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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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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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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8,273

작성
23.05.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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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주 꼴통이라니까?

DUMMY

무림영웅.

타이틀 그대로 무림 속에서 영웅이 되어 활약하는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자유도가 엄청난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나, 난이도가 워낙 높은 걸로 악명을 떨쳤다.

심지어 한번 죽으면 캐릭터가 사라지는 하드코어 게임.

그러나 게임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차츰 여러 정보들이 공유되면서 엔딩을 본 사람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른바 집단지성의 승리였다.


‘덕분에 나도 재미를 많이 봤지.’


명문정파의 직계제자.

사파의 마두.

삼류 낭인.

무관 가문의 자식 등등.

최명우는 모든 스타팅 캐릭터로 게임을 깼고, 남들은 찾을 엄두도 못 내는 숨겨진 요소까지 모두 꿸 수 있었다.


‘내가 커뮤니티 같은 데에 정보라도 좀 풀었으면 갓겜 반열에 올랐을까....’


무림영웅은 대체 어떤 수를 쓴 건지,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처음 보는 퀘스트가 쏟아졌다.

마치 무림영웅 속의 인물들이 정말 살아있어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하지만 랭킹도 없고, 업데이트도 안 되는 싱글게임은 한계가 있었다.

무림영웅의 인기는 쏟아져 나오는 신작들과 계속 발전하는 멀티게임들에 밀려 금방 시들해졌다.


‘모드 개발이라도 허용하든가. 하긴, 모드질이 어울리는 게임은 아니지. 자유도가 높다고 해도 너무 기괴한 행동까진 할 수 없었으니까.’


무림영웅은 게임 내에서 너무 현실과 괴리가 큰 행동을 하면 거의 게임오버로 이어진다고 봐도 무방했다.

괴팍한 무림인들과 보수적인 중원인들은 괴짜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


‘객잔에서 이봐 점소이, 알리오올리오 한 사발 말아주게! 했다간 객잔에 있던 은거기인한테 붙잡혀 내가 다진 마늘처럼 조져질 수도 있다 이거지. 그 점소이가 은거기인인 경우도 있고....’


대신 무의 경지가 높아지면 어느 정도는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해도 괜찮았다.


‘아, 근데 그건 무림의 고수들도 마찬가지구나.’


무림영웅에서 만날 수 있는 무림인들은 머리가 한 군데씩 돌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무공 수준이 높을수록 더더욱.

때문에 이름난 고수와 조우할 때면 행동거지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내가 남궁세가의 공자라서 제약이 적은 편이지. 아무리 이 시점의 남궁호가 가문 내에서 멸시를 받는다고 해도 배경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

무림의 정도를 떠받치고 있는 열다섯 개의 기둥들.

특히 남궁세가는 다섯 개의 명문세가들 중 수위를 다투는 가문이었다.

남궁호가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남궁세가주의 직계 자식을 잡아 족칠 미친 인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지금 난 약해빠진 몸으로 정신 나간 무림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알아내야 하고.’


지금 최명우는 무림영웅 속 남궁호였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자고 일어났더니 벌어져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의 방에서 눈을 떴다고 해도 똑같이 무림영웅을 켜고 새로운 엔딩을 보려고 했으리라.


‘그래, 수백 번은 더 해본 거잖아. 최적의 빌드를 짜서 캐릭터 키우고, 엔딩을 보는 거. 내가 모니터 밖에 있다는 거랑 그 안에 들어왔다는 것밖에 큰 차이가 있겠어?’


최명우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그 안에 자신감을 빵빵하게 채워 넣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의 일이 떠올랐다.

남궁태와 손을 섞으며 느꼈던 감각.

그건 최명우가 그저 게임 밖에 존재하는 플레이어가 아닌, 무림영웅에서 살아가는 인물이 되었음을 알려줬다.

움직이면 힘들고, 맞으면 아프며, 죽을 수도 있는.


‘앗.... 꽤 차이가 있구나...?’


최명우의 자신감이 조금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의기소침해진 건 아니었다.

그가 압도적으로 강한 인물이 되면 위험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제일 먼저 이 몸뚱어리부터 해결해야지. 무림만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없거든. 고수의 말이라면 당나귀를 적토마라고 해도 인정받는 세계라고.’


