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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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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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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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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4)

DUMMY

“마익수라면··· 과거 염천호의 후계자였다는, 그 사람이요?”

“오랫동안 죽은 것으로 알려져서 그간은 의혹의 대상이 되지 않던 자였죠. 최근에 살아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고요.”


제갈민의 답변에 진채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영회에서 파악한 대로라면 그는 과거 염라왕의 눈 밖에 나 파문당했고, 완전히 쫓겨나기 전에 복권(復權)을 위해 공을 다투다 죽은 인물 정도인데요.”

“정확히는 염 문주님이 세운 방규를 어겼기 때문에 그런 제재를 당한 거예요. 음··· 생각해보니, 하오문 입장에선 염라왕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얘기여서 유출을 꺼렸을 수 있겠군요.”


진채염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가 파문당했던 건 여인을 겁간하려 했기 때문이에요. 뭐, 결과적으로는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눈감아 줄 수도 있을 법한 일이지만··· 당시 염라왕 어르신이 추진하던 ‘어떤 사업’과 맞물렸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죠.”


‘어떤 사업’이란 단어와 함께 제갈민의 눈이 시비를 향했다. 그 시선에 진채염은 그녀가 말하는 ‘어떤 사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당시 염천호가 공들여 추진하던 사업이라면 곧 ‘개방’일 것이다.


마침 흑도에서 하오문의 위세가 창영회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다. 그러나 개방의 정체와 규모를 정확히 아는 이는 창영회에서도 드물다. 불붙듯 따라붙은 경쟁자에게 추월당한 마당이니, 모든 촉각을 기울여서 상황을 파악했을 창영회에서조차 건진 게 고작 그 정도였다.


아무리 백무원이었다 한들 모르는 게 당연한 이야기였군. 진채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어쨌든 마익수는 당시 하오문의 차기문주로 유력한 인물이었던 터라··· 읍참마속의 상황이 됐지요. 그 뒤로 마익수가 복권을 위해 과도하게 공을 다투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다만 진짜 속내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당시부터 배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게 봐야겠죠. 죽은 척, 자취를 감추기 전부터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때 백련교가 내민 손을 보고 충동적으로 변심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흐음···.”


제갈민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지점을 꼼꼼하게 기록하던 진채염이 눈썹을 어긋매끼고 물었다.


“한데, 은설이란 여인은 누구죠?”

“마익수가 겁간하려고 했던 그 여인이 바로 은설이에요.”

“아···.”


-그리고 그 여인이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죠.


제갈민이 말 대신 전음으로 덧붙이자 진채염은 표정을 신경 쓰며 화제를 돌리는 척 말했다.


“평범한 여인이 어떻게 하오문의 차기 문주에게서 몸을 지킬 수 있었던 거죠?”

“그 점이 특별한 거죠. 그 은설이란 여인은 무공을 아는 사람이었거든요.”


-은설은 한현보의 제자였고, 하남제현과 천검 두 사람의 사형제 관계였어요.


경악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날 뻔했던 진채염은 애써 표정을 다잡았다.


“무공을 아는 사람이 어째서 하오문에 몸을 의탁하게 된 거죠?”

“글쎄요, 그 부분은 아직까진 미지의 영역이에요. 다만 아이가 딸려 있었다더군요.”

“아이?”

“아이를 낳고 쫓겨난 폐기로 여겼기에 받아들였다고, 염라왕 어르신이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소협이고요.


“크흐음!”


진채염은 밭을 가는 쟁기가 목을 긁은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사레들렸어요?”

“···예, 좀.


약간 초췌해진 얼굴로 제갈민이 내민 찻잔을 받아 든 진채염은 호로록, 찻물을 들이켜고 나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뭔가 있어도 단단히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군요?”

“그렇죠.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 아니겠어요? 게다가 그 직후, 그 여인은 하오문을 빠져나와 도주했다고 하더군요. 하오문의 추적자들을 모두 따돌리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구요.”

“···갈수록 태산이로군요.”

“뭐, 그렇죠. 어쨌거나··· 이 여인의 흔적을 쫓았더니, 그게 결국 한현보로 이어졌던 거지요.”

“그렇다면 은설은 한현보의 제자였다고 봐야 할까요?”


