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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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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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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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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반드시 손을 깨끗이

DUMMY

트베리 상회는 중간에 에센 마을에 들러 촌장에게 밀 종자를 전달했다.

에센 마을은 투리스 지방의 여느 마을들처럼 나무 방벽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마을 바깥에도 낮은 방벽에 둘러싸인 땅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방벽이라기보다 조악한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경작지였다.

경작지는 그리 넓지 않았고 반듯반듯하지도 않았다.

마치 농민들이 멋대로 황무지를 개간해 자기 땅이라고 표시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경작지에 울타리를 두른 것은 짐승들이 작물을 먹어 치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


에센 마을을 떠나는 길에 코르삭이 마부석에 앉아 있는 트베리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검은 숲에서 가깝다 보니 온갖 짐승들이 와서 작물을 망치거든요.”

“이래서는 농경지를 넓히기가 어렵겠네요.”


조그만 밭을 일구어도 일일이 울타리를 둘러야 한다면 그 수고와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기를 쓰고 넓히지요.”

“그런가요?”

“원래 농민들의 땅 욕심은 대단하니까요. 게다가 투리스는 새로 개간한 땅의 소출에 대해서는 20년 간 세금을 면제해 주거든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마음껏 개간하라는 뜻이죠. 농토를 넓히라는 겁니다.”

“아!”


코르삭은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처럼 식량을 외부에서 들여오게 되면 적이 길을 끊었을 때 투리스 요새가 식량난에 처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비하려 한 것이군요?”


투리스 사령관은 이미 투리스 요새의 취약점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전부터 해 온 유능한 인물인가 보다고 코르삭은 생각했다.

그때 트베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걸 대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투리스 사령관님이 식량 자급도를 높이고 싶어 하시는 건 맞습니다.”


트베리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투리스 사령관은 이웃한 영주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왜요?”

“투리스 주둔군 유지비 때문이지요.”


투리스 주둔군 유지비를 둘러싼 갈등.


“투리스는 로그넘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10만 명 이상의 대군이 주둔하던 지역입니다. 막대한 주둔 비용이 들었죠.

왕국은 그 비용을 어떻게든 절감할 방안을 찾다가 투리스 배후 영지들에서 걷을 세금을 그 액수에 상응하는 현물로 투리스 주둔군에 필요한 만큼 공급하도록 했어요.

쉽게 말하면 중간에 여러 단계를 거치던 걸 생략해서 낭비되는 비용을 줄이려 한 것이지요.”


투리스 배후 영지들은 왕궁과의 거리가 매우 먼 변방이었다.

그 영지들에서 세금을 걷어 왕궁으로 보내고, 왕궁에서 투리스 주둔군 유지비를 편성해 투리스에 내려 보내는 한편 왕국군이 사용하는 물자를 일괄 구입하여 투리스 주둔군이 필요한 만큼 보내는 것은 시간과 거리, 인력의 낭비가 매우 크다.

그래서 투리스의 배후 영지들은 세금을 왕궁에 납부하는 대신 인접한 투리스에 식량 등의 물자로 보낸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투리스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요. 왕궁과 영지들 간 계산의 문제였을 뿐, 투리스로 들어오는 물자의 양은 똑같았으니까요. 그런데 로그넘의 침공으로 투리스 주둔군을 라티시아로 대거 돌리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10만 병력이 2만으로 줄었어요. 배후 영지들은 투리스 주둔군에 필요한 만큼의 현물을 공급하면 납세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2만 명분의 식량 등을 네 영지가 나눠 내고 있어요.

투리스 사령관으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요.

투리스는 부족한 병력으로 오크로부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 사냥꾼들을 대거 유입시키는 정책을 폅니다.

바로 보상 정책이죠.”


몬스터 목을 가져오면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로 인해 사냥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검은 숲에 들어가 오크와 코볼트를 해치웠다.


“병력은 부족해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몬스터를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상 정책 덕분이었어요. 그런데 배후 영지들이 2만 명분의 식량만 공급하고 의무를 다했다고 입을 씻어 버리니 보상금 재원이 부족한 것이죠.”