그리고 세가의 하급 무사들이 비록 남궁태와 함께였다고 해도 가주의 둘째 아들 방에 쳐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남궁호의 몸은 내공을 느끼지도 못하고, 외공조차 수련할 수 없는 천형을 타고난 체질이었기 때문.

남궁세가에서 무공이 없는 공자의 지위는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명우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남궁호의 안으로 들어온 게 감사할 정도였다.


‘모든 캐릭터 중에 내가 제일 높은 경지까지 올려본 게 바로 남궁호라고. 남궁호만큼 흰 도화지 같은 스타팅 캐릭은 없거든...!’


무림영웅의 그 어떤 인물도 빙백신장과 태양신공을 동시에 운용할지언정,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진 못했다.

하지만 남궁호는 시작부터 다른 캐릭터와 달랐기에, 종착지도 남달랐다.

그리고 그게 지금 남궁호가 세가의 창고에서 먼지를 양껏 먹고 있는 이유였다.

그는 상념을 지우며 오래된 짐들을 꺼내고 있는 하인들에게 말했다.


“그거 말고 저쪽 뒤에 있는 상자를 내주십시오. 저기 깃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 말입니다.”


“아이고, 공자님. 쇤네 같은 놈한테 말씀 낮춰주십시오...!”


하인은 남궁호의 경어에 황송해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의구심이 감춰져 있었다.

비록 과거에 남궁호가 망나니까지는 아니었다 해도, 가문의 일꾼들에게 하대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인들에게 몹시 친절한 태도로 경어까지 쓰고 있었으니 돌변한 그의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아닙니다. 세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주시지 않습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남궁호의 안에 들어온 최명우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까닭에 나이 많은 하인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일까?

그런 영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도가 숨어있는 행동이었다.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갑자기 하인들에게 경어를 사용하면서 창고를 뒤졌다.

그렇다면 창고를 뒤진 것보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었다는 게 더 부각될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충격 받은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법이니까.’


남궁호는 그걸 노렸다.

그가 가문의 장원에서 무얼 찾았는지 관심 받는 것보다 자신의 정신이 조금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무림영웅을 게임으로 할 때는 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했지만, 쉽고 빠른 길이 있는데 돌아서 갈 필요는 없었다.


‘인생은 실전이거든. 어차피 나에 대한 소문이 가문 밖으로 나갈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고. 그렇다면 일이 좀 잘못돼도 넘어갈 방법은 수없이 많지.’


현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왕 남궁천은 인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가문의 구성원들 중에서 남궁천의 자식에 대한 흉을 외부에 발설할 이는 드물 터.

남궁호는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을 꾸몄다.

이윽고 하인들은 그가 원하던 상자를 끄집어내 가지고 왔다.


-쿵!


묵직한 상자는 장정 둘이서 낑낑대며 옮겨야 했다.

남궁호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낡은 서책이나 촛대 등의 잡동사니가 채워져 있었다.

하나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어지러운 내부.

남궁호는 그 안에 주저 없이 손을 뻗어 물건 하나를 꺼냈다.

주먹만 한 돌 조각.

석판 같은 것의 일부인 듯 평평한 면과 거친 면이 존재하는 돌이었다.


“음, 고생들 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치워주십시오.”


“예에...? 고작 그거.... 아, 알겠습니다.”


개고생을 한 하인들의 얼굴에 불만이 드러났다.

하지만 가주의 자식이 시키는 일인데 어찌하랴.

하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창고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둘째 공자가 살짝 이상해진 게 아니라 상당히 돌아버렸군.’


덕분에 남궁호에 대한 소문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보가 멈춘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과감해졌다.


-챙그랑!


갑자기 주방에 들이닥쳐 항아리를 깨기도 하고.

식객들이 지내는 외당에 불쑥 들어가 장을 뒤졌으며.

담벼락 한 구석을 두드리는 등 기행을 벌였다.

그렇게 소란을 일으키더니 또 돌연 자신의 방에 칩거하는 게 아닌가.

금세 남궁세가 사람들 입에 남궁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글쎄, 둘째 공자 말이야.... 요즘 정말 이상하지 않아?”

“아무래도 집안에서 오래도록 괄시받은 탓에 관심 받고 싶어서 꾀를 낸 모양이야.”