천연덕스러운 진채염의 연기에 제갈민은 흡족한 미소를 살짝 띠고 말했다.


“그렇다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하겠지요?”

“그렇게 이어졌군요. 그렇지만 그게 하남제현이 천검의 사형이자, 약왕서를 비롯해 백련교의 여러 비밀에 접근한 자라는 걸 밝혀내는 데 주요한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좋은 질문이에요. 그 부분이 가장 난감한 부분인데··· 거기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없어요.”


-임인운곡(壬寅雲谷)이란 네 글자의 서찰을 받고 출타했다고 했···.


전음으로 말을 잇던 제갈민은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잠깐, ‘출타’라고 했지?


“단서가··· 없군요.”


무언가 떠오른 표정의 제갈민을 본 진채염은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세필과 종이를 건넨 뒤 탁자에 몸을 기대면서 자연스럽게 제갈민을 시비의 시야에서 가렸다.


시비가 설혹 무공을 익혀 안법(眼法)으로 제갈민이 적은 무언가를 보게 되더라도, 그 정도는 제갈민이 알아서 적당히 대처할 것이다.


세필을 받아 든 제갈민은 진채염에게 간단하게 눈인사를 보내고서 종이에 빠르게 출(出)자를 적었다.


그날 남생은 ‘출타’라고 했었다. 납치가 아니라! 강제로 누군가에게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의로!


‘아냐, 그건 너무 갔어.’


그 모든 사실을 밝히기 위해 제 발로 소림을 찾아가는 것은 바보짓이다. 하남제현의 입장에서 얻을 건 없고 잃을 것만 있는 그런 선택을 왜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 서찰을 받고 출타했다는 것까진 입증된 사실이야.’


다른 이도 아니고, 남생이 그렇게 말했으니 ‘자의적인 출타’인 것만은 확실하다. ‘임인운곡’이란 네 글자의 서찰을 받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어딘가를 향했다가 사라진 것이다. 마치 바람처럼.


그리고 천하지회가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갑자기 등장했다.


바로 그 천하지회의 한복판··· 아니, 소림에.


‘왜 소림일까?’


이제 와 새삼 이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이유가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임인운곡이란 서찰과 꼭 같은 필치의 서찰을 염천호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서찰에는···.


‘오유봉 골짜기(五乳峰谷).’


그럼, 이쯤에선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가 있다. 서찰을 받은 염천호가 오유봉 골짜기를 찾아가 발견한 것은 천검의 부러진 검이었다. 그리고 같은 필체의 서찰을 받은 하남제현이 출타한 후 소식이 끊겼다가 나타난 곳은 바로 소림사다.


‘임인운곡(壬寅雲谷)’이란 이름이나, ‘운곡’이란 이름이 붙은 골짜기는 없다. 다만, 이것이 만약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골짜기(谷)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서찰을 받은 한주윤과, 서찰을 보낸 누군가─ 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 통하는 일종의 암어(暗語)로 기능하는 단어일 확률도 매우 높다.


오유봉 골짜기, 그리고 임인운곡.


아마도 이 두 단어가 가리키는 장소는 같은 장소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오유봉’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바로, ‘달마동(達摩洞)’이다.


마지막으로 이 서찰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은설, 천검, 하남제현은 사형제 관계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인 법이다.


두 달 전의 제갈민은 감과 가능성만으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애송이였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오유봉 골짜기에서는 무언가 구린내가 난다고─



* * *



숭산의 오유봉은 소림사 서북쪽에 있는 봉우리이며, 그 유명한 달마대사가 면벽구년의 전설을 써 내린 소림의 성지(聖地)다.


물론, 오유봉 골짜기에 달랑 달마 동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소림사의 부지 면적만도 약 1만 7천 평이 넘는다.


숭산은 넓고, 오유봉 골짜기는 깊다. 소림의 고승 중에도 숭산의 전부를 알고 열반에 드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전인미답의 순수성이야말로 숭산을 성스럽게 하며 소림의 고고함을 드높이는 면모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이 오유봉 골짜기에는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곳이 더 많다. 달마동을 비롯해 몇 개의 천연동굴들이 묵현처(默玄處)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방장과 장로들만이 참선의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달마동과 죄를 지은 이가 부자유하게 갇혀 있어야 하는 참회동(慙悔洞)뿐이다.


