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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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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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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8,273

작성
23.05.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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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내가 먹어주마

DUMMY

문을 연 남궁호의 앞에는 무표정한 무인이 서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이 자리 잡은 흉터들이 인상적이었고, 그보다 더 흉흉한 눈빛이 사내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무인은 딴딴한 몸 위에 물이 빠져 회색에 가까워진 검은 무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헤진 복장에 비해 화려한 장식의 도를 허리춤에 매고 있었다.

마치 싸움터에 굴러다니는 낡은 칼을 주워다가 손잡이만 갈아놓은 것 같은 모습.

남궁호는 그를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차렸다.


“일도객(一刀客)께서 오셨다는 건....”


“가모께서 찾으십니다.”


일도객, 능자성은 남궁호의 말허리를 싹둑 잘라버리며 자신의 볼일을 꺼냈다.

남궁세가 둘째 공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에 남궁호는 일도객의 얼굴을 보았다.


‘능자성이 날 무시하는 게 아니겠지. 하북팽가에서부터 어머...니...를 따라온 인물이니만큼 어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줄 뿐.’


남궁호는 머릿속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억지로 되씹었다.

무림영웅 세계 속으로 온 이상 어떻게든 그는 남궁호로서 살아야했다.

그러니 실수를 하지 않도록 속으로도 남궁호와 동기화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남궁호의 기억을 얻었다고 해도 동일인물이 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조금 영향을 받는 정도였다.


“하하, 어머니께선 뭐 이런 일까지 일도객께 맡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일도객을 신임하신다는 뜻인가 봅니다.”


“....”


남궁호의 너스레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일도객.

하지만 그의 입매는 아주 미세하게 위로 호선을 그렸다.


‘호감도작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틈틈이 해야지.’


이내 일도객은 아무렇지 않은 척 출발했고, 남궁호는 그 뒤를 따라갔다.


* * *


남궁호가 도착한 곳은 한 정자였다.

장원 내의 호수가 잘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정자엔 이미 두 사람이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여성과 이미 일면식이 있는 남자아이.

남궁호의 시선은 먼저 여성에게로 향했다.


‘무정인화(無情刃花) 팽유진. 별호대로 분위기가 아주 차갑네.’


젊은 여성은 다름 아닌 남궁세가의 가모, 팽유진이었다.

남궁세가와 마찬가지로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 출신으로, 전성기에는 엄청난 무위를 뽐냈다.

뛰어난 무가의 기재들이 결합하여, 중원의 호사가들은 남궁세가의 다음 세대를 크게 기대했다.

이에 부응하기라도 한 듯, 검왕 남궁천과 무정인화 팽유진의 첫째 아들은 용봉지회에서 우승도 하고, 협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셋째도 무에 대한 자질이 남달라 미래가 기대된다는 평을 받고 있지. 막상 집 안에서는 저렇게 찌질하게 굴지만 말이야.’


남궁호는 팽유진에게서 눈을 떼고 그 옆에 있는 녀석을 보았다.

야비한 눈빛으로 실실 웃고 있는 소년.

남궁세가 셋째 공자, 남궁태였다.


‘무슨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 고양이 같네.’


남궁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남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10만 발의 화살을 주유에게 가져온 제갈공명처럼.

녀석이 믿는 것은 어머니, 팽유진이었다.

그녀는 남궁호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먼저 호통을 쳤다.


“남궁호! 맑고 푸른 하늘(蒼穹)을 가득 담으라고 네 이름을 지어줬건만, 속이 저기 있는 호수만도 못하게 좁구나!”


사실 팽유진은 별호처럼 그리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퍽 다정한 면모도 있었다.

다만, 남궁호는 그녀가 아끼는 사람에서 벗어났다.


“사람들이 널보고 무어라 하는지 아느냐? 남궁의 공부를 담기는커녕 조약돌을 던져도 작은 물결이 일 뿐인 하찮은 호수라고 한다. 그러면 분수라도 알고 잠자코 지내야지! 네 동생을 시기하여 못살게 굴다니! 부끄러운 줄 알거라!”


남궁호의 어머니는 남궁태의 말만 듣고 남궁호를 나무랐다.

