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호질 님의 서재입니다.

아빠 기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호질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2
최근연재일 :
2024.06.29 22:25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73,287
추천수 :
4,148
글자수 :
232,005

작성
24.06.28 17:50
조회
910
추천
62
글자
12쪽

흙까지 파먹었다

DUMMY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사령관의 마음으로.

사령관은 코르삭이 나이가 어리고 근본을 알 수 없는 민병대장이라 해서 알려 주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공을 세울 수 있게 필요한 정보는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런데 식량 사정은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적과 아군 양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코르삭이 이 내용을 알았을 때 적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가?

인간이 아닌 오크와의 전쟁이므로 이 내용을 오크에게 전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군, 그러니까 병사들과 주민들에게 누설하여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가?

그럴 가능성은 있다. 민병대의 특성상 주민들에게 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주민들에게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말해 주겠네.”

“민병대 지휘부에는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발테스는 민병대 지휘부라는 말이 가소롭게 들렸지만 그런 마음을 떨쳐 버리려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쨌든 주민들에게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재차 다짐을 받고 나서 발테스는 투리스 요새의 식량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재 5개월을 버틸 수 있네.”

“5개월이요?”


뭔가 애매한 느낌이었다.

1년, 2년이라고 하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 것 같고 1개월, 2개월이라고 하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텐데 5개월이면 충분한지 부족한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5개월이면 괜찮은 겁니까? 오크들이 요새를 둘러싼 채 가만히 있기만 해도 5개월 뒤면 식량이 다 떨어진다는 말 아닙니까? 우리는 오크를 뚫을 수가 없고요.”


병력 차이가 너무 심해 야전에서 오크를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았다.


“제가 오크 대장이라면 이대로 포위한 채 가만히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요새를 공격하느라 피해를 입을 일도 없고, 요새 뒤로 돌아간 병력은 아예 배후 영지를 공격하면 되니까요.”


참모장 발테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투리스 요새가 왜 오크의 무덤으로 불리는지 아나?”

“옛날에 오크들이 요새를 공격하다 많이 죽었다면서요?”

“그렇지. 그럼 옛날에 오크들은 왜 요새를 공격하다 죽었을까? 자네 말처럼 포위한 채 1년이고 2년이고 가만히 있으면 요새가 스스로 무너졌을 텐데 말이야.”

“옛날에는 투리스 주둔군이 20만이나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요새 안팎에서 협공을 가했겠죠.”

“주둔군이 많았던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 오크는 더 많았어. 병력이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구도와 작전을 말하는 거야. 투리스 요새를 함락시키는 데 왜 포위 고사 작전을 쓰지 않았을까?”

“왜죠?”

“오크 병력이 인간보다 적었던 적은 없었다네. 무슨 뜻이겠나? 오크가 식량을 더 많이 먹어 치운다는 거야.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지.”

“아!”


코르삭은 자신이 투리스 요새의 식량 부족을 걱정했으면서도 정작 오크 입장에서 식량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크가 요새를 포위할 수는 있어. 늘 그렇게 해 왔고.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떡하지? 식량을 조달해야지. 검은 숲을 통과하거나 인간의 식량을 훔쳐야 해. 그런데 인간의 식량은 약탈할 게 남아 있지 않아. 사람들은 이미 요새 안으로 피신했거든. 유일한 방법이 검은 숲을 통과해서 식량을 운반하는 건데 길이 없는 숲으로 식량을 나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양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해.”

“음!”

“게다가 투리스 요새의 생김새가 묘하거든. 검은 숲을 나온 오크들이 투리스 요새 뒤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야. 양옆으로 돌아갈 수 있는 틈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이번에도 오크들이 양옆으로 돌아서 요새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단 말이야.”


투리스 요새 포위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예전 종족 전쟁 시절에도 늘 있어 왔다는 것을 코르삭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양옆의 틈이 묘해. 제법 넓어서 통과할 수 있어 보이거든. 그런데 사실은 활과 투석기의 사정거리 안이야. 요새 후방으로 오크 병력이 많이 돌아갔다고 하세. 식량도 많이 보내야겠지? 오크의 식량 수송대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투리스군은 절대 허용하지 않아.”


투리스군이 가장 많이 하는 훈련이 활, 쇠뇌, 투석기 같은 원거리 무기 발사 훈련이다.


“오크가 포위하도록 두는 거야. 요새 후면으로 많이 이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지. 그다음에 식량을 차단해. 그러면 요새 뒤쪽으로 돌아간 오크들은 먹을 게 없어지지. 옛날 기록에는 오크들이 풀뿌리, 나무뿌리, 벌레는 물론 흙까지 파먹었다고 나와 있네.”


