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_금기가 없는 은밀한 데이트
스킨십이 금지된 파라다이스라니!
<22화>
금기가 없는 은밀한 데이트
* * * * *
<삐..삐..삐...>
경고음이 울리고 붉은 불이 번쩍였다.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던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어떤 오류가 있음을.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환상은 언제나 완벽한 쾌락만 제공했었다. 무결점 파라다이스에서 오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고음이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여자의 손은 남자의 얼굴을 으깨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얼굴을 으깨자 황홀한 듯 웃고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 웃는 얼굴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경고음이 울리고 이들의 방에 관리요원이 달려갔다. 이들이 달려갈 때까지도 여자와 남자는 자신들의 행동이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감각을 관장하는 일은 버추얼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가상이었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도 실제적 해는 없이 쾌락만 있었다.
사람들은 스킨십 금지의 세상이기에 버추얼 시스템에서 대안을 찾았다. 쾌락은 버추얼 세계에서 무궁무진했다.
사람들은 직접적 스킨십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대신 상상의 무한대를 실현할 수 있는 커다란 쾌락을 제공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떤 터부나 금기가 없는 쾌락의 세상은 사람들에게 만족도가 높았다.
이때 사람들은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도덕적 벽에 부딪쳤다. 도덕적으로 해야 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이라도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가상의 일이라고 해서 금기가 없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여러 차례 공개 합의를 거쳤다. 파라는 이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다. 늘 가장 이상적인 것들을 제의하는 파라였지만 사람들의 쾌락을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을 염려하였던 것이었다.
결국, 사람들의 선택은 금기 없는 최상의 쾌락이었다. 대신 하나의 단서로 서로가 합의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약간의 불안이 있었다. 금기 없는 쾌락의 끝은 없을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끝없는 쾌락의 선물이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컸다.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의 끝 간 데 없는 쾌락은 비난 받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직접적 스킨십 대신 제한 없는 가상의 쾌락에 몸을 맡겼다.
사람들의 뇌는 아주 여러 가지에 적응했다. 가상의 섹스가 그러했다. 사람들의 쾌락은 어떤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다수의 행복과 파라다이스 사회의 전체적 행복을 꿈꾸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은 맞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사랑할 수 있었으며 여러 사람과 관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질투 대신에 사랑의 공유를 선택했다.
은밀한 데이트 공간에 도착한 사람들은 파트너와 같은 방으로 이동했다. 같은 방에 입장한 두 파트너는 가상 프로그램을 접속했다. 그리고 곧바로 두 사람은 사랑의 행위에 빠져 들었다. 이들의 사랑의 행위는 누구도 엿볼 수 없었다. 규율이 그러했다.
그래서 은밀한 데이트의 공간이라고 불렸다. 아무도 엿볼 수 없는 사랑의 행위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었다. 파라가 만든 시스템 중에서 특별히 큰 성공을 거든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엿볼 수 없는 일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었다.
사랑의 단계는 아주 다양하게 여러 가지가 있어서 단계별로 서비스가 달랐다. 금기가 없어서 어떤 행위도 비난 받지 않았고 위험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은밀한 공간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생겨나는 사고가 있어. 죽은 사람도 있어. 아직 폐쇄를 할 수 없어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야. 무슨 일인지.”
행정국장이 말했다. 이 일은 경찰국에서 조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왜 행정국장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은밀한 데이트의 공간은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는 곳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관리 시스템도 잘 알아낼 수 없었다.
파라다이스의 행정국과 보건국, 경찰국은 은밀한 데이트 공간에 CCTV를 추가 설치하고 이들에 대한 감시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아직은 시범단계의 관찰 단계라서 개인에게 비밀이 공개된다는 내용을 공지한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 이렇게 하기로 파라다이스 3국은 합의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CCTV를 설치하고 시험가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행정국장이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은밀한 데이트를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 피가 낭자했다. 남자는 행복한 표정으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에게서 출혈이 심해지자 비상벨이 울렸고 보건국과 경찰국에서 출동했다.
현장에 있던 행정국장과 지동일, 이경하도 함께 달려갔다.
이들은 서로에게 직접 닿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스킨십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상대의 손길을 가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상상으로만 느끼는 감각은 이들에게 갈증을 주었다. 어느 순간 이들은 상대의 손길을 느끼면서 자신의 몸을 자신이 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가상에서 서로 각자의 몸을 터치하며 사랑을 했지만 자신이 자신의 몸을 만지면서 터치의 감각을 대신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자신의 몸을 그렇게 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다른 때보다 쾌감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었다. 결국 이들의 쾌감은 상상을 가미한 자위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파괴적 성희를 즐기던 이들이 문제였다. 이들은 상대의 몸을 탐할 때 상처를 입히면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터치는 상대의 얼굴을 짓이기고 말았는데 실제 행위는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몸을 자신이 스스로 할퀴고 짓이긴 것이었다. 하지만 감각은 가상공간에 집중해 있어서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쾌감으로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들이 상대에게 터치를 할 경우, 경고음이 울리고 이들의 행위는 금지되었다. 그런데 경고음은 없었다. 시스템 밖에서 터치가 있었던 것이다. 시스템의 오류였다.
이제사 은밀한 데이트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피투성이 되어 죽어나간 이유의 비밀이 밝혀진 것이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원래 이런 일이 있었던 거였어요?”
