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누군가의 쉼터

신 불가사리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전탁
작품등록일 :
2013.08.19 14:44
최근연재일 :
2015.07.05 16:33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317
추천수 :
70
글자수 :
70,413

작성
15.07.05 16:09
조회
265
추천
4
글자
19쪽

신 불가사리전 - 4

DUMMY

천막이 쳐져있고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사서의 제복을 입은 이가 앉아있었다. 잠시 후, 천막 안으로 한 여인이 들어섰고 앉아있던 인물이 말문을 여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보고해라.”

“검은 거미단은 잠적을 위해 동쪽 산맥으로 가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쪽 산맥에는 표본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감옥이 있긴 하지만 감옥은 산맥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만약에 누군가가 산맥을 오가며 숨자고 한다면 그들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지금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답인가?”

“그..그것은..”


보고를 하던 자는 돌아오는 반문에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그러나 한 쌍의 눈빛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시체들을 살펴본 결과 모두 검은 거미단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정확히 43명으로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자들의 숫자와 일치합니다.”

“좋아, 일거리가 사라졌군. 피해도 없이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 오지에서 누가 움직인 거지? 최근에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현상금 사냥꾼이 있었나?”


현상금 사냥꾼은 말 그대로 범죄자들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노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범죄자를 잡아서 처리하고는 그 영상을 영상기로 찍어 표본실에 증명하여 현상금을 타갔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숫자가 많은 도적떼는 위험한 사냥물로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거나 도적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사냥꾼들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인이었고 어떻게 보면 잠재적인 위험으로 분류되는 이들이었기에 표본실에서는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자들 중에 움직인 자는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주 활동지는 이런 오지가 아닌 주로 중앙 내륙 쪽입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렇다면 이런 짓을 할 자가 누가 있을까.”


앉아있던 이의 말에 보고하던 여인은 그의 의중을 알겠다는 듯 신속하게 대답했다.


“당장 수배하겠습니다.”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볼트.”

“예! 제 1사서님!”


표본실에는 독특한 계급체제가 있다. 우선 표본실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사서’로 불린다. 여기서 다시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데 이는 시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표본실를 지탱하는 관장과 원로원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제 1사서라는 자리이며 그 만큼 강하고 뛰어난 이만이 받을 수 있는 칭호였다. 특히나 최근에 그 자리에 앉은 이는 그 활약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현재 그의 나이는 22세, 그러나 17세 시절에 불과 100여명의 인원과 함께 역사상 가장 커다란 규모의 쿠데타인 ‘계층의 난’을 제압했으며 그 후에도 능력의 뛰어남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게 되어 5년 뒤인 지금에 와서는 최연소 제 1사서가 되어 있었다.


“그럼 나가보게, 흠?”


보고를 막 끝내던 차에 다른 사서가 천막 안으로 뛰어들었다. 상급자에게 무례한 태도였지만 그는 통신을 담당하는 사서였기에 아무런 제재도 없이 자기가 할 말을 더 빠르게 전할 수 있었다.


“너울탄식님! 본관에서 통신입니다!”

“통신? 본관에서 무슨 일이지?”


본관은 표본실의 중심지를 말하는 것으로 하늘도시 중 하나인 하늘누리에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사서들의 사령탑인 것이다.


“그게.. 지금 하던 작전을 즉시 중단하고 동쪽 산맥의 감옥으로 이동하라는 지시입니다. 현재 감옥이 지진으로 인해 손상되었으며 그 쪽의 복구 작업과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라는...”

“뭐지? 그런 것은 하달 받은 바 없는데. 본관에 현재 상황을 보고했나?”

“네, 그 이후에 관장님이 직접 긴급명령을 내리셨습니다.”

“.... 관장이 직접 내렸다면 거부할 수 없군. 이동한다. 모두에게 알리도록.”

“예!”

“그럼 저도 이만.”


통신병은 들어왔던 속도만큼 빠르게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나가자 보고하던 볼트도 뒤를 따라 몸을 돌렸다.


“잠깐.”

너울탄식이 볼트를 불러 세웠다.


“예?”

“볼트, 너는 내가 내린 임무를 계속한다. 검은 거미단을 처리한 자를 수배해라.”

“하지만 본관에서의 명령이...”


사서들에게 본관에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것도 지금과 같이 관장이 직접 내린 긴급명령이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너울탄식은 볼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현장에서는 내 명령이 우선이다. 네 신상에 대해서는 내가 처리하겠다. 임무를 지속하도록.”


몸을 떨리게 하는 눈빛에 결국 볼트는 고개를 숙이며 수긍을 표시했다. 자신이 본 너울탄식은 입 밖에 낸 말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보고는 표본실 본관이 아닌 나에게 직접 하도록 한다, 이상.”