“막 창고를 뒤지고 그랬다던데?”

“말도 마. 별것도 아닌 일로 고생만 죽어라 했다니까? 말만 곱게 하면 그만인가? 행동이 중요하지.”


남궁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누구도 그가 뭘 하려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 남궁호가 노린 반응이었다.


* * *


한동안 가문의 장원을 들쑤시고 다녔던 남궁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그가 창고에서 찾았던 돌조각과 비슷한 것들이 쫙 깔려있었다.

돌조각들을 살피던 남궁호는 이내 바삐 손을 놀렸고, 바닥에는 곧 하나의 석판이 완성되었다.


“좋아...! 이거면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을 고칠 수 있어. 내 몸으로 직접 무공을 써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체질만 바꾸면 아주 날아다닐 텐데...!”


육체의 문제 때문에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남궁호였지만, 모순적이게도 두뇌는 몸을 잘 움직일 수 있게 타고났다.

게임에서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걸 봤을 때만 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동생인 남궁태가 방에 쳐들어왔을 때, 녀석의 겨드랑이에 손가락을 박아 넣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체력이나 근력 따위는 현대인이던 시절과 비슷했지만, 감각이 달랐다.

자신의 목을 노리며 출수하는 남궁태의 빈틈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남궁세가주 입장에선 얼마나 아쉬웠겠어? 오성은 뛰어난데 몸이 쓰레기라 자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심지어 그 검왕이.’


남궁세가에서도 남궁호의 체질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의란 명의에게 다 진찰을 받고, 도사도 만나고, 승려에게 보인 적도 있었다.

그밖에 운동이며, 약, 특이한 무공 따위도 시도해봤지만 백방이 무효였다.

결국 검왕 남궁천은 남궁호를 내려놓았다.

무공을 가르치지도, 공식적인 외부행사에 대동하지도 않았다.

마치 남궁세가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다른 인물로 게임을 시작하면 진짜로 미쳐버린 남궁호를 만날 수 있지. 혈교 쪽에서.’


그도 그럴 것이, 정도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남궁세가의 능력으로 해법을 찾지 못했을 리 없었다.

때문에 사도, 마도를 넘어 요사스러운 종교에까지 의탁하는 결과를 낳은 것.

그런데 의외로 그건 꽤 합리적인 접근이었다.


‘바른 이치를 좇는 정도보다는 요령과 역천의 길을 걷는 놈들이 이런 특수한 체질을 많이 다룰 수밖에 없지. 다만 안타까운 점은 너무 먼 곳만 봤다는 거?’


지금의 남궁호는 집 안에서 찾아낸 석판을 살폈다.

돌조각들이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면에는 그림인지 글인지 분간이 안 가는 선들이 그어져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누군가가 장난을 쳐놓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남궁호의 눈엔 세상에 둘도 없을 보물로 보였다.


“전대 남궁세가주도 아주 꼴통이라니까? 정도(正道) 중의 정도인 남궁세가의 장원 안에 이런 걸 숨겨놓을 줄ㅇ....”


남궁호가 피식 웃으며 조부의 유별난 성정에 대해 감탄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방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쿵쿵쿵!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보아, 무인의 손길이 분명했다.


“남궁호 공자님, 문 여십시오!”


그리 남궁호에게 호의적인 음성이 아니었다.

이에 그는 잽싸게 석판을 침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이 석판 때문에 온 거였으면 벌써 문을 부수어버렸을 거야.’


남궁호는 문을 두드리는 손속만으로 여러 정보를 파악해냈다.

이어서 이 시점에 남궁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 머릿속에 주르륵 떠올랐다.

한창 가문에서 멸시를 당할 때였기에 대개 안 좋은 일들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보통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이 타이밍에 남궁호를 건드리는 건 거의 세가의 어른들이었지. 그럼 오히려 좋아!’


남궁호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전대 남궁세가주? 다이조부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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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림에선 +9 23.05.15 12,896 2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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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수제 +16 23.05.12 14,727 3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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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먹어주마 +12 23.05.10 16,207 329 12쪽
» 아주 꼴통이라니까? +7 23.05.10 18,094 332 12쪽
1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미쳤다 +27 23.05.10 23,980 3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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