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489,157
추천수 :
10,358
글자수 :
388,273

작성
23.05.15 12:20
조회
12,895
추천
227
글자
12쪽

무림에선

DUMMY

남궁호는 손을 덜덜 떨면서 목검을 휘둘렀다.

근육은 한계에 부딪혀 찢어질 듯 아팠고, 입에선 단내가 폴폴 났다.

어느새 전신은 땀이 쏟아져 옷이 푹 젖을 지경.

그가 최선을 다해 펼친 검초는 누가 보더라도 몹시 어설펐다.


-부웅, 후웅!


창궁무애검법의 특징은 자유롭고 호쾌한 투로.

그런데 남궁호의 목검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둔탁한 파공음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궁천의 입은 허술하게 벌어져 있었다.


‘고작 한 번. 내가 펼친 창궁무애검법을 단 한 번 봤을 뿐이다...! 그걸 모두 기억하는 것만 해도 용한 일인데, 어색하게나마 재연해낸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구나!’


남궁호는 어설픈 ‘창궁무애검법’을 선보이고 있었다.

벌써 강호에 출두하여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는 첫째, 남궁운도 창궁무애검법의 형태를 갖추는 데에만 수개월이 소요됐다.

남궁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재능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를 뭐라고 해야 하나. 예인(藝人)들 중에 음을 듣자마자 바로 자신이 다루는 악기로 재현하는 걸 절대음감이라 한다던데.... 호 이 녀석의 능력은 절대검감으로 칭해야 할 정도지 않은가...!’


남궁천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몹시 놀랐다.


‘가세를 크게 일으킬 아이를 내가 정말 몰라봤구나. 스스로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기 체질을 직접 연구했을꼬. 내 무림에서야 검왕이라 불리지만, 세가에선 검만 휘두른 못난이였구나. 검치라고 불리어도 변명할 도리가 없다.’


검왕이 내심 자책하는 동안에 남궁호는 창궁무애검법의 시연을 마쳤다.

검이 멈추자마자 다리가 풀려 남궁호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는 가까스로 목검을 땅에 짚으며 쓰러지는 걸 면했다.


“헉, 헉...! 아버지 눈에 부족했겠지만 모양은 그럭저럭 갖춘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나쁘진 않구나.”


남궁천은 속으로 연신 감탄한 것과 반대로 시큰둥한 척하며 대답했다.

자신의 체면과 지금까지 남궁호를 외면한 데에서 오는 죄책감 등이 뒤섞인 까닭이었다.

남궁호도 그 대답에 서운함을 느끼진 않았다.

남궁천이 표현에 서툰 전형적인 엄한 가장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깜짝 놀라서 아마 마음속에선 거의 공중제비 돌고 있을걸?’


남궁호는 검왕이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허공에서 몇 바퀴 도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웃음이 걸렸다.

위엄 있는 대답에도 남궁호가 은근히 웃자, 남궁천은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머쓱해졌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자식과 생각이 통해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할까.


“흠, 흠. 그래, 내가 창궁무애검법의 초식을 따라하면 선물을 주기로 약조했지. 무얼 바라느냐?”


남궁천의 질문에 남궁호는 지체 없이 답했다.

처음부터 생각해둔 게 있었으니까.


“사람을 원합니다.”


“아, 듣자하니 원래 너를 돕던 시비가 갑자기 변경됐다지? 원래의 아이로 돌려주었으면 하는 게냐?”


남궁호의 춤을 보았던 시비는 그날로 다른 업무 담당이 되었다.

후에 듣기로, 훨씬 고된 일이어도 좋으니 제발 바꿔달라며 간절히 요청했다고....

당연히 남궁호가 바라는 건 그녀의 복귀가 아니었다.

자신의 추태를 목도한 사람과 얼굴 마주치기 껄끄러운 건 남궁호도 마찬가지였다.


“아뇨. 앞으로 제 무공 수련에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궁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 지나면 드디어 본격적으로 무공을 차근차근 배우게 된다.

천마건공처럼 규격외의 무학이 아니라 남궁세가에서 오랜 기간 만들어온 교육체계를 경험하는 것.

무림영웅을 게임으로만 즐겼던 남궁호로서는 심장 떨리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훈련하고 남는 시간엔 나중을 위한 준비를 해둬야지. 그러려면 내 손과 발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남궁호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싱글벙글했다.


* * *


‘씨발.’


남궁호는 무공 수련을 기대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반성하는 와중에도 검을 휘두르는 팔은 멈출 수 없었다.

적당히 요령을 피우려고 하면 남궁세가의 무공 교관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호통 쳤으니까.


“남궁호 공자님! 힘내셔야 합니다!”

