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emonium. Mammon's Tower(193)
새로운 힘의 발현
역시 원인은 빛이다. 내 몸을 감싸고 도는 초록빛을 접하는 순간 안구에서 엄청난 고통이 피어난다.
혹시나 해서 테스트 겸 리안이 나를 바라봤다가 바로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것은 파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며 나를 바라봤다가 입에 거품을 물 정도의 고통을 겪었다.
고통이란,
감정을 가진 모든 생명체에 공통 적용이다. 그것이 천사든, 악마든 인간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문제는 나는 멀쩡하다는 것이다. 내 온몸을 감싼 초록색의 기류는 아지랑이처럼 하늘하늘하며 뿜어지고 있는데 나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다.
오히려 기운이 개운하고 살짝 뭐랄까 으쓱해지는 기분? 왜 이런 말을 하잖느냐? 오늘 바이오리듬이 굉장히 좋다고. 딱 그런 느낌이다.
열심히 운동하여 땀 쭉 빼고 미온수에 샤워하고 나온 딱 그 기분이란 말이다.
사흘 동안 마장기를 이용해 이 녹색의 빛을 어떻게 하든 갈무리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내 눈이다.
윌리엄의 말로는 나를 바라봤을 때 내 눈이 초록색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 순간 눈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받았고 그 고통의 강도는 점점 늘어가더니 최종으로 붉게 달군 인두로 눈을 지지는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그런 상황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한가지 요령이랄까 이 고통의 원리를 알았는데 고통을 받는 순간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이 정도 아픔이 어떤 상황에서 오는 건지. 그럼 그 상황에 해당하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상상 속의 고통이 그대로 뇌에서 현실화한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고통의 군주다운 능력이다.
응? 그러고 보내 내가 왜? 고통의 군주는 소멸했는데 왜 이것이 내 몸에 올라타 있냐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지막 부러진 그 지팡이를 잡았을 때 알수 없는 무엇이 내 몸을 타고 들어왔다는 것을 인지했었다.
자, 뭐 다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가 문제다. 어떻게 하면 이 빛을 갈무리 할수 있느냐다.
보통 이그조틱의 경우 이 빛을 살짝만 봐도 바로 비명부터 지르고 난리를 쳤다. 이그조틱은 권능으로 강화된 신체라 고통에 둔감하다. 그래서 팔다리 심지어 머리가 잘려도 쇼크사가 오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정신적으로 약한 녀석들은 비명을 빽뺵지르며 난리를 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고 습관화되면 그냥 주사 한 대 맞는 느낌? 아, 이건 좀 무리수가 있구나. 그냥 말벌한테 한 방 훅 쏘이는 정도의 고통 수치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의 유대로 쉽게 가져다 붙일 수 있으니 심리적 안정감도 한몫하는 거고.
그런 이그조틱도 이 빛을 보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가학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리안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내 눈빛을 정면으로 봐버렸다. 살려달라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계속 튀어나왔다. 이게 사흘 꼬박 갔고 나흘째부터 천천히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이러니 진도도 못 나가고 다들 이 층에 묶였다. 파니는 두 번이나 당하며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았다.
파니가 가진 권능은 아무런 손상이 없다는 것 확실히 신체에 물리적 상처는 나지 않았다. 단지 고통은 뇌가 느끼는 것이라는 것.
다시 말해 정신적 데미지라는 것이다.
이에 정신력으로 대항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확실히 네필림인 윌리엄과 워런트는 내 몸에서 뿜어지는 빛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것 같았다. 대신 내 눈은 절대 바라보지 못했다.
윌리엄이 호기롭게 버틸 자신이 있다고 다시 덤볐다가 사흘 동안 죽여 달라고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다. 고통은 단지 뇌가 느끼는 느낌이다. 신체적 데미지는 전무다. 정신이 파괴될 정도의 극악 중의 극악한 고통만 느낄 뿐. 역시 고통의 군주다.
잠깐 내가 왜? 이건 아니잖아. 내가 왜 고통의 군주 역할을 갑자기 해야 하냐고!
이대로 동행은 불가다. 이그조틱은 아예 나를 쳐다보지조차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이 주일이 그냥 후딱 가버렸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빛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서로 이 방법 저장법 온갖 방법이 다 나왔고 그러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다고 또 하나를 찾아냈다.
내가 눈을 감으면 내 몸의 빛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눈을 감고 약 10분 정도 지나면 몸에서 뿜어지던 아지랑이 녹색이 사라진다.
