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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경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 뛰는 천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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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경
작품등록일 :
2018.07.21 21:51
최근연재일 :
2018.08.08 14: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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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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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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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화.

DUMMY

천마는 해수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언덕길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이 마음에 들었다.

중원의 밤은 어두웠다. 이곳처럼 사람들이 빽빽이 살지도 않았고 밤을 밝히는 조명도 적었다. 그렇기에 천마는 조용한 야경을 보았을 때 마치 천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마. 어딜 가요?”

생각에 잠긴 것이 과했는지 천마는 해수가 집에 들어가는 것도 놓칠 뻔했다. 뒷짐을 풀고 서둘러 해수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여긴 언제 올라도 적응이 안 되는구나.”

오달은 해수 앞을 걸으면서도 툴툴거렸다. 비좁은 돌계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오달은 계단을 발로 툭툭 차며 신경질적으로 올라갔다.

“집주인이 보면 너 맞아 죽을걸.”

“누가? 내가? 천하의 오달이 맞아 죽는다고?”

“넌 자본주의를 너무 몰라.”

해수가 입을 비죽거렸다.

“자본주의가 무엇이냐?”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 거.”

맥이 빠지는 듯 해수가 허탈하게 말했다. 오달은 걸음을 멈추고 해수를 돌아보았다.

“그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 아니더냐?”

“북한은 안 그래.”

“거기가 어디더냐? 말도 안 되는 곳이로군.”

“너희가 계속 북쪽으로 갔으면 닿았을 곳.”

“아아, 거기 말이더냐?”

“역시 갔어!”

해수가 소리를 지르자 오달은 아차 싶었다. 천마는 해수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거짓말쟁이들.”

해수는 싸늘하게 그들을 한 차례 보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덩그러니 남은 천마와 오달은 평상에 앉아 서로를 보기만 했다.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습니다. 주군.”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구나.”

“여자의 마음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오달이 고개를 저었다. 천마는 내심 그 말에 동의하며 해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이 지루한지 오달이 봉지를 건드렸다. 냄새가 퍼졌다.

냄새에 자극받은 오달이 봉투를 열어젖히자 문도 열렸다. 이전보다 가벼운 복장으로 바뀐 해수는 쟁반을 들고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해수가 평상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적당한 크기의 접시가 여러 포개져 있었다. 친숙한 컵라면도 두 개가 있다.

“컵라면!”

“그렇게 좋아?”

해수가 피식 웃으며 오달과 천마에게 컵라면을 하나씩 건넸다. 컵라면의 벌어진 뚜껑 사이로 흰 김이 피어올랐다.

“조금만 기다려. 접시에 담아 먹자.”

해수가 봉투에서 음식을 꺼내 접시에 먹기 좋게 담았다. 아직 차가운 밤공기에 음식은 식어 있었다. 전자레인지가 부서져 덥힐 수도 없었다. 해수는 내심 화가 났다. 그렇다고 지난 일을 끄집어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입을 꾹 다물었다.

“왜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지는가?”

천마가 멀뚱히 물어보자 해수는 화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표정에 나타났나 싶어 해수는 활짝 웃어 보였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오달은 양장피를 천마 옆으로 옮기며 해수에게 물었다. 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오달이 말을 걸면 짜증이 났다.

‘분명히 이놈이 다 때려 부순 걸 거야.’

언젠가 오달에게 수리비를 청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해수는 나무젓가락을 좌우로 갈랐다. 천마와 오달도 해수를 따라 했다.

우적우적 양장피를 씹어 먹는 오달이 묘하게 미웠다.

“주군 이것도 드십시오. 맛이 기가 막힙니다.”

천마는 양장피를 한 입 떠서 입에 넣었다.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컵라면도 좋았지만, 이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음식을 해치우는 오달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삼키는 천마를 보며 해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화 안 낼게. DMZ 갔지?”

“컥, 쿨럭.”

사례가 걸린 오달은 기침을 하며 평상 밑으로 씹다 만 양장피를 뱉었다.

“간 것은 좋아. 그런데 두 번 다시는 가지마.”

“어째서 그러는가?”

걱정 어린 해수의 목소리에 천마가 되물었다.

“거긴 위험한 곳이야. 하마터면 전쟁이 날 수도 있었어.”

“그렇게 귀한 영약이 있는 곳이더냐?”

“거긴 분쟁지역이야. 다시 그곳에 가면 전에 경찰과의 충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일이 벌어질 거야.”

해수의 말에 천마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해수를 빤히 보았다.

“그곳은 외국인가?”

“아니야. 한 나라야. 에이, 더 자세히 말하면 힘드니까. 그냥 그렇게만 알아둬. 자세히 알아봤자 좋을 것도 없어.”

해수의 말에 잠깐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오달이 무감각해진 얼굴로 남은 양장피를 홀랑 주워 먹었다.

“야! 나 한 조각도 못 먹었는데.”

“줄까?”

오달이 양장피를 씹던 입을 쩌억 벌렸다.

“진짜 이 밉상.”

해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오달의 입을 손으로 쥐어 짜버렸다.


다음 날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은 천마와 오달은 옥상에 늘어진 채 잠에서 깨어났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군.”

바닥에 깔린 박스를 정리하며 오달이 퉁퉁 부은 얼굴을 꾸벅 숙여 인사했다.

“너도 잘 잤느냐?”

천마의 얼굴 역시 부어 있었다. 자기 전 자극적인 음식을 한가득 먹었기에 둘의 얼굴은 불어난 만두처럼 부어 있었다.