필히 남궁태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전해졌을 터인데, 자초지종을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을 비난하는 팽유진의 모습을 보던 남궁호는 순간 그 위로 다른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으휴, 니가 그러면 그렇지. 방에서 그렇게 오락만 하는데 니가 뭘 하겠어?’


무림영웅 속으로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으나 벌써 그리운 목소리.

하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고 아파왔다.

남궁호는 순간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좀 믿고 기다려달라 토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팽유진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난 지금 최명우가 아니라 남궁호야. 그것도 무림영웅 안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남궁호는 잠깐 울컥했던 마음을 다스렸다.


“하하.... 태아가 고새 어머니께 쪼르르 쫓아가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습니까?”


“그래. 형이 되어서 아량을 베풀어야지. 아무리 동생이 너보다 빨리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을 전수받을 거라고 해도 그렇게 심술을 부려서 쓰겠느냐?”


팽유진이 대견하다는 듯 남궁태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에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나있는 남궁태는 남궁호를 업신여기는 표정을 한 채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녀석을 보는 남궁호에겐 정확히 단어가 전달되었다.


‘반.푼.이.’


남궁태는 팽유진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리라 알고 있었다.

중원 가정의 안주인들이 으레 그렇듯, 팽유진도 자식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남궁호의 경우엔 무가의 자식으로서 적절한 재능을 지니지 못한 자였다.

특히 지금의 남궁세가에선 더더욱.


“가주께서 직접 결정하신 일이야. 아버님 일로 가주께서 강한 남궁세가를 만드는 데에 매진하신다는 거, 너도 잘 알지 않느냐.”


“할아버지 대에 겪은 치욕 때문에 아버지께서 강함을 성공의 척도로 여기신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무가에서 힘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 한 것이지. 덕분에 가주께서도 검왕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 너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팽유진의 말에 남궁태가 옆에서 얄밉게 끼어들었다.


“맞아! 무능력하게 태어난 걸 탓해야지! 다음 대의 검왕은 내가 돼줄게! 푸힛!”


“태야. 남궁세가의 공자가 말을 점잖게 해야지.”


“아, 네. 어머니.”


남궁태를 가볍게 혼내는 팽유진.

둘째인 남궁호를 대하는 태도와 몹시 차이가 났다.

덕분에 남궁태는 더욱 기고만장해져 어머니 몰래 남궁호에게 혀를 내밀며 약을 올렸다.

이 과정이 공개된 정자에서 일어난 탓에 세가의 구성원들은 호숫가를 오가며 남궁호가 차별대우 받는 걸 보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팽유진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네게 할 만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영약을 구해다 먹이고, 내가기공이 뛰어난 고수를 불러다가 벌모세수까지 했는데 뭐라도 변화조차 없으니....”


친가가 남궁세가고 외가가 하북팽가였으니, 엄청난 노력이 남궁호의 몸에 쏟아부어졌다.

평범한 무재를 지닌 아이라고 해도 고수가 될 토양이 마련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호는 무공을 일절 익히지 못했다.


‘부모님이 실망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냐. 게다가 그런 공을 들여놓은 덕분에 나는 꿀 빨 수 있잖아?’


강호 최고 수준의 관리 과정이 모두 허공에 날아간 게 아니었다.

남궁호의 선천지기를 강화하고.

뼈를 튼실하게 만들었으며.

전신의 주요 혈맥부터 세맥까지 정순한 기운이 자리 잡았다.

그저 그걸 사용하지 못할 뿐.


‘하지만 난 무공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남궁호는 저절로 터져 나오려 하는 웃음을 속으로 꾹 참았다.

그런 기색을 눈치챘는지, 팽유진은 싸늘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너는 이 어미가 나무라는 게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구나. 아무래도 동생에게 손찌검을 한....”


“제게 벌을 주십시오.”


“어?”


은은한 노기와 함께 체벌하려던 팽유진이 다음에 할 말을 빼앗아버린 남궁호.


“그러려고 부르신 거 아닙니까?”


“그건 맞지만....”


“근신 처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천수제(天受祭)가 얼마 안 남았으니 그때까지로 말입니다.”


남궁호는 이미 팽유진이 하려는 말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결론을 내려버렸다.

남궁호로 게임을 시작해서 남궁태를 제압했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 중 하나였으니까.


