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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쉼터

신 불가사리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전탁
작품등록일 :
2013.08.19 14:44
최근연재일 :
2015.07.05 16:33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318
추천수 :
70
글자수 :
70,413

작성
15.07.05 16:27
조회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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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신 불가사리전 - 10

DUMMY

래미는 어느 순간부터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자 눈을 떴다. 왠지 좀 전보다 더 추워진 것 같았지만 그 보다는 눈앞의 광경에 감탄사부터 나오는 그녀였다.


“와아... 굉장해요.”


얼마만큼의 세월동안 있어왔는지 모를 기암절벽들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인 것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절벽 군데군데에는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근원이 어딘지 모를 물줄기가 졸졸 소리를 내며 바위 틈새로 흘러내렸다.


“이게.. 옛날에 있었다는 진짜 산인가요?”

“그래.”

“바다랑은 다른 아름다움이에요..”


지금에 와서 대부분의 땅은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되어 식물이라는 것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전쟁의 시대에 인간이 사용한 무기 중 최후의 병기는 영향이 미치는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키는 무기였고 그 영향이 수 세대가 지나기 까지 남아 생명체가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랬던 것이 불과 두 세대 전부터 일부 지역에 식물군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크지도 않은 잡초류가 대부분이라 키 크고 세월을 간직한 나무들은 볼 수가 없었지만 오지의 황야지대에 살던 래미에게는 무척 생소한 광경이었다.


“정말..정말 아름다워요.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래미가 주변의 풍경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불가사리는 정면을 완벽하게 막고 선 절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몇 번 벽을 쓰다듬더니 이윽고 한 곳에서 손을 멈춘 채 말했다.


“가까이 와라.”

“아... 네.”


래미는 더 이상 풍경을 감상할 수 없는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따라 곁에 다가와 섰다. 불가사리는 그녀의 손을 쥐고 벽을 항해 돌진했다. 래미는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서는 절벽에 눈을 질끈 감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결국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만이 남아 메아리쳤다.


‘난 이 사람을 믿어...!’


콰직.

그녀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손을 잡고 있던 압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래미의 머릿속으로 가마지기 노인이 바위에 깔리던 모습이 스쳐가며 저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불가사리씨..!!!”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된다.”


비명소리는 컸지만 그에 응대하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젠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여전히 귓전에서 들려오자 래미는 뻥찐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자신의 볼을 힘껏 꼬집었다.


“아얏! 그러니까.. 살아있네요? 절벽에 부딪친 게..”

“절벽 속으로 들어왔다.”

“예에?!”


상식을 뛰어넘는 불가사리의 말에 래미는 서둘러 주변을 돌아보았다. 좀 전에 보고 있던 절벽과 전혀 다른 광경이 그녀의 눈에 비춰졌고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크게 변했다.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으릉...]

[짹짹.]


먼 옛날 전쟁의 시대를 거치면서 멸종되어 사전 속에서나 볼 수 있던 동물들이 그녀의 앞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식용을 위한 가축이 아닌 온갖 다양한 동물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래미는 다시금 탄성을 내질렀다.


“동물이야! 소와 돼지를 제외한 동물은 처음 봐요!”


그녀의 말에 삿갓 속 불가사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풀어졌지만 얼굴을 가린 삿갓 때문에 래미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그녀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평화롭게 뛰놀던 동물들이 사나운 눈빛을 한 채 그녀를 노려보며 에워싸고 있었다.


“동물들이..”

[크르르...]


동물들의 가장 앞에는 줄무늬가 있는 사나워 보이는 짐승이 있었다. 앞발은 성인 남자의 머리만 했고 간혹 입 사이로 보이는 이빨은 어떤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 보였다. 동물 도감을 유심히 읽은 적이 있던 래미는 이 동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호..호랑이!”

[크앙!]

“꺄아악!”


호랑이는 커다란 몸집에 비해 믿기지 않는 속도로 그녀를 덮쳤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래미를 채어가는 손길이 있었다.


“물러서라.”

[크응!]


불가사리는 래미에게 말하는 것인지 호랑이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덮칠 때처럼 껑충 뛰어 뒤로 물러나서는 기괴한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불가사리의 시선은 어느새 호랑이의 뒤편을 향해있었고 때문에 래미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히 누가 이곳을 건드리는 것이냐!”


긴 흑발을 기르고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호랑이 곁에 내려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기지 않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여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래미 일행을 훑었다. 그녀의 호박빛 눈동자는 적의가 담겨있었지만 래미는 그 마저도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마치 풍경 그 자체인 듯 주변의 모든 것이 그녀 그 자체처럼 어우러지고 있었다.


“인간이군!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지?”

“저... 그게..”

“더러운 몸으로 어딜 감히!”


아름다운 얼굴과는 대조적인 거친 말투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래미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여인의 얼굴 속에서 분노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탓이다. 여인은 흥분했는지 말투가 거칠어져갔다.


“그를 빼앗고 또 무엇을 빼앗기 위해..! 너희 인간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가 않아!!!”