“예,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


절도된 동작으로 경례를 한 볼트가 천막에서 나간 뒤 너울탄식은 자신의 허리에 있는 검, ‘노을’을 어루만졌다. 그가 생각할 때 으레 하는 일종의 버릇이었다.


“43명의 범죄자가 몰살당한 사건보다 오지에 있는 무너진 감옥이 우선이라..”


그가 제 1사서가 된 이래 긴급명령은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표본실 전체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그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심지어 ‘계층의 난’때도 ‘긴급명령’이 아닌 ‘최우선 명령’이 떨어졌을 뿐이다. 게다가 갑작스러웠다.


“무언가 있어... 무언가..”

그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


여행길은 순조로웠다. 길은 고지대를 중심으로 닦여있어 거칠었지만 평화로웠으며 날씨는 변덕을 부리지 않고 얌전했다. 마을을 떠난 지 5일, 본래라면 어제쯤에 마을에 들러 식량을 비롯해서 물도 더 구해야 했지만 둘은 그곳을 그대로 지나쳤다. 의외의 상황으로 인해 그럴 필요가 없어졌던 탓이다.


“정말 안 먹어도 되는 건가요?”

“문제없다.”

“하지만...”


남자는 마을을 나선 뒤 건량을 전혀 먹지 않았고 심지어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래미는 몇 번이나 그에게 음식을 권했으나 그는 언제나 문제없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처음과 다름없이 움직였으며 지친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친 것은 래미 쪽이었다.


“후아.. 역시 여행은 힘드네요.”

“......”


그녀의 말에 남자는 발을 멈춰 세웠다. 그는 검집을 풀어 손에 쥔 후 길 가장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지.”

“에? 오늘은 이르네요? 지금까지는 해가 지기 직전까지 걸었잖아요.”

“식량도 물도 여유가 있다. 조금 쉬어간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진 않아.”


남자의 말에 래미는 배낭을 내려놓고 모포를 꺼내들었다. 그녀는 발로 바닥을 대충 다진 후 모포를 깔았고 그 위로 주저앉듯 앉았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요? 우리 함께 여행한 지 5일이나 되었는데 서로 통성명도 안했어요.”

“......”


남자는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때문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항상 래미였고 남자는 가끔가다 짧은 대답을 하는 수준이었다.


“제 이름은 래미에요. 저를 키워주신 은사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당신은요?”

“.....”

“저기.. 혹시 이름이 없어요..?”

“없다.”

“별명이나 애칭.. 아, 이건 실례겠네요. 죄송해요. 아무튼 이름 말고 다른 사람이 부르는 호칭 같은 건 없나요?”

“.......”


래미의 말에 남자는 침묵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답을 기다리던 래미가 거의 포기하고 고개를 돌리려던 차에 남자의 입에서 메마르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가사리, 다른 이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더군.”

“아! 불가사리라면 바다에 산다는 별 모양의 생물이군요!”


바다는 지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전쟁 이후에 바다에 사는 사람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 어떠한 땅보다 바다에 잔재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쟁 이전에 수집되었던 정보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덕분에 사람들은 바다에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바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정보는 귀하디귀한 책에 적혀있었고 일반인들은 볼 수 없다. 레미도 우연히 지나가던 여행자에게 들었을 뿐 자료를 본 적은 없었다.


"...."


남자, 불가사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그는 래미의 말을 듣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짧게 답하곤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던 래미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그가 대답이 없더라도 대화를 이어가는 남들이 보면 이상해 할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래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을 보며 자그마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후아..여기가 말로만 듣던 하늘도시네요..”


배낭에 있던 건량과 물이 슬슬 바닥을 드러낼 때 즈음, 둘은 거대한 아치문에 도달했는데 그곳은 하늘도시 중 가장 변방에 있는 도시이자 가장 튼튼하기로 유명한 도시, 하늘유리의 정문이었다. 도시 외곽은 커다란 성벽으로 둘러져 있었고 유일한 출입구인 아치문은 단단한 화강암을 통째로 조각해 만들어 튼튼함을 자랑했다. 대부분의 하늘 도시가 경계를 구분하는 담 정도를 두르는 것에 비하면 이는 특이한 모습이었는데 그 이유는 변방에 있다는 점을 노리고 도적떼들이 자주 출몰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는 ‘표본실’의 정식 분관이 있었으며 상당한 수의 사서들이 치안을 위해 주둔하고 있었다.


“거기 정지!”


언제 어디서 도적떼가 나타날지 모르는 탓에 검문은 철저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밖으로 다녀오면 검문을 받을 정도였으니 외부인은 말 할 것도 없다. 래미와 불가사리는 단 번에 문을 지키던 사서들에게 제지당했다.


“어린 여자애 한 명과 성인 남자 하나인가. 어디서 왔지?”

“우린...”

“동쪽 산맥에서.”


