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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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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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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8
글자수 :
388,273

작성
23.05.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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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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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글자
12쪽

음공

DUMMY

꿈속에서 가면 안 되는 장소가 있다.

예를 들면 변소가 그렇다.

거기야말로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 남궁호는 그런 꿈에서 깬 순간과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문(水門)의 개방은 멈추지 않았다.

사파 고수의 살기 때문이었다.


‘무림영웅에서 몇 번 반복해 봐도 이건 못 견디더라고. 이거 참... 문명인으로서 내면의 무언가가 깨지는 기분이구만.’


남궁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감상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흑의인이 왼손으로 남궁호의 목을 우악스럽게 잡아챘으니까.


“꺽...!”


남궁호가 숨넘어가는 신음을 냈음에도 흑의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놈은 팔로 남궁호를 감싸며 자신과 같은 방향을 보도록 들었다.

이어 오른손 검지로 남궁호의 목 뒤쪽을 쿡- 찔렀다.


“윽?”


“흐흐, 마혈을 짚었으니 발버둥 칠 생각일랑 말아라. 네 아비가 순순히 나온다면 목숨에도 지장은 없을 거다.”


장내의 모두가 들으란 듯이 크게 떠든 흑의인은 그 핏발 선 눈을 남궁호로부터 검왕에게로 옮겼다.

시선이 움직일수록 점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더 찐득해졌다.


“남궁천! 나는 거령노군(巨靈老君)의 제자 전삼이다! 사부의 복수를 하러 왔다!”


이에 남궁천은 침통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꼿꼿한 자세 그대로 가볍게 뛰었음에도 일 장이 넘는 거리를 훌쩍 건넜다.


“거령...? 아, 그래. 거령광노(巨靈狂老)를 말하는 모양이군. 그 마두에게 너처럼 젊은 제자가 있었나? 제자를 거두기는커녕 양민들의 아이들을 데려가 몹쓸 짓을 일삼던 자였을진대....”


“그 입 닥쳐라!”


전삼은 남궁천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거칠게 씹어뱉었다.

거령광노는 남궁천이 검왕이라는 별호를 얻기 전에 무림을 떠돌던 시절 만났던 사파 무인이었다.

명성을 원하는 남궁의 가주와 사도의 고수가 만났으니 은원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결국 거령광노는 남궁천이 검왕이 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


“거령광노가 사망한 지 한참이 되었고, 그대의 외양으로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사제지간의 정이 쌓일 시간은 충분치 않았으리라 보네. 그러니 부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게. 무림의 선배로서 하는 충고라네.”


남궁천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동시에 그의 허리춤에 매여 있는 검집에서 검이 살짝 빠져나왔다.

하지만 전삼은 검왕의 충고 겸 경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흐흐흐,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게 누구지?”


손에 붙잡혀있는 남궁호를 들어 올려 검왕에게 보여주는 전삼.


“원래는 네놈이 아낀다는 저 남궁태의 한쪽 팔이라도 가져가려 했지만.... 더 좋은 대상을 찾았군. 어디 이놈을 확! 불구로 만들어줄까?”


사갈 같은 전삼의 눈빛이 남궁호를 훑었다.

이에 남궁천은 안절부절 못했다.

지금까지는 하찮게 생각하던 둘째였으나, 남궁태를 손쉽게 제압할 정도의 기재였다는 게 오늘 증명되지 않았는가.

강한 남궁세가를 만드는 게 일생의 목표인 남궁천에겐 충분히 효과적인 인질극이었다.

전삼은 침음을 흘리고 있는 남궁천을 향해 새로운 조건을 던졌다.


“남의 스승을 무참히 살해한 놈도 제 자식은 아끼나 보지? 그럼 특별히 내가 자비를 베풀어주마! 네 훌륭한 아들이 성하길 바란다면 사부를 죽인 네 오른손을 잘라서 이리 던져라!”


지독한 요구였다.

평생 우수검(右手劍)을 사용해온 검왕에게 오른손목을 끊는다는 건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아들의 목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어찌 쉬이 선택할 수 있으랴.

전삼은 주저하는 검왕을 위해 남궁호의 혈도 몇 군데를 두드려주었다.

그러자 잠자코 잡혀있던 남궁호가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악!”


점혈을 통해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주는 분근착골의 수였다.

전삼은 아직 14세에 불과한 아이에게도 악랄한 수법을 서슴지 않았다.


“이 비명소리 들리나? 아무리 냉정하기로 유명한 검왕이라고 해도 기꺼이 감상하긴 어려울 테지. 크흐흐...!”