“어제의 식사는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오늘도 또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세지는 입장에서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다.”

“하하. 하지만 컵라면은 이제 못 먹을 것 같습니다.”

고기 맛을 알아버린 오달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깝게 됐네. 오늘 아침도 컵라면이야.”

문이 벌컥 열리며 해수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왔다.

“오늘도 학교 가는가?”

“아, 응. 가지. 그럼.”

“그런가. 학업에 고생이 많군.”

“하하.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해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컵라면 준비해 올 테니까. 이불만 정리해 놔.”

“언제나 고맙네.”

천마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해수는 빙긋 웃고는 문을 닫았다.

“마음씨가 참 착한 소저로군.”

“운이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 불행 중 다행이다.”

천마의 말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오달은 즐거워 보이는 천마의 모습에 자신도 기분이 좋아졌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해?”

문이 열리며 해수가 대뜸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천마는 대답하지 않고 해수를 향해 옅은 미소만 날렸다.

평상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멍하니 아침 햇살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해수는 집으로 들어가 김치통을 가지고 나왔다.

“역시 라면에는 김치지.”

“오. 김치인가.”

김치란 말에 천마는 깜짝 놀라며 해수가 건넨 김치 통을 받아 들었다. 뚜껑을 여니 시큼한 김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군?”

오달은 김치를 알지 못했다.

중원에서만 나고 자란 오달에게 김치는 접해 보지 못한 낯선 음식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고려 출신이었다. 당시에도 김치는 있었다. 어렸을 적 이후로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고향 음식에 천마는 가슴까지 벅차올랐다.

“김치라는 음식이다. 야채를 소금에 절여 익혀낸 음식이지. 설마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천마의 기억 속에 김치는 하얀색이었다.

해수가 건넨 김치는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가 붉은색을 띄고 있었지만 색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한 입 김치를 떠먹었다.

“김치만 먹으면 짤 텐데?”

해수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천마는 깊은 감동에 빠져들어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이윽고 한 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참으로 맛있구나.”

“맛있는데 왜 울어?”

“주군.”

천마의 반응에 두 사람이 당황했다. 눈물을 닦아낸 천마는 웃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해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너희들 오늘은 뭐 할 거야?”

말 끝나기 무섭게 오달이 말했다.

“나는 잘 거다.”

해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아르바이트까지 가야 하는데 당당히 자겠다고 선포했다. 부럽단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남는 것은 울화통이었다.

“천마는?”

혹시나 해서 천마에게도 물었지만 천마는 시선을 돌리고 말이 없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관자놀이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을 뻔히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이 백수들.”

“백수라니 말 다했느냐?”

오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뭐 할 건데?”

해수의 질문에 오달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봐도 자신들이 할 것이 없었다. 해수는 골똘히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잘생긴 천마와 힘 잘 쓰게 생긴 오달. 복장만 갈아입히면 평범하게 보일 인상들이다. 할 일도 없이 집에서 백수처럼 시간만 보내기만 하는 것도 아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늘어난 생활비가 해수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부서진 가전제품도 보상받아야 하고 말이야.’

돈에 빠삭한 해수는 오달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날카로운 시선을 받게 된 오달은 경계하며 해수를 위아래로 흩어 보았다.

“뭘 보는 거야?”

“야. 오달. 너 알바해라.”

“알바?”

생소한 단어에 오달은 멍하니 되물었다. 해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천마에게도 똑같은 말을 던졌다.

“천마도 알바해라.”

“그게 무엇인가?”

똑같은 질문을 받은 둘은 어리둥절하여 해수를 보았다.

해수는 음흉하게 웃었다.

이 둘은 분명히 돈이 될 것이다. 오달은 힘쓰는 아르바이트에 보내면 될 것이고, 천마는 말투만 고치면 서비스업에서 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하라는 거지.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

“천마님께 노동을 하라는 것이냐?”

오달이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기백 넘치는 그 모습에 해수는 주눅이 들었다. 그런 오달을 말린 것은 천마였다. 천마는 오달의 옷을 잡아당겨 다시 평상에 앉혔다.

“주군?”

“죽으란 말도 아닌데 왜 그리 역정을 내느냐?”

“하오나 주군.”

오달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당황하며 천마를 말리려는 마음이 해수에게도 보였다.

“우리는 해수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이다. 어떻게든 거기에 보답을 하는 것이 인간된 도리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제가 돈을 벌어 오겠습니다. 표사든 해결사든 닥치는 하겠습니다.”

“나는 이곳이 궁금해졌다. 직접 겪어 보고 싶구나.”

천마의 말에 해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너희들 하는 거지?”

“네 마음대로 하여라.”

오달은 팔짱을 끼고 휙 돌려 앉았다. 그 모습이 토라진 어린아이 같아 해수는 배시시 웃었다.

“그럼 오늘 밤에 너희들 입을 옷 사올게. 이거 빌려주는 거니까 알바비 받으면 갚아야 한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오달은 단단히 삐졌는지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천마는 해수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숙식에 이어 또 한 번 신세를 지는군. 언제나 고맙소. 낭자.”

천마가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싸 쥐어 포권을 취했다. 갑작스런 인사에 해수는 멋쩍어졌다.

“일단 나 늦었으니까 이만 가볼게. 사이즈는 어제 입었던 옷에 맞춰서 사오면 되겠지?”

해수는 대답도 듣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달은 천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하실 겁니까? 주군?”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주군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 또한 따르겠습니다.”

오달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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