사서의 물음에 래미가 답하려던 순간 불가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살펴보았고 곧 허리춤에 달린 검을 발견하고는 경계심이 생겼는지 몇몇 사서들을 더 불러 모은 후 다시 물었다.


“이곳으로 온 목적은?”

“호위.”

“호위?”


불가사리의 말에 질문을 한 사서는 새삼스럽다는 듯 래미를 바라보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도저히 호위를 고용할만한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의 눈초리가 더욱 의심스러운 기색을 띄었고 동시에 래미 일행의 주변을 사서들이 둘러쌌다. 슬며시 무기에 손을 올리는 사서들도 간간히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래미 일행을 구한 것은 갑자기 일어난 소란이었다.


퍼엉.

폭음과 함께 흔들리는 땅, 동시에 여러 고함소리와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게릴라의 습격이야! 현장으로 가서 포위망을 구축하라는 명령이다!

“이동!”


누군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둘을 에워쌌던 사서들은 검문을 위한 최소인원만을 남겨둔 채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아치형의 문이 닫히지는 않았지만 사서들에 의해 봉쇄되고 검문은 중단되었다.


“다시 허가가 내려질 때 까지 성문 통과는 금지한다!”


사람들은 사서의 외침을 듣고 익숙한 듯 나가려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들어오려던 사람들은 문 앞에 간이 천막을 쳤다. 모든 하늘도시를 총괄하는 표본실 사서들은 도시민들에게 있어 가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그들은 얌전히 통행금지가 풀리는 것을 기다렸다. 래미도 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그마한 바위에 모포를 걸치고 걸터앉았고 그런 그녀의 뒤에서 불가사리는 튼튼하다 못해 경이롭게까지 보이는 성벽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시선을 떼지 않던 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잡아라. 주의할 점은 지난번과 같다.”

“에?”


래미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남자의 말에 담긴 의미를 고민했다. 해답을 얻었을 때 그녀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동굴에서의 일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눈을 감고 그의 허리를 잡았다. 소녀가 남자의 허리를 잡는 모습은 여러모로 눈에 띌 행동이었지만 날이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고 밤공기가 차가웠던 탓에 대부분 천막에 들어가 있었기에 그들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래미는 바닥이 사라진 듯 한 느낌과 함께 바람소리가 귓가에서 요동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잡고 있던 허리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절로 비명소리가 나왔지만 입을 열었다가 매섭게 들어오는 바람에 그대로 소리는 나오다 만 채 목에 걸려버렸다.


탁.

무언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지만 그녀의 몸은 요동조차 없었다. 어느새 불가사리의 팔이 그녀의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래미의 몸을 내려놓은 후 비틀거리는 그녀의 몸을 지탱하며 말했다.


“이제 눈을 떠도 된다.”

“콜록콜록..”


래미는 연신 기침을 했다. 사래가 걸린 탓이다. 때문에 그녀가 주변을 보게 된 것은 기침이 멈추고 숨이 가다듬어진 후였다. 그녀는 어느새 서 있는 곳이 어둑한 골목인 것을 깨닫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여긴 어딘가요? 살펴보니 골목 안인 것 같은데 아깐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밖에 있었...”


말을 하던 래미는 도중에 뭔가 깨달았다는 듯 초록색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도시 안으로 들어온 건가요?”

“.....”

“도대체 어떻게..?”


그녀의 물음에 불가사리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래미는 그가 무척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헤쳐 나가는 법이 자신만의 비법이기 때문에 숨긴다고 생각했다.


‘비법을 아무렇게나 알려줄 리가 없지.’


불가사리의 침묵에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이해하는 래미였다. 믈론 그것은 혼자만의 생각이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


자신의 낸 해답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와도 괜찮은 걸까요? 검문하는 사람들이 알면 큰일 날 텐데..”


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인들에게 사서라는 자들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행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비록 사서들이 없는 오지에서 자란 그녀였지만 소문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문제없..”


여느 때와 같은 대답을 하려던 불가사리의 목소리가 도중에 멈췄다. 그는 래미의 입을 틀어막고서 골목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고 그 직후 시끄러운 외침과 둔탁한 가죽 신발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가까워져왔다.


“저쪽이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잡아라!”

“........”


불가사리는 발소리와 목소리들이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야 잡고 있던 손을 거둬들였다.


“후아...”


갑자기 불가사리의 손에 막혀 숨이 거칠어졌는지 래미는 심호흡을 길게 했다. 그러다 갑자기 불가사리가 허리에 있는 검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에..에..?”


갑작스러운 행동에 래미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떨거나 하진 않는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불가사리는 여전히 그녀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가 검을 살짝 빼어들자 래미의 뒤쪽 골목의 어둠 속에서 곤란한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아, 그만두지.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 칼 좀 치워주지 않겠어? 살이 떨리다 못해 부르틀 지경이라고.”