“다른 수련생들, 이공자께서 내려 베기 개수를 다 채울 때까지 함께 친다! 공자님 덕분에 더욱 땀 흘릴 수 있겠군!”

“남궁호 공자님, 그런 연약한 손짓으로는 사과 껍질밖에 못 깎습니다! 차기 검왕이 아니라 숙수가 되고자 하는 겁니까?”


교관들은 자존심을 살살 긁어 힘을 끌어내는 전문가들이었다.

덕분에 남궁호는 전력을 다해 수련해야 했고, 게거품을 물 정도로 녹초가 되는 게 일상이었다.


‘무림영웅에서 수련 파트는 매크로 돌려놓으면 끝이었는데...!’


게임은 캐릭터가 반복행동을 하도록 만들어둔 채 한숨 자고 오면 성장해있었다.

그러니 남궁호의 머릿속엔 수련 보상의 달콤함만 남아있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남궁호가 그 캐릭터의 입장이 되었다.

남궁호의 알맹이는 걷는 것조차 싫어하는 현대인이었다.

심지어 몸도 연공실에서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무지막지한 훈련을 맛보진 못한 육체.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론 눈을 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온몸에 근육통이 들끓었다.


‘아...! 혹시 지금까지 내가 매크로 돌려놨던 캐릭터들의 원한이 날 여기로 데려온 게 아닐까...?’


이런 되도 않는 상상을 할 정도로 남궁호는 몹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남궁호의 신체는 알게 모르게 훈련의 성과를 쭉쭉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목말랐다는 듯이.

아무리 성장기라고 해도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랐고, 근육도 탄탄하게 붙어갔다.

다만 유능한 남궁의 교관들이 그의 성장만큼 수련 난이도를 올렸을 뿐.


‘그래도 이젠 심법 수업이라 다행이다.’


그나마 남궁호의 숨통이 트이는 때는 심법을 익히는 시간뿐이었다.

남궁호는 크지 않은 방에 들어섰다.

마치 학당처럼 가장 앞에는 선생이 있었고, 그 앞으로는 6, 7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자세를 바로 한 채 착석했다.


“이공자님, 아무리 배움이 늦었다고 해도 수업에까지 늦게 오시면 아니 되지요. 빨리 자리에 앉으십시오.”


“아, 예.”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교관은 가시 돋친 어투로 쏘아붙였다.

남궁호가 제일 앞줄에 엉덩이를 붙이자, 심법 수업이 시작됐다.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삼재심법의 구결풀이였다.


“지난 수업에서 말했듯, 삼재심법은 자연지기를 느끼고 내가기공에 입문하는 데에 탁월한 공부다. 모두들 내가 과제로 내준 대로 탁기가 적은 새벽에 운기조식을 했겠지?”


“예!”

“네에....”

“...에.”


교관의 질문에 아이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었다.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거나, 확실하게 한 척하는 녀석들은 크고 빠르게 대답을.

어쩔 수 없이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가부좌를 튼 채 졸음운기를 한 꼬마들은 미적지근한 소리를.

과제도, 변명도 할 생각이 없는 꾀돌이들은 대충 다른 목소리에 묻어갔다.

어차피 교관도 이번 과제에서 큰 기대를 갖고 있진 않았으므로 따로 검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 운기조식을 행하며 기의 흐름을 느꼈길 바란다. 내 교육과 삼재심법을 통해서도 기운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건 무인으로서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습니까, 이공자님?”


다시 한 번 남궁호를 꼬집는 교관.

과거에 남궁호가 그에게 내공심법 기초 수업을 듣고도 내공을 터득하지 못한 사례였다.

덕분에 심법 기초 교관은 곤욕스러운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게 남궁호가 교관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유였다.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그런 사정은 알 바 아니었고, 그저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궁호가 함께 앉아 타박을 듣는 게 우스웠다.


“킥킥!”

“저 형아는 왜 맨날 교관님한테 혼나?”

“우리 누나가 그랬는데, 저렇게 안 되려면 수련 열심히 하래!”


애들이 남궁호에게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때문에 남궁호는 같이 수업 듣는 녀석들한텐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교실 밖에는 그에게 악의를 갖고 비웃는 이들이 있었다.


“저기 봐라. 검왕님 둘째 아드님이 열네 살 먹고 이제 삼재심법 배운다.”

“햐, 내가 방계만 아니었어도 그냥 천수제 때 확 남궁태를 제쳐버렸을 텐데....”

“저, 저 아무것도 아닌 놈이 혈통빨로 창궁무애검법을 챙겼네.”


남궁호에게 들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떠드는 놈들.

