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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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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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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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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8,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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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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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천수제

DUMMY

악단의 흥겨운 연주가 남궁세가 장원 밖까지 울려 퍼졌다.

곧 이어 악기들에 장단을 맞춰 중후한 음성으로 가문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가 소리가 뒤따랐다.

심후한 내공에 음을 실은 덕에 큰 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듣기 좋은 곡조가 모두에게 전해졌다.

천수제에 참석한 세가의 구성원들과 객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나누며 행사를 즐겼다.


“장로님께서 많이 기쁘신 모양입니다.”

“남궁태 공자를 워낙 예뻐하셨지 않소. 첫째 공자가 그 나이일 때보다 성취가 더 뛰어나니.... 지금 가주의 성정이라면 셋째 공자에게 차기 가주 자리를 넘길지도 모르겠구려.”

“역시. 이번 천수제가 평소보다 더 성대한 이유도 가주님의 마음을 반영한 듯합니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남궁태를 칭찬했다.

분명 남궁세가 셋째 공자는 미래가 촉망되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뛰어난 기재라고 소문난 첫째, 남궁운은 16세에 천수제를 거쳐 창궁무애검법을 배웠다.

그런데 남궁태는 그보다 3년이나 빠르지 않은가.

다만 그에 대한 칭찬은 주로 무공에 대한 부분에 그쳤다.

인성에서는 흠 잡을 것이 없지 않았으나, 좋은 날에 굳이 분위기를 해치려는 이는 없었다.

반면에 남궁호를 무시하는 이야기는 은근히 흘러나왔다.


“근데 어째 명성이 자자한 첫째 공자와 셋째 공자랑 달리 둘째 공자는 별 소식이 없군?”

“말도 마시게. 남궁세가에서도 남궁호 공자에 대해선 쉬쉬하지 않는가.”

“무재가 좀 떨어지기로서니 집안에서 그렇게까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게 있나?”

“얼마 전에 남궁의 가모에게 크게 혼이 났다고 하네. 아무래도 셋째 공자를 시기해서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으이.”

“허허.... 참 못났군, 그래. 결국 남궁세가의 공자는 둘뿐이라고 봐야겠구먼.”


사람들 사이에서 남궁호에 대한 이야기는 안 좋은 내용밖에 없었다.

이는 남궁태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 까닭이었다.

남궁호는 근신중이라 대응을 할 수 없었으므로, 남궁태의 의도대로 세가의 사람들뿐 아니라 외부인에게까지 악평이 퍼졌다.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남궁태는 속으로 낄낄거렸다.


‘그 반푼이, 연공실에서 나오면 아주 까무러치겠지? 뭣도 아닌 주제에 나한테 건방떤 대가다! 앞으로도 영영 방구석에나 처박혀있으라고!’


사람들 사이에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를 즐기며 천수제가 흘러갔다.

공연 따위의 순서가 진행된 후, 시간이 무르익자 가장 상석에 있던 장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부드러운 외모를 지녔으나 짙은 눈썹과 미간에 깊게 생긴 주름 덕분에 강인한 인상을 지닌 남성이었다.

그는 만인에게 포권으로 인사하며 입을 뗐다.


“이 검왕,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쁘오! 우리 집안의 축제에 시간을 내 참석해준 모든 영웅께 감사드리겠소.”


예는 갖추지만 스스로를 낮추지는 않은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 검왕 남궁천이었다.


“오늘 이 자리는 창궁무애검법을 전수받을 이가 정해지는 행사요. 창궁무애검법은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검법인 바, 이를 익혀야 가주가 될 자격이 생기오. 다시 말해, 이 자리는 그저 본 가주의 아들에게 무학을 전수하겠노라 천명하는 게 아니오. 남궁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날이라오.”


천수제의 의의를 설명한 남궁천은 자신의 오른쪽으로 손을 뻗었다.

세가의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남궁태를 향해.


“남궁태. 이리 오거라.”


“넵, 후후.”


남궁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남궁세가주의 앞에 섰다.

이에 가주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높이 들었다.


“남궁천의 세 번째 아들, 남궁태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으니 하늘의 검을 내리고자 하오! 이 자리의 모두가 그 증인이 될 것이오. 만약 이에 이의 있는 자가 있다면 지금 그 뜻을 밝히시오!”


천수제가 이어져온 긴 시간 동안 누군가가 창궁무애검법의 전수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남궁태의 자질이 뛰어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이번에도 비슷하게 흘러가야 했을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기 누구야?”

