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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먹어주마 +12 23.05.10 16,207 329 12쪽
2 아주 꼴통이라니까? +7 23.05.10 18,093 332 12쪽
1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미쳤다 +27 23.05.10 23,980 3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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