일부러 포위를 유도하고 식량 공급을 차단해 요새 뒤쪽으로 돌아간 오크를 고사시킨다.

그렇게 투리스 요새는 오크의 무덤이 되었다.

요새 전면에 있는 오크들도 식량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식량이 떨어지면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다.

코르삭은 투리스 사령관이나 주둔군 병사들이 오크 대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여유롭게 보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궁금증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요새 뒤로 돌아간 오크들이 배후 영지를 공격해 식량을 공급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 배후 영지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 하지만, 어떤 전쟁이든 약탈로만 식량을 해결하는 건 어려운 법이야. 막말로 식량을 다 태우거나 묻어 버리고 피난을 가 버리면 어쩔 건데? 투리스에서 오크에게 식량이 공급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주위에서 지원군이 오면 결국 오크는 소탕되는 거지.”


코르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오크가 쳐들어와도 결국은 물리칠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과거와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네. 일단 투리스 주둔 병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고, 배후 영지들 또한 예전보다 병력이 많지 않을 거야. 종족 전쟁 이후 배후 영지들의 방어 태세도 많이 약해졌고 말이야. 몇백 년이 지났기 때문에 오크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문제지.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병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발테스는 생각했다.


“오크도 머리를 쓴다면서요? 포위 고사 작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그럼 어떻게 할까요?”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자네가 오크의 대장이라면 말이야.”

“포위 고사 작전이 유효하도록 식량을 최대한 많이 조달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피해가 가장 적을 것 같으니까요.”

“그게 불가능하다면?”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요새를 함락시켜야죠.”

“그거야.”

“예?”

“옛날에 오크들은 그렇게 해 왔네. 사력을 다해 요새를 공격했지. 아마도 그렇게 할 거야.”

“공격이 얼마나 이어지죠?”

“짧으면 한 달, 길면 세 달. 식량 보급이나 지휘 체계 유지 기간이 그 정도가 한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네.”


‘아! 그래서 다섯 달분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여유로워 보였구나? 세 달을 기준으로 잡았으니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록일 뿐이었다.

에레부 마쿠차라는 새로운 오크의 왕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의 일을 알고 있고 오크의 약점을 개선하여 새로운 방법을 들고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궁금증이 풀렸나?”

“예.”


코르삭은 궁금증뿐 아니라 걱정도 많이 덜었다.


“그럼 모레 점심 때 병영으로 오게. 민병대 대원들을 소집해 놓을 테니.”

“알겠습니다.”

“식량 보유량에 대해서는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해. 두려움은 최악의 질병이거든.”

“알겠습니다.”

“가 보게.”


코르삭과 불카르가 나가려 할 때 발테스가 다시 불렀다.


“잠깐!”

“예?”

“트베리 상회에 고마운 마음이 있네.”

“······?”

“투리스의 식량 재고가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지 않은가?”

“아!”


카멜리 왕복 상행단은 그동안 오크들과 싸우면서 오륙일에 한 번씩 카멜리에서 식량을 운반해 왔다.

덕분에 다섯 달분의 식량이 더 빨리 소모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희에게도 좋은 일이었는걸요. 어쨌든 투리스에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앞으로도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코르삭의 밝고 당당한 태도에 발테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만 가 봐.”

“예!”


불카르가 코르삭의 어깨를 툭 치고 코르삭이 덩치 큰 불카르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마치 개구쟁이 소년들 같았다.

발테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저런 어린애 같은 녀석에게 민병대장을 맡겨도 될까 싶은 생각이 다시 또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맡겨 봐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궁금한지,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녀석들도 많은데 이 정도면 중요한 것을 아는 녀석이고, 밝은 태도 또한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주민들을 군대식으로 윽박지른다고 해서 전투력이 발휘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민병대가 필요한 일은 없을 거야. 내가 할 일이 바로 그것이지.’


투리스 주둔군만으로 오크 물리치기.

그것을 해내기 위해 참모장 발테스는 머리를 쥐어짰다.


***


오크들은 검은 숲에서 계속해서 나와 요새 뒤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뒤로 돌아가는 오크들에 공격이 집중되지 않도록 요새를 공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크의 공세 수위가 확연히 달라졌다.

단지 우회하는 오크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던 것이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전면, 후면, 그리고 양옆에서 철저히 준비한 오크들이 투석기를 전개하고, 허공 낚싯대를 성벽에 붙였다.

오크들은 투석기로 바위 대신 축축한 흙과 오물을 날렸다.

병사들에게 육체적 타격은 없었지만, 더럽고 고약한 냄새가 가시지를 않아 투리스군 병사들의 불쾌감이 매우 높아졌다.