“크읏....”


검왕 남궁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런데 이내 그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무언가 이상한 걸 봤다는 듯이.


“...?”


전삼의 손아귀에 붙들린 남궁호가 한쪽 눈 밑을 파들파들 떨고 있는 까닭이었다.

몸은 축 늘어트린 채로 얼굴 근육을 써서 한 눈만 감으려 애쓰는 모습은 상당히 기괴했다.

그걸 바라보는 남궁천의 머릿속엔 절로 의문이 생겼다.


‘점혈이 뭔가 잘못돼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나?’


하지만 남궁천은 곧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남궁호가 부들거리며 한쪽 눈을 감은 뒤엔 감을 잡았는지 몇 차례 찡긋하며 같은 행위를 반복했기 때문.

이는 명백히 남궁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짐작컨대, 걱정하지 말라는 남궁호의 뜻이리라.

남궁천이 알아들은 듯하자, 남궁호는 비명을 멈추고 호기롭게 외쳤다.


“네 이놈! 감히 남궁세가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느냐! 이 자리엔 너 따위보다 뛰어난 고수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이 초빙되어 있다! 가주님께 해를 끼치든, 남궁의 공자를 죽이든 네가 살아서 나갈 틈이 있겠느냐!”


자신의 목숨이 달렸음에도 당당히 소리치는 남궁호의 기개를 보고 마당에 모인 이들은 내심 감탄했다.

전삼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퍽 당황했다.

이어 검왕을 향해 말을 거는 남궁호.


“아버지, 소자는 염려 마시고 이 자의 목을 베어 남궁의 이름을 바로 세워주십시오!”


남궁호의 간청에 검왕은 즉시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인질을 의식해 본신의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전삼은 남궁호의 말대로 남궁세가 한복판에서 남궁의 공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릴 뜻도 없었기에 남궁호를 방패로 삼아 검왕과 대적하기 시작했다.

남궁호를 피하느라 약해진 검격을 손에 공력을 실어 쳐내는 전삼.


-쩡, 쩌엉!


둘의 격돌에 마치 꽹과리를 쳐대는 것처럼 요란한 굉음이 터졌다.

비록 검왕의 전력이 아니라고 해도, 이를 받아친다는 점에서 전삼의 내공이 상당히 심후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삼은 생각 이상으로 검왕과 잘 맞섰다.


‘이거 잘하면 내 손으로 직접 남궁천의 오른손을 잘라버릴 수도 있겠는데...?’


전삼의 마음속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때, 그의 귓가에 앳된 목소리가 들어왔다.


“야.”


“...?”


전삼에게 말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인질로 잡혀있는 남궁호였다.


“너 여기 복수하러 온 거 아니지?”


“흐, 애송이 눈에도 싸움의 흐름이 좀 이상하다 싶은 모양이군. 입을 나불대는 걸 보니까 말이야.”


“뭔 개소리야? 난 그냥 사파 새끼들 중에서 사부를 그렇게 챙기는 놈을 본 적 없어서 하는 말인데.”


“그 조막만한 입 닥치고 있어라.”


전삼은 일부러 남궁호의 몸을 억세게 휘둘렀다.

보통의 꼬맹이에게 목에 이만큼 압력이 가해지면 고통과 공포에 젖어 더 떠들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 잡힌 남궁호는 어떻게 되어먹은 놈인지 주둥이를 멈추지 않았다.


“아, 거기서 그렇게 막는 거 아닌데. 응~ 상대가 검왕이죠? 창궁무애검법 하나도 모르죠? 아무것도 못하죠?”


남궁호란 애새끼는 자신이 인질임에도 불구하고 속을 벅벅 긁어대는 어조로 깐족댔다.


“아니, 창궁무애검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검초가.... 하, 됐다.”


그건 가히 음공(音功)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얼씨구, 허초에 그렇게 놀란다고? 쫄았냐? 맞네, 쫄았네.”


“이 개만도 못한 새끼가...! 아가리를 확!”


참다못한 전삼이 발끈하며 남궁호를 바짝 끌어당겼다.

아혈까지 짚어 아주 입을 봉해버릴 심산이었다.

둘이 가까워진 순간, 남궁호가 전삼에게 작게 말을 걸었다.


“너, 아버지의 오른손이 아니라 반지를 노리는 거지?”


“뭣...?”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정곡을 찔려버린 전삼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동시에 놈의 동작이 움찔하며 굳었다.

그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삼의 앞에 있는 건 무려 검왕이었다.