그 외에는 모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오유봉 골짜기야말로 작금의 소림을 상징하기에 가장 알맞은 기표(記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순수함과 고고함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그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원종대사처럼.



* * *



구린내가 나는 건 비단 오유봉 골짜기만이 아니다.


설총과 득구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하남제현과 은설, 그리고 천검의 관계도 역시 뭔가 구린내가 난다. 무허 자식에게 듣기로, 은설이란 여인은 단지 하남제현의 사매(師妹)일 뿐만 아니라 그의 첫사랑이었다고 한다.


아내를 얻은 후의 평판과 그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혼인을 한 이후에는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접은 것도 같지만, 사람의 속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진주약은 한주윤에 대해 아주 깊은 의혹 하나를 품고 있었다. 바로, ‘노비 득구’가 은설과의 외도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닌가 하는 의혹 말이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적어도 이제와서 이 의혹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야, 이 의혹을 가설로 놓고 보자면, 임인운곡을 해석할 수 있으니까. 임인년은 제갈민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득구가 잉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이기도 하다.


만약 진주약의 의심대로 하남제현과 은설이 밀회를 저질렀다면, ‘운곡’은 그 두 사람이 쓰는 일종의 은어로 해석해볼 수가 있다. 애초에 ‘운곡(雲谷)’이라니.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골짜기 정도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천검과 은설의 관계가 불투명해지지만···.’


애초에 천검은, 아직까진 은설과는 큰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천검과 가장 크게 관련된 여인은, 바로 ‘백련성화’이다.


그래, 한성채 ‘이전’의 백련성화─ 즉, 아마도 한성채를 낳은, 한성채의 친어머니가 되는 사람.


계묘년에 이미 만삭인데 태어난 건 병오년이라니 뭔가 이상하지만, 연화가 준 첩지엔 설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3년 하고도 4개월을 품어 낳은 아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냐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연화가 반문했을 때, 설총은 단설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며 쓰게 웃었다고 했다.


설총이 한 말치고는 너무 기묘하고 의미심장했기에 비교적 자세히 적어두었는데, 마침 제갈민은 이 ‘단설’이란 이름을 다른 곳에서도 들어본 일이 있었다.


단설은 곧 한성채의 다른 이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서동천이 알려준 거야. 그걸 신뢰한다면···.’


우선은 은설의 이야기에서 천검은 차치해두는 게 맞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한주윤과 은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한주윤은 사매인 은설을 짝사랑했지만, ‘한현보의 미래’를 위해 진주약과 혼인했다. 하지만, 사매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떨치지 못한 그는, 결국 사매와 불륜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본다면 은설이 굳이 젖먹이인 한 소협을 달고서, 한현보를 떠나 유리걸식해야 했던 이유도 설명이 되지.’


떳떳하게 낳은 아이가 아니니까.


‘그리고 하남제현의 입지를 위험하게 할 테니까.’


이 부분이 중요하다. 하남제현의 입지는 본인의 능력만으로 쌓은 것이 아니다. 진주약과의 혼인, 그리고 처남인 진량의 후원이 하남제현으로 하여금 작금의 입지를 쌓게 해준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진주약의 눈앞에서 대놓고 외도의 증거인 득구를 키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설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만 놓고 보면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져.’


굳이 여기서 이상한 지점을 꼽아보자면, 이 질문이 될 것이다.


‘왜 하남제현은 사랑하는 사매인 은설을 두고 진주약과 혼인하였는가?’


드러내지 않는 속내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겐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성품이란 것이 있다.


‘하남제현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사매인 은설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독신을 고수할지언정, 쉽게 마음을 접고 다른 여자와 혼인을 생각할 사람이 아니야.’


그 옹고집, 쇠고집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설총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한주윤은 자신이 목표한 것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한현보를 무림세가로, 그리고 군문세가로 성장시키는 과정 또한 그 성품의 증거가 될 수 있다.


한주윤은 진량과 손을 잡은 시점에서 얼마든지 편한 길, 쉬운 길을 택해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차근차근 정도를 밟아 느리지만 확실하게 명성을 쌓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런 사내가 사랑하는 이를 저버리고 야망을 택한다?