“아군 투석기 뭐해? 오크 투석기 박살을 내 버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하늘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동안 모든 성벽에 붙은 허공 낚싯대가 오크 병사들을 성벽 위로 던졌다.

성벽 안으로 잘못 떨어져 죽는 오크도 있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화살에 맞아 죽는 오크도 있었지만, 경험이 쌓인 오크들은 허공 낚싯대를 점점 더 정확하게 사용하여 성벽 위로 올라간 오크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성벽 곳곳에서 허공 낚싯대로 올라온 오크와 근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크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크들이 투석기 뒤로 키보다 큰 공을 굴려 왔다.

길이 없거나 험한 곳에 식량 자루나 물건을 운반할 때 사용하는 오크의 대나무 공이었다.

그런데 내용물은 없고 뼈대만 있는 대나무 공 내부로 오크 병사들이 하나씩 들어가 뼈대에 묶여 있는 끈으로 발을 고정시키고 두 손은 내부 뼈대를 꽉 붙들었다.

밖에 있던 오크가 열려 있는 문을 닫았다.

오크들이 대나무 공을 굴려 투석기에 올렸다.

준비가 끝나자 지휘관 오크가 소리쳤다.


피아투아!


오크들이 살아 있는 오크를 대나무 공에 넣고 요새 안으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대나무 공 내부에 있던 오크들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크허어어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빠 기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희치님 팬아트 감사합니다. +1 24.05.11 1,019 0 -
40 이빨로 물어뜯어라 +7 24.06.29 746 73 13쪽
» 흙까지 파먹었다 +7 24.06.28 911 62 12쪽
38 오크 천지인 세상을 아기와 둘이 +12 24.06.27 1,045 81 12쪽
37 생각 없나? +7 24.06.26 1,157 83 12쪽
36 복종하라, 오크여 +6 24.06.24 1,271 87 14쪽
35 두 전쟁 +4 24.06.23 1,379 100 14쪽
34 경비견 +7 24.06.21 1,408 115 14쪽
33 평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8 24.06.20 1,438 102 13쪽
32 볼가와 스탄 +8 24.06.19 1,409 95 13쪽
31 상대할 방법 +8 24.06.18 1,405 84 13쪽
30 에레부 마쿠차 +9 24.06.15 1,445 88 13쪽
29 조만간 +3 24.06.14 1,416 90 13쪽
28 전쟁 같은 상행 +6 24.06.13 1,459 96 13쪽
27 시체라도 찾으러 +4 24.06.11 1,485 90 14쪽
26 이 길이 닳도록 +2 24.06.10 1,535 89 13쪽
25 투리스의 사자 +3 24.06.08 1,562 93 13쪽
24 네가 달라고 하면 뭐든 +8 24.06.06 1,534 109 13쪽
23 미아와 쿠미 +2 24.06.05 1,555 92 12쪽
22 여기도 사람 사는 곳 +4 24.06.04 1,561 92 12쪽
21 반드시 손을 깨끗이 +8 24.06.03 1,638 103 12쪽
20 자네가 막내야 +3 24.05.31 1,669 91 12쪽
19 지켜야 할 깃발 같은 존재 +2 24.05.30 1,669 98 13쪽
18 로그넘 왕의 상상 +5 24.05.29 1,733 108 13쪽
17 훈수 좀 두겠습니다 +9 24.05.27 1,717 113 12쪽
16 천년 고목 사이 +4 24.05.25 1,789 102 12쪽
15 아기를 키워야 하는 아빠는 욕심을 낸다 +7 24.05.24 1,849 112 12쪽
14 미안하다 +7 24.05.23 1,826 104 13쪽
13 큰오빠와 막내 동생 +6 24.05.22 1,895 94 13쪽
12 괜한 우려 +2 24.05.21 1,925 101 11쪽
11 카멜리 성 +2 24.05.20 2,001 101 11쪽
10 악마 기사 +8 24.05.18 2,080 119 13쪽
9 이해할 수 없는 습격 +5 24.05.17 2,147 115 12쪽
8 밤바람 +2 24.05.16 2,269 109 14쪽
7 느지막이 든 바람 +6 24.05.15 2,354 114 11쪽
6 투리스 요새 +9 24.05.14 2,517 118 13쪽
5 새로운 신분 +7 24.05.13 2,591 132 12쪽
4 투리스의 별 +8 24.05.11 2,768 137 14쪽
3 라티시아 대공의 꿈 +10 24.05.10 3,028 141 18쪽
2 산골 청년의 꿈 +5 24.05.09 3,473 128 12쪽
1 염소를 끌고 가는 남자 +14 24.05.08 4,601 18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