“우리도 지금 처음 알게 된 거야. 파라다이스의 은밀한 데이트는 성공적인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오류를 일으킨 것인지 모르겠어.”
“위험한 일이에요. 사람들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럽네요.”
“무서워요.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아름다운 환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나 봐요.”
“어쨌든 가상의 은밀한 데이트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금기가 없어서인데, 이제 금기를 만들어야 되는 시기가 온 건가 봐.”
“만약 금기와 억압이 있다면 어떤 누가 은밀한 데이트를 이용하겠어요? 스킨십 금지 조항에 대해 반기를 들겠죠.”
“스킨십은 죽음인데? 어떻게 죽음과 스킨십을 바꾸겠어?”
이들은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남자와 여자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경하 씨, 우린 은밀한 데이트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말았네요. 어디에서 은밀한 데이트를 이어가야 할까요??”
“아, 맞다. 들의 은밀한 데이트는 중요하지. 난 이만 사무실로 들어가도록 할게. 혹시 장소가 필요하면 나의 세컨 하우스를 빌려줄 수 있어.”
행정국장의 말도 안 되는 농담이었다.
“아, 괜찮아요. 다른 날 데이트를 하면 돼요.”
“맞아요. 오늘 이런 상황을 만났는데 어떻게 은밀한 데이트를 하겠어요. 프로그램의 문제인지, 개인의 스킨십에 대한 강력한 자극의 문제인지 아직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거잖아요. 은밀한 데이트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맞죠? 지동일 씨?”
경하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세컨 하우스를 빌려주겠다고 하는 행정국장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럼, 그래야지. 은밀한 데이트는 다음에 기회를 보도록 해.”
“국장님, 오늘의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걸까요? 은밀한 데이트 공간이 폐쇄되면 파라다이스에 큰 혼란이 올 텐데요.”
“당분간 은밀한 데이트를 신청하지 못하도록 특별한 일을 만들어 봐야지.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경하와 지동일은 은밀한 데이트 장소에서 장혁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장혁은 경찰국 직원이니 지금의 상황은 공유 받았을 것이었다.
경하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데 차 안에서 바비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은밀한 데이트 공간에서 사고가 감지되었습니다. 경하 씨, 은밀한 데이트 프로그램은 잠시 쓰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응,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야. 걱정하지 마. 사고 현장에 다녀오는 길이야.”
<걱정스러우시겠습니다. 조심히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은밀한 데이트에서의 사고는 엄청 위험한 사고였어요. 완벽한 파라다이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어요.”
“완벽한 파라에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니 심각한 일이야. 이제 은밀한 데이트는 사라져야 할지 모르겠어.”
“말도 안 돼요. 난 은밀한 데이트를 이용하지 않지만 파라다이스 주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원천이기도 해요. 그런 프로그램이 없는 상태를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오류가 생긴 것을 어떻게 하겠어. 위험한 일이야.”
“혹시 방해 프로그램이 작동된 것은 아닐까요?”
“방해 프로그램?”
“요즘 바깥세상인 엑스트라의 리아가 파라다이스를 공격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요.”
“그런 일이 가능이나 하겠어? 리아는 바깥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방해할 만큼의 힘이 있지 않아.”
“하지만 동조세력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의심은 기우라고 하지. 그리고 굳이 일반인들을 다치게 하는 일에 왜 힘을 쏟겠어. 지금 은밀한 데이트 프로그램을 즐기던 일반인들이 사고가 난 거잖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뭐야, 지동일, 이 인간. 리아를 편들고 있는 것 같잖아. 혹시 같은 패거리 아닌가?’
경하는 잠시 자신이 은밀한 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편해졌다.
“참, 우리 은밀한 데이트는 잠시 보류겠네. 아깝다. 좋은 시간 가질 수 있었는데.”
“어림없어요. 나에게 그런 기대는 금물. 알았죠? 장혁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거였어요.”
“너무 하는군. 내가 제법 멋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 텐데.”
“무슨 쓸데없는 자신감이에요? 하여튼 어림없다고 말했죠? 다시는 이런 일에 나를 언급하지 말아줘요.”
“알았어. 어째 내가 은밀한 데이트를 사정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네. 나도 자존심이 있다고. 다시 말하지만 나 숫...”
“아, 됐어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
‘순 사기꾼 같이 생겨서는 숫총각이니 뭐니. 어이가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어. 누가 믿겠니? 네가 숫총각인 것을? 지나가는 개도 안 믿겠다.’
“지나가는 개?”
경하는 갑자기 지나가는 개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파라다이스에서 지나가는 개는 없었다. 개는 동물원에 있었다. 사람들의 애완동물은 ABT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경하에게도 애완견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갑자기 지나가는 개라는 어구가 생각이 나자 자신과 가까이 지냈던 강아지가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개? 그건 또 뭐야? 요즘 세상에도 지나가는 개가 있어? 하여튼 경하 씨, 엉뚱해.”
경하는 지나가는 개, 생각을 하며 자신에게 어떤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은 뭔지 모르게 잘려나간 것 같았다. 무엇인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경하가 집에 돌아갈 때 지동일은 은밀한 데이트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경하가 지나가는 개에 대해 언급하자 지동일은 말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았다. 경하는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이 날 것 같았지만 머릿속 회로가 꼬이는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날 그냥 둘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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