“아!”

“투리스 사령관은 배후 영지들에 동일한 수준의 안전을 누리게 해 주었으니 동일 수준의 유지비를 내야 한다고 했지요.

최소한 왕국에 원래 내야 하는 세금 액수만큼은 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영주들은 식량 가격이 올라 사실상 전과 동일한 금액의 지원을 한 것이랍니다.

투리스 사령관은 화가 났지요.

그래서 식량 등 현물을 아예 안 받고 돈으로 받아 스스로 다른 지역에서 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영주들은 다른 지역의 식량이 자신들의 땅을 통과할 때 세금을 높게 부과하기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타 지방의 식량이 투리스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해 버린 것이죠.”


코르삭은 투리스와 배후 영지들 간의 갈등에 대해 이해했다.

투리스 사령관이 경작지를 늘리도록 장려하는 이유도.


“영주들이 말도 안 되는 행패를 부리는군요. 왕국에서 그런 행태를 그냥 두고 보나요?”

“로그넘과의 전쟁 이후 영주들이 불손한 행태를 보여도 어지간하면 못 본 척 넘어가는 것 같더군요. 만약 투리스 사령관님이 확실하게 국왕 폐하의 사람이면 영주들이 두려워서 이런 짓을 못 했겠지요. 투리스의 병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병력을 심하게 빼가는 바람에 사령관님과 국왕 폐하 사이가 틀어졌지요. 그걸 믿고 저지른 것 같습니다. 어차피 군대를 보내 자신들을 벌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코르삭은 눈살을 찌푸렸다.

로그넘과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그 와중에 영주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행태들로 인해 자신과 아기의 안전도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오크가 투리스를 공격한다고 하면, 배후 영지들이 제대로 군사 지원을 할까요? 합동 작전을 펼 수 있을까요?”


코르삭은 이 점이 걱정되었다.


“글쎄요, 그래도 오크가 공격해 온다면 힘을 합쳐 싸우지 않을까요?”


트베리도 확신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사이가 좋지 않은 상대방의 말은 믿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원군을 보낸다 해도 직접 확인하고 나서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코르삭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


트베리 상회는 마차 두 대를 어느 깨끗한 개울 근처에 세우고 야영 준비를 했다.

트베리는 식사 준비를 하고, 불카르는 천막을 치고, 프랑크는 말과 당나귀에 풀을 먹이고, 코르삭은 어미 당나귀의 젖을 짰다.

불카르는 트베리 상회의 상행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차에 짐을 싣고 있어 속도가 느린 것은 이해하는데 아기 때문에 멈추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당나귀를 끌고 다니는 이유가 짐을 나르기 위해서인 줄 알았는데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을 전도로 어이가 없었다.


“야! 이렇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상인들은 원래 시간을 귀하게 여긴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불카르가 프랑크와 둘만 있을 때 나직이 물었다.

프랑크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라시아가 젖을 먹어야 하잖아요. 젖을 안 주면 계속 울 텐데 그러면 황무지의 늑대와 몬스터를 더 끌어들이지 않겠어요?”

“그게 아니라 애초에 상행에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당나귀들까지 줄줄 끌고······.”

“하지만, 코르삭 씨가 아기를 데리고 다니기를 원하니 어쩌겠어요?”

“트베리가 주인 아니야?”

“맞아요.”

“그런데 왜 코르삭의 뜻대로 하는 거야?”

“뜻대로 하는 게 아니라,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생명의 은인이에요, 코르삭 씨가. 트베리 씨가 오크들한테 죽을 뻔한 걸 구해줬대요. 이에라시아를 안은 채로 오크 수십 마리를 해치웠죠.”

“······!”

“트베리 씨가 먼저 제안했대요. 호위가 되어 달라고 말이에요. 코르삭 씨는 아기를 데리고 다녀도 된다면 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된 거죠. 든든한 호위를 얻은 트베리 씨는 상회를 더 키우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장사의 신이 될 것 같은 이 프랑크에게 직접 영입 제안을 하게 된 거죠.”