“허어.... 젊은 소협이 어찌하여 남궁의 대사에 재를 뿌리는가....”

“저, 저 공자가 기어이...!”


조용히 천수제를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불쑥 거수한 이가 있었다.

남궁태가 창궁무애검법을 얻는 데에 지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인물.

바로 남궁호였다.


“이의 있습니다!”


지금껏 남궁호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우렁찬 목소리.

가주 남궁천은 남궁호의 외침에 눈썹을 꿈틀했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고선 남궁태에게 마당 중앙에 있는 비무대 쪽으로 손짓했다.

이에 남궁태는 광대뼈를 옴짝거리며 과시하듯 경공을 펼쳐 단숨에 비무대 위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본 가주는 다시 남궁호에게로 눈을 돌렸다.


“천수제의 규율에 따라 창궁무애검법 전수자의 자격이 의심된다면 검으로 검증해야 한다! 남궁호, 비무대에 올라라.”


남궁천은 몹시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남궁호 또한 그의 자식이건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가 될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호는 아무런 내색 없이 비무대로 향했다.

그는 남궁태와는 달리 계단을 이용해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먼저 비무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궁태는 이죽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야, 남궁호. 이거 진검으로 하는 비무야. 까딱 실수하면 치명적인 부상도 당할 수 있는 거라고. 괜한 객기부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물러. 그럼 내가 특별히 봐줄 테니까.”


입으로는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녀석의 번들거리는 눈은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 전에 하급무사들 앞에서 망신당한 걸 되갚아주고 싶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칼 쥔 어린아이는 자기가 하려는 일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모르기에 위험한 법.

지독한 악의를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아직 경험이 일천한 탓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형으로서 교육을 해줄 필요가 있겠지.’


남궁호는 자신을 쏘아보는 남궁태에게 대답 대신 방긋 웃어주며 비무대 주변에 있는 세가의 무사에게 검을 빌렸다.

비무를 강행하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남궁태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뽑았다.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예기가 섬뜩한 보검을.

두 사람이 모두 준비를 마치자 남궁천은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


“비무를 거행하라!”


남궁천의 입이 떨어지자마자 남궁태가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몸을 회전해 검에 원심력을 전달하는 기수식을 펼친 녀석은 곧장 폭풍처럼 공격을 쏟아냈다.


“천풍파지! 천풍수엽! 천풍유해!”


넓은 범위를 휩쓰는 검초에 남궁호는 어지럽게 뒷걸음질 치며 바로 수세에 빠졌다.

그의 기본적인 보법조차 펼치지 못하는 꼴에 구경꾼들이 떠들었다.


“오오, 천풍검법을 벌써 저렇게나 숙달하다니!”

“과연 남궁태 공자는 훌륭한 기재로군!”

“그나저나 저 둘째 공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선 게지?”


사람들의 반응에 남궁태는 남궁호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밉상이었던 남궁호를 짓밟고 세가 밖의 무림인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뽐낼 기회가 생겼으니까.


‘이런 반푼이는 나한테 일초지적도 안 되지!’


남궁태는 걸음마를 떼자마자 무공을 수련해왔다.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과 체계적인 교육, 본인의 노력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당연히 남궁호가 정면승부로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심지어 수련용 목검도 아닌 진검을 쥐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천마건공을 익힌 남궁호라 할지라도 기본기와 내공심법조차 갖춰지지 않으면 남궁태의 표현대로 반푼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챙! 티딩!


남궁호는 아슬아슬하지만 휘몰아쳐오는 검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남궁태.


“어째서...? 으....”


녀석은 남궁호를 쫓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점점 어지럼을 느꼈다.


‘이 미친 자식 설마 음식에 독이라도 탄 건가?’


남궁태는 조금씩 더해가는 현기증에 남궁호를 의심했다.

하지만 남궁호는 이번엔 용독(用毒)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 안전한 길이 있는데 굳이 세가의 어른들한테 걸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흡...! 헛!”


남궁호의 몸놀림은 전반적으로 세가의 하급 무사 수준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반응이 빨라 방어 하나는 발군이었다.

특히 출수하는 속도는 쾌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이에 남궁태가 혀를 찼다.


“쯧, 어디서 잡기를 배워온 모양인데! 어림없지!”