젊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활달한 목소리가 자신의 뒤에서 나오자 래미는 검을 뽑을 때도 움직이지 않았던 몸을 움찔거렸다. 그 모습이 보이는 듯 어둠 속 목소리의 주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렇게 겁먹지 마 아가씨. 해코지 할 맘은 전혀 없으니까.”

“... 더 이상 다가오면 베겠다.”


불가사리의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그렇기에 더 위협적이었다.


“이거 곤란한 걸? 이미 들어왔으니 나가려면 그쪽으로 가야하는데 다가오면 베겠다니 말이야.”


남자도 위험을 느꼈는지 웃음기가 섞여있던 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담겼다. 그렇게 어둠 속의 남자와 불가사리가 래미를 사이에 놓고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어둠 속을 꿰뚫어 보는지 불가사리는 간혹 검을 쥐었다 놓았다 했고 그때마다 어둠 속에서는 나직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렷다.


“잠시만요!”


결국에는 움직임이 없게 되어 지루하게 까지 느껴지던 대치상황을 깬 것은 남자도 불가사리도 아닌 래미였다.


“거기에 계신 분은 절 해칠 마음이 없다고 하셨죠..?”

“아아.. 그쪽처럼 귀여운 아가씨를 해칠 이유가 없지. 난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래미의 물음에 어둠 속의 남자는 다시 웃음기 띤 목소리로 대답했다. 래미는 이번에 불가사리를 향해 말했다.


“오해인 것 같으니 검은 이제 집어넣어 주세요..”

“난 호위다.”

“그렇긴 하지만..”


불가사리가 말했다.


“호위는 의뢰주의 뜻을 따르지.”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검을 다시 갈무리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밤중인 대다 어두운 골목 속이라서 그런지 얼굴을 자세히 보이지 않았고 그가 입고 있는 붉은 재질의 옷과 그와 같은 색의 눈동자만이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듯 눈에 띄었다.


“하하하! 이거 재밌는 친군데?”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래미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둠 속이었지만 래미는 확연히 눈에 띄는 그의 옷을 보고 그가 몸을 숙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흐음...”


래미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불가사리와 그녀를 번갈아보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어째서 저런 무뚝뚝한 녀석과 이렇게 귀여운 아가씨가 함께 다니는 거지?”

“귀..귀엽다니...”


그의 말에 래미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는 이번엔 짓궂음 까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 마음 같아선 내가 확 채가고 싶지만 내가 좀 바쁜 몸이라서 말이야. 이만 사라지도록 하지. 잘 있으라고, 귀여운 아가씨.”


그는 래미를 향해 다시 과장된 인사를 하고는 어느 샌가 길 한쪽 편으로 비켜서 있는 불가사리를 지나 골목에서 빠져나갔다.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흐암..”

“묵을 곳을 찾도록 하지.”

“네에....”


피곤한지 래미의 대답이 늘어졌다. 가까운 여관을 찾아 들어섰을 때는 쏟아지는 잠에 간신히 몸을 움직여 계산을 어떻게든 마치고서 방에 그대로 쓰러졌고 곧바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 그 옆에서 불가사리는 자신에게 배정된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을 자지 않는 그에게 침대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래미가 2인실을 잡은 탓이다. 그는 잠들어 있는 래미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아오지 않아.”

누군가 들었다면 목이 타는 갈증을 느꼈을 정도로 메마른 목소리였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 불가사리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오타가 발견되어 수정중입니다. 16.10.10 173 0 -
공지 반드시 읽어주세요!(2015년 7월 5일자 공지) 15.07.05 182 0 -
공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 14.10.03 221 0 -
공지 연재 시작합니다. 13.08.19 380 0 -
15 신 불가사리전 - 에필로그(2) 한 소녀의 이야기 15.07.05 200 2 8쪽
14 신 불가사리전 - 에필로그(1) 한 남자의 이야기 15.07.05 178 2 6쪽
13 신 불가사리전 - 11 15.07.05 271 2 12쪽
12 신 불가사리전 - 10 15.07.05 189 2 12쪽
11 신 불가사리전 - 9 15.07.05 199 2 9쪽
10 신 불가사리전 - 8 15.07.05 228 3 14쪽
9 신 불가사리전 - 7(2) 15.07.05 185 3 5쪽
8 신 불가사리전 - 7 15.07.05 204 4 10쪽
7 신 불가사리전 - 6 15.07.05 203 3 10쪽
6 신 불가사리전 - 5 15.07.05 240 3 14쪽
» 신 불가사리전 - 4 15.07.05 265 4 19쪽
4 신 불가사리전 - 3 15.07.05 187 6 8쪽
3 신 불가사리전 - 2 15.07.05 254 5 9쪽
2 신 불가사리전 - 1 13.08.21 259 4 9쪽
1 신 불가사리전 - 0 13.08.19 546 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