불카르는 프랑크의 마지막 이야기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저 녀석이 혼자서 오크 수십 마리를 물리쳤다고? 뻥 아니야?”


코르삭은 당나귀 젖을 짜서 끓인 뒤 젖이 식는 동안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저런 녀석이 오크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를 물리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투리스 놈들은 허풍이 심하잖아.”


그 역시 투리스 사람이면서 마치 아닌 것처럼 말했다.


“허풍 아니에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직접 봤어?”

“해치우는 걸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아호른 숲에서 오크를 만나 해치웠는데, 며칠 뒤에 조사를 나온 기사들이 오크 시체를 살피며 말하는 걸 들었다고요. 목을 자른 단면이 기사보다 깔끔하다고 했다니까요? 궁금하면 그 기사들한테 물어보시든가?”

“흥!”


사람이 혼자서 오크 수십 마리를 해치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아기를 안은 채로는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불카르는 코르삭을 새삼 유심히 관찰하다 식사 준비가 다 됐다는 트베리의 이야기에 모닥불 옆으로 갔다.


식사가 끝나고 불카르는 모닥불을 물끄러미 보다가 옆에 있는 코르삭을 곁눈질로 훔쳐보기도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코르삭은 아기에게 멋대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러 주며 놀아 주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불카르의 시선이 아기 쪽으로 향했다.

그는 이에라시아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프랑크가 모는 마차를 타고 가는 데다 멈추어서 식사를 할 때에도 코르삭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뒤통수나 젖을 먹일 때 아빠의 팔뚝에 대부분 가려진 얼굴만 봐 왔기 때문이다.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예쁘잖아!’


예뻐도 너무 예뻤다.

사람들이 흔히 아기는 다 예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불카르는 알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못 생겼으면 아기도 대개는 못 생겼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것은 아기라서 귀엽다는 정도의 의미 혹은 내 자식이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쁘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마을에 안 예쁜 아기들도 많았다.

그런데 코르삭이 겨드랑이를 잡고 하늘로 둥둥 들어 올리며 놀아 주는 아기는 정말 예뻤다.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요정 나라 공주님 같았다.

그때 아빠를 보던 아기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불카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더없이 맑고 투명한 눈망울로 쳐다보다 손을 뻗었다.

불카르는 저도 모르게 아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때 코르삭이 말했다.


“안 돼, 아가야. 지지야! 저 아저씨는 밥 먹고 손을 안 씻었어. 지지!”


그러면서 아기 손을 걷어가 버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요정 나라에서 지저분한 현실로 내팽개쳐진 불카르는 자신의 크고 투박하고 씻지 않은 손을 불빛에 비쳐보고는 바지에 쓱쓱 닦았다.

그러고는 애원하는 마음으로 다시 아기를 보았다.

그러나 아기는 이미 아빠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날 밤 아기는 두 번 다시 불카르에게 손을 뻗지 않은 채 아빠 품에서 잠들고 말았다.

불카르는 코르삭이 원래도 싫었지만, 더욱 미웠다.

요정 나라 공주님과 닿을 기회를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기를 안고 잠든 코르삭을 노려보며 결심했다.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을 것이다. 그때도 지지 소리를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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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네가 달라고 하면 뭐든 +6 24.06.06 1,123 83 13쪽
23 미아와 쿠미 +2 24.06.05 1,132 71 12쪽
22 여기도 사람 사는 곳 +3 24.06.04 1,146 74 12쪽
» 반드시 손을 깨끗이 +8 24.06.03 1,200 84 12쪽
20 자네가 막내야 +3 24.05.31 1,224 75 12쪽
19 지켜야 할 깃발 같은 존재 +2 24.05.30 1,228 82 13쪽
18 로그넘 왕의 상상 +5 24.05.29 1,277 91 13쪽
17 훈수 좀 두겠습니다 +8 24.05.27 1,270 95 12쪽
16 천년 고목 사이 +4 24.05.25 1,322 90 12쪽
15 아기를 키워야 하는 아빠는 욕심을 낸다 +7 24.05.24 1,375 9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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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골 청년의 꿈 +5 24.05.09 2,631 10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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