남궁호와 연령이 비슷한 남궁세가의 아이들이었다.

그들 또한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모두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

녀석들이 하는 남궁호에 대한 험담은 어른들에게 들은 내용일 터.

결국 저들이 말하는 내용이 남궁세가 내부에서 남궁호를 평가하는 평균적인 시선이라는 뜻이었다.


‘삼공자를 지지하던 사람들한텐 내가 아주 죽일 놈처럼 보이겠지. 일공자를 따르는 이들도 새로운 경쟁자는 달갑지 않을 테고.’


남궁세가의 가주 자리는 하나뿐.

현재 남궁의 직계 공자는 셋이었기에 알력다툼이 있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런 집안에서 남궁호의 편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자, 이것으로 오늘 교육을 마치겠다. 다음 수업엔 삼재심법의 구결을 가지고 시험을 볼 테니 준비해오도록!”


내공심법 기초 수업은 금방 지나갔다.

계속해서 조소와 험담, 교관을 비꼼을 참아야 했던 남궁호에겐 꽤 긴 시간이었지만.

남궁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가 서두른 덕분에 방계의 자식들이 떠나기 전에 마주할 수 있었다.


“야, 너희들. 아까 뭐라고 떠들었냐?”


“아이고, 둘째 공자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나 보네. 근데, 이제야 삼재심법을 배우시는 분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클까?”


녀석들은 남궁호가 직접 말을 걸자 오히려 더욱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마치 남궁호가 뭘 할 수나 있겠냐는 듯이.


“우리 공자님, 가서 가주님께 일러바치기라도 하시려고요?”

“창궁무애검법의 전수자께서 울면서 빌면 검왕님도 나설 수밖에 없겠네! 푸힛!”

“어쭈? 이공자 주먹 쥐었다! 근데 어쩔 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이 모지리 새... 꺽!”


남궁호는 놈들 중 가장 깐족대던 자식의 목울대를 엄지와 검지 사이로 후려갈겨주었다.

얻어맞은 녀석은 그대로 발라당 넘어가버렸다.

방계의 자식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사태 파악을 못했다.

애초에 남궁호가 감히 자신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실실 웃으며 잘 됐다는 듯 몸을 풀었다.


“하.... 그래도 가주님 아들이라 몸에 손은 안 대준 줄도 모르고....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 후회하지 마.”

“맞아, 우리가 몇 년 전에 이미 거쳐 간 수업들을 막 시작한 주제에!”


무가(武家) 역시 힘의 논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이들이 이제야 기본공을 익히고 있는 남궁호를 업신여기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만약 남궁호의 전력이 남궁세가에서 배운 것뿐이라면 말이다.

남궁호는 당장 덤벼들려고 하는 아이들을 검지로 가리키며 얘기했다.


“너희들, 무림에선 노인과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는 거 알아?”


“갑자기 뭔 헛소리야?”


방계 녀석들에게서 짜증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남궁호는 검지를 펼친 방향을 돌렸다.


“아이.”


남궁호가 지목하고 있는 건 그 자신이었다.


“조심하라고.”


작가의말

이놈이 삼재(三災)심법을 배웠다는 게 세가의 정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무협이구나! +9 23.05.26 7,517 158 12쪽
19 관심 없냐? +5 23.05.25 7,484 151 12쪽
18 걸괴 +8 23.05.24 7,732 149 12쪽
17 어쩌면...? +8 23.05.23 7,863 156 11쪽
16 참 희한하구나 +9 23.05.22 8,230 166 12쪽
15 나는 누구? +5 23.05.22 8,664 159 11쪽
14 더 효율적으로 뽑아먹어야 해 +6 23.05.21 8,825 179 13쪽
13 어디서 뒤지려고 +8 23.05.20 8,986 174 12쪽
12 얘기가 다르지 +5 23.05.19 9,501 184 12쪽
11 독목불성림 +7 23.05.18 10,355 190 14쪽
10 저점매수의 기회 +6 23.05.17 11,791 214 15쪽
9 당가의 여협들 중에는 사실... +8 23.05.16 12,685 227 12쪽
» 무림에선 +9 23.05.15 12,896 227 12쪽
7 일창 만일검 +14 23.05.14 14,052 247 13쪽
6 음공 +13 23.05.13 14,304 284 12쪽
5 천수제 +16 23.05.12 14,727 312 12쪽
4 역천의 공부 +12 23.05.11 15,961 299 14쪽
3 내가 먹어주마 +12 23.05.10 16,207 329 12쪽
2 아주 꼴통이라니까? +7 23.05.10 18,093 332 12쪽
1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미쳤다 +27 23.05.10 23,980 37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