그 상태에서는 이그조틱이 바라봐도 괜찮을 정도다. 그러나 내가 눈을 뜸과 동시에 몸에서 초록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 죄다 비명을 지르고 엎어져 버렸다.
당연히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이 빛을 없애 보려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런데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른 사실은 알았는데 상대가 고통에 절어 비명을 내지를 때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몹시 기분이 좋고 약간은 흥분 상태가 되더라는 것이다.
사실 비명이라는 게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는 고음이라 장시간 듣는 것은 미친 짓인데 언제부터 내가 이 비명을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것처럼 즐기더라는 것이다. 가끔 그런 나 자신에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이러다 진짜 고통의 군주가 되는 것이 아닐까?
에슐레임 피아로가 이걸 노리고 나와 데드람 코르다와 싸움을 붙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마장기 수련을 하면서 타인의 고통이 내 힘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상대가 괴로워하면 할수록 힘이 증가하는 기분을 분명히 느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데드람 코르다에게 흡수됐던 아스모데의 권능이 모두 되돌아와 있었다. 그것은 지팡이를 잡았을 때 녹색 구체안에 있던 권능과 어떤 힘이 내게로 이전되었던 것 같다. 그 방법 이외에는 달리 다른 이유가 없었다.
대신 그래비티 포스로 낭비된 에테르는 장난 아닐 정도였다. 정확히 측정은 안 되지만 지면이 일그러져 들어갈 정도였으니 거의 100g 이상 걸린 것 같았다.
저번에 언노운이 해제한 스킬 중 에테르 농도 조정과 농도 입자에 관섭을 가할 수 있어 평소 대기에 산란된 에테르 입자를 흡수하는 스킬과 자가 증식 기능까지 사용 가능하기에 딱히 엘리시움 광석에서 에테르를 흡수하지 않아도 에테르를 채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역시 바탈리온 한 마리 흡수하면 몇 년 치 양이 한꺼번에 들어오기에 바탈리온이 진정한 내 원료인 셈이다.
아,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어서 이 빛을 해결해야 한다. 벌써 3주가 지나갔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몰라 고심에 쌓여 있다.
은총에 어떤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 기가스 시더는 물론 워런트의 은총까지 빌려 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리고 필드에 나가 악마종과 부딪쳐 봤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녀석들이 나를 보더니 부들부들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 치더니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끔찍해서 그냥 죽여 버렸다.
네필림에서 인간폼으로 돌아왔지만, 빛은 꺼지지 않았다. 단지 내가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빛이 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눈을 뜨면 바로 빛을 뿜어낸다.
워런트는 사제복 안에 스톨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고뇌의 사제 중 한 명인 일리나 모헴의 은총이 담긴 것이라 하며 나에게 건넸다.
결국 이 스톨로 눈을 칭칭 감아 때아닌 장님이 되어 버렸다.
이게 그나마 은총이 담긴 물건이라 제대로 내 눈을 봉인할 수 있었다. 네필림으로 변신했을 때 권능이 뚫고 나와 버리기에 다른 것은 거의 소용이 없었다.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해야 빛이 나오지 않지 그냥 생각 없이 있으면 눈꺼풀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고역이었는데 그나마 은총이 담긴 스톨 덕분에 의식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것도 정말 고역이다. 이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은 애로사항이 꽃폈다. 멀쩡한 놈이 장님 행세를 하려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더욱이 권능으로 미션을 흐름을 봐야 하는 데 환장할 노릇이다.
그렇게 해서 다섯 층을 다시 올랐다. 이그조틱은 고글이 나올 때마다 서로 가지려고 난리였다. 아. 빛 차단 성능이 아주 좋은 고글 같은 경우 어느 정도 내 빛에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고글 나오면 난리가 났다.
결국 파비앙이 중재해서 순차적으로 먹기로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원. 파니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윌리엄과 워런트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한다.
확실히 힘이 증가하긴 했다. 수치상 얼마나 나오는지 몰라서 실감이 안 됐지만, 악마종은 아예 내 근처에 오지도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고 심지어 권능으로 만들어진 차원마저 나와 접촉만으로 오류를 일으켰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나무에 기댔는데 나무를 구성하는 권능이 흩어져 나무가 가루로 부서져 버릴 정도였다.
은총은 무방비로 통과해 버렸고 단지 권능에 대해서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에슐레임 피아로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승리자에 주어진 포상인지 저주인지는 모른다. 나야 어떤 방면으로든 재주껏 이용하기만 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 스톨이 가진 은총 덕분에 눈에 뭉친 권능의 통제가 쉬워졌다.