“앗!”


여인이 소리치고 나서 그녀의 몸에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졌을 때 래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했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어! 다시는 인간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


빛이 사라진 여인의 몸에는 아홉 개의 흰 꼬리가 생겼고 눈동자는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로 변해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바람 같은 것이 몸을 휘감고 있었는데 주변에 있는 짐승들은 그것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마치 그녀의 주변은 지금 위험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불가사리가 앞으로 나섰고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변한 여인의 눈동자가 그에게 향했다.


“인간주제에 감히 나에게 맞서보겠다는 건가?”


위협적인 그녀의 말에 불가사리는 말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검은 여인에게 향하지 않고 그저 바닥에 꽂혀들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여인에게는 충분한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검이 뽑혀지는 순간부터 멍한 표정이던 그녀는 검이 땅에 박히자 온 몸을 떨었고 그와 동시에 9개의 꼬리와 짐승의 눈동자가 사라지며 처음 보았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불신, 반가움 그리고 슬픔까지.


“당신... 이름은?”


불가사리에게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불가사리라 부르더군.”


불가사리가 답하자 떨리던 여인의 몸이 멈춰 섰다.


“정말.. 정말.. 당신이야?”


여인의 물음에 불가사리가 고개를 끄덕여 답하자 여인은 그대로 불가사리에게 뛰어들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래미의 눈이 커졌다. 여인은 불가사리의 품 안에서 울고 있었다.


“난... 난.. 아니라고 했어. 당신이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했어. 그래서 기다렸어. 오래, 아주 오랜 세월을..”

“....”


불가사리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곁에 있던 래미는 그의 눈동자 속의 무언가가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가슴 한 구석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병인가..?’


병을 앓았던 기억은 그녀에겐 없었다. 긴 여행과 피로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래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이 기우라는 듯 욱신거림은 금세 사라졌고 그때까지 여인의 울먹임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뻐..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

“...”

“오순과 한얼도 이 소식을 알면 기뻐할 텐데. 모두..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

“...”


여인이 무어라 말을 하건 불가사리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여인은 마치 익숙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만으로도 만족한 듯 울음을 멈췄다. 그 직후 그녀는 빠르게 뒤로 물러서더니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 당당한 모습으로 말했다.


“당신, 나빴어! 너무 늦었다고!”


지금까지 침묵하던 불가사리는 검을 다시 회수해서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말했다.


“미안하군.”

“난 화가나! 당신을 도울 수 없었다는 것도!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리고!”


여인은 래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인간 따위와 함께 있다는 것도!”

“이..인간 따위라니..”


래미가 엉겁결에 중얼거리자 여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 은혜를 모르는 것이 인간이지! 생명의 은인을 끝이 보이지 않는, 무(無)의 지옥으로 보낸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들이다! 넌 그 파렴치한 인간들의 자손이지!”

“지옥...?”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해! 그런 고통을.. 너희 인간들은 그를 저버렸어! 배신자들!”

“호요랑, 그만.”


여인의 이름이 호요랑이었던 듯 고개가 불가사리를 향했다.


“당신은 화나지도 않아요? 어떻게...!”

“난 괜찮다.”


불가사리의 말에 여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처연한 얼굴로 말했다.


“바보 같은 사람... 전부 스스로 감당하려하고 감당해야하는.. 안타까운 사람..”


호요랑의 얼굴은 처연한 표정에서 미소로 바뀌고 있었다. 억지로 짓는 것이 분명한 웃음이었지만 그녀 자신처럼 표정은 자연스러웠다. 방금 전까지의 일을 못 본 사람이라면 정말 기쁜 사람의 미소라고 느낄 만큼.


“하지만 그래서 당신을 좋아한답니다.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래.”


래미는 대답하는 불가사리의 목소를 듣고 다시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기에 금세 잊혀졌다.


‘불가사리씨가 감옥..?’


래미의 마음속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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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는 건가?”

“그...그렇습니다. 아보카도 관장님.”


하늘의 사서에서 원로들을 제외하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존재, 아보카도 관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전령에게 말했다. 전령은 안쓰러울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보카도는 다른 일에 신경이 쓰여 그 모습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협곡에 꼼짝없이 포위되었던 자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나? 물질 전송장치도, 비행선도 없는 곳에서 말이야.”

“그것이..”

“이번 일에 연관된 모든 사서들은 징계를 면치 못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에게 포위망을 더 튼튼하게 하라고 전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관장님.”

“서둘러 움직여라!”


전령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막사를 나섰다. 관장의 입에서 나온 징계는 평범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듣고 얼굴이 비슷해질 동료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빠져나갔을 리 없어.”


아보카도는 그런 전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산맥의 반대편으로 뚫려있는 출구도 없거니와 포위망에는 틈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감이 아직 자신이 쫓는 존재가 협곡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변수는 있을 수 없어. 어디에 숨었건 반드시 잡는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그러나 평소에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판단력으로 소문난 그녀도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협곡 안에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변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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