-피육!


검왕은 적의 짧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검은 쏜살같이 찔러 들어가 전삼의 왼손 엄지를 끊고 어깨에까지 깊게 박혔다.

엄지손가락이 유실되며 파지가 풀리는 바람에 전삼은 유일한 구명줄을 놓쳐버렸다.


“이런 ㅆ...!”


당황한 전삼이 욕지거리를 뱉으려 했지만 놈의 혓바닥보다 검왕의 검초가 훨씬 빨랐다.


-푹, 푹!


남궁의 창궁무애검법은 순식간에 전삼의 오른팔 근맥을 끊고, 단전에 구멍을 뚫었다.


“끄억...!”


자그마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전삼은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토해냈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남궁호가 몸을 일으켰다.

마혈을 제압당한 녀석이 갑자기 움직일 거라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좌중이 놀란 사이, 남궁호는 전삼에게 덤벼들었다.


-퍽! 퍽! 퍽!


근신하는 사이 상당한 성장을 한 남궁호의 발이 전삼의 단전을 무자비하게 밟았다.

그때마다 검왕에 의해 생긴 상처에서 피가 왈칵왈칵 쏟아졌다.

전삼이 쌓아왔던 내공과 함께.

각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남궁호의 발길질은 그리 정교하지 않은 탓에 몇 번은 단전에서 빗나갔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적의 급소를 노린다는 목적에는 부합했다.

그야말로 불의의 습격에 전삼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절명해버렸다.

남궁호는 놈이 더 이상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걷어찬 뒤에야 몇 보 물러선 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헉, 헉...!”


과호흡이 온 듯 헐떡인 남궁호는 자신의 목을 연달아 손으로 쓸어보았다.

전삼에게 잡혔던 위치였다.


‘내가 손대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죽었을 텐데.... 순간 나도 모르게 움직여버렸어.’


전삼의 손아귀 안에 있던 남궁호는 한껏 여유로운 척했지만, 너무나 겁이 났다.

이따금씩 숨통을 조여 오는 괴물 같은 악력.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목뼈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덜컥거렸다.

게다가 닿기만 해도 살이 쩍쩍 갈라질 것 같은 날붙이가 몇 번이고 그를 향해 다가왔다.


‘게임에서는 남궁호가 죽은 적 없지만.... 지금의 나는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게임이랑 다르게 전개된 부분도 있잖아.’


무림영웅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본 적 있었다.

그때는 검왕의 찌르기에 단전이 망가진 전삼이 마공으로 인해 기혈이 뒤틀려 사망했다.

굳이 남궁호가 마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인질로 잡힌 남궁호가 죽는 일도 없었고.

그러나 그땐 제3자나 마찬가지였고, 지금은 당사자인 상황이었다.


‘내 숨통을 남의 손에 맡겨놓은 그 기분은....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아.’


남궁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전삼의 시체를 보았다.

결국 죽을 목숨이었다지만, 그의 손에 결말을 맞이한 게 사실이었다.

남궁호의 두 눈이 잘게 흔들렸다.

불현듯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오려고 하는데, 그의 앞에 안내 문구가 나타났다.


[절정고수 전삼(田三) 처치]

[기여도에 따른 보상 획득]


갑자기 눈에 들어온 문구는 남궁호를 순간적으로 현실에서 조금 떨어트려놓았다.

마치 첫 살인의 충격에 대비한 듯.

어쩌면 안내 문구를 전달하는 주체가 남궁호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도 몰랐다.

이 모든 게 남궁호의 추측이었지만, 확실한 점은 그의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는 것이었다.

많은 생각이 오간 짧은 사이.

어느새 남궁천이 그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악인을 용감하게 해치우다니 훌륭하구나.”


남궁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칭찬하는 남궁천.

그의 눈빛에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14세 아이가 사람 죽인 걸 칭찬하는 곳.

무림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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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당가의 여협들 중에는 사실... +8 23.05.16 12,685 227 12쪽
8 무림에선 +9 23.05.15 12,895 227 12쪽
7 일창 만일검 +14 23.05.14 14,052 247 13쪽
» 음공 +13 23.05.13 14,304 284 12쪽
5 천수제 +16 23.05.12 14,726 312 12쪽
4 역천의 공부 +12 23.05.11 15,961 299 14쪽
3 내가 먹어주마 +12 23.05.10 16,207 329 12쪽
2 아주 꼴통이라니까? +7 23.05.10 18,093 332 12쪽
1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미쳤다 +27 23.05.10 23,980 3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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