눈을 감고 스톨로 칭칭 동여맨 상태지만 집중하여 조금씩 사물의 윤곽까지는 분별해 낼 수 있었다.
동공을 통해 상이 맺히는 방식이 아닌 권능을 뿜어내 사물에 반사되어 오도록 제어할 수 있게 되어 그 상태로 사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이제 리안이나 제임스가 옆에서 이끌어 주지 않아도 움직이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됐다.
스톨 덕분에 권능을 제어하여 주변 사물을 보니 권능의 흐름은 더더욱 감지 하기 쉬웠다.
597층에서 롱기누스 창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7번째 지도도 쉽게 찾았다. 수많은 악마종 중 하나의 몸속에 들어 있었다. 이번 층의 악마종은 곤충 형인데 생김새와 공격 패턴이 다양해 이그조틱이 애를 먹었다.
한두 장 모으다 보니 이건 퍼즐처럼 껴 맞춰야 하고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이 지도도 한 장만 더 구하면 된다.
여기서는 네필림과 파니는 미션에 개입할 수 없었다. 순수 이그조틱의 킬수만 카운터 되는 곳이라.
곤충 형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숫자가 이어링에 표기 제한이 걸릴 정도로 끔찍하게 많았다. 물론 범위 기술로 한꺼번에 소멸시킬 능력이 충분하지만, 미션과 상관없는 터라 나는 엘리시움 광석을 줍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상당량의 에테르를 사용했으니 무조건 보충해야 한다. 이번 에슐레임 피아로 사건처럼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찾아왔을 때 역시 믿을 것은 에테르뿐이다. 권능은 하위 악마 정도에나 효과가 있지, 고위 악마는 내 권능으로 턱도 없이 밀리기 때문에 에테르를 사용하는 기술만이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있다.
은총도 딸린다. 기거스 시더는 기술이지 은총의 양이 확실해야 그만큼 효과를 본다. 언노운이 말하기를 대악마 전을 대비해 은총을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은총을 각성하기 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롱기누스의 창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기거스 시더의 은총보다 워런트의 오소리와 윌리엄의 불멸에 담긴 은총이 더 강력하고 파괴적임에 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내 은총이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비율이 너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즉 권능이 힘이 너무 강대해져 반대로 은총이 많이 눌리고 있는 상태다. 기거스 시더로 헤일로를 발현하려면 정말 쥐어 짜내야 할 정도다.
시간이 갈수록 사물 인지도가 높아졌다. 눈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스톨의 은총이 정말 기분 좋았다. 마치 따뜻한 온기가 있는 수건으로 눈을 온열 마사지해 주는 느낌 딱 그거였다.
덕분에 머리도 개운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사물의 인지력이 갈수록 상승하니 이제 어디 부딪칠 일 없었고 전투도 무리 없었다.
좀 더 지나니 이제 사람 얼굴도 구분할 수 있었다. 얼굴의 형태의 윤곽도 느낄 수 있어 누가 누군지 거의 식별할 수 있었다.
단, 하나 큰 단점이라면 세상 모든 사물이 아주 짙은 흑백이라는 점이다. 색상이 모두 빠져버린,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느낌이랄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윌리엄과 워런트는 늘 고생이다. 몸에서 은총을 뿌려 대니까 악마종이 기막히게 반응하고 층에 오르는 순간부터 꿀을 향해 돌진해 오는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고뇌의 사제라고 자존감 높아서 특히 윌리엄은 첫인상이 고집스럽고 못된 기운을 풍겨서 좋지 않게 봤는데 계속 같이 있으며 경험해 보니 신용 없고 경박한 녀석은 아니었다.
워런트는 과묵하고 말이 없고 생각이 깊은 사내다. 그의 세례명이랄까 고뇌의 사제에서 위치는 진실의 사제, 모두 여섯의 사제는 독특한 세례명이 있었다. 예언의 사제, 언어의 사제, 참회의 사제, 비탄의 사제, 정의의 사제가 그들이며 내 눈을 동여맨 스톨을 제작한 사람이 언어의 사제인 일리나 모헴이다.
오소리와 불멸은 원래 워런트의 무기였다. 갓난아이 때부터 윌리엄은 불멸이 뿜어내는 은총을 매우 좋아했고 물론 교황청에서 그의 뿔을 잘라 버린 탓에 권능이 쇠퇴했고 어릴 때부터 불멸과 오소리를 만지며 자라다 보니 이것이 계기가 되어 권능이 아닌 은총이 먼저 각성해 버린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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