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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쉼터

신 불가사리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전탁
작품등록일 :
2013.08.19 14:44
최근연재일 :
2015.07.05 16:33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321
추천수 :
70
글자수 :
70,413

작성
13.08.21 21:03
조회
259
추천
4
글자
9쪽

신 불가사리전 - 1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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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미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숨을 들이키자 당장에 흙먼지가 목에 걸려 칼칼함을 느껴졌다.


“할아버지...”


그녀는 가마지기 노인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핏자국도 없었다. 아마 흙과 돌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으리라. 은사가 죽은 이후 유일하게 자신과 소통하던 사람이 사라졌다. 소녀는 은사가 돌아가시던 그 날처럼 우울해졌다. 흙더미는 그녀의 바로 앞에서 멈춰 불안하게 흘러내리고 있었고 등에 닿는 거라곤 찌꺼기 구덩이 뿐이었다. 쇠창살에 묻어있던 음식물 찌꺼기가 고약한 냄새를 풍겼지만 그녀는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구조를 기다리며 웅크려 있을 뿐이었다.


퉁.

“.....?”


그렇게 얼마를 있었을까. 래미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천천히 등 뒤를 향해 상체를 돌렸고 이윽고 창살이 떨어져나간 채 드러난 구덩이와 마주했다. 그녀가 들은 소리는 창살이 떨어져나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구덩이의 깊이는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여서 그녀는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몸을 돌려서 등이 흙더미 쪽으로 향하게 했다.


흔들.

“아앗!”


큰 지진 이후에 찾아오는 여진에 다시 땅이 흔들리고 흙이 흘러내리면서 래미를 구덩이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따름이었다.


“아..안 돼.. 할아버지..”

그녀는 살아달라던 가마지기 노인을 떠올렸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소리치면서도 닿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깊은 곳의 흙더미에 파뭍힌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겠는가. 하지만 마음속의 무언가가 그녀에게 계속해서 구조요청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발!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소리치는 와중에도 흙더미는 점점 그녀를 구덩이로 밀고 갔다. 마침내 한 발자국 정도의 거리만을 남겼을 때, 그녀는 제발 기적이라는 것이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소리쳤다.


“도와달란 말이야!!!”

턱.

“시끄럽군.”

“에?”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뭘 멍하니 있는 거지.”

“그러니까.. 살아있는 사람이죠?”


래미는 지금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의구심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구덩이에 빠지기 직전에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헤진 회색빛 옷에 커다란 삿갓을 쓰고 있었다. 일순간 자신이 죽은 영혼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래미는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다행스럽게도(?) 눈물이 쏙 빠질 만큼의 아픔이 느껴졌고 남자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날 잡도록.”

“... 네 넷!”


남자의 말에 래미는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

“이렇게 잡으면 되나요? 에엣?”


래미 쪽으로 고개를 향한 남자는 다짜고짜 그녀를 한 손에 덥석 잡아 올려 겨드랑이 사이에 단단히 고정시키고는 다시 말했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어라.”


남자의 몸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정말 현실인 모양이었으므로 래미는 그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굉음과 함께 몸이 들썩이는 와중에도 꾹 참고 있던 그녀는 곧이어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것을 느끼고 눈을 떴고 사방에 자욱한 흙먼지에 뜨자마자 금세 눈물범벅 신세가 되었다. 남자는 그 와중에도 움직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내려놓았다.


“눈을 뜨지 말라고 했는데 듣지 않았군.”

“하지만 하늘 냄새가 나서..”


남자는 래미를 향해 고개를 향했고 시선을 받은 그녀는 당황해서는 허둥지둥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그게 아니라!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는 거예요! 그.. 왜 있잖아요? 높은 곳 위에서 숨을 들이쉬면 맡아지는 개운한 거요!”

“하늘의 냄새라..”

“이..이상한 소리해서 죄송해요!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


래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거듭했지만 남자에게선 반응이 없었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 사이 래미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자신이 들어갔었던 동굴 입구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간수들이 득실거리고 있을 숙소도, 한 곳에 마련된 식당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드넓은 황야와 그 위로 듬성듬성 보이는 초록빛 물체들뿐이었다. 그것을 본 그녀는 눈치를 보던 좀 전의 상황도 잊은 채 입을 벌렸다.


“와아...”

“풀을 처음 보나?”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참을 그렇게 있던 래미는 남자의 물음에 고개를 소리가 날 듯 빠르게 돌리며 대답했다.


“네... 제가 자라던 곳에는 전부 돌 뿐이었거든요. 그래도 식량은 멀리 있는 하늘도시에서 수송해 와서 굶지는 않았지만요.”

“그런가..”


래미는 문득 남자가 슬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무덤덤한 어조였고 눈은 눌러 쓴 삿갓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장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냥 마음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런데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아세요?”

“모른다.”

“어쩌지.. 아직 돈도 더 벌어야 하는데.”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거지?”


래미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가 삿갓 너머로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홍조를 띄었다.


“전 재봉사가 되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조합 가입비도 있어야 하고 여행비도 있어야 해요. 조합은 멀리 있는 하늘도시에만 있거든요. 또 먼 길에 함께 갈 용병도 구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조합가입비와 여행비는 있지만.. 용병을 구하는 게 아주 비싸서 몇 년은 더 모아야한다고 들었어요.”

“재봉사라, 옷을 만드는 사람 말인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좀 시시하죠?”

“이젠 일거리를 잃은 건가?”


래미는 남자의 말에 문득 가마지기 노인을 생각해 내고는 곧 눈물을 글썽였다. 자신은 다시 돌아갈 곳을 잃은 것이다. 바로 어제 간수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고 감싸주던 가마지기 노인이 없어진 이상 다시 자신을 받아줄 지도 의문이었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감옥도 무너졌고 더 이상 전 필요가 없다랄까요? 헤헷..”

“.....”


억지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닦아내는 래미의 말을 들은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지 몸을 꼼짝도 하지 않고 몇 분을 서 있던 그는 예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호위로 고용해라.”

“....에?”

“보수는 그쪽에서 주는 대로.”

“저기.. 저 돈이 별로 없어요. 따로 드릴 것도 없는데..”


감옥에서 일하면서 지급되는 물건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 래미는 자신의 물건이 없었다.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은 가마지기 노인과 함께 살던 숙소에 다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래미는 잠시 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재봉사가 되면 멋진 옷을 지어드릴게요! 전신 맞춤옷으로요!”


전신 옷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재봉사가 단 한사람을 위해 만드는 옷인 것이다. 맞춤옷이기 때문에 싸구려 천을 쓰지도 않았다. 이는 일종의 재봉사로서의 자존심이었는데 자신이 만드는 맞춤옷이 싸구려라고 불리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곧 그저 그런 천으로도 재봉사의 의지만 있다면 전신 옷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되었지만 적어도 래미가 알기에 맞춤옷은 가장 비싼 옷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남자는 이내 말했다.


“....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꼭 최고로 멋진 옷을 지어드릴게요!”


래미는 기쁜 얼굴을 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적어도 가마지기 노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다시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슬쩍 흔들었다. 일종의 마음을 다잡는 의미였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은 알고 있나?”

그렇기에 남자가 물었을 때 그녀는 환한 얼굴로 대답해 줄 수 있었다.


“하늘에 있는 붉은 별 바로 아래에 도시가 있댔어요! 하늘도시, ‘하늘누리’가!”

“......”


래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한 남자의 시선은 한참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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