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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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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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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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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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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4)

DUMMY

“오오···! 오직 하나뿐이신 성화여, 종의 미욱함을 용납하여 주소서.”


마치 기도를 올리듯, 항삼세명왕의 여섯 손이 둘씩 맞대어졌다. 곧, 언제 그것이 여섯 개나 되었냐는 듯 평범한 두 팔에 머리 하나인 상태로 되돌아온 항삼세명왕은, 금강저와 갈고리 낫을 가슴께에 교차해 들었다.


“천지가 있기 전 오직 빛과 어둠만이 있었으니, 이를 제일세 초제(第壹世 初際)라 하더라.”


항삼세명왕의 눈에서 창광(猖狂)한 빛이 흘러나왔다. 항삼세명왕의 넓게 편 양손이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 손의 궤적을 따라 연꽃 봉오리 하나가 떠올랐다. 이윽고 봉오리가 사방사우(四方四隅)로 벌어지고, 꽃잎이 붉은 태장계 만다라를 형성했다. 놀랍게도, 혹은 하나도 놀랍지 않게도, 그 손에서 놓인 금강저와 갈고리 낫은 허공 위에 뜬 채,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천지가 나고 빛이 어둠에 가리매, 이를 제이세 중제(第貳世 中際)라 하더라.”


항삼세명왕의 두 손이 마주쳤다. 꽃잎을 활짝 피운 붉은 만다라는 중심부로부터 점점 붉은 혈광을 더해갔다. 곧 날을 교차한 금강저와 갈고리 낫이 만다라의 붉은 혈광을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빨아들였다. 붉게 달아오른 금강저와 갈고리 낫은 웅웅, 공명음을 울렸다.


“천지가 끝을 보매, 시작과 끝이 이미 정해진 바라. 마침내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한 빛이 때를 얻으니, 이를 제삼세 후제(第參世 後際)라 하노라.”


그르르릉! 두 날이 교차한 지점에서 격렬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날이 교차한 지점부터 검붉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빛(明)은 대명(大明)으로, 어둠(暗)은 극암(極闇)으로.”


작게 읊조리듯 경구를 내뱉은 항삼세명왕의 손이 금강저와 갈고리 낫을 잡았다. 히야악! 뱀이 숨을 토해내는 것 같은 소리가 붉게 달아오른 날붙이에서 새어 나왔다.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검붉은 연기는 이제 항삼세명왕의 전신에서 흘러나와 반경 3장(약 9m)을 뒤덮었다.


“대명은 노래하리라. 삼세의 왕을 굴복시키고, 삼제(三際)의 업을 멸하신 이의 신위를!”


끼아아아악!


금강저와 갈고리 낫이 크게 떨리며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검붉은 연기 속에서 두 개의 혈광이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대명이 크게 세상을 비추기를 이 하늘과 땅이 멸하여 없어지기(天地滅盡)까지 하리니, 준비하라!”


항삼세명왕이 천지멸진의 태세를 선포하자, 곧 검붉은 안개가 파스스, 흩어졌다. 마치 젖은 장작을 태운 것처럼 짙었던 연기는 옅어지더니 종국에는 안개처럼 변해 버렸다. 뿌연 안개는 설총을 지나 길거리 전체를 다 메울 정도로 퍼져나갔다.


안개 속에서 마치 불타오르는 형체와 같은 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검붉게 빛나는 일륜(日輪)과 월륜(月輪)이 그 뒤를 따랐다.



* * *



양성진은 심상찮은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뒤통수의 꼭지를 꽉 잡아당기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다.


“제길,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는 싶지만···!”


장난이 아니다. 지금 뒤돌아봤다가는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다. 목표했던 육합진결(六合眞結)을 대성한 이후로, 이제는 내공만 충분하면 천하에 적수가 없으리라 여겼는데─


‘분명 초식의 흐름은 엉망인데··· 틈을 잡을 수가 없다!’


백련교의 대호법과 일전을 치렀던 설총이 말한 대로, 오대호법 중 하나일 것이 확실한 이 대위덕명왕이란 자의 무공은 관화(關和)를 알지 못하는 미숙한 자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마치 갓 태어났을 때부터 신력(神力)을 타고났다는 봉신연의의 괴동(怪童), 나타와 싸우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공격을 기술만으로 흘려 넘기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검으로 바늘귀를 찔러 실을 매는 정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젠장···!”