‘어차피 더 들을 이야기는 잔소리뿐인데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지.’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팽유진.

남궁호는 그녀에게 첨언했다.


“참, 근신은 제 방보다는 세가의 연공실에서 했으면 합니다.”


“체벌 종류에, 기간까지 멋대로 고르더니 장소까지 원하는 게냐? 연공실은 무인들의 수련을 위한 곳. 네게 허할 수 없다.”


“맞아! 천수제 이후에 내가 들어가서 써야 하는데 어질러 놓으려고 그러는 거지!”


남궁호는 되도 않는 트집을 잡는 남궁태를 무시하며 팽유진에게 말했다.


“어머니, 상품의 내실이 없더라도 겉보기나마 꾸며야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남궁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팽유진.

이에 남궁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부연했다.


“황보세가 사람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 비실비실해도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다른 무사들과 함께 훈련하며 못난 꼴을 보이기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느냐?”


팽유진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전장을 운영하는 황보세가와의 혼담이 오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세가 내에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을 텐데 남궁호가 그걸 얘기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당황한 팽유진은 옆에 있는 남궁태의 눈치를 보면서 서둘러 말을 이었다.


“어흠, 그래. 생각해보니 지금은 세가의 연공실을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지. 그렇다면 네가 근신하기에 딱 좋겠구나.”


명문가끼리 정략결혼을 통해 서로 이득을 얻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다만 남궁호의 나이는 이제 14세.

아직 혼기도 아닌 데다가 첫째도 짝을 찾지 않은 상황이었다.


‘집안의 치부나 다름없는 나를 돈 많은 황보세가에 팔아넘기고 치워버릴 생각인 거지.’


남궁호는 예전에 읽었던 무림영웅 후기 중 하나를 떠올렸다.


[남궁호로 스타트했을 때 초반을 조용히 보내면 황보세가와 결혼 얘기가 나옵니다. 황보령 정도면 예쁘고 털털한 매력에 장가가도 괜찮겠다...라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때를 잘 버텨내야 합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담긴 그 글엔 많은 유부남 게이머들의 동조하는 댓글이 달렸다.


‘황보세가로 팔려갈 생각은 없지만 당장 혼담을 좀 이용하는 건 괜찮겠지.’


팽유진의 허를 찔러 연공실에서 근신하게 된 남궁호.

그는 근신하기에 앞서 장원의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다시 태어날 준비를 했다.


‘남궁태, 니가 그렇게 원하는 창궁무애검법. 미안하지만 내가 먹어주마.’


* * *


남궁호는 굳게 닫힌 연공실의 문을 보았다.

아마 정해진 날짜가 될 때까지 연공실은 오롯이 그의 차지이리라.


“여기서는 조심할 필요 없이 마음껏 행동해도 된다는 거지.”


남궁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러 짐에 나누어서 가져온 석판을 조립했다.

그의 기억력은 워낙 뛰어나 이미 한 차례 맞춰본 석판을 다시 완성하는 데에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금세 연공실 중앙에 나타난 석판.

이어서 남궁호는 석판 크기와 꼭 맞는 커다란 종이와 먹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제갈세가와 친하게 지냈다고 하더니 참 머리를 잘 썼어.”


남궁호는 이내 석판에 먹물을 칠하고는 그 위에 종이를 덮었다.

그러자 석판에 그어진 의미 불명의 선들이 종이에 옮겨졌다.

여전히 뜻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에 남궁호는 추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푹신한 솜을 뭉쳐서 일정한 깊이로만 눌리게 만든 뒤, 석판을 덮은 종이를 꾹꾹 찍었다.

이에 선의 일부가 먹물에 닿으며 다른 모양을 드러냈다.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글자들을.


“어디보자.... 제대로 찾아온 거 맞네. 천...ㅁ....”


남궁호는 얼굴 가득 미소를 그리며 종이의 내용을 읽어나갔다.


작가의말

이 게임은 무료로 결혼시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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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수제 +16 23.05.12 14,726 3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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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주 꼴통이라니까? +7 23.05.10 18,093 332 12쪽
1 남궁세가 둘째 공자가 미쳤다 +27 23.05.10 23,980 3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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