사내들이었다면 이쯤에서 예외 없이 ‘사내가 그럴 만도 하지, 뭐.’하고 결론을 내리겠지만, 제갈민은 아니었다. 행동만 놓고 보면 꽤 의심스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제갈민 역시 엄연히 여인으로서 여인의 촉이란 것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여인의 촉이 이건 뭔가 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사람이라고 보기엔, 진주약의 행보는··· 글쎄?’


진주약이 내성적이라서? 그럴 리가. 그녀는 당찬 여인이다.


하남제현이 모습을 감춘 이후, 한현보의 혼란을 수습하고 제자들을 안정시켜, 이미 죽은 한현보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이가 바로 그녀이지 않은가?


진주약은 ‘무가의 안주인’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 정도로 당찬 행보를 보이는 여인은 천하의 모든 무문을 다 둘러보아도 손에 꼽을 것이다.


더군다나 진량이 아들의 문제로 한현보를 급습했을 때, 그녀는 하남제현과 한현보를 위해 무릎을 꿇고 애걸하기까지 했잖은가?


만약 진주약이 남편의 외도로 가슴앓이나 하던 내성적인 여인이었다면, 그때 한주윤과 연을 끊고 한현보를 떠났어야 정상이다.


진주약이 여느 여염집의 아낙이었다면 몰라도, 그녀는 무려 광동진가(廣東陳家)의 적손이니까.


광동진가는 한고조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던 당시 개국공신 19위였던 박양후(搏陽候) 진비(陣濞)를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그 아들인 진시(陳始)가 두 번이나 작위를 박탈당한 일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 복권과 사면을 거친 끝에 무려 1700년이나 작위를 유지해온 ‘제후'의 명맥을 유지했다.


한주윤이 아무리 군문세가의 주인이라 한들, 아무 연고도 없는 평민인 걸 생각하면, 진주약의 이런 책임감은 그야말로 헌신(獻身)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진주약은 ‘불륜의 증거’로 의심되는 ‘득구와 성채’가 나타났음에도 마음 한편에선 여전히 한주윤을 신뢰하고, 그와 부부의 연을 이어 가기를 원했단 뜻이다.


제갈민은 같은 여성으로서, 이런 미묘한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의심은 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의심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그리고 믿고 싶지만, 영 믿을 수는 없는 그런 마음─


이 모순이 해결되려면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하다.


‘한 소협의 탄생이 ‘외도의 결과’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부정하는 하남제현의 말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하나쯤은 있어야지.’


한주윤이 스스로 첫사랑임을 부정하지 않는 여인과의 ‘관계’를 부정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 말을 믿을 것인가?


‘거절한 거야, 은설이. 그리고 진주약은 그걸 알고 있었고.’


은설은 한주윤의 마음을 거절했다. 그리고 진주약은 그 사실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한주윤의 말을 믿을 수 있다.


한주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쉽사리 포기할 사내가 아니지만, 동시에 싫다는 여인을 억지로 취할 사내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오문의 후계자로 교육받았다는 마익수를 단숨에 제압했다는 이야길 생각해보면··· 뭐, 여러모로 불가능했겠지.’


심지어 한주윤은 싫다는 여인의 마음을 은근히 돌려놓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사내도 아니다.


그래, 다시 말해서 애초에 한주윤이 은설과 은밀한 하룻밤을 보내서 득구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믿기 어려운 쪽에 가깝다.


여기서 변수가 하나 있다면─


‘차치해뒀지만··· 한 사람이 더 있잖아. 한주윤과 은설, 이 두 사람 사이에─’


작가의말

이른 저녁에 찾아뵙습니다! 월요일 하루는 어떠셨나요? 어떤 하루였든, 부디 즐거운 퇴근길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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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79화. 눈(目) (1) 24.05.28 90 3 14쪽
264 78화. 징조: 달(月) (7) 24.05.27 89 5 15쪽
263 78화. 징조: 달(月) (6) 24.05.24 100 3 14쪽
262 78화. 징조: 달(月) (5) 24.05.23 8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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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77화. 일견 굽은 길이나, 필경 곧은 길이 있다. (3) 24.05.16 11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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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77화. 일견 굽은 길이나, 필경 곧은 길이 있다. (1) 24.05.14 118 2 16쪽
»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4) 24.05.13 116 4 17쪽
253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3) 24.05.10 142 2 16쪽
252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2) 24.05.09 11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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