“꼭 멍청한 나귀가 가시채를 뒷발질하며 날뛰는 꼴이로구나.”

“아 쫌! 닥치라고!”


챙!


크게 창을 휘돌려 거리를 벌린 양성진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오합진결(五合眞結), 구두룡파(九頭龍破)!”


콰가각!


아홉 가지로 분열한 창이 나선형의 폭풍을 쏟아내며 대위덕명왕의 퇴로를 일제히 덮쳤다. 당장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가 되었지만, 대위덕명왕의 안색에는 미동도 없었다.


“감히 아홉 머리의 용이라니? 숫제 아홉 머리 달린 뱀이 아닌가?”


삼지창이 빙글, 머리를 돌렸다. 한 손으로 창을 돌려 등에 짊어진 자세를 취한 대위덕명왕은 양성진의 창을 맞이하려는 듯 빈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격렬한 경력의 폭풍이 그 손을 집어삼키기 직전, 손과 창이 그 위치를 뒤바꿨다.


“왕께서 뱀의 머리를 밟으시는 도다!”


마치 땅꾼이 집게로 뱀 머리를 찍어 누르듯이 삼지창을 내리꽂자, 격렬하게 휘몰아치던 경력이 파쇄되고 양성진의 창은 땅에 그대로 처박히고 말았다.


“제기랄!”


양성진은 그대로 창을 놓고 훌쩍 뛰어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로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삼지창이 꿰어 올렸지만, 허공을 꿰뚫고도 대위덕명왕에게 아쉬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이무기인 줄 착각했던 뱀의 최후란 이리도 허망한 것이던가···. 심판의 때를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화 있을진저.”

“제길···!”


평소라면 한마디 멋지게 쏘아붙였을 테지만 지금은 입이 열 개, 아니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백련교의 대호법쯤, 혼자서 둘도 감당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쳐놨는데 고작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 이런 위기라니. 인정하긴 싫지만, 준비가 안 됐다는 대위덕명왕의 말에 그야말로 뼈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두들겨 맞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말장난이나 할 여유는···!’


급히 몸을 굴려 가며 창날을 피하는데, 상대방의 표정이나 태도가 너무 여유롭기 그지없어서 열 받는다. 아니, 분통이 터져서 죽을 것만 같다.


‘내 창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이 정도로?’


스스로 능력을 과신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장 최근에 절차탁마의 잣대로 삼았던 이는 바로 옆에서 검을 펼치는 설총과 구체 중 필두(筆頭)의 위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산동벽수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들이 지금 눈앞의 대위덕명왕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설총은 다른 대호법과 백중지세로 겨루고 있지 않은가?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곧 양성진 스스로 되물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음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예는 그 경지가 고절할수록 흐름이 중요해진다. 고수들의 대결에서 생사를 가늠하는 것은 한순간의 틈이다. 그 찰나의 빈틈을 잡기 위해 같은 초식을 수천, 수만 번 연마하는 것이 무의 본질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눈앞의 대호법은 그런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공력의 운용, 초식의 흐름, 관석화균의 이해까지 모든 것이 다 초심자의 그것인데, 빌어먹게도 그 빈틈을 잡아 칠 수가 없었다. 우악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삼지창의 경력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던 탓이다.


박자도 엉망이고, 휘두르는 궤도나 정확도도 개판인데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라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거기다 보통 저 정도의 경력을 아무 제약 없이 펼쳐대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충격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동작이 커지고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무기가 아니라 맨주먹을 휘두를 때도 힘을 잔뜩 넣어 휘두르면 동작이 커지듯 말이다.


그러나 저자에겐 그런 것조차도 없다. 제 몸이 상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정도로 강하고 빠른 공격을 쉴 틈도 없이 계속 휘둘러댄다.


‘놈은 이제 갓 초식의 형을 갖춘 소교(小巧)에 불과하단 말이다···!’