연이은 공격의 실패에 약이 바짝 오른 남궁태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아직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천풍검법은 내려놓고 오래도록 수련한 철검십식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

초식이 익숙한 만큼 내공을 양껏 쓸 수 있으므로, 남궁호의 비척거리는 뒷걸음질은 금방 쫓을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쿵!


남궁태가 진각을 밟아 땅의 힘을 끌어냈다.

지력은 그대로 다리를 타고 올라 검 끝으로 전달됐다.


“천간투!”


남궁태의 몸과 초식명이 동시에 쏘아져 나왔다.

녀석은 순식간에 공간을 좁히며 작살처럼 한 점을 꿰뚫었다.


-후욱!


비무 중에 보인 남궁호의 움직임으론 절대 완전 회피가 불가능한 속도!

남궁태는 승리를 확신하며 남궁호의 얼굴을 보았다.


‘...웃어?’


그런데 남궁호의 표정엔 절망감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궁호를 정확히 노리고 찔러 들어갔는데 그의 얼굴이 시야의 좌측에 위치해 있는 게 아닌가.

어느새 방향 감각을 잃은 남궁태.

오히려 직선 공격을 한 게 실책이 되었다.

덕분에 남궁호는 작은 동작으로 남궁태의 초식을 파훼할 수 있었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겐 남궁호의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나 보였다.


“이런... 켁!”


이를 빠득 갈며 초식을 거두려던 남궁태의 복부에 무자비한 발길질이 박혔다.

남궁태가 스스로 돌진하던 힘이 있었기에 엄청난 충격이 생겼다.

단 한 방에 속이 진탕이 되어 바닥을 나뒹군 남궁태.

남궁호는 들고 있던 검으로 녀석을 겨누었다.

비무는 남궁호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구경하던 이들은 크게 놀랐다.


“둘째 공자님의 실력이 언제 저렇게나 올랐지?”

“조금 오래 걷는 것조차 힘에 부쳐하시던 분이잖아...?”

“허허, 역시 뜬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 내공을 한 톨도 사용하지 않고 이류 수준은 족히 될 남궁태 공자를 제압하다니....”


남궁호를 향해 쏟아지던 부정적인 시선이 비무 한 번으로 뒤집혔다.

그 중에 가장 경악하고 있는 건 가주 남궁천과 가모 팽유진이었다.

남궁천은 자신이 보지 못한 사이에 괄목할 변화가 생긴 둘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보았다.

그러다 이내 천수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남궁호를 불러들이려 했다.

하지만 남궁호는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였다.


“남궁의 축제에 다른 목적을 갖고 오신 고인께선 나오시오!”


외부 손님들을 살펴보며 크게 소리친 남궁호.

그의 발언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누군가가 천수제를 노리고 암계를 꾸몄다는 소리 아닌가.

감히 누가 대남궁세가의 축제에 훼방을 놓으려 할까.

그때, 웬 검은 인영(人影)이 객들 사이에서 튀어 올라 비무대로 떨어졌다.


“크흐흐흐...! 이거 일이 재밌게 됐군 그래.”


시커먼 피풍의를 입은 사내였다.

그는 숨 막히는 살기를 감추지 않은 채 남궁호의 앞에 섰다.

남궁호는 마치 송곳을 명치에 가까이 대고 있는 듯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 쓰러져있던 남궁태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게거품을 물고 실금해버렸다.

남궁태의 바지는 금세 축축해졌고, 코를 찌르는 지린내가 퍼졌다.

반면에 꼿꼿이 서서 흑의인을 바라보는 남궁호.

흑의인은 그 모습에 흥미로워했다.


“호오, 대단하군. 듣기론 남궁의 둘째가 내공도 없고, 몸도 약하다고 했는데.... 내 기세를 버텨내다니. 이런 원석을 두고 저런 애송이를 선택해? 검왕 놈, 아주 눈이 삐었구나!”


남궁호를 칭찬한 흑의인.

그러나 남궁호의 표정은 굉장히 묘했다.


‘아니, 못 버텼어.’


남궁호는 사타구니가 뜨듯해지고 있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그저 고의(袴衣) 안쪽에 미리 천을 잔뜩 덧대놓아 겉으로 티가 안 났을 뿐.


작가의말

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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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음공 +13 23.05.13 14,304 284 12쪽
» 천수제 +16 23.05.12 14,727 3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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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먹어주마 +12 23.05.10 16,207 329 12쪽
2 아주 꼴통이라니까? +7 23.05.10 18,093 332 12쪽
1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미쳤다 +27 23.05.10 23,980 3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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