강호에 즐비한 무문의 사범들은 기껏해야 제칠계(第七階)인 투력(鬪力)에만 올라도 그 지역에선 고수 소리를 듣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초식의 형(形)을 완성한 제육계(第六階) 소교에 이른 자라면 천하십이본을 제외한 어느 문파를 가든 협객 소리는 들을 수 있다. 거기에 저 정도 젊은 나이라면 아마도 기재라 일컫기 충분할 것이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가 양가장의 소가주, 양성진이란 점이 문제일 뿐이지.


일혼칠검으로 불리는 현 강호 최고의 신진기예들과 함께 절차탁마하며 이미 제삼계(第三階) 구체(具體)를 눈앞에 둔 양성진이, 고작 소교에 불과한 자와 겨루다 창을 놓치기까지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게다.


“어디까지 굴러갈 셈이더냐?!”


쾅!


내리치는 삼지창을 피해 다시 한번 몸을 굴린 양성진은 벌게진 얼굴로 이를 앙다물었다.


‘무허, 그 말코 놈이 봤다면 일생의 놀림감이겠군.’


나려타곤(懶驢打滾)의 네 글자가 아주 잘 어울리는 몰골로 뛰고 구르며 몸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만약 누군가 일평생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 언제냐 묻는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아마도 말은 못 하고 생각만 할 것이다. 이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을 어찌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젠장, 도대체 뭐가 부족했던 거지?’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놈에게 보여주진 못했지만, 육합진결의 오의 무단팔극(武壇八極)이란 비장의 수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수를 꺼내 들었을 때, 과연 놈의 삼지창을 꺾고 그 목을 단번에 꿰뚫을 수 있을까?


‘···제길.’


평소에는 넘쳐서 탈인 자신감이 지금은 도무지 솟아나질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선 차라리 지금 설총과 겨루고 있는 저 중년의 대호법과 싸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적어도 이 젊은 놈보다 훨씬 무공에 능숙한 저 자에게 이 정도로 밀렸더라면 ‘이것이 오대호법의 진정한 실력이었던가’ 하며 마음껏 좌절이라도 해볼 텐데.


“흐압, 개소리!”


양성진은 양 주먹을 가슴께에 쾅, 부딪치고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음껏 좌절이라니,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린가? 언제부터 그렇게 나약한 삶을 살았다고 그딴 개소리를 나불대는 거냐?


“대명은 노래하리라. 삼세의 왕을 굴복시키고, 삼제(三際)의 업을 멸하신 이의 신위를!”


그때, 멀찍이서 아까 그 중년 대호법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귀를 찢을 듯한 귀곡성(鬼哭聲)이 울려 퍼졌다.


끼아아아악!


“윽?! 제길!”


공력으로 귀를 보호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몸의 균형을 잃어버릴 뻔했다. 그 찰나에 삼지창이 날아올까 두 눈을 부릅뜨고 대위덕명왕을 살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휘두르던 창을 멈춘 채로 가만히 서서 중년의 대호법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황홀감에 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이 무슨 해괴한···!”


양성진은 두 눈썹을 비틀었다. 그러나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이다. 당장 몸을 추스르고 떨어뜨렸던 창을 향해 몸을 날린 양성진은, 수습한 창을 휘돌려 제공권을 구축했다.


“아아··· 아름답도다.”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분노해야 할까? 대위덕명왕은 양성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오직 중년의 대호법과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연기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대명이 크게 세상을 비추기를 이 하늘과 땅이 멸하여 없어지기(天地滅盡)까지 하리니, 준비하라!”


중년의 대호법이 들고 있던 세 날 금강저와 갈고리 낫이 붉은 일륜과 월륜의 혈광이 되어 떠올랐다. 뿌연 안개로 화한 연기 속으로 그가 모습을 감추자, 그제야 대위덕명왕도 양성진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바즈라-훔카라께옵서 천지멸진의 태세를 선포하시더라.”

“뭐라는 거야? 지금 책이라도 읽는 거냐?”

“야만타카가 이르기를, 사바인이여, 오늘 그대에게 큰 자비가 임하리니, 그대가 도솔천을 영접하게 되리라. 하더라.”


양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솔천을 영접시켜준다니, 골로 보내주겠다는 거 아닌가?


“누구 맘대로?”

“야만타카가 이르기를, 바람이 부는 방향을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느니라. 하더라.”

“네놈들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이란 건 동의하는데.”


쿵!


삼지창의 창대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이를 멸시하는 일은 결코 용납되지 못 하리라!”

“입만 열면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데 여념이 없으시구먼.”


빈정대던 양성진은, 삼지창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자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양성진의 자존심을 긁는 것은 눈앞의 삼지창이 아니라, 저 후방에서 흘러나와 어느새 이 근방을 뒤덮은 안개였다.


“이봐.”

“듣고 있노라.”

“댁은 뭐, 저런 거 안 해도 돼?”

“저런 것이라니?”

“무슨, 뭐시기 태센가 뭔가.”

“천지멸진의 태세를 이르는 것이냐?”

“그래.”

“후흐흐하하하하핫!”


대위덕명왕은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는, 마치 천하의 대협객이 오랜 지기를 만난 기쁨으로 터뜨린 홍소(哄笑)나 다름없었다.


“사바인이여, 자만하지 말지어다. 왕께서 이 땅에 친히 강림하사 그 신위를 드러내는 것이 어찌 쉬이 논할 일이겠느냐?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양성진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상처 입은 자존심을 돌아보며 치를 떨었다.


양성진이 ‘소의당’이라는 이름의, 빤히 보이는 사지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까닭은 오직 설총과의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와의 논검(論劍)은 분명 기존에 양성진이 부딪혔던 벽을 깨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었고, 그런 과정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설총을 꺾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목격한, ‘도저히 파훼할 수 없는 검기’를 제 손으로 깨뜨리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으니까. 아니, 그런 것보다도 사내로서의 자존심이, 그리고 무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날의 패배를 뛰어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분명 겉으로 봐서는 아주 미세한 차이에 불과했다. 그때 그 비무회에서 설총과 자신의 간격은 그야말로 월화지경─이었을 터다. 공력이 고갈된 설총의 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마 설총보다도 자신이 우위에 있을지 모른다. 공력을 운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체력에서도 까마득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미세한 차이를 뒤집을 수가 없다. 도리어, 점점 더 그 차이가 벌어지는 것만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까이서 겪어 보면 그 간극(間隙)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따라붙었지만···.


도리어 이유를 찾기는커녕 실시간으로 멀어지는 설총의 등만 쳐다보게 생겼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건가?!’


절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공력을 다 잃은 그는 되고, 모든 것이 만전인 나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지? 무엇이 내 창을 이토록 가볍게 만드는 거지?’


가만히 호흡을 다스리며, 구결을 따라 심법이 이끄는 가장 깊은 심상(心象)의 세계로 나아 간 양성진은 제 손에 들린 창날의 끝에 의식을 집중했다. 머릿속의 투로를 따라 펼쳐지는 무단팔극의 형태를 세밀하게 살피던 양성진은 저도 모르게 콧잔등을 찌푸렸다.


‘어찌 이리도 난잡하단 말인가?’


화려하고 폭발적이며 다채로운 변화라고 여겼던 창의 투로는, 마치 자루를 묶은 끈이 풀린 싸리비마냥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일견 화려함이나 강력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거리를 제압한 창의 제공권은 가히 군진(軍陣)에도 필적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누가 그랬더라? 아, 저 친구지 참. 양성진은 창날에 비치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렇군. 중이 제 머리를 못 깎고 기사(棋士)도 훈수는 못 당한다 했던가?


‘쓴소리도 달게 들을 줄 알아야 어른이 된 거라 했던가?’


근엄한 표정으로 훈계하던 꼰대가 떠올랐다.


쫀쫀하고, 쪼잔하고, 이기적이지만 가족만큼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양반의 얼굴이 떠오른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어디, 어른이 됐나 한번 봅시다.”


양성진의 창끝이 하늘을 향했다. 육합진결 무단팔극의 기수식이었다.


작가의말

공휴일이 하루 끼어있던 탓인지, 한 주가 금방 가네요! 벌써 주말입니다. 주말 지나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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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74화. 피 냄새 (1) +2 24.04.24 138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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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73화. 세 명의 신산(神算) (1) 24.04.19 159 3 15쪽
238 72화. 운예지망(雲霓之望) 24.04.18 148 3 15쪽
237 71화. 그런 신은 없다. 上 24.04.17 139 4 14쪽
236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6) 24.04.16 145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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